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
채도운 지음 / 지베르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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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는 일상에서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소확행'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자칭 '애매한 인간'이라는 필명의 채도운 저자는 신인 작가는 아니다. 이미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라는 에세이를 펴낸 바 있다.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독자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애매한'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을 듯하다. 어쩌면 딱 부러지게 일을 마무리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지만, 그것을 일부러 필명으로 내세울 바는 아닐 것 같고... 1992년생이라니 서른을 넘긴 여성으로서 삶의 중간이라는 의미도 아니고... 아무튼 그의 이번 에세이도 전작과 비슷한 카페&서점 이야기다. 사실 저자는 어렵게 공기업에 입사하고 4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었는지, 경남 진주 작은 마을에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운영하겠다고 나선다. 유서 깊은 도시 진주이지만 변두리 작은 마을에 난생처음 카페를 운영하며 하루하루 일기쓰듯 카카오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책까지 출간한 것이 전작 『엄마는~』이다. 전작은 저자가 카페를 운영하면서 밀리의서재x카카오브런치 전자출판프로젝트에 당선된 것이 계기였다. 이번 책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는 카페 이야기는 맞지만 중점이 카페라는 '공간'에 맞추어져 있다.

'공간'이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라는 사전적 풀이이지만,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이란 속뜻도 포함하고 있는 3차원적 빈 곳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공간은 저자에게 있어 카페를 말한다. 운영이 어렵지만 임차연장계약을 체결하며 보틀북스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카페 이야기를 담아내며,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저자가 "내가 기대한 인생은 아니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뜻밖의 공간에서의 치열하고도 맹렬한 일상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담는다.

 


 

저자는 자신이 현재 있는 공간이 자신이 태어난 곳, 살던 집, 일하는 공간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정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현재 있는 공간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말이다. 때론 달콤하고, 때론 씁쓸하며, 어떤 날에는 뭉클하게 만드는 '그곳'은 우리의 일상이 담긴 곳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계속, 그렇게 각자의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는 비유에 독자로서는 조금은 당혹스럽다. 저자의 공간에 대한 의식이 점점 사유가 더해지면서 특별한 내용이 하나씩 추가된다는 느낌을 독자는 강하게 받는다. 우리의 일상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전작을 낸 후 모 인터뷰를 통해 카페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밝혔다. "처음 책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은 어떤 내용의 책일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마침내 종이책이 출간되자, 부모님은 각자 한 권씩 사서 읽으셨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뒤 엄마와 아빠에게 연락이 왔어요. 저는 부모님이 제게 ‘대견하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먼저 “미안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빠의 은퇴 과정, 엄마의 외로움, 할머니와의 씨름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딸이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고.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게 해서 미안하다고. 딱 그말을 하시더라고요."라고 털어놓았다.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부모님께 “우리 행복하자”라는 말만 건넬 뿐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저자는 「나는 기어코 또 희망을 발견해 버리고야 말았다」란 제목의 이번 책 〈프롤로그〉를 통해 운영상의 어려움 등 첫 번째 책 출간 이후부터 이번 책 낼 때까지의 과정을 '무미건조'하리만큼 덤덤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살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는 말이다. "오지 않는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며, 의미 없이 휴대전화를 스크롤링하는 행동은 일상을 조금씩 좀먹어 들어갔다."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이 싫어서, 비생산적인 자신이 미워서, 좀처럼 째깍거리지 않는 자신의 시계가 답답해서, 이 순간을 만들어낸 과거의 선택이 너무나도 한스러워서 '책'을 택했다고 고백한다.

 


 

책을 읽고 있는 저자를 본 한 손님의 권유로 독서 모임을 시작했을 때에야 저자의 시계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독서 모임 전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일상을 쫄깃하게 만들어 주었다곡도 말한다. '자기 계발' '투자' '시험' 등 미래지향적인 단어들을 모두 내려놓고, 충실하게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함께라서 외롭지도 않았다. 책이 주는 위안을, 이 공간에도 공유하기로 결심했단다.

이로써 이곳은 카페이기보다 서점이 됐다. 그동안 독서 모임 멤버는 무려 200여 명으로 늘었고, 독서 모임의 종류도 과학, 사회, 역사, 철학, 경제 등 다채로워졌다. 그런데도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고. 적자생존, 파이싸움, 제로섬게임, 생존과 도태···. 많은 단어들이 나타나 저자를 뒤흔들어 놓는다.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에 책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고, 거리마다 나부끼는 임대 포스터는 모두의 마음에 불안감만 불어넣는다. 다달이 때맞춰 내지 못하는 공과금에는 늘 자잘한 연체금이 붙어 있었고, 반품하지 못하고 쌓여 있는 책들ㅇ른 저자의 마음에 무게와 부피를 더해갔다. 얼굴만 봐도 나냥 좋았던 손님의 지갑이 굳게 닫힌 날, 찌푸린 저자의 인상을 깨달았을 때 마음의 가난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버거웠다고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렇게 되면 소확행이 아니라 '소확고(苦)'에 더 가깝다.

