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 하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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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흥화진이 거란군의 기세를 막아내자 거란은 흥화진을 포기하고 남하를 택했다. 지난 2일 방송된 '고려 거란 전쟁'은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풀어갔다. ‘고려 거란 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한 드라마다. 대하 드라마 최초로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에 방영되며 ‘사극 한류’를 이어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앞서 전날 방송된 첫화에서는 고려 땅을 염탐하던 거란 척후병을 발견한 흥화진사 양규(지승현 분)와 강조(이원종 분)는 거란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경계 태세를 취하며 첫 회부터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소설에서도 물론 상권 내용이다.

독자가 상권 내용을 다시 여기에 적는 이유는 방송을 보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펙타클한 오프닝을 비롯해 거란군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한 장군 양규와 강조가 각성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전쟁’을 내세운 만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스펙타클형 전쟁 장면으로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다. 흥화진에는 순검사 양규가 거란의 압박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지휘했다. 양규는 거란으로부터 흥화진을 지켜내기 위해 7일 밤낮없이 사투를 벌이며 40만 대군과 맞서 싸웠다. 참혹한 전장 한가운데에 선 양규의 초인적인 전투력과 희생정신이 빛을 발했다.

거란군은 성문을 돌파하려 진격했지만 양규의 고려군은 기름를 들이부어 불태웠다. 또한 산에다가 돌로 쐐기를 박은 형태의 성벽이라 거란군이 공성무기로 돌을 들이받을수록 더 단단해지기만 했다. 거란은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흥화진을 남겨두는 선택을 하려 했다. 결국 거란의 성종은 흥화진을 버리고 통주에 있었던 강조 휘하의 고려군 주력 30만명을 상대하기로 했다. 흥화진이 버텨낸 것을 알지 못하는 고려군과 강조는 거란군이 남하하자 흥화진이 함락된 줄 알고 좌절했다.

 


 

하권은 도순검사 양규와 그 휘하의 부대 흥위위가 거란에게 빼앗긴 곽주를 탈환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현재의 적은 병력(공성전은 성 안의 군사수에 10배 정도 갖추어야 하지만 10배는 고사하고 성안의 군사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곽주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무모한 전술이다. 중랑장 등 장수급들도 양규의 말을 의심한다. 그러나 양규의 불 같은 성미와 추진력을 잘 알고 있어서 누구 하나 나서서 무리한 전략이라고 반대하지 못한다. 양규는 지금 고려군이 전반적으로 밀리는 상황이고 정공법으로 가기에도 군사의 숫자가 부족해서 택한 방법은 야습이나 게릴라 전밖에 도리가 없다는 판단이다. 전세를 뒤집기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부족이다. 모험이라도 감행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그 위험한 작전의 선봉에 누가 설 것인가? 지난 전투때 거란에 투항하고 살아 돌아온 치욕을 씻지 못하고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사는 노전과 최충 이 두 사람은 참수형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차제에 두 사람은 양규의 부대에 합류하면서 공을 세워 다시 명예를 회복해야겠다는 욕심과 전사해서 명예만이라도 되찾는 수 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상태다. 배수진을 친 마음으로 임무를 맡게 된다. 양규로서는 부장급 인재를 두 사람 모두 중용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소수의 병사만 잃고도 기사회생으로 노전과 용기 있는 별동대의 활약은 전쟁의 승리로 끌고 갈 업적을 남긴다. 성문의 빗장을 열고 고려군을 성에 들여 곽주를 탈환한 것이다. 이 소식은 즉각 조정으로 전해지며 이후 완전히 꺾였던 고려군의 전의가 되살아난다. 소설은 이 부분에서 강감찬을 언급된다. 조정의 대신들에게 야전에서 승전보를 듣고만 있는 우리 고관들이 더 분발해야하지 않느냐고 채근하였고 투항은 있을 수 없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장구머리(머리가 몸에 비해 큼)와 단신의 외모로 다소 볼품이 없었던 문신 출신 강감찬은 눈에 띄는 공적은 없지만 원칙주의를 잃지 않아 가늘지만 길게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터다. 구주대첩의 중심에서 전공을 세운 구국의 영웅으로 알며 역사를 배웠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양규를 중심으로 김순흥 등 제목처럼 여럿의 '고려의 영웅들'을 그려내고 있다.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귀주대첩. 사진 출처 : 전쟁기념관

 

