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 - 임성순 여행 에세이
임성순 지음 / 행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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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여행 에세이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행 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만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기 식으로 써도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단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자신이 가본 곳이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든 여행 에세이를 잘 읽는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늘 어디를 갈까? 언제 갈까?를 머릿속에 그리며 산다. 여행이 일이고 여행이 곧 삶인 까닭이다. '여행 중독'이란 말도 공연히 생긴 말이 아닐 터다. 여행 에세이가 잘 읽히는 이유다. 서점에는 〈신간 코너〉에서 여행 에세이를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느 것을 읽어도 쉽게 공감한다. 이 책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의 저자 임성순은 소설가다. 이번 여행 에세이가 소설 이외 처음이다. 평소 여행을 '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왜 낯선 곳, 낯선 방법으로 여행을 다녀와 책으로까지 썼을까?

책 표지에는 저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친 산맥 사이로 난 길을 달리고 있다. 사진 위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유배기이자 귀향을 향해 11,000킬로미터를 돌아가는 한 멍청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평소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오토바이 여행을 밀린 숙제를 처리하듯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 여행의 당초 목표는 첫눈이 내려 길이 막히기 전에 오토바이로 알프스의 옛길인 '고타드패스'를 넘어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여행을 시작한 9월부터 이미 러시아와 유럽은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한파가 관통하며 오토바이 여행자에게 갖은 고난과 역경을 안겨준다. 어쩌다 보니 남하하는 한랭전선에 쫓기고 눈비와 한판 대결을 펼치며 달리는 여행자에게는 구체적인 일정도, 미리 예약한 숙소도 없었다니 정말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노련한 여행자라도 목적지와 꼭 알아야 할 필수 정보는 챙기는 것이 보통이다. 목적지는 그저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정해질 뿐이다.

이번 여행 에세이를 쓴 저자의 책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여행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책까지 냈다고···? 모순적이지 않는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해야 이 에세이를 읽어볼 독자들에게 '예의' 아닐까? 소설 작가라던데 혹시 소설 쓰듯이 여행기를 쓰려고 그런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어쨌든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래서 더 읽어보고 싶었으니까. 글 쓰는 시간으로 일상을 채우는 저자는 이런 저런 계기로 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마침 등단 10주년이었고, 그보다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낚여 오토바이로 떠나는 세계 여행이라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유럽 알프스를 넘는 게 목적이라면서 동해로 가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오토바이로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걸까? 아니, 그냥 기차를 탄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내리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토바이 여행이 시작된다. 여행의 1차 목표는 '알프스 넘기'다. 여정의 시작이다.

저자는 엉뚱하면서 냉소적이고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 묘사가 압권인 소설 작가다. 그의 묘사력을 뛰어넘는 일이 이번 여행 중에 벌어진다. 오토바이로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질주한다. 아는 길도 조심해서 걸어가고, 탈것을 타고 움직여도 속도를 늦추는 게 여행자의 상식인데···. 아무리 오토바이라도 속도 제한이 없다는 아우토반을 사선을 넘나드는 속도로 질주하다니. 모험심인가? 책에 따르면 비행기로 이동하며 12개국 1만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3개월에 걸쳐 달렸다. 종일 장대비 속에서 독일의 아우토반을 내달리고, 크로아티아 플라트비체 국립공원으로 가다 길을 잃고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선명하고 아름다운 그 풍경들 속에서 작가는 ‘세상이 실존하며,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혼자 상상하고 글 쓰며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 속에 섞여 살아온 소설가에게 실재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준 그 순간들은 어쩌면 현실 속에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것이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독자는 글을 써보지 못한 사람이지만 작가들의 일상에 대해 들은 적은 여러 번 있다. 대개 독자들이 유명한 작가들의 일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 가끔씩 유명한 작가의 책 출간을 기념하며 인터뷰 등을 통해 작가들의 일상을 써놓은 신문 기사나 책을 보면 메모를 해둘 정도로 작가들의 일상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모두 글 쓰는 틈틈이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한다. 비슷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치 정답이 있는 질문이듯이 답변이 천편일률적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임성순은 일상이 조금 색다르다. 작가가 된 지 10년 차이라는 저자는 소설을 주로 썼고 몇 편의 시나리오도 썼다고 「시작의 시작」이란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밝힌다. 소설은 대체로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거짓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잘 팔렸다면 상당한 돈을 벌었을 테니. 시나리오 중에서 어떤 것은 곧 영화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고도 말한다. 돈을 못 벌었다는 것은 엄살이 아니겠지만(돈을 벌기 위해 작가를 직업으로 택한 사람은 없을 테니) '나쁘지 않은 10년'이라고 털어놓는다. 이유가 줄곧 딱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지냈기 때문이란다. 이 작가 매력적이다.

