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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평점 :
시가 어렵다고 한다. 현대를 사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시가 왜 어려워졌을까? 시가 어려워진 것은 시인이 시를 어렵게 쓴 탓일까, 아니면 현대인들이 시를 읽지 않아 어렵게 느끼는 것일까? 혹시 모두 다 이유가 되는 것인가? 정확한 이유는 시를 잘 읽지 않는 독자가 알 수 없지만, 느낌은 확실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를 잘 읽지 않는 독자의 얄팍한 상식으로는 시가 시인의 상상력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형상화되기 이전의 날것 그대로의 언어를 통해 나오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추측은 해본다. 같은 예술인 미술도 예전엔 실재 형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미술이란 예술로 이해했고, 그것을 보는 사람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미술이 시대를 거쳐 오면서 표현 방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잘, 그리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에서 대상을 속을 들여다보는 화가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것은 문예부흥을 거치며 근대에 들어오며 추상적인 모습으로 변해 갔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표현해주는 것이 '예술'이다는 생각이 싹 트기 시작할 때부터 관람자들의 눈에 비친 형상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을 읽어내지 못할 정도여서 외면하고 어렵다고 판단해 버린 이유가 아니었을까?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시인의 마음을 형상화해 글로 썼다. 그 과정엔 '은유'와 '상징'이라는 비유로 형상화되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시는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위의 내용은 독자 개인의 단견에 불과하지만,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장석주가 이 책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에서 보여준 '시론'과 맥락은 통하는 데가 있다. 저자 장석주가 「시는 미래의 언어다」란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을 펴내면서 29편의 시를 선정해 시의 아름다움과 시대정신을 담은 날카로움 등을 분석하면서 오늘날 시의 역할과 기능을 설명하면서 드러난다. "무의식과 충동들, 시작도 끝도 없는 모호함들 속에 우리의 길이 있을까? 시에는 전복적 상상력으로 시대를 가로지르고, 공중을 떠도는 유언(流言)과 비어(蜚語)를 채집하며,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고 표상을 찾는 숭고한 소명이 있다." 저자는 한 시대의 삭막함과 불행에 맞서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힘과 용기를 주는 시편들을 뽑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삭막하고 절망으로 둘러싸인 시대, 시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행했을 것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시의 숭고한 사명을 되새기며 자기의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는 스물아홉 편의 시, 시인과 함께 삶의 깊이와 방향을 다시 묻는다. "시가 어렵다"는 오늘날 시를 대하는 독자들의 태도에 변화를 줄 만한 이야기를 저자가 한 적이 있다. 전작 『은유의 힘』을 출간한 후 온라인 서점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서다.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시의 비밀을 좀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시의 비밀을 은유라고 봤고요. 그 은유를 보면 시라는 수수께끼를 다 풀 수 있다고 힌트를 준 거죠. 사실 시는 은유의 덩어리거든요. 왜 은유를 쓰는지, 어떤 은유가 좋은 은유인지, 이런 것들을 정말 자유롭게 펼쳐놓았으니까요. 시를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주면 좋겠어요."(2017년 9월 〈예스24〉와의 인터뷰 중에서)
저자는 문학평론가로서 기회가 될 때마다 "시를 읽어야 우리 삶을 더 풍요로워지고 미래 발전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해 온 저자는 시인이자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독자들의 시 읽기를 권유하고, 한편으로는 시가 그렇게 씌여야 한다고 자신의 시론을 일관성 있게 펴왔다.
이 책도 그의 시론과 독자들의 시 읽기를 권장하는 차원에서 집필된 것으로 이해된다. "시대가 삭막할수록, 그리고 미래가 암울할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좋은 시는 외롭고 허기진 우리를 살게 하면서 삶의 의미와 방향을 가르쳐주는 이정표와 같다. 시는 먹을 수도 쓸 수도 없는 것이라지만, 그 어떤 것보다 집요한 관찰과 무수한 고뇌, 통찰로 한 글자 한 글자가 빚어지기에 지층을 뚫고 올라와 찰나를 증언한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이 멋진 안내자는 우리에게 해갈할 물을 주고, 여행의 목적과 방향을 알려준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밀려 시의 효용을 불신하는 시대를 비판하며 다시 우리의 시 정신을 가다듬어 사회 변화에 발맞춰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의한 황금만능주의에 따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데도 우리의 정신은 더 가난해지고 심지어 퇴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시와 관계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이 느끼는 그대로다. 저자는 물질 만능주의가 지난 세기 인류 문명을 이룩하고 발전시켜 온 시를 외면한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시 평론집 『지금은 시가 필요할 때』는 시의 효용을 다시 전면에 들고 나와 시가 이 시대와 개인을 어떻게 보살피고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지 말하기 위해 출간됐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은 상상하고, 숙고하고, 꿈꾸는 능력으로 얻은 상징 능력으로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지의 지평으로 들어선다. 상징의 이해와 세계의 심연을 여는 키를 갖게 된 인간은 그만큼 더 유능해졌다.”라고 말하며 시의 유용함을 거듭 역설한다.
