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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원의 지적 여정
데버라 워런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는 '영어 어원'을 밝혀 우리 삶의 상식을 넓혀 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는 물론 고유 명사나 전문 용어에 이르기까지 단어의 어원을 밝혀 찾아들어가면 언어 지식은 물론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한글이나 영어, 한자 등 세계의 언어들은 2,500개 정도의 낱말을 안다면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언어학자들은 밝힌다. 또 5만~6만 개의 어휘를 익히면 전문 서적도 이해하기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공용어로 쓰이는 영어권의 가장 큰 사전은 『옥스포드 영어사전』으로 첫 표준판이 1884년부터 부분적으로 나오기 시작해 44년 만인 1928년에 비로소 초판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초판은 모두 12권 분량의 책에 41만4,825개의 어휘와 500만개 인용문 중 고르고 골라 182만7308개의 보기인용문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단어 수집과 기획 작업으로 무려 71년이나 걸린 작업이었다. 이후 1989년 20만개가 늘어나 60만개의 단어가 실린 2판 개정판이 발행되었다고 알려진다. 지금은 추가된 신조어 수록 포함, 90만~100만 단어에 달할 것으로 밝힌다.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는 영어권 나라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에 깃든 의미심장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엄선해 한 권으로 엮은 영어 어원 책이다. ‘Goodbye’나 ‘OK’처럼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도 의외의 사연이 숨어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 데버라 워런은 어휘가 사용되는 문장의 맥락과 코드를 알고 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지는 단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데, 웃으면서 읽다 보면 단어의 기원과 족보로 이루어진 한 장의 세계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문자 훨씬 이전에 생겨난 말들이다. 문자는 기록의 필요성이 있어 발명한 언어 전달 수단이다. 말은 시공간의 범위가 작지만 문자는 시공을 초월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발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어원학, 문학, 역사, 신화 등을 두루 다루면서도 그 시작은 평범한 일상의 단어라는 데 있다. 베이글, 비스킷, 에클레르 같은 먹을거리부터 뮬, 튀튀 같은 패션 아이템, 소렌토나 팰리세이드 같은 자동차 이름까지 익숙한 사물들에 숨겨진 예사롭지 않은 사연이 쏟아진다. 저자 데버라 워런은 취미가 라틴어 독서이고, 영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교사였으며, 프로그램 언어로 코딩을 하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언어라면 가리지 않고 빠져드는 '언어 덕후'이자 다채로운 수상 경력에 빛나는 시인이기도 하다.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는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에 “다른 어원 책에서는 보기 힘든 예술성”이 담겨 있다고 극찬을 보냈다.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의 한국어 번역판인 이 책은 교양 어원 분야의 베스트셀러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의 빼곡한 정보와 수다를 정확하고도 글맛 있게 옮긴 것으로 이름난 번역가 홍한결이 이 새로운 어원 여왕의 역작을 위트 있게 번역했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단어가 걸어온 길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과 역사적 장면, 그 사이사이로 난 오솔길과 뒷길을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자가 영어 어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때는 '수학' 하면 『수학의 정석』 하듯이 '영어' 하면 『성문 종합 영어』가 교과서의 역할을 대신할 정도로 너도 나도 이 책을 공부했다. 대학 수험생 치고 이 책을 한 권 떼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다른 영어 참고서가 많았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이 책을 사용했다. 당시에는 회화 중심의 영어가 아니라 문법 중심의 영어를 배우고 시험도 문법 위주로 나왔기에 더욱 이 책이 인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런 독점적 위치에 반기를 들듯이 나타난 책이 어휘 중심의 책 『voccabllary 22,000』이었다. 어휘를 많이 알아야 영어 시험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무려 '22,000단어'를 수록했다고 내세운 책이다. 그때 이 책이 어휘 중심의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어휘 공부 책이 어원을 찾아가 파생어까지 합친 게 22,000단어라고 강조한 것이다.
독자도 부분적으로 보았을 뿐 한 권을 구경하는 데 그쳤던 것은 어휘의 중요성보다 문법이 강조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표제어처럼 어원을 밝힌 언어는 영어다. 영어의 명칭(English)의 어원은, 앵글족이 사용하던 고대영어 '앵글리쉬'(Ænglisc)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이 고대영어는 5세기부터 형성되었는데, 르네상스를 거치며 라틴어, 그리스어 어휘를 대량 수용하다가 성서의 보급으로 영어는 널리 전파된다. 또 영국인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사용자수가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계통적으로는 인도유럽어 > 게르만어족 > 서게르만어에 속하며, A부터 Z까지 26개의 알파벳 문자로 표기한다. 오늘날 지구권에서 영어 사용자는 대략 20억 명, 즉 세계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될 것으로 추산되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공용어의 위상을 갖고 있다. 우리가 어원을 찾아가는 것은 문자로 표현된 이후부터의 일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미리 알아야 한다.
