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걸, 배드 블러드 -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2 여고생 핍 시리즈
홀리 잭슨 지음,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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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처음 한 문장이 글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문장이라고 한다. 특히 긴 소설처럼 스토리를 가진 문학 작품은 더욱 첫 문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독자가 책을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포인트라고 한다. 이 때문에 글을 쓰는 작가들은 첫 문장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할 정도다. 문학이론서에도 첫 문장의 중요성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잘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이 말의 중요성은 예전 책을 서점에 가서 구입할 때 확인한 바 있다. 신간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라고 진열대에 있는 책을 살지 말지를 첫 문장을 보고 결정했던 것이다. 신춘문예 소설 작품의 심사위원(예심)을 했던 분들도 "첫 문장을 보고 빨리 판단한다"고 말해 왔다. 이 책 『굿 걸, 배드 블러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살인자의 목소리는 분명 뭔가 다를 것이다. 살인자의 거짓말에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 어떤 미묘한 특성이 있을 것이다. 날카로운 톱니바퀴 아래 진실을 감춰둔 채 거짓말을 내뱉을 때,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어느 순간 뾰족하게 변하며 불안정하고 불규칙하게 비어져 나오는 목소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살인자와 마주하면 그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핍은 알아차리지 못했다."(p.7)

 

작가 홀리 잭슨의 장편 소설인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의 주인공 핍의 마음속 생각을 소설의 첫 문장으로 삼았다. '핍'? 그가 누군데?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이 시리즈의 1권을 안 본 탓이다. 이 책은 '핍' 시리즈 1권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의 주인공이다. 그가 이 책 『굿 걸, 배드 블러드』에서도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한다. 1권과 비슷한 역할로, 비슷한 일을 한다면 1권의 인기를,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지 못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 잭슨은 주인공 다시 내세울 정도로 1권 발간 때 이미 멀티밀리언 베스트셀러의 위치에 올랐다.

 


 

저자가 2권에서 주인공 핍이 또 다른 치명적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 중독성 있는 ‘트루 크라임’ 속편을 통해 더 많은 어두운 비밀을 폭로한다. 사실 1권의 사건에서 결정적 역할로 이미 대중성을 확보한 핍은 이제 더 이상 탐정이 아니다. 지난해 해결한 살인 사건에 대한 ‘트루 크라임 팟캐스트’를 게시했기 때문이다. 방송에 전념한다는 말이 입소문을 탔다. 핍은 이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한 터다.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가 실종되고 경찰이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자 핍은 그 다짐을 돌이킬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사건의 희생자인 앤디 벨과 샐 싱의 추도식이 열리던 바로 그날 밤 친구의 형인 제이미 레이놀즈가 사라진다. 레이놀즈의 실종은 전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범죄가 분명하지만 경찰이 조사하지 않는다면 핍이 나서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자는 2권의 소설 발단 부분에서 이 사실을 밝힌다.

 

“실종자가 생겼어요.” 핍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 “리틀 킬턴 마을의 제이미 레이놀즈가 사라졌어요. 사건번호는 900.” (중략) “매일 접수되는 실종사건이 몇 건이나 되는 줄 아니? 어떤 날은 하루에 열두 건이 접수될 때가 있어. 그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다 조사할 만한 인적자원이나 시간이 없단다. 특히나 이렇게 예산도 부족한 판에. 대부분의 실종자들은 48시간 이내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우선순위에 따라야 해.”

“그럼 제이미를 우선순위에 올려주세요.” 핍이 말했다. “제 말 좀 믿어주세요. 이건 단순한 가출이 아니에요.”

“그렇게는 못 해.” 호킨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사건 관할 경찰서 수사 경위인 호킨스는 단순 가출 정도로 치부한다. (중략) “제이미는 다 큰 성인이야. 심지어 제이미 어머니조차 제이미가 전에도 가출한 전력이 있어서 집을 나간 게 이상하지는 않은 일이라고 인정하셨어. 성인에게는 본인이 원하면 사라질 권리가 있어. 제이미 레이놀즈는 실종된 게 아니라, 잠시 집을 나간 거야. 별일 없을 거야. 그리고 며칠 안에 집으로 돌아올 거다.”(p.68~70)

 


 

독자들은 책을 펼쳐 들자마자 무엇보다 경찰력이 중요 사건에 대해 무관심하면 전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경찰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10대 소녀가 대신하고 있는 동안 경찰은 실상 아무런 행동 개시도 하지 않고 핍 혼자서 오롯이 모든 결과를 맞닥뜨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경찰 공권력에 대해 절망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주인공 핍은 이미 한번 리틀 킬턴의 추악한 비밀의 공포를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경험하기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저 평범하고 ‘착한’ 여자아이로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 터다. 그렇기에 더더욱, 실종된 친구를 찾기 위한 풍파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써보지만 어느샌가 또다시 사건에 발을 들여놓아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가도록 만들고 있다.

그러는 도중 핍은 서서히 통제력을 잃고 결국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옳은 길을 향해 매진하는 핍의 투지와 결단력, 포기를 모르는 직진 스타일이야말로 다시 한번 이 소설의 매력을 떠받치는 원동력인 셈이다.

