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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학살을 넘어 - 팔레스타인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왜 인류는 끊임없이 싸우는가
구정은.오애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2월
평점 :
"전쟁은 인류 역사상 하루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는 어느 전쟁사가의 말이 새삼 재인식되는 요즘입니다. 뉴 밀레니엄인 21세기에 들어와서도 4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정말 지구상에서 단 하루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있었나 싶습니다. 요즘은 물론이지만 21세기 새 희망으로 가득 찬 2000년도부터 우리에게 들려오는 '전쟁' 뉴스는 매번 국제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작은 전쟁, 내전 등에 관해서는 이젠 뉴스거리도 안 된다는 듯 외신마저 다루지 않을 정도이니 이 책 『전쟁과 학살을 넘어』를 펼치면서 떠오른 독자만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2년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전쟁의 시작이라며 각종 뉴스 매체들은 앞으로 세계 패권국의 양상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해설까지 내놓으며 요란스러웠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환영하는 입장이어서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핵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침략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아프리카나 남미 등 다른 대륙의 세계인들도 직접적인 전쟁 피해는 아니더라도 크든 작든 러-우 전쟁은 일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는 마음이었다. 식량과 에너지 공급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은 빌고 또 원했다. 러-우 전쟁은 지금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도 종전 소식은커녕 가끔씩 확전 소식과 미사일로 인한 사상자 숫자만 늘어나고 있는 장기전 형국이다.
특히 지난해 10월 세계인이 놀랄 만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면서 뜸하던 러-우 전쟁 뉴스는 이젠 거의 보도되지 않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 소식에 집중돼 있다. 전쟁을 일어난 계기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같은데, 공식으로 전쟁 선언은 이스라엘이 했다. 미사일 공습과 불법 침략으로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개한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하마스 조직을 뿌리뽑아 평화를 되찾겠다는 선언이었다. 사실 하마스 공격은 불법이었고, 사망 또는 인질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100명이 훨씬 넘는다고 하니 어느 국가든 분노하지 않겠는가. 즉각 이스라엘은 하마스 세력을 뿌리뽑겠다고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자가 1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 책 『전쟁과 학살을 넘어』의 공동 저자 구정은과 오애리는 오랫동안 언론사에서 일하며 국제 뉴스를 다뤘다. '새천년'을 향한 희망의 해를 바라보며 기대가 채 잊혀지기도 전에 전쟁과 분쟁으로 얼룩진 21세기의 단층들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전쟁 과정과 피해, 앞으로의 전망보다는 그 나라들이 왜 전쟁을 일으키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이제 지역적 분쟁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왜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지에 당위성을 개진하는 입장에서 쓴 책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쟁과 우리는 21세기 지역 전쟁들과 무관한 것인지,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아직 휴전 중인 국가 대한민국에서 바라보는 '전쟁불가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책은 모두 6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세계를 뒤흔든 우크라이나 전쟁〉, 2부 〈팔레스타인은 왜 ‘분쟁지역’이 되었나〉, 3부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4부 〈끝나지 않는 전쟁, 아프가니스탄〉, 5부 〈세계가 반대한 이라크 전쟁〉, 6부 〈전쟁을 막을 수는 없을까〉 등이다. 1부에선 지구 전체에 그늘을 드리운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뤘다. 민주주의를 향한 우크라이나인들의 힘겨운 여정과 거기에 계속 질곡을 강요한 러시아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2부의 주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다. 이 또한 역사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맥락을 잡기 힘든 이슈다. 이스라엘 건국 때부터 현재까지의 진행 과정을 풀어 쓰면서, 이스라엘이 무법자로 인식되어온 과정과 그 도구가 된 정보기관들의 저돌적 행태를 정리했다. 3~5부에선 21세기의 주요한 전쟁인 시리아 내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다뤘다. 뒤의 두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 침공으로 일어났고, 미국이 압도적 화력을 쏟아부어 장기전을 치렀지만 결코 ‘승리’라 할 수 없는 초라한 성적표만 받아들고 발을 빼야 했던 전쟁들이다. 사건의 진행 과정을 시기 순으로 설명한 뒤 미국의 오만과 일방주의가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갔는지, 그 전쟁들이 세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분석했다. 마지막 장에는 전쟁 뉴스를 오래 들여다본 저자들의 고민과 바람을 담았다.
