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로컬, 브랜드 -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곽효정 지음 / 지금이책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주도는 조선 500년 내내 유형의 땅이었다. 우리나라 가장 큰 섬이기도 한 제주도가 해방 후 1946년 하나의 자치도로 분리됐다. 현재는 제주특별자치도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천혜의 자연 경관 덕분에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1989년) 이전까지는 국민의 관광지, 특히 결혼 기념 관광지였다. 지금은 국제적인 관광 휴양지로, 세계 교류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의 제주특별자치도는 전체 인구가 56만 명 정도로 전국에 있는 광역시, 도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다. 제주도는 제주도를 포함해서 우도, 추자도,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등 사람이 사는 8개의 섬과 사람이 살지 않는 5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조선 500년 간 제주도민은 뭍인 육지로 나가 살 수 없었다. 당시 법이 출륙금지령이었다. 관리들의 수탈과 왜구의 노략질 그리고 해마다 닥치는 기근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은 기회가 닿고 틈만 생기면 뭍으로 도망치려 했고, 관리들은 막기에 급급했다. 서울서 정치인들의 유형지로도 유명하다. 교통, 특히 뱃길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한양(제주)에서 가장 먼 거리의 유배지였다. 우리가 잘 아는 추사 김정희가 유배 가 있었던 곳이다.

조선 성종 2년인 1477년에는 경상도 관찰사에게 “이들을 내쫓으면 놀라 바다로 나가서 해적이 될지도 모르니 잘 달래어서 살게 하고, 그들이 드나드는 것을 엄중히 하라”고 유시를 내렸다. 또 그들을 그 지방에서 정착해 살게 하면서 그 지방에서만 나는 해산물을 조정에 바치는 역할을 맡기기도 했고, 떠돌아다니도록 자유를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주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자꾸 늘어나기만 했다. 하지만 잦은 흉년과 왜구들의 노략질에 시달린 제주 사람들은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서 유민으로 떠돌았다. 당시 제주 유민들은 전라도·경상도 해안과 심지어 중국의 해랑도(海浪島) 지역까지 떠돌았다. 결국 인조 7년인 1629년 8월 13일 조선 정부에서는 제주도민이 육지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출륙금지령을 내렸다. 특히 제주도 여자가 육지로 시집가는 것은 철저히 막았다. 도망친 노비들도 많았는데, 그 수가 만 명을 넘었다고 『현종실록』은 전하고 있다.

 


 

제주도는 온난한 해양성 기후대에 속해서 연중 따뜻한 기후로 지금은 천혜의 경관과 아울러 국민 관광지로 품격을 높였다. 야자수가 있는 거리는 이국적 풍경을 자아내기도 해서 우리 국민들의 관광휴양지로 거듭났다. 한라산 화산 폭발시 나온 용암 등이 굳어진, 저수 능력이 부족한 암석과 토양으로 이루어져 쌀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제주도민들은 밭농사와 어업, 육지에서 들여온 쌀로으로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제주도는 국내인들의 신혼여행지로서 역할을 했으며,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전 국민들은 바다 너머의 지역이라서 "해외 여행"으로 불리기도 했다. 산업 시설의 거의 없고 관광지로 지정됨으로써 개발은 더뎠다. 중국과의 수교 이후 많은 관광 시설이 들어서 지금은 해외 관광객들의 메카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돈을 벌기에는 인프라가 부족한 제주도이지만 한때 부동산 업자들과 일부 돈 많은 사람들은 제주 땅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기도 해서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했다. 제주는 예로부터 '삼다도(三多島)'로 표현했다. '돌, 바람, 여자'다. 이 가운데 '여자'는 해녀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주로 어업에 종사하던 제주도 남자들은 배 타고 나가 풍랑을 만나 죽는 경우가 많아 여자들이 바다로 나가 해녀로 일하면서 가계를 이어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들리기도 한다. 2000년 새 밀레니엄에 들어서면서 제주가 또 한 번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웰빙, 환경 위기 등이 이슈로 부각되면서 제주는 그런 점에서 무척 자유로웠다. 산업 시설이 없고 인구도 많지 않아 자동차도 자연스레 적었다. 환경 오염이 덜 된 것이다. 연예인과 예술인들이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낮은 인구밀도에 끌리듯 와서 새 삶을 꾸렸고 심플 라이프, 쉼이 있는 삶에 적절했기 때문이다. 한때 해외의 살고 싶은 도시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처럼 퍼졌다. 이후 국내에서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도 인터넷 상에서 인기가 높았다. 이 인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 『제주, 로컬, 브랜드』는 여행이나 관광 차원이 아닌 '제주에서 살기'를 작정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즉 제주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삶을 위해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 곽효정은 잡지사 기자, 출판사 편집자, 프리랜서 작가를 거쳐 우즈베키스탄에서 국제협력단 활동가로도 2년을 살았다. 이처럼 다양한 일을 했으나 쉽사리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의 이유를 찾다가 우연한 기회로 제주에 오게 됐고,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랜 시간 풀지 못했던 의문을 ‘제주’와 ‘브랜드’를 통해 해답을 찾는 실마리가 되었다. 포털 사이트 지식백과에 적힌 브랜드(brand)라는 단어의 어원은 노르웨이 고어 'brandr'이다. 독자도 처음 알았다. 이 단어는 '태운다(to burn)'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고대 유럽에서 가축의 소유주가 자신의 가축에 낙인을 찍은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브랜드라는 단어는 시간이 흘러 한 제품의 속성, 이름, 포장, 가격, 역사를 뜻하는 의미로 발전되었고, 지금은 ‘자기다움’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고 저자는 이 책의 첫머리에 「제주도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제주에 뿌리내리고 성장하는 로컬브랜드의 ‘가장 나다운’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는 말이다.