세계의 심연을 여는 키를 가진 인간이 얼마나 유능했는지는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다. 시는 하나에서 하나를 얻는 산수식이 아니다. 상징과 은유를 총동원해 인간의 정신을 깨우고 하나에서 열을 만들어내는 상상으로 세상을 확장하고 생동하는 기운을 가득 불어넣는다.
시의 능력을 설명하는 저자는 시의 '독창성'을 가장 우선으로 꼽는다. 문명의 기반은 상상력, 그중에서도 독창적인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메리 올리버 『마음 산책』을 인용한다. "인간은 독창성으로 이름을 떨친다. 독창성이야말로 우리 종(인간 호모사피엔스를 말하는 듯하다)의 트레이드마크다. 시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다. 낯선 것에서 낯선 것을 보는 능력, 의외성을 가진 이미지들, 무의식에서 솟는 돌연한 감정들, 다양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들, 이제까지 없던 음악, 어디서 오는지 모를 에너지, 순진무구한 주문(呪文), 기다림과 숙고와 완전한 몰입, 이런 것이 없이는 시도 없다.
저자의 시론에는 분명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 '참여문학론'에 가까이 다가간다. 앞서 열거한 시의 기능, 시의 능력은 시인의 독창적인 상상력 없이는 분출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다. 시인이 현실을 외면하거나 힘에 부친다고 도피한다면, 시는 앞서 열거한 여러가지를 시를 통해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란 시에 대한 사랑과 순기능을 말하고 있다. 이런 성분 없이 나왔다면 시는 언어의 무덤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독설처럼 내뱉는다. 우리가 기다리는 시는 불행과 격투를 마다하지 않는 시, 낡은 사물이나 생각을 바꾸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 청춘의 착란 속에서 빛나는 미래 비전을 담은 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저자 장석주는 「시가 나를 찾아왔다」란 제목의 〈들어가기〉를 통해 "놀랍도록 독창적인 상상에서 시작하는 시는 대체로 저 혼자 온다. 가늠할 수 없는 먼 곳에서 부재의 빛으로 오는 시는 스스로 발광체처럼 빛난다."고 썼다. 시를 쓰는 일은 개를 목욕시키는 일, 운동장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일, 심심함에 못 견뎌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는 일과 다르다고 못박는다. 그렇건만 시는 무위에 헌신하는 일, 아무 쓸모가 없는 아름다움을 구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진리를 훤히 밝히는 기투의 한 방식"(하이데거, 『숲길』)이라고 단언한다. 시는 자아 바깥으로 송출하는 말의 한 방식, 즉 나에게서 너에게로 건너가는 말이라는 점에서 세계와 대지를 비은폐 차원으로 "언어 속에서 스스로 생기"(하이데거, 앞의 책)한다. 시를 쓰는 이들은 자신과 제 경험을 탈취하여 언어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렇다고 언어 자체가 시는 아니다. 시는 언어를 넘어서서 이미지가 이끄는 대로 미지로 나아간다. 물론 이것은 누구의 강압도 없는 자발적인 행위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시편들은 대체로 한국 현대시로 분류되는 시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 원류를 밝히듯이 우리가 잘 아는 시인들과 시를 설명하는 일을 〈들어가기〉에서 살펴본다. 김소월 〈진달래꽃〉이나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현대시인 이성복의 〈남해금산〉으로 이어지는 우리 서정시의 흐름 안에는 늘 '당신'이나 '님'이 있다고 말한다. '나'의 안에서 '님'은 늘 결핍과 부재의 흔적으로 생생하다. 그 결핍과 부재의 결과로 '나'는 삶의 보람을 거두는 일에 실패하면서 필연적으로 늘 슬픔과 허무로 주저앉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당신'은 '나'의 바깥에 있는 존재이면서 '나'의 안에 들어와 있다. '나'는 '당신'을 품고, '당신'은 '나'를 품는다. '당신'과 '나'는 연동되어 움직인다. 이처럼 시와 시어를 살핀 저자는 참여시인으로 일컬어지는 김수영에 주목한다.
