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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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홉 꼬리의 전설』은 추리·미스터리 소설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배상민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표제어에서 드러나듯이 옛날 흑백 TV 시절 브라운관 앞으로 수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던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게 한다. 극장의 영화팬들을 '안방극장'인 TV가 빼앗아갔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당시 TV에서의 드라마는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산업화를 막 시작하던 시절이라 주머니가 얄팍한 월급쟁이들의 여가 활동으로는 영화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TV의 등장으로 영화는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는 기록이나 각종 보도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전설의 고향〉은 말 그대로 구전돼 오던 각 지역의 '전설' 중에서 TV의 드라마로 제작해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우리의 정서와 잘 맞아서인지 굉장한 인기 프로그램으로 장수를 누렸다고 들은 바 있다. 그때는 주제와 소재를 중심으로 방영할 내용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부풀려지거나 전해져오는 동안 재미를 더하기 위해 과장도, 왜곡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독자나 시청자들은 더 흥미를 느낄 수 있기에 TV 제작 프로그램 소재로 채택되고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을 터다.

사실 소문이나 전설은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다. 더욱이 수천 년 동안 폐쇄적 사회에서 피지배자들이 겪는 각종 설움이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민간에서 나돌기 마련이다. 사회의 온갖 소문은 전설이 되고, 내용은 오롯이 피지배 계급의 애환이 담겨 있다. '전설'은 이런 태생적 이유로 민중들의 불만 해소로도 좋은 줄거리를 갖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저자 배상민이 오늘날 수사극이나 미스터리 소설의 소재로 '전설'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장르에 잘 맞아서 선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 책은 당시 소문으로, 전설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탐정수사극으로 바꿔 소설로 썼다. 배상민 작가가 소문과 전설은 사실 확인이 잘 안 되지만 당시의 사회 상을 빗대보면 많은 은유가 숨어 있다. 교훈적이라는 단어에 일괄 흡수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탐관오리의 횡포, 지배 계급의 무자비한 행위로 입은 피햬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사회 풍자나 사회 비판의 성격이 강할 것이다. 추리·미스터리 작가의 눈으로서는 무척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드라마 제작사 기획 PD로 일하다가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에게 전설로 내려오던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엮어 한 편의 완전한 소설로 엮어냈다. 저자는 『조공원정대』 『콩고, 콩고』 『페이크 픽션』 『복수를 합시다』 등을 통해 유머러스하면서도 현실을 비트는 통렬함으로, 현실과 서사의 틈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우리에게 현실의 문제를 환기시켜 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는 ‘소문의 시대’였던 고려 말을 배경으로, 혼란의 시기에 더욱 무성하게 가지를 뻗는 흉흉한 ‘소문’과 기이한 ‘이야기’를 쫓는 두 탐정 이야기로 써냈다. 문학적 분류로 이런 명칭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미스터리 수사극'을 선보인다. 아홉 꼬리를 가진 ‘구미호’, 고을 감무의 목숨을 노리는 ‘처녀 귀신’, 쇠를 먹어치우는 ‘불가살이’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소재들이다. 뿐만 아니라 다리가 세 개 달린 영물 ‘삼족구’ 등 형체가 없는 ‘소문’이 스스로 살을 붙이고 뼈대를 갖춰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저자는 추적하고 있다. 이야기가 어떻게 탄생하고 소멸하는지 그 근원 속으로 파고들어 사건 해결의 탐정 역할로 두 사람의 독창적인 인물을 내세운다. 저자는 '에필로그'인 〈작가의 말〉에서 좀더 구체적인 소개를 곁들인다. "한량에다 겁도 많지만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선비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혼자서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전장에서 반평생을 보낸 우직한 무사가 그의 곁에 있어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선비에게 정덕문이라는 이름을, 무사에게 금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p.321~322)

 


 

저자는 집필 이유를 "기이하고, 잔혹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참혹하게 죽은 시신이 보인다. 시신은 여자고, 나이는 열일곱 살쯤. 눈은 뜨고 있었고, 배가 갈려서 창자가 튀어나와 있다." 저자의 말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잔혹한 사건의 피해자로부터 시선을 고정시키고 시대와 사회상, 등장인물의 성격, 사건의 개요, 사건 해결 과정 등을 마치 저자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요즘 신문 기자가 사건을 추적해 들어가듯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선택된 시대 배경은 고려말이다. 피해자인 시신의 옷차림으로 보아 고려시대 사람이다. 고려말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목숨값이 참으로 가벼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눈을 뜨고도 믿지 못할 기이한 일이 많이 벌어질 법하다.

