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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트니크가 만든 아이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40
장경선 지음 / 다른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는 동유럽 국가들이 위치한 발칸반도에서의 전쟁을 주무대로 다룬 소설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고, 전쟁보다 큰 가치인 사랑과 협력을 위한 '화해'를 주제로 한다. 이 지역은 구 소련 붕괴 이전에 대부분의 나라가 공산주의 체제로서 소련의 위성국이라고 불리웠던 나라들이 밀집해 있다. 요즘 발칸반도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해외 여행객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곳은 아니다. 독자에게도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이라는 나라가 당연히 낯선 곳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준 곳이기도 하다. 1973년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김순옥, 나인숙 등과 함께 나선 사라예보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에서 구기 종목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그때는 우리는 박정희 정권으로 북한과의 대치 상태였으니 이들의 금메달 획득은 나라의 이름을 떨친 공적으로 평가됐다. 아마 카퍼레이드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공산권 국가들이 많아 여전히 북한과의 수교 상태이고 우리와는 거리를 둔 상태였다.
구 소련이 붕괴된 후 20세기가 다 지나가도록 발칸반도는 우리와 너무 먼 지리적 위치와 당시 공산주의 소련의 위성국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종교적으로도 이 지역은 카톨릭,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혼재해 있었다. 또 발칸반도를 통일 국가로 묶은 티토 대통령은 국호를 유고슬라비아로 정하고 독재정권을 이어갈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혼란스웠다. 이곳에 치열한 전쟁이 터진 것은 구 소련 해체로 각 나라가 유고슬라비아 이전의 상태를 되찾아가는 과정에서였다.
이른바 '보스니아 분쟁'은 유고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1991년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연대하여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할 것을 선언하고, 1992년 3월의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확정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에 보스니아 내에서 당시 35%의 인구비율을 차지하던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참가 자체를 거부하고, 보스니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발칸반도 <자료출처 : 시사상식사전>
1992년 4월 6일 EU가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자 보스니아는 본격적인 내전상태에 돌입하게 됐는데, 신유고연방군(세르비아가 중심이 됨)의 지원을 받는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는 내전 초기 보스니아 영토의 약 70%를 점령했었다. 보스니아 사태가 위험 수위를 넘자 유엔은 1992년 5월 세르비아 공화국에 대한 전면적인 금수조치, 항공봉쇄, 자산동결 등의 제재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는 휴전에 동의하지 않은 채 전쟁을 계속해 나가면서 소위 ‘인종청소’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유엔도 1992년 8월 평화유지군 파견을 통하여 내전에 개입하였으나, 세르비아계의 무력도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종청소'라는 어휘다. 이 소설이 이때 이 분쟁의 중심이었던 사라예보와 모스타르란 지명은 모두 옛 유고슬라비아의 명칭 그대로다. 유고 이전부터 같은 이름으로 존재했던 지명들이다. 특히 사라예보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유가 된 지역이기도 하다. 이 전쟁의 역사적 배경은 이 책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 〈작가의 말〉에도 잠깐 언급되지만 주요 내용은 본문에 수시로 등장한다. 이에 독자 역시 잘 알지 못하는 먼 나라 이야기여서 〈네이버 백과〉를 인용, 배경 설명을 하고 있는 점을 양해 바란다.
언급한 바와 같이 1991년 6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제1차 유고 내전이 시작되었고, 9월에는 마케도니아까지 독립을 선언하여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은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이에 1992년 3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신유고 연방을 창설했으나 이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포했으며, 이는 보스니아 내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독립을 주도한 것은 이슬람 정부의 지원을 받는 보스니아 내 이슬람교도들과 크로아티아인들로, 이들은 세르비아계가 주도권을 가지는 것을 우려해 독립을 주도했던 것이다. 이를 알고 있는 세르비아계는 민족별 분리를 이유로 국민투표에 불참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1992년 4월 유럽연합(EU)과 미국은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보스니아의 독립을 반대해왔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1992년 5월 25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인 사라예보에 포격을 감행, 보스니아 내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한 제2차 유고 내전, 즉 보스니아 내전을 일으켰다. 보스니아 내전은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계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갈등의 구도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는 유고 연방군과 함께 보스니아 영토의 70%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 낯선 곳의 낯선 전쟁에는 낯선 단어가 하나 더 눈에 띈다. 표제어로 사용되는 '체트니크(cetnik)'다. 체트니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고슬라비아 망명정부의 전쟁장관이었던 미하일로비치가 세르비아 건설을 위해 조직한 군사조직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유고슬라비아는 독일에 점령당하면서 영토가 분할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세르비아인들이 학살되었다. 이에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고취된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영국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후 독일에서 저항하던 미하일로비치를 망명정부의 전쟁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미하일로비치는 일선 지휘관들을 소집하여 1941년 5월 체트니크를 창설하였다. 체트니크는 세르비아 건설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점령국인 독일뿐 아니라 크로아티아, 공산세력인 파르티잔까지 전투의 목적으로 삼았다. 세르비아 병력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제한전만 벌이며 연합군의 지원만 기다리던 미하일로비치는 연합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독일과 손을 잡고 공산세력에 저항한다.