강감찬은 예부시랑이나 육십이 넘은 나이다. 평소 말이 많지 않다. 소설에서는 원리원칙주의자인 데다가 이상주의자로 자신의 원칙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그의 성격으로 조정 대신들로부터 멀어지는 '왕따' 신세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게도 왕따 신세는 마찬가지다. 너무 고지식해 높은 품계로 올라가기가 엄두도 못낼 위인이라고 아내로부터 매일 비난을 듣는 신세다. 그러나 법도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어서 누가 험담하거나 불의한 일을 상의해오지 않은 것은 오히려 강감찬 개인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관료들이 평소 강감찬과 가까이하기를 꺼린 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안위를 지키는 데에는 더 호재였을 것이다. 강감찬은 관료들끼리 사적인 교분을 맺는 것을 싫어했고 당파를 이루는 것은 더욱 싫어했던 까닭에 굳이 관료들과 어울려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문하생들의 모임에도 당연히 나가지 않았다. 강감찬은 관료들끼리 사적 교분을 지나치게 맺으면 조정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권에서는 이처럼 강감찬의 성격과 조정에서의 위치 등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저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곧 있을 강감찬의 구(귀)주대첩을 예고하는 듯하다. 사실 2차 침입 때는 양규와 김숙홍의 활약이 가장 인상적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그들의 이름은 아예 없는데도 역사에서는 큰 업적을 남긴 것이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그들의 영웅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로 상권에서 펼쳐지는 곽주 탈환, 결심한 후 거침없는 행보는 본받을 만하다. 또 거란의 포로로 잡힌 고려인을 구하고자 애쓰는 모습은 감동까지 안겨준다. 승전을 기약할 수 없는 전략으로, 절박함까지 더해진 양규의 리더십은 길이 기려 마땅하다.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 역사 상 가장 치열하고 힘든 전쟁으로 기억된다. 후에 몽골군의 침략으로 완전히 나라가 망가지기 전까지 말이다. 고려 초기이기 때문에 이때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고려를 앞으로도 400년 가까이 더 이어질 수 있는 고려 정신과 강한 나라의 자긍심을 갖게 했기 때문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 책 『고려거란전쟁』은 역사 기록의 가감 없이 순수한 사료에 바탕을 두고 극적 긴장감을 갖춘 채 고려의 정신과 강한 나라의 자부심을 되살려 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각하! 우리는 모두 ‘벼락같이’ 내달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명만 하십시오!” 양규가 보니 이관이었다. 이관은 투구를 쓰지 않은 채였고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적 병장기에 머리 부분을 얻어맞은 듯했다. 이관의 수하들도 대부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양규는 그중 한 젊은 군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을 보자, 그의 이름이 ‘선명’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양규는 선명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흑낭대 낭장 원태가 병장기를 높이 들며 외쳤다. “우리는 거란주를 잡으러 간다! 내가 앞장설 것이다!” 원태의 외침에 흥위위 초군들이 병장기를 높이 들며 우렁차게 외쳤다. “흥위위가 간다!” 흥위위 초군들이 기세를 올리자 김숙흥이 구주군에게 말했다. “구주군,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 구주는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 또 다른 전설을 쓸 것이다. 우리는 지금 거란주를 잡는다!” 구주군 역시 힘차게 외쳤다. “구주~~~~~!” 구주군이 함성을 지르자, 이보량이 구주 도령기를 스스로 높이 들었다. 양규가 모두에게 명했다. “우리가 거란주를 잡아 이 전쟁을 끝낼 것이다! 진격하라!” 고려군들은 이제는 기다려서 방어하지 않고 전진했다. 거란군들을 밀어붙이면서 조금씩, 조금씩 계속 나아갔다. 오직 거란주의 깃발을 목표로!(하권, p.437~438) - 「벼락같이」 중에서

 


 

거란군들은 물러갔으나 이제 시작이었다. 이후 거란군의 침공이 십 년 이상 계속되기 때문이다. 양규와 김숙흥은 이 전쟁을 스스로 끝내지는 못했지만, 거란에 막대한 피해를 줘서 거란의 그 후 침공을 늦추게 된다. 그 시간 동안 고려는 내부적 힘을 기를 수 있었다. 팔 년 후, 소배압이 다시 한번 개경까지 밀고 들어오나…. 양규는 원군도 없이 한 달 사이에 모두 일곱 번을 싸워 많은 적군의 목을 베었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삼만여 명을 되찾았다. 그 전공으로 양규에게 공부상서(工部尙書)가 추증되었고, 아들 양대춘(楊帶春)은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현종은 손수 다음과 같은 교서를 지어 양규의 처 홍씨(洪氏)에게 내려주었다. “그대 남편은 장수로서의 지략을 갖추었고 또한 올바른 정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항상 올곧은 절개를 지니고 밤낮으로 직무에 충실하였다. 그리하여 끝까지 나라에 충성을 바쳤으니, 그 충정은 비할 데가 없는 것이다.

북쪽 국경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용맹을 떨치면서 군사들을 지휘하니, 그 위세는 돌과 화살을 압도했다. 적을 추격하여 생포하고 그 힘으로 국토를 안정시켰다. 한 번 칼을 뽑으면 만 명의 적군들이 다투어 달아나고, 강궁을 당기면 모든 적이 항복했다.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어 나라를 구했으나 불행히도 전사하고 말았다. 그 빼어난 전공을 항상 기억하여 이미 관직을 높였으나 다시 보답할 생각이 간절하다. 따라서 양규의 처인 그대에게 해마다 벼와 곡식 일백 석을 내려줄 것이다.” 김숙흥(金叔興)에게는 장군을 추증했으며, 또 그의 모친 이씨(李氏)에게 교서를 내렸다. 교서의 글은 다음과 같다. “추증한 장군 김숙흥은 변방의 성을 지킬 때부터 적과 용감히 싸워 파죽지세의 승리로 전공을 세웠으나,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그 공을 기념하여 마땅히 후한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에 그의 모친에게 매년 곡식 오십 석을 종신토록 주노라.” 현종 10년(1019)에는 양규와 김숙흥에게 공신녹권(功臣錄券)이 내려지고, 15년(1024)에 다시 두 사람에게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의 칭호를 내려주었다.(2권, p. 444~445)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길승수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역사 콘텐츠를 좋아해서 역사학과와 관련 학과를 다녔다. 어느 날 역사 소설을 쓰기로 결정하고 ‘고려와 거란의 2차 전쟁’을 다룬 소설 《고려거란전기, 겨울에 내리는 단비》를 썼고 후속작품인 《고려거란전기, 구주대첩》을 집필 중이다. 방송활동으로는 역시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JTBC 평화전쟁1019〉에 작가와 자문으로 참여했으며, 2023년 11월에 방영 예정인 KBS 대하사극 〈KBS 고려거란전쟁(가제)〉에 원작자와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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