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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1
조세래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평점 :
바둑은 옛날 중국에서 전해져 온 하나의 '놀이'다.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바둑을 두기 위해서는 바둑판과 바둑돌(바둑알)만 있으면 된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다. 바둑이 끝나면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바둑돌은 흑과 백이 있으며, 가로 19줄 세로 19줄의 그어 교차점에 흑부터 한 수 한 수 벌갈아 둔다. 가장 기본적인 게임의 법칙은 흑부터 한 수씩 번갈아 둔다는 것이다. 흑 혹은 백이 직선으로 뻗어 있으면 '이어진' 것이고, 대각선으로 뻗어 있으면 이어지지 않은 형태다. 서로 번갈아 두기 때문에 항상 선수(先手)가 유리하다. 바둑은 살아남은 돌들로 지은 집의 수를 합쳐 승부를 가른다. 이 때문에 '덤'을 후수인 백에게 미리 준다. '덤 4집 반' 덤 5집반' '덤 6집반'이란 말을 들어본 사람이면 왜 백에게 미리 집을 주는지 알 것이다. 반상 위에는 '반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집'은 비기는 경우를 없애기 위해 마련된 가상의 숫자일 뿐이다. 가령 흑백 집의 수를 가려 흑이 5집의 차이로 이겼으면 '덤 4집반'의 경우 반집을 이긴 셈이 된다. 덤 5집반이라면 반집을 진 것으로 계산해서 승패를 가린다. 덤 제도는 언제 처음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바둑이 발전하면서 선수의 중요성과 유리함을 감안해서 계속 1집씩 올렸다.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6집반, 중국에서는 7집반의 덤 제도가 있다.
바둑을 전쟁이나 인생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기 위해서 집을 많이 차지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집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상대의 집을 줄이거나 내 집을 늘려야 한다. 이때 서로 죽이고 살리는 수법이 전쟁처럼 변화무쌍하다는 점에서 전쟁에 사용하는 용어들이 수없이 많다. 또 전략도 따른다. 때로는 몇 개의 돌을 희생해가며 요충지를 확보해 집을 늘리거나 상대의 돌을 죽이기도 한다. 게임에서 승부는 불가피하다.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서로 비기는 작전을 쓸 수도 없다. 아예 비기는 일을 차단하기 위해 '반집' 제도를 두었기 때문이다. 전쟁에 이기거나 삶의 경쟁에서 목숨 걸고 싸우듯이 바둑판 위의 싸움도 그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바둑판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이 책 『승부』는 바둑두는 기사(棋士)들의 이야기다. 기사는 바둑을 두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생업으로 바둑을 두는 기사를 '전문기사' 또는 '프로기사'라고 한다. 놀이가 생업이 될 수 있나?라고 의문을 가진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없을 것이다. 동양 특히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중국에서 유래한 바둑을 오래동안 두어 왔기 때문에 대단한 실력을 갖춘 바둑의 천재들이 많다. 그들은 엄격한 바둑 수업을 거쳐 혹독한 훈련과 노력으로 프로기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는지 바둑 애호가들은 잘 알 것이다. 요즘의 바둑기사는 전문직으로 고액연봉자 못지 않은 돈을 벌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기사들이 다 그럴 수는 없지만. 대회에서 상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부 기사들은 기원을 개업해 후진 양성 겸 생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만큼 바둑을 좋아하고, 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바둑 동호인이 5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어쩌면 축구 다음으로 많은 팬을 갖고 있지 않나 싶다. 독자는 동네 아저씨들이 바둑 두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다가 겨우 바둑의 초급 수준인 10급 정도이니, 굳이 군대 계급으로 치면 '기졸(棋卒)'쯤 될 것 같다. 그마저도 그 정도라고 하는 게 정식으로 호칭을 받은 것이 아니라서 너무 자신을 내세운 게 아닌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훈련도 안 거친 게 어떻게 계급을 부치려나 욕이나 안 먹을지...
바둑의 세상은 놀이로 하기에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고, 요즘 대부분의 게임이 '승자독식' 구조라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부로 변질되어 지나치게 승리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바둑은 일종의 도(道)라고 생각하는 정통 바둑인들에게는 기리(棋理)에 따르지 않고 변칙과 술수로만 이기려는 사람들이 마땅치 않을 터다. 그러나 게임엔 이겨야 한다는 것은 전쟁에서 하는 말이다. 전쟁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불가피한 전쟁에 뛰어들었다면 당연히 이기고 난 다음에 할 말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진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이는 세상 탓을 할 일이지, 사람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항변도 설득력은 있다.