김수영은 시를 “세계의 개진”이라고 말하였다. 시가 세계를 쪼개고 그 안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란 뜻이다. 지금 이 시대, 길을 잃은 우리에게 시가 왜 필요한지를, 그리고 시인의 소명이 무엇인지 다시 일깨워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물질세계에서 물질로 이루어진 몸을 갖고 사물의 생리, 사물의 수량과 한도에 의지해 사는 삶을 비은폐의 차원으로 끄집어내는 펼쳐냄이다. 세계를 이루는 물성의 토대 위에 제 삶을 세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세계의 물질성과 그 있음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물질세계와 상호 교섭하며 그것의 자장 안에서 존재한다. 김수영이 문제 삼은 것은 물질세계의 다양한 맥락들이다. 그가 열망한 것은 세계를 더 나은 세계로 바꾸는 일이다. 김수영이 자주 '결의하는 비애'와 '변혁하는 비애'를 노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김수영에 이은 이승훈도 저자는 소개할 만한 한국 시단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시인의 대열로 올려놓는다. 이승훈은 '언어의 무의식'을 제 시의 영역으로 개척했다. 언어는 항상 의식에 앞선다. 우리는 언어 속에서 나타나고 언어를 통해서만 존재의 의미를 얻는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스물아홉 편의 시를 일일이 소개하기는 어렵다. 시 한 편과 저자의 해석을 여기에 적는다. 독자들이 시를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참고 사항이지만 독자도 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무작위 선정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사실 어느 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저자의 시론과 시 이해 방법에는 차이가 없을 터이니 독자가 자격지심에 괜한 우려를 하고 있겠지만. 시인 정진규의 〈옛날 국수 가게〉란 시다.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널듯 국수만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마치 한국 모더니즘 시의 시대를 연 이상의 시 같다. 일체의 문장부호를 쓰지 않았다. 연과 연 사이를 가를 필요도 없이 짧다. 아름다움을 말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표현했다. 우선 저자의 지적대로 상징과 은유가 있는지 찾아본다. 햇볕, 가을날, 골목길, 국수 가게, 백합꽃, 꽃밭, 공짜 등 낯선 단어도 없다. 저자의 시 해석으로 눈길을 옮긴다. "만일 골목길이 없었다면 내 감정의 정원은 폐허나 다름없었을 테다. 우리 모두는 골목길의 돌봄 속에서 자라난 골목길의 수혜자다. "골목길은 느림과 온정과 공동체와 유년과 놀이와 아늑함과 따스함으로 구성된 일련의 의미 계열"에 속하고, "속도, 계산, 계약적 관계, 성인 세계, 사회적 생활, 황량함, 차가움으로 구성된 대립적 의미 계열"에 맞선다."(김흥중, 『사회학적 파상력』, 저자 주)고 인용을 덧대 설명한다.
서울의 많은 골목길은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 속에서 덧없이 사라졌다. 골목길이 소멸한 뒤 그것은 추억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나는 오래전 골목길을 떠났고, 새로 도착한 장소는 암흑이 펼쳐지고, 모래바람이 쉬지 않고 부는 곳이었다. 분명한 것은 골목길을 떠나면서 인생의 황금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이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독자는) 옛날과 골목길은 시간과 공간의 공간의 통합체로 우리의 기억에서 망각의 질료로 불꽃처럼 타오른다.(p.79~81)
시인은 상상한다, 불과 거품들, 물방울과 뱀, 바다와 소금, 행성과 별자리들, 흙의 향기, 과일의 진실을. 또 단맛과 쾌락을 상상하고, 그보다 더 많은 불가능과 전생과 영원 따위를 상상한다. 시인은 온갖 식물에 이름을 붙여 호명하며, “여름에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 야만의 도시에 살든, 기후 위기 시대에 살든 “마음껏 타오르는 색들, 오로라, 죽은 개”가 잠긴 물속 수도원을 상상한다. 내일이라는 추상을 처음 인지한 이도 시인이었을 테다. “언덕 너머에 진짜 언덕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란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다. 시인은 커다란 나무와 그 나뭇가지 위에서 수천 마리의 새들이 날아오르는 상상을 펼친다.(p.243~244)
시인은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는 사람이다. 움직임이 없는 것들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소멸하고 굳어가는 세상에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으며, 볼품없는 것들에 노래와 향기를 심는 존재가 바로 그들이다.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에 수록된 김승희, 이기성, 이병일, 유진목, 이원, 유계영, 오은 등 스물아홉 분의 시편에서도 우리는 시인들의 상상과 고뇌, 그리고 창조자와 같은 놀라운 헌신과 능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자는 가벼운 평론이라 해도 좋고, 시담, 시 에세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이 다양한 목소리에서 우리 독자들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열린 세계’로 용기 있게 나아가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저자 : 장석주(張錫周)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그밖에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 활동으로 밥벌이를 했다. 현재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살고 있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 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 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
저서로는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호젓한 만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