이 책은 5부 3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이런 말 저런 말〉, 2부 〈좋은 말 나쁜 말〉, 3부 〈동물의 세계〉, 4부 〈무엇이라 부르랴〉, 5부 〈말도 가지가지〉 등이다. 1부는 「말 바꾸기: 단어의 진화」, 「한 입으로 두말하기: 앵글로색슨어와 라틴어」, 「발 없는 말: 이동」, 「먹고 사는 이야기: 음식」, 「말이 오락가락: 술」, 「건강한 언어 생활」, 「꽃에 담긴 말」, 「웃기는 이야기」, 「이 옷으로 말하자면」, 「떠도는 말: 유랑」 등 10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2부엔 11장 「악담」, 12장 「믿음이 가는 말」, 13장 「애들 이야기」, 14장 「주문을 외워보자」, 15장 「마지막 한마디」 등이 있다. 또 3부는 「고양이 소리」, 「개 짖는 소리」, 「말발굽 소리」 등 동물의 울음이나 동물들이 내는 소리 등을 다루고 있다. 4부는 우리가 쓰는 이름과 성, 족보, 지명 등에 대한 어원 설명이다. 19장 「성씨의 기원」, 20장 「이름의 기원」, 21장 「족보와 정치」, 22장 「장안의 화제: 지명」, 23장 「나오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말라프롭과 몬더그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마지막 5부엔 「하나 둘 셋」, 「감옥살이 말글살이」, 「피리 부는 사나이」, 「대신하는 말」, 「입 운동: 스포츠」, 「게임의 언어」, 「각양각색: 색깔」, 「때를 이르는 말: 시간과 시기」, 「몸으로 말해요: 신체 부위」, 「참 이상한 말들」, 「언어의 끝없는 여정」 등 11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각 장에 쓰인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일상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은 동·서양 구분이 없지만 사람의 성씨(우리 한글의 김·이·박 씨)가 동양에서는 직업과 관련이 없지만 서양 특히 영어에서는 직업이 성씨와 관련된 것이 많다는 점이 특이하다.
책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먹고, 타고, 입고, 쓰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그리고 각 이름에는 그 대상만큼이나 긴 역사가 서려 있다. ‘빵’이라는 이름에 관한 역사는 ‘빵’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름의 역사를 알면 자연스레 대상에 관해서도 알게 된다. 이것이 어원이 그토록 흥미로운 이유다. 저자는 “단어는 생명체처럼 진화한다”고 이 책에서 말한다. 〈하버드 매거진〉 역시 이 책을 “단어의 진화에 대한 확실하고 재미있는 안내서”라며 추천한다. 단어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형태가 바뀌기도 하고, 그 안에 실린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단어를 잘 알려면 어원과 변이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앞뒤 맥락이 잘린 채 사전에 실린 뜻만으로는 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억지로 뜻만 외운 단어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사연을 아는 단어는 웬만해선 까먹지 않는다. 이 점은 독자가 앞서 언급한 『voccabllary 22,000』에서 이미 밝힌 대로다.
예를 들어 캡모자(cap), 수도를 뜻하는 캐피털(capital),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의 음악 용어 다 카포(da capo)가 모두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caput’에서 왔으며 프랑스에서는 'p'가 'f'로 바뀌며 주방의 대장을 뜻하는 셰프(chef)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 각 단어를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그 의미가 이해된다.