이 소설은 진실한 승부가 사라진 세상에 진정한 ‘승부’를 열망케 하는 소설이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전쟁에서 얻을 것(전리품)을 미리 앞세우지 않고 '승부' 자체를 겨루는 일을 극화한 것이다. 소설의 모델이 되는 사람이 있는지는 저자 조세래만 알 일이다. 혹시 바둑에 깊이 관여한 프로 기사들 사이에는 알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바둑을 놀이로 즐기는 애호가들로서는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다. 독자의 경우 옛날 바둑에 대해서는 "조선말이나 일제강점기 시절, 바둑 잘 두는 사람이 천하를 주유하며 바둑을 두었지만 적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을 떠돌던 그가 다시 세상이 안정돼 국내 프로 기사와 바둑을 두어 형편 없이 졌다던데..."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들었다. 정작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과도 다른, 저자가 창조한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온전하고 진실한 승부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 시대를 비판하는 속뜻을 담은 진정한 승부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질문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승부의 참다운 모습은 외면당한 채 오직 이기는 것만이 승부의 절대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저자는 바둑이라는 웅장한 투혼의 장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우리나라가 낳은 4대 기성(棋聖) '여목 이상순'과 그의 제자 '설숙', '추평사', 그리고 추평사의 아들 '추동삼', 이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조선의 자존심을 걸고 대륙과 섬을 넘나들며 펼치는 파란만장한 승부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새는 새장을 벗어나야 님을 찾고, 고기는 통발을 물리친 후에야 대해로 나아가며, 승부사는 승부를 떠나야 진정한 승부사가 된다”는 〈작가의 말〉은 『승부』 전편에 장엄하게 흐르는 기상이다. 바둑으로 펼쳐진 뜨거운 삶, 삶으로 은유된 위대한 바둑이 실로 『승부』의 서사인 것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을 쓰게 된 취지를 밝히고 있다. "승부(勝負)는 승과 패를 나누는 것으로, 사회가 빈곤하다거나 인간이 외로울 때 더욱 빈번해진다. 그런 것이니만큼 투철하고 용맹스러우며 때로는 안타깝고 슬픈 것이기도 하다. (중략) 언제부턴가 시중에는 승부란 단어가 무수히 나돌고 있다. 세상이 다각도로 변모하면서 매사가 승부 혹은 승부 정신으로 연관되어 있어 흡사 승부의 시대를 방불케 한다."(1권, p.5)
〈작가의 말〉에 따르면 승부는 인간에게 숙명적인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승부를 만난다. 남을 이기기 위한 승부, 자신을 지켜야 하는 승부, 정도에 벗어난 승부, 경우에 따라선 피치 못할 승부, 자신을 버려야 하는 승부 등 승부는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이렇듯 승부는 일상사가 되어버렸는데 아직까지 승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고 그 뜻조차 변질되고 오도되어 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승부의 참다운 모습은 외면당한 채 오직 이기는 것만이 승부의 절대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진정한 승부사는 찾아볼 수 없고 사이비 승부사만이 득실거리는 것도 승부의 도(道)를 망각한 채 욕(慾)을 다스리지 못하고 교만과 독선에 빠진 극단적 개인주의의 팽배 때문일 것이다. 한 나라를 경영하는 자들이 승부사로서의 자세가 정직하지 못하면 그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사회 지도층이란 자들이 올바른 승부 정신은 없고 간교하고 비열한 승부에만 물들어 있다면 세상 꼴이 또한 어떻게 되겠는가. 혹세무민하는 자도 승부사가 아니요, 잡사(雜事)에 연연하는 자도 승부사일 수 없다.
승부사는 맑고 정직해야 하며 강직하고 깊어야 한다. 그것이 승부가 끝나는 날까지 지켜야 할 승부사로서의 도리다. 저자의 승부관과 세상관, 인간관이 모두 드러나는 말들이 〈작가의 말〉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모두 이 소설에 반영되었을 것이고, 이런 그의 인생관은 이 소설이 주는 흥미만큼 풍요롭고 간명하다. 독자들이 이 작품을 통해 느끼는 점이 있다면 저자는 혼신의 힘을 다한 집필의 보람이 클 것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이 소설은 승부로 전 생애를 불사른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가 이긴 자의 기록이듯 승부 역시 이긴 자의 축제인지 모른다. 저자는 각계각층의 수많은 승부사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독자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남긴 숭고한 승부 정신을 헛되이 하지 말고 후세 사람들이 본받아 앞날의 지표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인간은 결국 승부에 땅에서 태어나 승부의 저자거리를 헤매다가 승부의 강을 건너 비로소 승부가 망각된 피안(彼岸)의 세계로 간다."는 저자의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 작품 『승부』는 1, 2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의 이야기는 박민수 화백과 정명운 국수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국수란 명칭은 우리나라에서 바둑을 제일 잘 두는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박 화백은 남종화 계열의 화가로 거장의 반열 문턱에 자리 잡고 있다. 화단 바둑계에서 일인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런 박 화백에게 정 국수의 며느리인 김 여사가 화단을 통해 정 국수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박 화백은 고민 끝에 정 국수를 만나고, 정 국수와의 만남에서 벽송(碧松·벽송이 제작한 바둑판)을 전달받는다. 추동삼이란 이름과 함께. 망설임 끝에 정 국수의 사망을 뒤로 하고 박 화백은 추동삼을 추적해 들어간다. 바둑은 게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 사용하면 도박으로 오용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승리에 집착하는 이유다. 당연히 정통 바둑계는 이를 엄격히 구별한다. 돈 내기 등 일체의 '내기 바둑'을 금지한다. 그러나 공식 바둑계가 아닌 사사로이 자기들끼리 모여 바둑 두며 하는 내기나 어떤 전문 기사가 맞붙을 경우 자기들끼리 돈을 낸다든지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을 터다.
