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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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베르베르에 '입문'한 것은 대략 2010년쯤이다. 학교 졸업 후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 꽤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던 탓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베르에 대해 전혀 몰랐다. 당시 처음 읽었던 책은 『개미』였다. 그리고 단박에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놀라운 관찰력에 빠져들었다. 이후 많은 책에서 그의 책은 독자에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가 작가로서, 소설로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단순히 문학적 즐거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과학 발전, 국제 정치 등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용으로 꽉차 있었다. 그는 소설을 통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담았고, 살아내기 위해 고민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영감을 담은 문장들이 책 속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우리 나라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 베르베르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독자의 머릿속에 삶의 방향을 설명해주는 철학자로 자리 잡았다.

2010년 이후에 번역 출간된 책을 읽다 보니 부끄럽게도 이 책 『뇌』도 최근에 나온 책인 줄 알았다. 그리고 출판사 소개글을 통해 1, 2권 모두 '개정판'임을 알게 됐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이다. 첫 장면에서 이 책은 한 남자와 컴퓨터 〈디프 블루 IV〉와 체스 세계챔피언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이 최근에 쓰였다면 우리나라 바둑 기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2016년)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이 쓰일 당시에는 알파고도 없었고, 인공지능(AI)란 말도 흔하게 쓰이지 않는 시대다. 독자도 컴퓨터를 잘 다루는 세대가 아니지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이벤트이니만큼 알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라는 칭호를 받고 있던 이세돌은 결국 패하고 말았지만 "이세돌 개인이 졌을 뿐이지, AI에 진 것은 아니다"란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이미 체스는 인공 지능 이전 컴퓨터가 세계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고 뉴스를 통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지난 세기의 일이다.

 


 

이 책 『뇌』 소개글에는 "기념비적 걸작으로 과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 머릿속의 작은 우주인 〈뇌〉의 세계를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묘사했다"고 말하고 있다. 컴퓨터와의 대결에서 이긴 체스 챔피언은 연인의 품 안에서 황홀경을 경험한 표정으로 사망한다. 이에 체스 챔피언이자 신경정신 의학자인 '핀처' 박사의 사인을 추적하던 여기자 '뤼크레스'와 전직 경찰 '이지도르'는 마약이나 섹스를 넘어서는 인간 쾌락의 절정, 그 '비밀의 문'을 향해 한발한발 접근해 들어가는 스토리로 구성됐다. 한마디로 베르베르의 목적은 인간에게 최상의 기쁨을 선사한다는 뇌 속 '최후 비밀'에 서서히 다가가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뤼크레스와 이지도르, 두 사람은 인간을 움직이는 궁극적 동기가 무엇인지 밝히고,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서스펜스와 과학 지식과 모험담이 한데 엮인 이 소설은 추리적 기법이 사용되어 마지막 페이지까지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움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워낙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인 베르베르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여정을 함께할지 걱정되지만 궁금증을 이길 수는 없다. 베르베르는 첫 문장에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을 통해 우리 인간이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지, 우리가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기로 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뇌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사해 밝혀내는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동기와 쾌락의 관계라는 추상적이고 까다로운 소재를 추리적 기법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파고들며 소설적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게 해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번 개정판은 한국에 출간된 지 20년이 된 점을 계기로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읽기 좋은 판형과 가벼운 장정으로 모습을 바꾸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또 달라진 맞춤법을 반영하고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주석 역시 현재를 기준으로 내용을 수정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번역자 이세욱의 해박한 지식과 번역의 충실성을 더했고 독자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훨씬 클 것으로 기대된다.

 


 

저명한 신경 정신 의학자인 사뮈엘 핀처는 컴퓨터 「디프 블루 IV」를 꺾고 세계 체스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컴퓨터와의 두뇌 대결에서 '다시' 인간이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다. 그날 밤, 그는 톱모델인 약혼녀 나타샤 아네르센과 사랑을 나누던 도중 황홀경에 이른 표정으로 돌연 죽음을 맞이한다. 경찰의 수사 결과 그는 복상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과학부의 셜록 홈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기자 출신 이지도르 카첸버그는 직감적으로 수사 결과에 의문을 품는다. 『르 게퇴르 모데른』지의 기자인 뤼크레스 넴로드와 함께 조사를 시작한다. 이지도르가 '뇌'가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서 뤼크레스 기자에게 합동 조사를 제의한 것이다. 그 이유로 핀처가 컴퓨터를 이긴 세계 최고의 두뇌라는 점과 체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이 승리는 어떤 은밀한 동기 덕분에 이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며 무언가를 밝히려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는 점을 든다.

