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
강한수 지음 / 파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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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사진으로만 봤던 유럽의 성당들을 실제로 처음으로 독자가 본 것은 지난 90년 대 해외여행 자유화조치 이후였다. 사실 산업화 시대에 해외 여행과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간다는 것은 꿈으로 그리기만 했을 뿐 실제 다녀 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산업화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민주화도 차츰 성숙되어 가던 90년 대 초 공산주의 붕괴에 따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승리감에 젖어 있을 무렵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DP)이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했고,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시대였다.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목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들떠 흥분하기도 했다. 남북통일도 독일처럼 무력이 아닌 평화적으로 가능할 것도 같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군사 독재를 넘어 처음으로 민간 정부라는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 군부독재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많은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쉽지 않을 거란 금융실명제도 철저한 보안 속에 성공적으로 달성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때 국민들을 더욱 흥분하게 했던 일이 해외여행 자유화조치였다. 외국 여행 가서 쓸 수 있는 돈(환전)도 5,000달러에서 10,000달러로 상향 조치했다. 너도 나도 해외 여행을 꿈꾸고 대다수 국민이 해외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해외 여행은 필수 요소가 될 무렵이다.

시류에 편승해 독자도 유럽 여러 나라를 묶어 여행을 다녀오는 일정으로 첫 해외 여행을 갔다. 꿈에 그리던 유럽이라서 들뜬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 가본다는 의미에서 훨씬 힘들기도 했다. 말(영어)도 수준에 미달해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 여행을 하기로 했고, 그만큼 비쌌지만 처음이라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돈의 여부에 관계 없이 가기로 했다. 여행사가 미리 나눠준 사전 지식을 위한 팸플릿 등을 순식간에 복 또 본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하니 유럽의 유명한 관광지 중심이었다. 처음 유럽에 나가는 터라 유적이나 유명 관광지가 훨씬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보였음은 물론이다. 지금이라면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보다는 친구나, 가족, 연인 등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때는 앞뒤 가릴 상황이 되지 못했다. 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밀라노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관광하다가 일정 중에 있던 밀라노 대성당이었다. 차에서 내려 유명한 극장(스칼라 극장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근처를 5분 정도 걸였다. 그 골목길을 돌아 나온 순간 눈앞에 펼쳐진 건축물에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졌다. 밀라노 대성당이라고 하는데 이게 과연 사람이 지은 건물인가 할 정도로 크고 높았다. 거기에 장식마저 화려했다. 건물을 보고 압도 당한 느낌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성당은 건축미뿐만 아니라 내부 장식이나 꾸밈이 매우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나 불행이었던 것은 내부 관람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공사 중이라는 이유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아닌 게 아니라 외부에도 위쪽 부분에 가림막을 쳐두고 있었다. 위쪽 외부 공사는 낙석 위험이 있어서 아예 몇m쯤 떨어져야 한다는 안내 표지판도 있었다. 지금도 있겠지만 광장의 동상 안쪽으로 출입 저지선을 쳐놓고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성당 내부에 별 관심이 없었던 때라 외관이 아름다운 더 많은 것을 보기를 원했기에 섭섭하지는 않았다. 성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도 못했기에 오히려 광장 옆에 바로 붙어 있는 실내 시장에서 구경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유럽의 성당은 이때의 일정으로 몇 개 더 있었고, 다른 곳은 내부에도 들어가 봤지만 상상보다는 크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크게 떠들면 안 된다는 말과 사진 촬영 금지라는 가이드의 주의 사항을 듣지 않아도 분위기 자체가 무겁고 약간은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였다. 그냥 구경만 하는 식으로 돌아다녔지만, 이 때 한 가지 깊게 머릿속에 박힌 것은 성당의 건축 기간이다. 기본 200년에서 400년이 넘은 것도 많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단지 건설에도 2~3년이면 끝낸다는 '빠른 공사'를 장점이는 사실이 돋보일 때이기에 유럽의 성당 규모는 물론 건축 기간도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다. 독자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에 더 성당을 보러 다니지도 않았기에 유럽의 성당에 대한 짧은 지식은 거기서 멈췄다. 그러나 이 책 『고딕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을 읽으면서 독자의 단견과 이해 부족을 절감했다. 지금 유럽 문명이 가장 앞선 문명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상태에서 왜 그들은 그렇게 건축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을까? 이 책은 강한수가 오랫동안 탐구하고 연구한 성당 건축 연구의 일면을 독자들이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독자도 한 번 읽음으로써 일부 암기도 가능할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사실 저자는 '건축가'가 아닌 '신부'이다. 의정부 교구 소속의 사제로 〈교구주보〉에 3년 간 연재해온 글을 책으로 엮었다. 전작 『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이 1부라면, 이 책 『고딕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는 2부이자 완결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에는 그럴 만한 이력이 있다. 사제로서는 독특하다고 할 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전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국내외 건축현장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그것이다. 이후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로마 그레고리아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공부하며 건축과 신학의 내밀한 관계를, 특히 중세 동안 진행되어온 성당 건축에 스며있는 신학적 배경과 건축공학은 물론 역사, 철학, 문화, 예술적 비의를 해독하는 안목을 갖추었다.