단순히 'a=b'라는 식으로 단어를 외우기만 할 거라면 사전이나 단어장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전의 짧은 정의에 다 들어갈 수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어원이라니? 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라고 할 수 있지만, 단어를 요모조모 살펴가며 뒷이야기까지 들춰 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캐고 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의 어원 이야기에서 오히려 더 큰 재미를 느낄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저절로 영어 단어가 머리에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 라틴어와 영어 교사로 활동해온 저자 데버라 워런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워런은 능숙한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배워야 할 내용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절묘한 비율로 배합해놓았다. 그리고 독자들이 호기심을 따라 스스로 지식을 넓힐 수 있도록 이야기를 책 곳곳에 배치해놓았다. 단어 암기에 지친 학생과 영어 공부를 지속하고자 하는 성인 모두에게 부담 없으면서도 알찬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워런은 한때 프로그래밍 언어로 컴퓨터 코드를 짜던 개발자였다. 그래서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에서는 세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구조화하고자 하는 개발자의 감수성이 엿보인다. 언어를 유전 정보를 담은 DNA에 비유하고 영어의 두 유전자로 라틴어와 앵글로색슨어를 지목한 것이나, 이진숫자 비트에 관한 설명 등은 그의 이력에서 기인한 독특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워런은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고 있다. 출간한 시집 대다수가 문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평단의 인정도 받고 있다. 그중 『행복의 크기(The Size of Happiness)』는 두음전환을 활용한 말장난으로 “호들갑의 절정(The Highs of Sappiness)”이라고 부르기 좋아한다고 하는데, 말장난을 좋아하는 그답게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에도 잘못 말하거나(말라프롭) 잘못 듣는(몬더그린) 말실수, 신데렐라의 가죽 구두를 유리로 바꾸거나 판도라의 항아리를 상자로 바꾼 우연한 실수 등도 다양하게 소개해놓았다. 사소한 말장난이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우리의 언어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읽어 들어가면 갈수록 쏠쏠한 재미가 쏟아지는데, 저자가 단어의 여정에 있어 커다란 길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샛길들까지 알뜰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역사 깊은 도시일수록 진짜 노포는 골목골목에 숨어 있듯이,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역시 곳곳으로 뻗어나간 샛길마다 진풍경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청바지(jean)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청바지의 탄생에 엮여 있는 남유럽의 두 도시 이야기를 꺼내고, 그중 이탈리아의 도시 제노바에서 jean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는 이야기까지는 아직 큰길 한가운데이지만, 저자는 여기서 제노바라는 도시에 대한 샛길로 우리를 안내한다.
제노바가 상인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기항지였다는 사실과 이곳에서 출발한 배가 시칠리아에 페스트를 옮겼고, 그 후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는 이야기로 역사적 교양이 쌓이고 나면, 이제 이탈리아에서는 병의 잠복기를 감안해 외부에서 입항한 배를 앞바다에 40일간 기다리게 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기에 이른다. 이 샛길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단어는 ‘격리’를 뜻하는 영단어 'quarantine'이다. 이탈리아어로 숫자 40이 'quaranta'이며, 프랑스에서는 바다에서 상륙을 기다리는 그 기간을 'quarantaine'이라 했고, 이것이 영어의 'quarantine'이 되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격리’를 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샛길이 속속들이 그려진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는 그 어떤 어원을 다룬 책보다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새로운 샛길로 들어갔다가 나오면 어느새 두 손이 무겁도록 상식과 교양이 들려 있을 것이다.
‘어원=진화’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는 돌연변이의 연속입니다. 진화가 그렇듯이, 이 책도 정해진 목표가 없습니다. 단어가 가는 길을 누가 알겠어요? 그리고 진화가 그렇듯이, 저도 어원 이야기를 할 때 가끔 횡설수설합니다(참고로 ‘횡설수설하다’를 뜻하는' meander'는 터키의 구불구불한 강 이름에서 왔어요).(p.12)
도시의 이름은 그 역사를 말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는 원래 그리스의 ‘새 도시’를 뜻하는 'Neapolis'였습니다. 그리스는 한때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대그리스)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 남부를 식민화했죠. 그리스어 'polis'에서 라틴어 'politicus(정치의)'도 유래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는 원래 그리스에서 ‘시내(inside the city)’라는 뜻으로 'eis tan polin'이라 부르던 도시입니다. 거기에서 이스탄불(Istanbul)이라는 오늘날의 이름이 유래했죠. 그리스 도시국가의 언덕을 부르던 이름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높은 도시’라는 뜻입니다. 슈퍼맨의 활동 무대인 가상의 대도시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어머니 도시’이고요(그리스어 'meter'=‘어머니’).(p.230)
저자 : 데버라 워런(Deborah Warren)
하버드대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라틴어 교사, 영어 교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출간한 시집으로는 『벌레 미식가(Connoisseurs of Worms)』 『행복의 크기(The Size of Happiness)』 등이 있으며, 『본초자오선(Zero Meridian)』은 뉴 크라이티리언상을 수상했고, 『꽃과 과일 그릇의 꿈(Dream With Flowers and Bowl of Fruit)』은 리처드 윌버상을 수상했다. 로마 시인 아우소니우스 시선 『모셀라강 외』를 번역하기도 했다. 《뉴요커》 《파리 리뷰》 등에도 기고했다. 9명의 자녀가 있으며, 현재 잠수함 탐지용 탑이 있는 매사추세츠의 옛 군사 부지에서 살고 있다. 취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독서다.
역자 : 홍한결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나와 책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쉽게 읽히면서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옮긴 책으로 『스토리만이 살길』 『어른의 문답법』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책 좀 빌려줄래?』 『인간의 흑역사』 『진실의 흑역사』 『신의 화살』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