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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 - 현대 과학이 외면한 인간 본성과 도덕의 기원
로저 스크루턴 지음, 노정태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이 책 『인간의 본질』은 표제어가 드러내듯 인간의 본질을 집중적으로 사유하고 연구하는 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문제다. '인간의 본질'이란 명제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은 고대부터 이미 있어 온 것이긴 하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주로 철학의 영역에서 사유해야 할, 철학자의 몫이었다. 수천 년간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사유를 거듭해 왔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는 그동안 많은 철학자들이 내세운 본질 탐구 이론을 집대성한 책 『이정표』(해제)를 통해 「인간의 본질로서의 탈존」이라는 이론을 설명했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질을 이성적 동물로서 규정하는 형이상학적 본질 규정은 올바른 것이긴 하되, 참된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를 확장시켜 인간의 본질은 존재자의 차원에서 동물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히려 인간이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까닭은, 다시 말해 인간에게 이성적 활동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이 이미 존재의 밝음 안에 들어 서 있기 때문이라는 탁월한 이론에 접근한다. 이러한 사태를 우리는 '탈존'이라 부르고 우리는 여기에서 종래의 형이상학적 휴머니즘이 망각했던 인간의 본질을 발견한다고 밝혔다. 즉 인간의 본질은 존재의 밝음 안에로의 탈존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인간은 존재의 밝음 안에 서 있는 한에서만 비로소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받아들이므로, 존재의 밝음에로의 탈존은 인간의 본질인 동시에, 이성의 가능 근거라고 강조한다.
이 책 『인간의 본질』은 저자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의 짤막한 저서로 「현대 과학이 외면한 인간 본성과 도덕의 기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풀이하자면 인간의 본질은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규정을 오히려 후퇴시켰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는 21세기 현재까지의 과학의 발전의 총아로 군림하고 있는 "AI(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을 대체할까?"라는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과학은 AI가 결국 인간을 대체할 것이며, 인간은 AI에게 오히려 굴복하는 종으로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정면에서 반박하는 내용의 책이다.
영국의 위대한 지성으로 손꼽히는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의 본질’을 꺼내 보인다. 무엇보다 인간은 하나의 분명한 ‘인격체’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또 다른 타인을 마주하며 책임을 다하는 인격체로서의 인간, 바로 그곳에 인간의 진정한 본성이 자리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된 저자 스크루턴의 특강을 현장감을 살려 담았다고 책의 역자 노정태는 밝힌다. 이 책은 과학과 현대 철학이 간과한 인간에 대한 논의를 정교하게 펼쳐낸다. 책의 서문 격인 글에서 저자가 강의한 내용 중 강의 내용의 핵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인간도 결국 동물일 뿐이라는 과학의 냉랭한 시선이 팽배하고 AI의 발전으로 로봇과 인간의 경계마저 흐려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인간성'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물과 똑같은 생물학적 개체만으로 해석해도 안 되는, 로봇을 닮은 계산 기계도 아닌,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게 만드는 인간 고유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무엇보다 인간은, 스스로와 타인을 인식하는 '인격체'이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기 자신을 알고 또 다른 인격체인 타인을 마주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무와 권리, 책임감을 부과받는 정신적 존재"라는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또 이런 인격체만의 도덕성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이루는 근본적인 바탕이라고 강조한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 피터 싱어나 존 톨즈 같은 현대철학자들은 모두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도덕성을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하면 끝이라는 현대적 오만함을 넘어 도덕을 계산 가능한 딜레마로 축소하려는 협소한 시도를 넘어 '나'와 '너'라는 두 인격체의 만남이 드러내는 근본적인 도덕성에 주목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의 도덕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저자 로저 스크루턴은 1944년생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젊은 시절 68혁명을 목격한 이후 평생 반지성주의에 반대하여 꾸준한 연구, 강연, 사회 참여를 이어 나갔다. 런던대학교 버크벡칼리지에서 미학을 20년간 가르쳤으며, 올곧은 철학적 소신과 정교한 논리로 현대 사상계의 유행과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활발히 개진했다. 일생에 걸친 철학 연구와 교육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기사작위를 받았으며, 2020년 타계했다. 이에 따라 이번 번역판은 역자인 노정태가 책 첫머리에 〈옮긴이의 말〉을 썼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저자 스크루턴의 강의 내용을 잘 풀어 '해제'로서의 역할을 한다.