그러나 바둑을 통해 내기를 하는 일은 법에서 '도박'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돈을 걸거나 내기를 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두세 개의 세계바둑대회는 돈 내기가 아닌 가장 바둑을 잘 둔 기사에게 주는 상금이고 공인된 대회다. 이런 국제 규모의 대회에서 활동하는 전문 기사들은 각국이 인정한 전문기사, 프로기사들이다. 상금액수가 큰 것은 그만큼 협찬사들이 돈을 많이 내주기 때문이다. 바둑팬이 많은 탓에 광고 효과가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다. 1권에선 박 화백이 추동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반 기원 분위기와 또 거기서 자기들끼리 내기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일부 기원에서 하는 일이지 전체 기원의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저자 조세래는 한국 바둑의 근원을 조선 말기로까지 끌고 간다. 이때의 바둑 고수 여목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여목은 원세개와의 인연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그 땅에 짙은 족적을 남기고, 이후 정통성을 상징한 벽송을 받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여목의 제자 설숙과 추평사로 이어지며, 이 둘의 서사는 극렬한 대비를 이룬다.
여목의 적통을 이은 설숙과 달리 추평사는 모종의 사건으로 떠돌이 내기꾼이 되어 고단한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끝에 일본 내기바둑계 최고 승부사로 꼽히는 시라이시와 생명을 건 승부를 펼친다. 그리고 이렇게 1권의 이야기가 끝난다. 이처럼 이 소설 『승부』는 박 화백을 중심으로 하여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여목으로부터 뻗어간 그 제자들의 승부를 다룬다. 승부의 서사는 치열하고 처절하다. 특히 백돌과 흑돌처럼 배열된 설숙과 추평사의 삶의 대비에서 이러한 서사의 색채는 더욱 도드라진다.
“뜨겁게 타오르다 아름답게 스러져간” 바둑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승부』의 서사는 바둑 애호가들에게는 매혹 그 자체다. 등장인물들의 투혼이 사뭇 애절하고 지독히 고통스러우며 지나치게 아름답다. 한마디로, 일단 읽기 시작하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이 탁월한 소설이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힘, 소설의 숭고한 목적이 가장 적극적으로 구현된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저자의 표현력도 매우 뛰어나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는 듯 생생하고 한 편의 영화 장면을 설명하든 정교하다. 어쩌면 영화계에 몸담은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저자는 바둑이라는 대결이 갖는 옹골찬 승부의 세계에 천착해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스톤〉을 감독했다고 한다. 저자는 바둑이야말로 삶의 희로애락을 가장 극적으로 담고 있는 스포츠라고 여기는 것 같다. 바둑의 본질은 승부이고 승부의 본질은 인간이라고. 그래서 바둑과 인간의 삶을 등치한 것이다. 소설 『승부』는 삶이라는 승부의 장에서 우리들 각자가 어떤 승부의 모습을 끌어안을 것인지를 숙고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 숙고의 힘이 독자들 각자의 ‘오늘 이후’를 보다 생명력 있는 승부의 세계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1권의 마지막 장면에 일본 내기바둑 사상 최고의 승부사로 손꼽히는 시라이시와 추평사와의 대국 장면이 펼쳐진다. 공식 바둑 대결이 아닌 승부를 건 도박 행위지만 바둑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극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표현력을 가리키는 좋은 문장으로 보인다. "웅크리고 있던 평사의 상체가 서서히 펴진다. 평사의 눈이 반상을 비스듬히 쏘아본다. 순간, 그 찌든 눈에서 살기 같은 것이 쏟아진다. 얼굴은 간데없고 눈만 살아 있는 기이한 형상이다."(p.40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