연합군 측은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던 크로아티아 출신 티토가 이끄는 공산세력인 파르티잔을 지원했고, 영국정부는 유고슬라비아 망명정부와 티토와의 화해를 중재하였다. 그 조건은 유고슬라비아 정부가 체트니크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연합국 측이 승리함에 따라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되면서 체트니크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결국 전쟁중에 일으키려던 세르비아 건설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미하일로비치는 저항하다가 1945년 티토의 게릴라들에게 잡혀 1946년 반역죄로 처형당했다.(두산백과 참조)
이처럼 낯선 것투성이인 발칸반도에서의 전쟁, 즉 보스니아 분쟁이 낳은 소설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는 체트니크, 모스타르, 스타리 모스트 등 우리에게는 낯선 지명과 낱말,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낯선 역사를 다룬다. 그래서 선뜻 다가가기 어렵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된, 한 국가 안에서 전쟁을 벌여 서로 죽이고 여성들을 상대로 몹쓸 범죄를 저질러 원치 않은 아이를 낳게 한 사건은 물론 매우 충격적이다. 그러나 세계 지도를 펼쳐도 정확히 어디 있는지 짚어 내기 어려울 만큼 생경한 나라의 이야기를 대한민국의 저자가 고른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런 이야기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
이에 대해 출판사 측이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언뜻 보기에는 멀어 보이는 이 이야기가 사실은 우리의 어제, 오늘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종교라는 명목하에 내전이 벌어졌던 보스니아처럼 우리나라도 이념이라는 허울 아래 전쟁을 치렀고, 갈라졌다. 이 닮음에 한 가지 차이를 더하면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이미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단이 아픈 것인지, 전쟁이 어떻게 왜 끔찍한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반면 소설의 주인공 나타샤와 같은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들은 아직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았다. 곧 나타샤의 주변 어른들은 모두 전쟁의 당사자라는 뜻이다. 책과 뉴스에서 접했던 전쟁과는 다른, 직접 겪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듣는 전쟁의 참상, 그 속의 인간들의 추악하고 끔찍한 모습이 주인공 나타샤의 눈과 귀를 통해 여지없이 드러난다. 또 이런 끔찍한 일을 반복하지 말자는 수많은 합의와 약속이 무색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는 전쟁의 포화 속에 있다. 소설 속 애나와 나타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여성과 노약자가 반드시 있다.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는 그들에게 바치는 한 송이 꽃이자, 여전히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인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는 전쟁의 참혹한 면, 인간의 잔인한 면 등을 순화시키기에는 종교의 힘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딪쳤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이 지역은 종교와 민족, 종족,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렸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원인이 되는 종교나 민족, 종족이나 이념이 전쟁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전쟁은 인류가 지양해야 할 가장 큰 범죄요 악행이다. 전쟁의 피해자는 군인보다 훨씬 약자이고 소외자인 경우가 훨씬 많다. 이 보스니아 내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성들은 적의 '씨를 말리기 위해' 여자와 마음대로 강간하게 내버려 둔다. 이 책에서는 '상부의 명령'으로 표현되지만 명백히 전쟁 당사자들의 명령이다. 어는 전쟁에서도 볼 수 없는 전쟁 범죄의 가장 악랄한 부분이 20세기 마지막 전쟁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점은 21세기 오늘을 사는 인류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자 해답을 내놓아야 할 숙제가 되었다.