 


 

이 책은 성당 건축 양식 중 로마네스크에서 이어지는 고딕 양식의 과도기에서 후기 고딕에 이르는 건축 양식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지역적 문화적 특성이 성당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서로마 멸망 후 새로운 권력 재편 과정에서 중세 유럽의 성당들은 당대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당연히 아는 만큼 보일 수밖에 없으며, 알게 될수록 이제까지 그저 경건함과 웅장함의 이미지 속에 감추어졌던 깊은 의미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이 부분을 세심하게 다루면서도 성당의 배치와 구조와 변화의 양상 등 신학적이며 건축적인 관점에서의 이해를 친절하게 돕고 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웅장한 중세 유럽 고딕 성당들이 왜 그런 형태를 하고 있는지, 외부와 내부 구조의 원리가 무엇인지, 천장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그 낱낱의 의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라면 외관을 보고 내부를 상상할 수도 있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로마네스크에 이은 고딕 성당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친절하고 세심한 탐구와 설명으로 중세 천년으로의 여행에 독자를 초대하는 셈이다.

로마는 제국 후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 발표 이후 재판소나 집회장 등으로 사용되던 공공건물을 개조했던 바실리카 양식은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전환되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12세기 중엽에 등장했던 초기 고딕 성당은 로마네스크적인 요소가 잔재해 과도기적 경향을 띠며, 13세기에 이르러서야 고전적 고딕 성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책은 고딕 성당의 긴 여행을 로마네스크 성당인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레세(Lessay)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에서 시작한다. 고딕 양식의 조짐이 태동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로마네스크'가 '로마다운'이란 뜻이었다면, ‘고딕’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을 가리키는 '고트인의'란 뜻을 지니고 있다. 고딕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화가이자 미술사가 조르지오 바사리(1511~1574)다. 새롭게 등장했던 미술 양식을 가리키는 용어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고딕’ 또한 처음 등장할 때는 ‘조악하고 야만적인 고트족의 문화’라는 멸시의 뜻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고딕 양식은 고트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13~15세기 무렵의 예술 양식을 통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고딕 양식은 건축으로 대표되며 이 시기의 건축은 고딕 성당으로 요약된다. 고딕 성당은 로마네스크 성당보다 웅장하며 수직성을 강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육중한 벽체와 기둥은 훨씬 더 날렵해지고 창은 넓어졌다. 높게 솟은 첨탑은 하느님을 향한 종교적 열망을 한껏 드러내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내부로 쏟아져 들어오는 풍부한 빛은 신비롭고 경건하기만 하다. 파사드 상단에 장미꽃을 닮은 원형 창(장미창)을 배치해 이곳이 영원한 진리와 빛, 그리스도의 거처임을 밝히고 있다. 이 모든 공간적 변화는 새로운 건축 기술인 포인티드 아치(Pointed arch, 첨두아치)와 리브 그로인 볼트(Rib Groin Vault, 늑재 교차 궁륭),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공중 버팀벽)란 외부 버팀목이 발명됐기에 가능했다. 이 세 가지 건축 기술이 고딕 성당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핵심을 이룬다.