책의 뒷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사실 책의 시작 부분에 해당되기도 한다. 책의 첫 문장은 불길하다는 까마귀 떼의 울음소리다.

"까악 까악."

아침부터 온 산이 울리도록 까마귀 떼가 어지러이 울어댔다. 밤사이 변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시신은 참혹했다. 배는 갈라져 있었고, 위장, 창자, 자궁같이 배 속에 있어야 할 장기들이 시체 주변에 널려 있었다. 손과 발이 묶인 처녀는 눈을 뜨고 죽어 있었다. 어쩌면 살아 있는 채로 저리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껏 봐왔던 시신보다 더 끔찍하여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p. 8) 저자는 사건 현장을 서두에 두었다. 요즘 미스터리 소설의 시작 부분이 그렇듯 참혹한 사건 현장을, 그것도 '엽기적인' 현장을 그려내고 있다. 엽기적인 것이라는 것은 범행이 더 잔혹하다는 다른 표현이다.

고려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 저자는 혼란한 때 소문은 더 빨리 퍼진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고려 말은 소문의 시대였다. 밖으로는 왜구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안으로는 이임임, 임견미 같은 권신들이 득세하여 활개를 치는 통해 조정이 어지러웠다. 나라 꼴이 이러하니 무수한 소문이 떠돌 수밖에 없었는데, 원귀와 괴물에 관한 것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는 괴물에 대한 소문을 낳았다."

 

 

‘말(소문)’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세상을 축으로 하여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며 그 형태를 수시로 바꾼다. 특히 세상이 혼란할수록 ‘소문’과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포’를 자양분 삼아 활기를 띠기 마련이다. 이 책은 나라 안팎이 소란스러웠던 고려 말을 배경으로, 고을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과 그 뒤에 아홉 꼬리처럼 감추어진 소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모두 13개의 각기 다른 사건이다. 소문을 추적해 가는 두 주인공이 사건이 일어난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사'를 펼친다. 가문이 기울어진 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세상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주인공 ‘나(정덕문)’는 고을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갖는다. 소설은 정덕문이 화자(話者)로 스토리를 이끌어 간다. 사건 현장에는 수상한 점이 많다. 잔인하게 살해된 시신이 발견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질적으로 고을을 다스리는 호장가에서 부리는 순라꾼들이 “여우가 나타났다”라고 외치고 다니는 것과 이 사건을 파헤치기만 하면 고을 감무*들이 처녀 귀신에 의해 혼이 빼앗긴 채 목숨을 잃는다는 점은 쉽게 믿을 수 없는 비과학적 이야기지만 오늘날 관점으로 그렇다. 당시에는 소문의 시대답게 살을 붙이고 뼈대를 바꿔도 진실로, 사실로 더욱 확대되어 갔다. 이것에 의문을 품은 ‘나’는 고을에 새로 부임한 감무인 ‘금행’과 함께 고을을 공포로 몰아넣은 흉흉한 소문 뒤에 감춰진 진짜 실체를 찾아 나선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정덕문)는 인물 자체가 기이하다. 소문을 소문으로만 듣지 않고 이야기의 진원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당시 한량이라면 귀족 계급의 자녀로서 먹고 살 걱정은 당초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안 한다는 점은 어쩔 수 없으나, 이상한 이야기에 매혹되었다고 스스로 혼잣말 하듯 말한다. 남들은 젊은 한때를 탕진한다고 비웃었으나, 자신은 이야기들을 좇느라 등과하여 조정 일을 할 생각조차 없었다."