저자가 브랜드라는 단어의 유래를 굳이 설명하는 까닭은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해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와 같은 고민을 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저자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브랜드'라는 단어를 갈고 닦으며 제주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곳 로컬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들은 가게, 회사 등이 곧 자신의 삶을 표명해주는 수단이 되고, 그 운영방식을 통해서 자기다움을 보여주는 브랜딩을 계속해서 실천해가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들은 이미 '생계'와 '삶'을 연결하는 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일의 균형을 이뤄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은 로컬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꾸려나간다는 공통점과 소신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이 책은 소상공인들의 인터뷰를 주로 담아 냈고 제주도라는 로컬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책은 4개의 파트(PART, 부)로 나뉘었으며, 각 부는 4장(章)으로 나뉜다. 4부 16장의 구성을 갖고 있다. 각 장마다 '제주, 로컬, 브랜드'에 맞는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 1부는 〈나의 브랜드는 거룩한 노동〉이라는 제목 아래 「할머니와 손녀의 합작떡 라이스나이스」,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농사 짓기 하윤이네농원」, 「문사수의 태도로 만드는 비건버터 문사기름집」, 「스스로 서서, 함께 자립하는 삶 소농로드」 등 4개의 일터가 소개된다. 2부 〈내가 아닌 타인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는 「배려와 존중으로 결을 만들다 제주로부터」, 「환경의 해를 최소화하는 의류브랜드 그린블리스」, 「이 시골에 ‘즐거움’ 하나쯤은 있어야죠 요이땅삐삐」, 「소리소문없이, 이 좋은 책들이 알려지길 소리소문」 등이 담겼다. 3부 〈너와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단단한 진심으로 뿌리내리기 카페단단」, 「오롯이 타고 사라지는, 아름다운 빛 랄라밀랍초」, 「반짝이는 아이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워터벨롱」,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 목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4부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될 때〉는 「사각사각 연필의 세계 클래식문구사」, 「다정한 기억이 켜켜이 쌓인 공간 여행가게」, 「살던 곳이 일터가 되려면? 키라네책부엌」, 「먹고 마시고 머물러라! 버거스테이」가 선보인다. 부록으로는 16개의 「로컬브랜드 찾아보기」를 실었다. 제주도 지도와 로컬브랜드의 위치가 실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열여섯 브랜드의 대표들을 인터뷰하면서 브랜드와 브랜딩은 비단 유명 상표에만 붙여지는 단어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브랜드’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나가는 것이 ‘브랜딩’임을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 자신의 삶을 자기답게 ‘브랜딩’ 해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신도 성장할 기회를 찾게 되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제주도’라는 로컬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각 브랜드의 대표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했고, 자신만의 원리와 원칙으로 일과 삶을 지속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제주의 각 로컬브랜드들은 제주로 이주하면서 그전에 했던 일들과는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힌다. 또한 그것은 ‘생계’와 ‘삶’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특히 ‘제주’라는 공간은 연대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지역의 일과 주변 브랜드와 소통할 기회들이 열려 있었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경쟁’의 개념으로 보기보다 ‘함께’ 살아갈 고민을 하는 큰 장점이 있는 로컬이다. 제주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꾸려가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상생’하는 일을 자주 도모하는 모습을 저자는 발견한다. 그들이 어떻게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함께하는 일을 꾀하게 되었는지, 인터뷰이들의 다양한 답변을 통해 알 수 있다.