전쟁 범죄를 왜 처벌해야 하는가, 전쟁 범죄에 대한 인식과 단죄는 어떻게 진화해왔나, 한국인들에게 전쟁과 파병 그리고 난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저자들은 주목했다. 인류애가 깨져나간 단층들을 돌아본 이 책이, 인류애를 일깨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저자들의 집필 취지에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들은 국제부 기자들로서 전쟁 현장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매일 쉴새없이 들어오는 국제 뉴스의 무게를 판단하고, 신중하고 가능한 한 우리와 관련이 되는 뉴스만을 선별해야 한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 등 굵직한 뉴스를 다루지만, 21세기 들어 전쟁 뉴스는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지난 세기 제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양차 대전을 합쳐 줄잡아도 1억 명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 독자들도 다 아다시피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 등이다. 군인들이 전사하는 숫자보다 민간인 피해가 훨씬 많다. 예전에는 군대를 훈련해 양측에서 어느 한 지역을 선택해 정면대결을 통해 전쟁의 승부가 가려졌다. 물론 패배한 나라와 사람들은 멸망할 수 있다. 다행히 노예로라도 끌려가면 훗날을 기약할 수 있지만 노예보다 굴욕적인 일은 없다고 해서 차라리 죽음을 택한 사람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양상이 달라졌다. 직접 전쟁터뿐만 아니라 전쟁을 돕는 민간인들이 사는 곳을 비행기를 동원한 폭격, 성능과 사정거리가 엄청나게 발전된 미사일 등 대량 살상의 양상로 무기가 현대화됐다. 심지어는 핵폭탄(방사능탄), 화학탄(독가스), 생물탄(전염균) 등이 개발되면서 단 한 방으로 수십만 명을 일시에 희생시킬 수 있다. 전쟁은 점점 인류 존속 자체에 위협이 되는 수단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지만, 하루도 멈추지 않고 전쟁을 하는 인류의 앞날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저자들은 지난 세기 말 벌어진 '전쟁과 학살' 현장을 직접 갔다. 저자들은 뒤늦게나마 지난해 여름 동유럽을 찾았다. 숱하게 기사를 쓰면서 지명으로만 남았던 첫 방문지였다고 〈프롤로그〉를 통해 소개한다. 1990년 구 소련의 몰락으로 소련(소비에트 연방)은 붕괴했다. 옛 소련의 위성국가 역할을 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은 독립을 했으나 일부 국가는 내전에 휩싸였다. 이 가운데 가장 참혹한 '학살' 현장인 보스니아를 저자들은 방문했다. 이곳은 옛 유고 연방이었던 나라들끼리 내전에 돌입했다. 같은 나라였지만 기독교계 사람들과 무슬림들이 공존했다고 한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전쟁은 주위 경관엔 아랑곳하지 않고 무차별 학살의 만행이 저질러졌던 곳이다.
저자들은 "세르비아의 국경선 근처에 있는 스테브레니차를 찾아갔다. 세르비아계 혹은 정교도들은 그곳에서 사흘 만에 8,000명이 넘는 보스니아계 혹은 무슬림을 학살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어째서 이런 학살이 벌어졌을까. 민족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기에 이런 잔혹한 일이 펼쳐지는 것일까. 유고연방의 70년 역사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남겼을까."(p.5) 저자들이 어떤 심정이었을까? 쉽게 짐작은 안 되지만 책을 통해 읽은 내용으로는 이 지역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제노사이드'의 참혹한 기억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제노사이드란 인종, 민족, 종족,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30년 전 이곳에서의 전쟁은 한 지역에서 도저히 살 수 없는 학살 등의 만행을 저지른 악몽을 죽을 때까지 짐지우고 산다. 주변 아름다운 경관과는 다르게 음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 곳에서 저자들은 그들과 아픔을 같이하는 이방인으로서의 느낌을 갖고 "앞으로 10년 간 제노사이드는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불과 한두 달 만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됨으로써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앞서 잠깐 언급한 '민족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을 법하다.