* 감무 : 고려시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속현 혹은 향, 소, 부곡, 장, 처에 파견되던 하급 지방관. 현령보다 낮은 지위로 임시직이었으나 후에 상설직이 됨.(저자 주)

 


 

정덕문은 사건을 추적할수록, 그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 뒤에는 반드시 다른 숨은 의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혹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감추려는 눈속임일 수도 있고,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는 탐관오리들의 검은 술수일 수도 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생존본능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실체를 따라가던 ‘나’와 ‘금행’은 결국 ‘구미호’도 ‘불가살이’도 ‘삼족구’도 현실을 토양으로, 인간의 욕망을 자양분으로 자라난 것임을 알게 된다.

 

문득 도사의 말이 떠올랐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만 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건 삼족구가 될 수 있다고 했던가.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들이 이어졌다. 내가 강태공이 되면 어떨까? 그리고 금행이 여우를 잡는 삼족구가 되면 또 어떨까? 내가 금행을 여우 앞에 데려다 놓을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이 떠오를수록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어느새 배는 강 건너에 다다랐다. 나는 배에서 내릴까 하다가 다시 뱃머리에 주저앉았다. 어쩌면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이었다.(p.151)

 

과연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은 누구이며, ‘나’와 ‘금행’은 구미호를 잡는다는 발 세 개 달린 영물인 삼족구가 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책 『아홉 꼬리의 전설』은 짜임새 있는 미스터리한 사건 전개를 통해 은폐된 진실을 파헤쳐 긴장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현실을 투영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점점 몸피를 갖춰나가는”(「작가의 말」 중에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이야기의 속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저자는 드라마 제작사 기획 PD와 소설가로 동시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야기 작법서'를 출간하기도 한 작가의 폭넓은 사유로 구축한 ‘이야기’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세계를 통해 몰입의 재미와 동시에 이야기가 가진 힘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모두 1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우가 찢어놓은 시신」, 「불가살이와 가왜」, 「요물과 귀신의 기운」, 「호강가의 잔치」,「처녀 귀신의 소원」, 「미끼가 된 귀신」, 「호장가의 힘」, 「동자승과 곶감」, 「위협과 위기」, 「정도전과의 담판」, 「미끼를 위한 미끼」, 「지는 해 뜨는 달」, 「다리가 셋인 개를 구하러 가는 감무」 등이다. 앞서 '감무'에 대한 주석은 저자가 직접 달아 이 책의 서평에 그대로 써넣었지만 독자로서 생경한 단어 '호장가'란 단어엔 주석이 없어 독자의 추정으로 단의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호장가는 한자어 '戶長家)'는 고려 초기 흔히 쓰였던 '지방 호족' 가문을 말한다. 이들은 왕건의 고려 건국을 도왔으며 그들의 딸들의 상당수가 왕건과의 혼인으로 고려 황후의 신분을 획득한다. 고려 말 등장하는 '권문세족'과는 다른 뜻이다.

 

백성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도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라는 놈은 정말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구나 생각했다. 동시에 두 이야기가 합쳐진 데에는 무슨 연유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보았다. (중략) 쇠를 먹는다는 괴물은 농사지을 쇠붙이까지 모조리 수탈해 가는 조정일 수도 있고, 먹고살기 위해 쇠를 먹는 괴물을 만들어 그 뒤에 숨고 싶은 백성들의 염원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도 백성들의 염원이 담겨 있을지 몰랐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를 없애달라는 염원.(p.231)

 

“선비님 아니십니까?”

노인이 달려와 내 양팔을 붙들었다. 몇 년 전, 가왜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노인이었다. 나는 노인을 꼭 끌어안았다. 이제야 진짜 살았다 싶었다. 내 운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중략) 헤어지기에 앞서 나는 노인과 마을 사람들에게 두 번 세 번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세상이라도 백성들은 제법 의리가 있다는 금행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p.301~302)

 

저자 : 배상민

 

2009년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조공원정대』, 장편소설 『콩고, 콩고』 『페이크 픽션』 『복수를 합시다』, 이야기 작법서 『이야기 어떻게 쓸까?:매체를 넘나드는 이야기 쓰기의 원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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