그러나 질척거리는 절망 속에서도 저자는 〈프롤로그〉 제목처럼 「기어코 또 희망을 발견해 버리고야 말았다」. 저자는 말없이 읊조린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면 쉬운 길을 나는 왜 기어코 꾸역꾸역 계속 가려는 것일까. 그 꾸역이, 그 모자라 보이는 우직함이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운명'을 찾아내게 하며, '길'을 개척한다고 믿는다. 이 책은 자신의 '꾸역의 여정'이라고...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 2부 〈당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서관〉, 3부 〈지금 사랑을 담는 중입니다〉, 4부 〈지옥에서 온 커피〉, 5부 〈인생 대환장 파티, 본 적 있나요?〉 등이다. 각 부에는 10편 안팎의 글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 권의 책을 이룬다.

 


 

〈프롤로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문장들이 본문에서는 힘 있게 이어진다. 월세를 내지 못해 쩔쩔매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폐업 위기에 있는 소상공인에게 지원한 지원금의 힘이 가장 컸단다. 이 돈으로 월세며 전기세며 관리비며 내니까 꼴깍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버틸만했다. 버텼다기보다 죽지 못한 것이리라. 역시 작가는 고통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데 특화된 분이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도 있다. "버티는 시간이 무척 괴롭다거나 고된 것만은 아니었다. 손님들과 찐친 못지않은 우정을 다지기도 했고, 마음 맞는 손님들과 맥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나름 재밌고 행복했다. 나도 그 과정을 통해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히 차를 사고파는 공간이 아님을, 같이 추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간임을 깨닫고, 또 배웠다."(p.17)

저자는 이어 '공간' 이야기를 본격 꺼내든다. 책에 따르면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신이 운영하는 이 '공간'을 무어라고 부를지 아직 결정 내리지 못했다. 카페일까? 서점일까? 공방일까? 문화공간일까? 뭘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나라서 이 공간도 애매하기만 했다. 카페 같기도 하고, 서점 같기도 하고, 공방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거. 하지만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아우를 수 있고,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애매한 것도 특징이 되고, 장점이 되고,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카페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 문화공간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을 다 우리 '애매한 공간'에 초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애매함의 힘이란 이토록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굉장히 심란한 상태다. 이 공간을 좋아해 주는 손님도 있고, 나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척이나 속상하다. 손님이 방문하는 것만큼 수익은 나지 않는다. 일은 일대로 하고 있지만, 내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다. 손님과 이야기하는 건 재밌지만, 또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뭘 얻었을까? 예금과 적금은 없지만 행복과 보람을 얻었다. 하는 일은 즐겁다. 손님들과의 일상들도 참 행복하다. 하지만 이 행복이 돈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저자의 이번 책에서도 행복하지만, 고뇌스러운 하루의 일상이 별 감정의 동요 없이 잘 드러나 있다. 고뇌스럽지만 그러나 해답은 또 어떻게든 찾아낸다. 애매한 공간이어서일까. 카페 주인이 못 찾으니 이번엔 손님이 제시한다. 손님들과 책맥 모임을 만들어서 벌써 2년째란다. 저자는 그날따라 고작(?) 캔맥주에 취했다. 아니, 힘든 자신의 감정에 취했을까? 저자는 그저 온통 무거운 마음의 짐을 울부짖듯 토로했다. 그런데 손님이 딱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본인은 이 모든 걸 놓고 포기하고 싶구나.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거 하나가 딱 좋아서 못 놓는 거구나. 손님들이 진상이거나 조금이라도 악독하고 못됐으면 놓았을 텐데. 이놈의 모임에 진상이 한 명이라도 등장했으면 그 얄팍한 끈을 놓을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도저히 못 놓는구나."

이때 저자는 왜 놓지 못하는가를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왜 힘든 감정싸움을 하면서까지 이 공간을 버텨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 말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하며 저자를 짓눌렀다. 즐거움, 행복, 보람 그 모든 긍정적 감정을 압도할 만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자자는 분명히 행복하기 때문에, 지금 손님들과의 이 시간과 순간이 너무 행복하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이 공간이 운명인가 보다.

 

저자 : 애매한 인간(채도운)

 

1992년생. 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등 모든 게 애매한 인간. 무난하게라도 살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다 마침내 공공기관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힘겹게 4년을 버티고 퇴사, 나고 자란 진주에서 무작정 카페를 열었다. 그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주인을 닮아서일까? 카페도 애매하다. 카페인가, 서점인가, 마을회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함이 주는 힘을 믿기에, 이 공간을 방문해주는 손님, 친구들,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다. 애매한 인간의 카페 창업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전자책을 출간했다. 오늘도 진주에서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애매하게 운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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