역자에 따르면 2023년을 사는 우리는 마치 꾸준히 돌려줘야 기계가 잘 굴러가듯, '단백질로 만들어진 기계'인 우리도 예측 가능한 일상을 꼬박꼬박 해나간다. 우리는 바야흐로 뇌과학에 입각한 '루틴'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적존재인 나를 잘 이해하자'. 좋은 말이다. 생물학적 존재인 나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해 보자고 누군가 말하면, 그에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게 맞는 말일까? 내가 나를 이렇게만 바라보고 이해해도 되는 걸까? 파블로프가 개를 훈련시킬 때 썼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나 자신을 취급하고 있다면, 우리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
역자는 이 질문이 영국 보수주의 철학자인 저자가 바로 이 책 『인간의 본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 실험실의 동물을 바라보는 과학자의 그것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비판은 20세기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역자는 지적한다. 이유는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에서 출발하는 '동물로서의 인간 이해' 담론이 지니는 장점을 생각해볼 것을 역자는 주문한다. 재미있고 실용적이어서 과학에 따른 이론은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질문, 주장, 답변을 번갈아가며 주장을 담는다. 책에 따르면 도파민과 유전자가 당신을 모조리 설명할 수 있을까? 뇌과학, 신경과학과 진화생물학이 인간이라는 ‘생물종’을 설명하려 열중인 시대, 우리는 점차 자기 자신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대하는 데 익숙해지고 말았다. 인간을 동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물학적 개체로 여기는 과학적 시선은 객관성에 치우친 과학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외면했고, 사람들이 묵묵히 지켜오던 도덕적 의무감과 타인을 향한 애정과 관심은 힘을 잃었다. “냉소를 존경의 대상으로, 인색함을 멋진 것“으로 만든 시대에서, 과학적으로는 해명할 수도 없을 ‘삶의 의미’를 더 이상 묻지 않는 인간은 ”마지못해 살아가는“ 하나의 동물로 남았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지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 책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인간성을 철학적으로 해명하고, 현대 철학이 간과한 인격의 특성과 도덕성의 관계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고찰한다. 인간을 단순한 생물학적 개체로만 보는 과학, 인간 고유의 인간성을 간과한 철학과 대결하며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던 진정한 ‘인간의 본질’을 향해 우아하게 나아간다. 이 책은 인간을 어떻게 동물로 여길 수 있냐고 따지며 인간의 특권만을 부르짖는 고상한 논의가 아니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간이라는 종 HUMAN KIND-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인간성」, 2장 「인간 관계 HUMAN RELATIONS-인격,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철학의 열쇠」, 3장 「도덕적 삶 THE MORAL LIFE-도덕에 대한 현대 윤리학의 오해를 바로잡기」, 4장 「신성한 의무 SACRED OBLIGATIONS-근대적 회의로 가득한 세상, 인간과 도덕을 회복하는 길」 등이다. 1장에서는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만 바라보는 과학적 접근의 맹점을 돌아본다. 인간은 당연히 동물이다. 그런데 과연, 동물이기만 할까? 우리는 다른 동물처럼 육체를 가진 존재이지만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분명한 간극이 있다. 과학은 온전히 해명할 수 없는 그 간극에 인간 고유의 본질이 있다. 무엇보다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다.
