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간 고등어
조성두 지음 / 일곱날의빛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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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읽을 때는 책부터 읽지만 가끔 출판사 측의 소개글을 먼저 읽는 적이 있다. 소개가 요란할 때다. 이 책에 대한 출판사 소개글은 소설가 황순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소나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소년·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쓰여 있었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알퐁스 도테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박경리의 『토지』를 언급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소나기」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느낌이어서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그들의 순수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비극으로 끝나지만 소설과 함께 '순수한 사랑'의 느낌은 독자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때의 그 느낌으로 황순원이라는 작가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틈나는 대로 찾아 읽었다. 그 시절 기억이 이 소설 『산으로 간 고등어』를 통해서 다시 떠올랐다. 황순원의 문장은 간결하기로 유명하다. 아마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간결체 문장으로 대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으로 간 고등어』 역시 간결한 문장이어서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의 내용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다. 「소나기」는 소녀의 죽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비극으로 끝난다. 읽는 내내 가슴 졸일 정도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산으로 간 고등어』는 시대가 시대니만큼 소년·소녀의 사랑은 피바람을 몰고 온다. 1866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서 동남구 북면에 걸쳐 있는 해발 579m 성거산에는 신앙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이들이 있었다. 화전과 옹기를 굽고 살던 이 산골 마을에 고등어를 들고 온 소년이 등장하며 피바람이 예고된다. 산골소녀 초향과 봇짐장수 아들이자 간잡이 소년의 순수한 사랑이야기가 소설의 발단이 된다. "아름다운 사랑은 늘 비극이다"는 소설의 전형인 양 이들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비극으로 끝난다. 곧 집안 내부 고발자로 인한 인간 사냥과 가정의 풍비박산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서학', '천주쟁이' 등으로 비하하고 탄압한,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조선말 위정자들의 왜곡된 시선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당시의 사건으로 오늘날 무수한 주검이 묻혀있는 제1, 제2 돌무덤이 있는 성거산에 남아 있다고 소설은 전한다.

 


 

이때 박해의 진실을 캐는 듯, 소설의 서사는 1801년 신유년, 1839년 기해년, 1866년 병인년을 오가며 충청남북도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벌어진 순교의 현장을 생생히 담았다. 과정에서 소설은 보부상단의 거래를 비롯 사랑의 약속과 신뢰라는 한 측면을 부단히 다룬다. 결국 부모님의 처형과 첫 사랑을 뒤로 하고 초향은 경북 청송으로 숨어든다. 초향은 이곳에서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한 새로운 인물 박춘삼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춘삼은 초향보다 스무 살이나 위다. 아버지뻘 노총각과 소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소설은 경상북도 청송의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전래동화 우렁각시와 우렁 총각의 쫀득한 사랑을 넘나들며 곡절 많은 이야기를 펼쳐 보여준다. 결국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 가슴 아픈 사연은 두 번째 남자 춘삼과 결혼으로 외동딸 송이가 태어나고 첫 남자 고등어 소년은 가슴에 묻는다.

이후 그 춘삼마저 죽자 초향과 송이 모녀는 서울 경성으로 자리를 옮긴다. 두 번째 주인공 송이는 조기에 신학문과 외국 문물을 접하며 신여성으로 성장한다. 때는 1910년에서 1920년 일제 강점기 시절, 한일 강제 병합으로 조선(대한제국)을 송두리째 집어 삼킨 일제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의병 등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등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진압해 나간다. 이 시기(1910년~1919년)는 일제가 가장 강력하고 무자비한 탄압을 펼치던 시기다. 의식 있는 일부 지식인들은 탄압을 피해 만주 등지로 가서 독립군에 가입해 무장투쟁을 하고, 일부는 아직 일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상해 등 중국 내륙으로 피신해 독립운동을 펼친다. 일부 지식인이 친일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국내에는 민간인 비무장 저항 세력만 남은 상태로 우리 민족은 암울한 일제 강점기의 시대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송이는 뛰어난 정구 실력과 빼어난 미모로 경성의 화형(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으로 주목받는다. 구한말 가톨릭계에 불어닥친 조선 정부의 탄압과 세계 열강들의 식민지 확대 다툼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1894년 '개혁'이란 이름의 말뿐인 사회 변혁이 일어나지만 진짜 개혁이 필요한 소외 계층이나 신분이 낮은 계층의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호뿐인 신분질서의 타파이고 사회 개혁이다. 일제 치하에서도 떠나지도 못한 채 조국에 남아 있던 민초들의 삶이야 오죽했겠는가? 이 소설은 송이 3대의 처절한 삶을 보여준다. 잘 살아도 비극이고, 못 살면 더 큰 비극인 시절이다.