10년 간 글을 계속 썼고 '성공한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글만 썼다니 어쩌면 무계획적 삶을 핑계하기 위해, 혹은 이유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글을 쓰지 않는 날은 아프거나 일이 생겨 무언가 다른 걸 해야 할 때뿐이라고 말한다.

조금은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다가 게을러지 것은 아닐까? 좀처럼 힘 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작가다. 10년 세월이 길든 짧든 글만 계속 쓰고 있다는 말은 묘하게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잠을 하루에 2~3시간 길이로 밤낮 가리지 않고 틈틈이 잔단다. 완전히 글 속에 묻혀 사는 것인가, 아니면 게으름을 글로 감추는 건가?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마치 끝나지 않는 긴 하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말에 과연? 작가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글을 쓰다 보니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고치고 주인공 혹은 조연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삶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처럼 말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비행기와 오토바이를 번갈아 타며 유럽 북쪽부터 아래쪽 지중해까지 종단하게 됐을까? 내세울 것 없는 텅 빈 나날의 연속선 상에 있던 저자는 아마 피하지 못할 고독사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또 그날까지 별일 없이 계속 글만 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별 문제 없다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이 문제였다고 술회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일단 자신을 집에서 쫓아내기로 결심한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이것은 일종의 유배기이자 귀향을 위해 가장 먼 길을 돌아가는 한 멍청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낸다.

이 책은 4부(part)로 구성돼 있다. 1부 〈쓸데없고 의미 없는 여행은 없습니다〉, 2부 〈제게도 여행의 목적이 있었네요〉, 3부 〈결코 한가하지 않은 여행〉, 4부 〈반갑다, 파리〉 등이다. 각 부는 다시 각 여행 지역에서의 특별한 경험 등을 나누어 모두 42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의 제목만 읽어도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걷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도 아닌 오토바이 여행이라니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만만치 않았음을 말해준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로 3달 간 홀로 다니려니 그렇잖아도 힘들 터인데 눈앞에 선하다.

말벌에 쏘이고, 크로아티아 플라트비체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서는 구글 지도에 낚여 길을 헤매다 결국엔 길에서 미끄러지며 다친다. 활자로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여행이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다가온다. 스페인에서 대한민국으로 오토바이를 보내고, 마지막으로 즐기는 여행은 프랑스에서 패키지 여행! 버스에서는 자면 되고, 내려서는 관람하면 되는 패키지 여행 만세이 저자에게 잘 어울린다는 말은 소설가답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특별한 여행에 대해 자평한다. "오토바이 여행은 괴로웠다. 바람은 애교. 수많은 벌레가 온몸을 때렸다. 한여름 새벽에 운전해 본 사람은 이해할 테다. 동이 트고 번호판에 붙어 있는 거무스름한 사체들의 존재. 내 몸에 그 사체들이 들러붙는다 생각해보라. 곤충보다 더 큰 위험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날씨. 웬일인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마다 비가 몰아쳤다. 겨울로 향하고 있었다. 비구름은 알프스로 오면 눈구름으로 바뀔 테고, 엄청난 눈을 뿌린다. 그렇게 되면, 알프스를 넘지 못한다. 눈으로 도로가 통제될 테니. 여행의 1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구름보다 빠르게 달려야 했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급 '맨 VS 날씨'라는 이상한 형태로 독일을 가로지르는 경주를 치르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 경주 내내 저는 비를 맞죠.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맞은 비는 앞으로 맞을 비의 전주곡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던 거죠."(p.78)

 

"자그레브를 떠나며 크게 자빠져서 다쳤던 걸 빼면 크로아티아는 대체로 좋았습니다. 무뚝뚝하지만 친절한 사람들, 뜻밖에 깔끔한 도시-유럽 도시들이 의외로 더럽습니다-,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곳이었습니다.

바다 반대쪽으로는 황량한 대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네, 석회암 지형이라 물이 고이기 힘들다 보니 이렇게 황량한 모습입니다. 처음 자다르로 넘어올 때 봤던 쓸쓸하고 아름다운 사막 같은 풍경 말이죠."(p.151)

 

저자 : 임성순

 

1976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학창시절 대부분을 경기도 안양에서 보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만화, 영화, 게임 등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처음 접한 디지털 1세대이자 미완성형 오타쿠로서 작가를 꿈꾸었으나 대학 시절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의 영향으로 연출부 생활을 하게 되어 여러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였다.

장편소설 『컨설턴트』로 제6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자본과 인간의 관계를 그린 「회사 3부작」과 제2차 세계대전 중 선상 반란을 소재로 한 『극해』, 40대 기러기 가장의 은밀한 즐거움을 그린 『자기 개발의 정석』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SF 장편소설 『우로보로스』 출간하였다. 2018년 단편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포식자들』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독특한 상상력과 능숙한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늘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늘 주류가 아닌 주변부에서 투철한 B급 정신으로 세련된 아큐(阿Q)의 삶을 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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