저자들은 각 지역 분쟁에 대한 전쟁 발발 이유, 그리고 관련된 나라들의 속사정, 그 전쟁들이 세계에 일으킨 파장 등을 분석했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힌다. 특히 마지막 부 6부에서는 전쟁 뉴스를 오래 들여다본 저자들의 고민과 바람을 담았다. 전쟁 범죄를 왜 처벌해야 하는가, 전쟁 범죄에 대한 인식과 단죄는 어떻게 진화해왔나, 한국인들에게 전쟁과 파병 그리고 난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번 취재와 책을 쓰는 동안 자료를 통해 느낀 점을 강력한 소망을 담아 썼다고 한다. "강자의 배짱 앞에 약자들은 그저 다치고 치일 뿐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미국이라고 무소불위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겐 진화를 통해 습득해온 공감과 연민과 정의감이 있다. 그러나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앞서게 되면 정의감과 연민은 사라지고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이기주의와 폭력성이 판치게 된다. 하지만 개개인과 국가들 모두의 통합체인 '인류'가 되면 보편적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가 다시 고개를 들며 윤리적 판단이 '냉혹한 국제질서'의 일부이자 한계이자 규범으로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인류애라는 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p.8~9)
이 책은 우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부터 살펴본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문제로 불거진 전쟁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낸 명분이지만 사실을 파고 들면 또다른 이유가 보이게 된다. 저자들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는 특별한 역사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땅은 우리가 나눠준 것이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만들었다"는 식의 푸틴의 주장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소련에 강제합병하는 바람에 둘이 한 나라가 된 것인데 '역사적 과거'를 소련 시절로만 한정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과거에 러시아 땅이었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다. 우크라이나 땅에 사는 우크라이나계와 러시아계 모두의 선택으로 독립을 해서 현재 주권국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고 침략한 행위는 국제법상 엄연한 범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에는 역사적 이유뿐만 아니라 군사적·지정학적·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인 나토에 가입할 경우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된다. 러시아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타토는 유럽과 북미 31개의 회원국(2023년 10월 현재)이 소속된 정치 및 군사 동맹체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격화된던 1949년에 탄생했다. 나토의 핵심은 조약 제 5조에 명시된 '회원국 한 곳에 대한 무력공격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방위 원칙이다. 지금까지 나토가 집단방위 원치긍ㄹ 발동한 것은 단 한 차례로,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 국가들이 속속 민주화되면서 나토는 냉전의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꾸준히 회원국을 늘리면서 몸집을 키웠다. 러시아는 줄곧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푸틴은 1990년 독일 통일 때 미국이 나토가 동쪽으로 '1인치도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 약속한 것을 줄곧 위반해 왔다고 주장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병력을 배치한 뒤 2021년 말 미국에 안전보장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을 것임을 문서 형태로 확약하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나 나토가 결정하고 약속할 사안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의중이다. 그러기에 러시아가 이를 이유로 침공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2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룬다. 이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아침(현지 시각) 발발했다. 이스라엘 남부 가자지구 접경 마을 주민들은 3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를 지내고 난 후 첫 안식일을 느긋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오전 6시 30분 갑자기 2,500발 이상의 로켓 포탄이 하늘을 뒤덮더니 가지지구를 장악한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장대원들이 픽업트럭과 오토바이,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국경 철책을 넘어 이스라엘 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야말로 기습공격이었다.