이 소설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는 전쟁을 다루지만 전쟁의 참혹성을 주제로 삼지는 않는다. 피해자이고 약자인 한 여성의 딸(딸도 피해자다)을 중심으로 한 ‘가족 성장 소설’이다. 소설은 전쟁과 범죄라는 무겁고도 큰 소재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은 주인공 '나타샤' 모녀의 갈등과 해소다. 둘 중 누구도 잘못하지는 않았지만 아픈 과거 속에서 공유한 두 사람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갈 것을 예고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 모든 일은 나타샤가 여행 중에 만난 엄마의 고향 사람들, 끝까지 곁에서 힘이 되어준 친구 사라, 엄마와 같은 입장이었던 사비나 이모 덕분에 이루어졌다. 사실 모녀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는 전쟁이었고 국가였다. 가해자의 위로가 고작 한 달에 밥 한 끼 사 먹을 보상금이 고작이었던 데 비해 나타샤 모녀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위안을 받고 자기 상처에 당당히 맞설 용기까지 얻는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 비해 훨씬 작은 약자일 때의 씁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줌과 동시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연대의 모습을 제안한다.
이 소설은 저자 장경선의 시대 의식과 우리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북한과의 휴전중)을 감안해 소재로 삼아 썼다고 이해된다. 저자는 사실 소설보다는 동화를 많이 쓴 작가다. 다만 동화라도 역사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쓴 동화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암리를 아십니까』, 『검은 태양』, 『언제나 3월 1일』, 『터널』 등이 대표적이다. 이 소설이 결말 부분에 이르러 가능성만 열어놓고 끝내는 부분은 현재 이 지역의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채 주변국과 UN 차원의 지원을 기반으로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뿌리는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의 역사의식과 국제적 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UN 기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내전과 분쟁으로 사실상 유럽의 최빈국으로 꼽히는 보스니아는 2010~12년 동안 국제사회의 재정적 도움을 받았는데 2010년의 국내총생산(GDP)은 1%가 증가했으며, 2011년의 경제성장률은 2.4%였다. 또한, 2012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보스니아에 5억 달러 규모의 대기성(Stand-by) 차관 지원을 최종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2010년 2.1%에서 2011년에 3.7%로 증가했고5) 2011년에 실업률은 27.6%였으며6), 전체 경제에서 음성적인 지하경제가 약 20∼25%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보스니아에서 일어나는 최근 시위의 초점은 높은 실업률과 빈곤률에 대한 항의에 맞춰지고 있는 추세이며, 실례로 2013년 7월 2일에는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1,500여 명의 중산층 시민이 정부 당국에 경제·정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고 외신이 전한 바 있다. 2013년 현재 보스니아 내 380만 명 국민 중 40%가 실업상태이며, 보스니아 내 아동들은 인신매매·가정폭력·방임 등에 노출된 실정이다.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또 2015년은 보스니아에 있어 절반의 희망과 절반의 절망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희망이란, 드디어 EU 가입을 위한 예비협상이 결정되고 EU 안정제휴협정(SAA) 발표로 인해 EU 가입에 탄력이 붙게 된 것이다. 이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보스니아는 EU 기준에 맞는 사회 제도 정비에 나섰고, 이에 대한 혜택으로 무관세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이 남았다는 것과 주변국과의 갈등 상황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20주년은 맞았지만, 여전히 이를 학살로 인정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게다가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를 학살로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자 했으나 평소 이와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던 러시아의 거부로 채택에 실패하게 되었다. 세르비아-보스니아 합동 검찰 수사팀이 과거 스레브레니차 학살 용의자 7명을 검거하기도 했으나, 학살 20주년 추모식에 참석했던 세르비아 총리가 군중이 던진 돌을 맞는 등 스레브레니차 사건은 여전히 아픔을 남기고 있다. 상처는 아물어가지만 이 지역은 여전히 전쟁 포화 속을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이 시점에서 저자의 높은 역사 의식과 국제적 감각으로 '낯선 전쟁'의 비극을 우리에게 전해준 저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아울러 독자들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많은 일들이 있는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저자 : 장경선
1968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1997년 봄 [자유문학]에 청소년소설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제1회 ‘아이세상 창작동화상’을 받았다. 현재는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을 하며 동화를 쓰고 있다. 그동안 듣고 본 것을 엮은 이야기로는 『제암리를 아십니까』, 『김금이 우리 누나』, 『검은 태양』, 『언제나 3월 1일』, 『안녕, 명자』, 『꼬마』, 『나무새』, 『소년과 늑대』 등 근현대사를 다룬 이야기가 많다. 먼 나라의 아픈 역사에도 귀를 기울여 아르메니아의 아픔을 그린 『두둑의 노래』와 보스니아의 내전을 그린 『터널』과 청소년 소설 『체트니크가 만든 아이』를 썼다. 이밖에도 『쇠똥 굴러가는 날』, 『황금박쥐부대』, 『장난감이 아니야』, 『우리 반 윤동주』, 『우리 반 방정환』도 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