흔히 중세를 문화의 암흑기라 말하지만, 고딕 성당을 염두에 두면 의문을 품지 않을 수밖에 없다. 중세에 발아하고 꽃을 피운 고딕 성당이야말로 서양문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고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딕 성당이야말로 당대의 종교, 역사, 철학, 예술 등 모든 문화의 집결체이며 상징적 공간이라고 한다면, 중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저자는 고딕 양식과 스콜라철학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동시성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스콜라 학파는 인식의 ‘명료함’을 추구했다. 심지어 신의 존재마저도 가시적으로 드러내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신의 현존을 빛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당연히 성당은 빛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이를 위해 건축의 수직성과 벽체의 경량화, 크고 넓은 창문을 확보하는 기술이 개발되어야만 했다.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고딕 양식의 건축이 태동하고 발전을 주도한 국가는 프랑스였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거쳐 샤르트르 대성당에 이르면서 고딕 양식의 성당 건축은 전성기를 누리게 되고, 랭스 대성당과 아미엥 대성당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프랑스의 고딕 양식이 이웃 국가들에 전파되고 지역성을 반영한 양식으로 변주되면서 유럽의 고딕 양식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의 솔즈베리 대성당,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등이 그 대표적인 성당들이다. 각국의 후기 고딕 양식은 프랑스의 수직성에 대한 강요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어 고딕 이전의 고전적인 수평성과 개성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로마네스크 양식의 끝자락에서 고딕 양식으로 이어지는 태동기에서 시작해 유럽의 각국으로 전파되어 나름의 고딕 양식을 갖추게 되는 완성기에 이르는 성당 건축의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과정의 갈피에 스며있는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맥락을 짚어냄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친절히 돕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유럽의 유서 깊고 고풍스러운 성당들이 그냥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기둥 하나 창문 하나에 스며있는 중세의 역사와 건축적 변화, 당시 사람들의 신에 대한 지극하고 숭고한 믿음의 이야기들이 저자의 말처럼 귀에 남아 쟁쟁하게 울릴 터이니 말이다. 독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가톨릭 신자도, 지금의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한마디로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에 감동을 받는 까닭은 성당의 건축 양식의 변화가 유럽 문화의 역사와 신앙의 역사, 그리고 당시대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역시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의 변화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마리아의 중개에 대한 신학자들의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중세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마리아의 존재는 세상살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어루만져주시는 자비로운 어머니로 자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주교좌성당이 성모 마리아(노트르담)를 주보 성인으로 정했고,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성모 마리아 성당, 곧 노트르담 대성당이 파리의 노트르담 주교좌성당입니다.(p.67) -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중에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북부에서 이어진 이탈리아 고딕의 생명력은 이미 지난 세기에 수도원 성당에서 시작된 대형화를 넘어서 '거대화'(Gigantismo)의 경향을 띠었습니다. 그중에서 밀라노 대성당이 대표적입니다. 밀라노 대성당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 대장군'(Cattedrale della Nativita della Beata Maria)으로 봉헌되었으며, 이전에는 '산타 마조레 대성당'과 '산타 태클라 대성당'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386년 종탑이 무너진 후 대주교는 새로운 성당의 건축을 명했습니다. 밀라노 대성당의 건축은 건축가뿐만 아니라 수학자와 화가 등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계획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건축가는 고딕의 보편적 구조주의를, 톡일 건축가는 첨탑 등의 수직성을, 이탈리아 건축가는 정사각형 비례와 기하학적 물질성 등의 고전주의를 주장했고, 결국 그들의 관심은 수직성과 수평성이 모두 강조된 거대화에 집중되었습니다.(p.244~247) - 「밀라노 대성당」 중에서

 

저자 : 강한수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제다. 사제의 길을 걷기 전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국내외 현장에서 일했다. 이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7년 후 사제서품을 받고,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을 공부했다. 의정부교구 평신도 교육기관인 신앙교육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고, 본당 사목을 하면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성사론을 가르쳤으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이다. 안식년에 로마 사피엔자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고대 및 중세 건축사 연수를 했고, 현재 본당 사목을 하면서 건축신학연구소를 맡고 있다. 저서로 『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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