저자 피터 잭슨은 핍이 행한 엄청난 역할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핍은 놀라운 탐정이지만 실제로 한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핍은 날카로운 칼날 앞에 흔들리며 자신이 그 칼에 베이게 될지 그 칼날을 피하게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핍 이외에도 소설에는 라비, 카라, 코너, 나오미, 나탈리, 다니엘 다 실바 같은 낯익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모두 1권에서 등장한 인물들이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경찰보다 먼저 사건의 진실에 집중하는 관심을 갖게 된다. 언제나 핍의 지원군이 되어주는 가족은 물론, 2권 『굿 걸, 배드 블러드』에서는 특히 라비와 코너 그리고 카라가 계속 훌륭한 조연 역할을 하며 무엇보다 라비와 핍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채 협력해나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저자 잭슨은 꼼꼼하게 짜인 플롯으로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인 미스터리를 만드는 데 있어 예리한 통찰력과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이미 1권에서 보여줬다. 1권에 이어 이번 출간한 2권 『굿 걸, 배드 블러드』는 '우연보다 필연'의 방법으로 독자들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을 갖고 있다. 시리즈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완벽한 구성력과 반전, 또 반전, 그리고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유기적 구성력이 없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다. 특히 이 소설은 미스터리 페이지터너의 임무를 끝까지 완수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페이지를 펼치면서부터 이미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예감케 하는 팟캐스트 오프닝이 시작된다. 시리즈의 전작인 1권의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을 능숙하게 요약하면서 새로운 사건에 빠져들게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리틀 킬턴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아직 다 파헤치지 못한 치명적인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긴장을 고조시킨다. 군중심리가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또 주변의 평판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곳곳에서 약도, 사진, 팟캐스트 화면, 재판 현장 삽화, 사건 기록 문서 파일 등 각종 시각적 자료를 사용해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해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들 시각 자료들은 구성이 지나치게 치밀해 사전 각본처럼 움직이는 것으로 독자들이 오해할 우려를 사전에 불시시킨다.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릴 요소를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소설 전개에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뒤로 갈수록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만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는 '반전'에 있다는 주장처럼 반전에 반전이 등장하면서 각 인물들의 역할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기능도 한다. 한 번 손에 잡으면 절대 놓을 수 없도록 유도하는 저자의 글쓰기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핍이라는 10대 소녀의 인상은 선하고 똑똑하며 결단력이 강하다. 주인공 핍은 자신의 불안한 심리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있는 군중의 시선 아래 그 압박과 싸워나간다. 사실 실제 10대 소녀가 해결할 정도의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일을 해결하는 핍은 사설 탐정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해내는 '히로인'에 가깝다. 예상 밖의 이야기 전개와 급변하는 상황이 사건을 더 악화시키고 조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가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보이는 줄거리가 더욱 스펙터클하게 흘러가는 역할을 한다. 이번 2권 『굿 걸, 배드 블러드』 미스터리와 전작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의 사건이 교차하면서 그사이 죄책감과 복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 홀리 잭슨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통해 10대들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지 바라보고 이해하게 하도록 절묘한 구성력을 보여준다.

이 소설 작품은 아직 발간되지 않은 3권을 예고하고 있다. 3권이자 최종편이 될 『에즈 굿 에즈 데드』이다. 물론 국내 번역 출간 기준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핍 시리즈는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고,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촘촘해서 민완 형사가 사건을 풀어가듯이 독자들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인 10대 소녀를 등장시켜 소설적 재미를 더했으며, 주인공 핍은 히로인으로 등장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민첩하고 강하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도 저자의 캐릭터 창조에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독자들의 방심 사건의 진행을 무방비로 노출시킨 것은 저자의 구성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사건을 풀어나가는 주인공이 10대이기 때문에 온라인과 디지털 문화을 잘 아는 데 자연스럽다고 소설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건을 풀어가는 데도 우연보다는 필연에 중점을 둘 수 있는 이유라고 출판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통한 악성 댓글에 노출되거나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더욱 유망한 탐정이 될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10대 소녀이기에 더욱 드러나는 카리스마와 이타심 등도 인물 창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토리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혼란이 올 수 있는 부분, 갑자기 튀어나온 다른 사건과 엮이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독자들의 혼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고, 우연에 가까운 사건이니만큼 '옥의 티'로 지적될 수 있지만 충격과 공포를 독자들에게 주는 데는 성공적이라고 출판사 측은 주장한다. 제목까지 정해 놓고 아직 출판 대기중인 '핍' 시리즈 3권 『에즈 굿 에즈 데드As Good As Dead』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다.

 


 

저자 잭슨은 책의 뒷 부분에서 〈감사의 말〉을 통해 10대들의 힘이 이 소설의 구성과 완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들이 보여준 '우정'에 감사하고 있다. "핍과 카라에게서 볼 수 있듯이, 10대 소녀들의 우정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10대 때부터 함께해온 치눅들, 엘리 베일리, 루시 브라운, 카밀라 버니, 올리비아 크로스맨, 알렉스 데이비스, 엘스펫 프레이저, 엘리스 레벤스, 한나 터너(너의 이름들을 도용하게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오랜 친구인 에마 트웨이츠(어린 시절 우리가 나누었던 끔찍한 연극과 노래들로 내가 이야기 쓰는 기술을 연마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 버기타와 도미닉도.(p.475)

 

저자 : 홀리 잭슨(Holly Jackson)

 

1992년생. 열다섯 살에 첫 번째 습작 소설을 썼을 정도로 이른 나이부터 글쓰기에 뜻을 두었다. 노팅엄 대학에서 문학언어학,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영문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는 런던에 거주 중이며, 여가시간에는 게임이나 범죄 실화 관련 다큐멘터리를 즐기는 편. 덕분에 탐정 노릇에 일가견이 있다.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A Good Girl’s Guide to Murder』은 홀리 잭슨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며 그 후속편으로 『굿 걸, 배드 블러드Good Girl, Bad Blood』, 『에즈 굿 에즈 데드As Good As Dead』를 출간했다.

트위터&인스타그램: @HoJay92

 

역자 : 고상숙

 

연세대학교 영문과, 한국외대통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KBS에서 외신 번역과 통역을 담당하다가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레드 세일즈 북』, 『아이를 바꾸는 교육의 절대 원칙 11』,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희망과 함께 가라』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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