뤼크레스는 회사의 아이디어회의에서 이 조사를 안건으로 통과시킨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함께 또 따로 조사를 시작한다. 이들은 살인의 원인을 추적하고자 시작했고,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강한 동기가 무엇인지 조사하는 지점에 다다른다. 인간 행동에는 '동기'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범죄를 수사하기 전에 '범행 동기'를 반드시 알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범죄 동기는 나중 재판에 가서도 범행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이들이 조사 과정에서 밝히는 것들은 인간이 행동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어떤 경로를 통해 행위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들도 과학적 기법으로 조사해 들어가는 행위를 보여준다. '동기'와 함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의 과정에도 같은 방법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또 '고통을 멎게 하는 것'과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욕구 충족' '안락함을 위한 부차적인 욕구 충족' '의무감' 등 매우 추상적이던 문제를 서서히 구상화시켜 간다. 어떻게 보변 매우 단순한 조사 과정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저자 베르베르가 의학과 과학, 지리와 풍습, 문학과 신화, 인체 공학과 인간의 가치 등을 모두 동원하면서 광범위한 지식을 펼쳐나가는 데 있다.

 

 

이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한 명의 인물이 또 등장한다. 장루이 마르탱이다. 이 인물에 대해 저자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4월 어느 날,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 칸. 날씨가 화창하다. 갖가지 행사와 제전으로 일주일도 조용할 때가 없는 칸이지만, 체스 대회가 끝나고 영화제를 앞둔 시점에서 오랜만에 짧은 공백기의 휴식을 맞고 있다."(1권, p.47) 마르탱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그는 생트마르그리트병원에서 핀처 박사가 치료하던 환자 중 한 명이다. 그가 기이한 모습으로 부부인 양 빨간 외투를 걸친 젊은 여자와 자리를 함께한다. 둘 사이는 어색하지만 일행은 분명해 보인다. 살인이라는 말도 반신반의했지만 이 두 사람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핀처 박사의 죽음과 관련 있는 인물들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기이한 옷차림의 마르탱을 핀처 박사가 치료에 성공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고, 체스 게임의 승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루이 마르탱은 대형 교통사고로 LIS(Locked -in Syndrome)란 심각한 상태에 처해짐으로써 신체의 거의 모든 기능을 쓰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만 한쪽 눈과 한쪽 귀만 정상으로 생명을 작동시키는 그야말로 '식물 인간'인 상태였다. 핀처박사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핀처 박사는 양선자방출단층촬영을 이용하여 마르탱의 뇌를 정밀 분석하고 그의 뇌가 모두 멀쩡함을 알아낸다. 이후 마르탱의 동의를 얻어 치료하기로 함으로써 핀처 박사 연구의 일환이 된다. 핀처 박사는 치료 기간 중 마르탱으로부터 인간의 뇌는 사물을 직접 볼 때와 생각만 할 때 동일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핀처 박사의 연구는 전환한다. 뇌의 생각만으로 컴퓨터로 나타하게 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처음에는 안구의 운동으로 컴퓨터의 자판을 입력하는 방법을 택했으나 마르탱은 뇌의 학습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뇌에 인공지능프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 된 전자칩을 이식한다.

 


 

생각만으로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는 원하는 학습도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마르탱은 순식간에 지식의 보고인 '아테나'로 변조(?)된다. 마르탱은 자신을 차로 친 사람이 상트마르그리트의 의사인 움베르토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미 인본적인 윤리 도덕과 종교로 고도화된 마르탱은 불행의 나락에 빠져버린 움베르토를 구원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며 자신의 자비에 만족감을 가진다.

한편 조사를 벌이던 뤼크레스가 찾아간 쾌락주의자들의 모임인 '씨엘'에서 괴한에게 납치된다. 뤼크레스가 정신을 잃은 채 납치됐다가 깨어난 장소는 생트마르그리트 정신병원이다. 뤼크레스는 이 병원에 감금되어 조사를 받는다. 뤼크레스는 조사를 하는 주체가 사람의 형제를 갖지 않은 〈누구〉라는 존재임을 알고는 핀처 박사를 살해한 자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뤼크레스는 모진 고생 끝에 감금실을 빠져나와 탈출을 시도하다가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던 환자 '아리안'의 도움으로 환자들의 작업장인 경보장치 제조공장을 돌아본다.

경보장치 제조공장을 돌아보며 정신병 환자들이 지치지도 않고 싫증을 내지도 않으며 열정을 갖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하게 느낀다. 결국 뤼크레스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이 '불량률 제로'인 점을 알게 된다. 느낌 상으로 그들의 뇌에 모종의 처리가 있었음을 감지한다. 그러나 뤼크레스의 탈출에 협조할 것 같던 환자들이 갑자기 '최후 비밀'의 강력한 유도에 따라 뤼크레스를 잡으려 마음을 바꾼다. 이에 쫒기던 그녀는 절벽 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구사일생으로 생트마르그리트섬을 탈출한다. 조금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기는 하다. 옆에 있는 수도사들의 섬인 생토노라섬까지 헤엄쳐서 탈출한다. 이곳은 수도사들이 방해받지 않고 수도에 전념하기 위해 묵언을 모토로 수도하는 수도원이다. 뤼크레스라는 여자가 방해를 하므로 생트마그리트섬의 환자들에 비밀리에 연락하여 넘겨주려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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