 

 

『산으로 간 고등어』는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삼대(3代)에 걸친 한 여인의 삶에 대한 150년의 기록이다. 배경 무대는 구한말 조선과 중국, 근대 한국을 종횡으로 몰리고 내쫒긴 유랑민 삶의 서사다. 신분 사회에서 피지배 계급, 하층민의 한스러운 상처들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여인들의 여정 이야기를 한 가정의 삼대에 걸친 서사로 담아냈다. 조선의 어머니와 딸들, 그녀들의 고단한 인생사라고 보면 맞다. 그러나 비극의 연속이지만 저자 조성두의 간결한 문체는 흐름을 빠르게 전개시켜 독자들의 지루함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비극은 감동을 자아내고, 눈물 짓게 하는 힘을 가졌다. 비극은 눈물로서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다. 책을 펼치면 따라가야 하는 3대에 걸친 이야기는 물살을 가르는 시간과 공간은 잇댄 영화 속 파노라마를 보는 듯한 생생함이 살아 있다. 무엇보다 3대에 걸친 주인공 여인들의 강한 모습이 한몫한다. 딸 송이를 살리기 위해 이토히로부미와 함께 조선합병의 주역이었던 하야시 곤스케(はやしんすけ) 앞에서 고등어 회로 담판을 벌이는 장면도 자연스럽게 담아낸 저자의 능력은 이미 기성 작가들의 수준을 넘보는 듯하다. 2대 주인공 송이가 정구를 통해 펼치는 역동적 몸짓들은 하나같이 강렬하고 자주적인 캐릭터로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3대 주인공 유화(송이의 딸) 역시 전생과 피난사를 훑으며 인동초의 여인으로서 아려하면서도 끈질긴 인상을 준다. 이 소설이 개성 강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의해 독자들에게 깊이 각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3대 주인공 유화는 독백처럼 말한다. "긴급한 피난이었다. 그렇게 떠난 피난 생활은 길 위에서 약 4년. 중국이라는 대륙을 종으로 북상했던 고등어 떠살이 가족이었다. 거리는 바다에 인접한 상하이에서 중국 서쪽 깊은 내륙인 충칭(重慶)까지 무려 1만 2천 리(약 4,700 킬로미터)."(p.226)

소설 속에서 고등어는 1대 주인공 ‘초향’과 봇짐장수의 아들인 ‘원이’와의 사랑의 계기가 된다. ‘원이’는 고등어를 염장해 파는 어머니가 간잡이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 흐름 내내 주인공들은 고등어를 각별히 자신들의 처지로 빗대고 있다. 또 지방에서 혹은 중국에서, 일본에서 불리는 명칭 그대로를 사용하며 시대성과 사실성을 높였다. 고등어 요리 역시 간고등어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회로 먹는 고등어' 등 여러가지 요리법도 나온다. 모두 저자가 '고등어'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구상했고, 고등어에 대해 많은 듣고 먹었던 경험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됐던 듯하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집필의 계기를 밝히고 있다. "십수 년 인연을 맺고 있는 이도우 대표가 운영하는 한식당이 계기가 됐다. 식당 이름이 '산으로 간 고등어'이다. 워낙 맛집으로도 유명한 데다 올곧은 외식 철학을 갖춘 그와 어느 덧 형·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했는데, 문득 그 집 이름에 꽂혔다. 특히나 그의 가계가 정성으로 차리는 '고등어와 고향', '고등어와 어머니'는 마치 맨삶이 맛처럼 이 이야기의 본류를 움직였던 것 같다. 그렇게 책의 중심이 되는 재료를 갖췄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와 함께 본격적인 착상은 익투스(ΙΧΘΥΣ)였다고 말한다. 익투스는 '물고기’요,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비밀스럽게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이 향기는 아픔이자 탄식 그리고 순명이며 의지이다. 왜 우리의 지금은 이러한가?를 밝혀 들어가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고등어는 못 먹고 없이 살던 시대의 대표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특히 깊은 산골에서 먹었던 간 고등어는 산야채와 더불어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이요, 고향의 향수를 상징한다. 소설은 이렇듯 시종 고등어와 어머니, 또는 ‘어머니와 고향’으로의 고등어 모녀들의 변주곡이다. 1대 초향의 멋진 고등어 변주는 이렇다. “송이야. 엄마는 고등어를 구울 때 갸들의 고진 사연을 함께 굽지. 조림을 할 때는 방아잎으로 녀석의 소중한 기억을 싸서 올리고. 다른 아이들도 매한가지. 사실 손님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먹는 게야. 향기를 넣어 아그들의 속살까지 배어든 각각의 바다 이야기를 먹는 게야. 향기를 넣어 아그들의 속살까지 배어든 각각의 바다 이야기를 먹으면서 떠올리는 거지.”(p.136)