완전한 방공망 '아이언 돔'이라고 큰소리치던 이스라엘의 하늘은 뚫렸다. 한꺼번에 이처럼 대량으로 포탄이 쏟아져 들어오면 일일이 모두 대응해 요격할 수 없다는 점을 하마스는 미리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대로 포탄과 하마스 공격 요원들에 맞닥뜨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공황 상태로 빠져 들었다. 삽시간에 수백 명이 죽고 240명 가량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후 팔레스타인 측은 '제 2의 나크바'를 맞이해야 했다. 나크바는 아랍어로 '대재앙'이란 뜻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5월 15일을 '대재앙의 날'로 부르면서 이날의 아픔과 슬픔을 해마다 되새긴다고 한다. 이날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가 세워진 날이다. 유대민족에게는 2'000년 가가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나라 없이 지내온 설움을 청산한 축복과 기쁨의 날이지만,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 민족에겐 진정한 '재앙'이 되는 셈이다. 이스라엘 건국은 제 2차 세계대전의 후속 결정 사안이지만 전쟁에서 이긴 승전국의 입장에서 휘두른 무소불위의 힘에 의한 것이다. 당시 승전국 영국은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배풀고자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2,000년을 살아온 팔레스타인이 있는 곳을 나가라고 하는 등 '혜택' 자체가 비극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인권보고관은 전쟁 발발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023년은 나크바 75주년이 아니다. 나크바는 75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 비극의 씨앗은 로마군의 예루살렘 함락으로 유대 국가가 멸망한다. 당시 유대 저항군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구축된 천혜의 요새 마사다에서 3년이나 항전하다 패배 직전 전원 자결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후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았는데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한다. 이렇게 2,000년 갈등이 이 전쟁 속에 들어 있다. 세계의 패권국의 위치에 있는 미국이 뒷배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분쟁에 관여해 왔다.
미군은 2003년 3월부터 2011년 12월 말 철군할 때까지 8년 9개월간 이라크에 주둔했다. 전쟁에 직접적으로 들어간 돈과 이라크 재건에 투입한 비용, 미국 내 전역병·부상병 복지비용 등을 모두 합치면 미국은 2조 달러 이상을 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가장 많았을 때에는 이라크에 15만 명을 파병했다.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과 다국적군 사망자 수는 4,800명이 넘는다. 이라크에서 다치고 장애를 입은 전역병들은 재정적자와 함께 미국 사회가 앞으로 수십 년간 책임져야 할 짐이다. 더불어 ‘수퍼 파워(초강대국)’로서 미국의 자존심, ‘선한 강대국’이라는 이미지도 타격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부시의 전쟁을 승인해주고 그에게 연임까지 안겨준 ‘못난 유권자들’에게 지워진 부담이었던 셈이다. 어쨌든 미국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이니 그 짐을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은 무슨 죄일까. 미국은 전쟁의 상대국인 이라크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집계조차 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을 맡았던 미군 중부사령부의 토미 프랭크스 사령관은 “우리는 시체를 세지 않는다We don’t do body counts”라는 말로 표현했다.(p.211~212) - 「미국의 오만, 미국을 실패로 이끌다」
저자 : 구정은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고, 이라크와 시에라리온 등 세계 여러 곳을 취재했다. 사라지는 것, 버려지는 것, 약자들과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2021년부터 독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국제 이슈를 비롯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일과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을 쓰고 있다.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10년 후 세계사』 등을 썼고, 『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저자 : 오애리
『문화일보』와 『뉴시스』에서 오래 일했으며, 지금은 국제문제를 주로 다루는 프리랜서 언론인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에 얽힌 역사적인 맥락을 전하고, 인문사회학적 이해를 높이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넷플릭스 세계사』와 『숲으로 간 여성』을 비롯해 『성냥과 버섯구름』, 『모든 치킨은 옳을까?』 등을 썼고, 놈 촘스키의 『정복은 계속된다』와 마이클 무어의 『세상에 부딪쳐라 세상이 답해줄 때까지』를 우리 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