제주 원도심에 7평도 되지 않은 구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세계 곳곳의 연필을 파는 가게, 주 3일은 비건버터를 만들고, 3일은 판매하는 시골 가게, 버려진 밀랍으로 만든 초를 파는 가게, 제주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어 사람이 살까 싶은 곳에 위치한 공연하는 술집… 사실 이런 가게들이 과연 장사가 될까? 싶지만, 그들만의 가치관과 철학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는 대규모 수익은 아니더라도 지속할 힘이 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 이상 이 브랜드는 ‘망하지’ 않고 제주를 누리고 있으며, 작지만 강한 소상공인으로 지역 곳곳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저자 역시 인플래닝이라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로컬매거진 〈sarm〉을 발행하는 곳이기도 하며, 다른 소상공인의 브랜드들을 브랜딩해주거나, 여러 외부에서 기획한 일을 실행한다. 각 브랜드 대표를 인터뷰한 매거진 〈sarm〉의 수익은 크지 않으나, 로컬매거진은 다른 일들을 불러주는 통로가 되었고, 다른 이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되어 현재까지 계속 발행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동일하다.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오래 하는 것.” 그래서 제주에 생겼다가 무수히 사라지는 오로지 ‘수익’만을 위한 가게와 기업들 속에서도 오래 반짝이고 있다.

 


 

제주에서 환경에 피해 주지 않으면서 핸드메이드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룰루와 저 사이에 늘 켜져 있던 초가 눈에 들어왔어요. 룰루가 언젠가 다도 자리에서 선생님이 밀랍초를 태웠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는 초가 연소되어 사라지는 모습에서 온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었어요. 우리는 함께 밀랍초를 통해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양봉장에서 쓸모를 다해 버려지는 밀랍을 사용하는 일은 양봉장에도 도움이 되고 나아가 꿀벌 생태계에도 도움이 돼요. 우리가 만들어내는 빛을 통해 자연과 인간, 개인과 이웃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p.198)

 

마음가짐은 늘 태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태도’를 염두에 두고 살피려고 합니다. 목리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께도 드러나지 않으나 느낄 수 있는 마음과 사소한 태도에 대해 당부합니다. 밀린 주문에 급해진 마음에 따른 물줄기가 원두의 향을 휘발시킬 수 있고, 답답한 상황에 성급하게 와인병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에 집중하고 정성을 기울일 때 전달되는 진심이 존재합니다. 저는 그 진심이 목리를 찾아온 손님과 그분의 시간을 존중하는 데 있길 바라며 늘 정성을 기울이는 태도를 지켜가는 것을 목리의 철칙으로 삼고 싶습니다.(p.246)

 

저자 : 곽효정(J. 페페)

 

서울에서는 기자로, 제주에서는 로컬매거진 을 창간해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제주 정착 이전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소도시 페르가나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낯선 나라에서 이웃이 곧 친구이며 친구가 곧 이웃인 로컬 중심의 삶을 산 덕분에 ‘제주’라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금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나답게 살아가는 이웃이자 친구 같은 소상공인의 인터뷰를 시작했고,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들과 여러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아리랑 라디오 <원더스 오브 제주>의 구성작가를 겸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페페의 필름통》과 《서른, 비로소 인생이 달콤해졌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