소설 시작 부분에서 고등어 요리를 두고 초향의 아버지 배문호(베드로)가 했던 말도 다시 떠오른다.

“우리는 방앳잎처럼 세상에 거부된 자들이오나 기실은 향기를 가진 사람들로 하늘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이 고데이(고등어의 경상도 청소 사투리)가 그렇습니다. 바다에 사는 이들이 어찌하여 산으로 올랐습니다. 천주여. 저희가 바로 산에 오른 고등어가 맞습니다. 또 당신께서도 베드로에게 너희는 사람을 낚는 어부라 하셨던 그 말씀처럼 저희가 바로 물고기이니 또 이런 고데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p.36)

 


 

소설 『산으로 간 고등어』는 사라진 우리 산하의 아름다운 생태들과 고어, 그리고 사투리를 인상적인 시적 묘사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점도 돋보인다.

“여 어딩교? 아즈메, 우예 산만디(산마루)에 구디(구덩이)요? 아, 우얄꼬! 그 고운 얼굴로 우짜 껄뱅이(거지)처럼 사시려 하우?”(p.67)

·“아서! 와 니는 그카노? 개골창(깊은 도랑) 도째비 멀꺼디(머리카락) 서는 야심한 밤에! 내 짝지(작대기)라도 들고 따라 나서꼬마!”(p.71)

·“으으 저! 아망시(똥고집) 참 마티다(고집스럽다) 마텨. 도시 해거름(해질녘)도 아니고 칠흑에 칭계(계단) 없는 만대이(산 정상)까지. 그러다 방구(바위)에 미끄리다 다치면 어찌하우? 소까지(관솔,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아궁이 깔비(솔가리, 소나무 가지를 땔감으로 쓰려고 묶어 놓은 것)라도 챙기자고 암만 그캐도!”(p.72)

·“말세라! 시대가 일패의 끝에 있으니 이 시국은 풍랑이요. 아기씨, 이 바닥도 기예를 받을 자는 없어지고 권번으로 내몰리니 세류가 혼탁하지요.”(p.152)

·“눈이 먼 하얀 세월이 가을이면 눈앞에서 성성일 것만 같은 이곳은 바람결에 묻어나는 어느 소년의 눅눅한 비린내와 함께, 그의 열린 앞섶에서 나오던 허기진 인내를 맞았던 소녀의 고즈넉한 슬픔이 담긴 하얀 시간의 둔덕이다.”(p.205)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까지 우리 근대 역사에 새겨진 여인들의 가슴 아픈 향기와 함께 잔잔한 박동과 여운이 남는다. 그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또한 믿음을 사수하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낸 우리의 어머니, 또 그 딸들로 이어지는 사랑과 헌신이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 : 조성두

 

“식물과 친해 웬만하면 죽이지 않고 오래 키운다. 27년째 동거 중인 녀석도 있다. 이런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시와 함께 글을 써왔는데 문득 내 안에도 글나무가, 나의 시편들이 크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닫다니! 나는 너무 늦은 사람이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철학도 잠깐 했고 교육과 방송 미디어쪽에서 주요 이력 이후 몇 가지 사업을 했다. 생명과 섭리, 그리고 소망, 소명에 대해서 앞으로 꾸준히 쓰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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