2장은 인격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개인과 사회의 상보적인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바로 ‘인격’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본성으로 향하는 철학적 열쇠다. 유전자와 진화생물학은 인간의 몸에 대해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해 줄 수 있지만,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해 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나’로서 느끼는 감각,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할 때 느끼는 도덕 감정을 우리 뇌 속 신호체계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설령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과학적 사실은 우리가 느끼는 삶의 감각을 해명해주지 못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1인칭’의 인격체로 인식하며, 또 다른 인격체인 타인을 인식한다. 두 인격체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근본적인 도덕 감정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지는 인격체로서의 우리 삶을 해명한다.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며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을 넘어서 우리 자신을 해명하는 철학적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철학의 오랜 소명을 붙들고“ 있겠다고 말하며 과학이 축소한 인간의 고유한 본성을 명확한 논리로 다시 불러낸다. 그동안 ‘본능’의 영역으로 이해되어 온 웃음, 성적 쾌락 등의 문제 또한 ‘인격’이라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따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해명할 수 없음을 철학적으로 밝혀낸다. ‘나’에서 시작해 ‘너’로 향하는 상호인격적 관계성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풍부한 삶의 경험에 접근할 수 없다. 인간의 공동체는 생물학적 개체들이 모인 군집을 넘어서 인격체들의 관계로 형성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과학뿐 아니라 여러 현대 철학 역시 근본적인 인간성과 도덕 감정에 집중하지 못했다.
3장은 ‘피터 싱어로 대표되는 현대 윤리 철학의 주류와의 한판 승부’로 이어진다. 현대 윤리학은 ‘트롤리 문제’로 대표되는 윤리적 딜레마에 사로잡혀 인간의 도덕적 판단을 허깨비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도덕의 문제가 ‘트롤리를 굴려서 한 명을 죽일지 다섯 명을 죽일지 고민하는’ 계산의 문제로 축소될 수 있을까? 피터 싱어를 포함한 결과주의자들은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도덕적 계산기를 두드리지만 “행복에 무엇이 포함되는지, 어떤 잣대로 특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도덕적 감정과 상식에 벗어나는 '책상물림' 철학자들의 계산기를 넘어,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도덕에 집중해야 한다. 도덕적 결과주의에 기대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호인격’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도덕을 이해할 수 있다. 도덕은 무엇보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댐으로써 도달하는 인격적 관계의 침전물”이다. 현실과 괴리된 철학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인격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4장에서 다루어낸 존 롤즈나 로버트 노직 같은 미국의 사회철학자들, 자유주의자들 또한 인간 삶의 문제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사회를 인격체들의 ‘계약’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적이 있던가?라고 저자는 반문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계약의 문제가 설득력을 잃는 것은 우리 삶에서 겪는 많은 상황이 계약 없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합의 없이 특정한 상황에 놓이고, 그에 맞는 미덕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으로부터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부과받는다. 도덕을 계산이나 계약의 문제로 접근할 때 우리는 도덕에 대한 냉소로 빠져들기에 십상이다.
우리가 애써 지켜오던 전통적인 도덕과 미덕이 쉽게 냉소 받는 사회, 다시 ‘인간의 본질’에 집중해 우리의 도덕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도덕은 지난 시대의 낡은 유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도덕 감정 속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노력했던 ‘인간’의 미덕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미덕을 “이성이 권하는 바에 따를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했던 것처럼, 도덕은 내가 아닌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타인의 요청에 답하는 인격 고유의 능력에 가깝다. 나를 ‘넘어선’ 곳에서 내게 다가오는 ‘의무’. 저자가 강연 이후 추가로 덧붙인 4장의 제목이 “신성한 의무”인 이유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저자가 종교를 “도덕적 삶의 산물이자 동시에 그것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라고 말한 대목을 이해할 수 있다. 특정한 종교나 교리를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 인격의 근본적인 특성인 ‘종교적’ 태도를 회복하자는 의미다. ‘나’의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나’를 초월하는 요청에 성실히 응답할 것. 꿋꿋이 자신과 타인의 삶에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인격체로서의 우리의 행동과 마음에 책임을 질 것. 과학의 세례 속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종교적’ 태도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간단한 것이다. 동물도, 기계도 아닌 하나의 ‘인격’인 우리를 돌아보기. “나”와 “너”라는 두 인격이 마주하는 바로 그 자리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의 본질’이 있다.
저자 :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
영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지성으로 평가받는 철학자. 1944년생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젊은 시절 68혁명을 목격한 이후 평생 반지성주의에 반대하여 꾸준한 연구, 강연, 사회 참여를 이어 나갔다. 런던대학교 버크벡칼리지에서 미학을 20년간 가르쳤으며, 올곧은 철학적 소신과 정교한 논리로 현대 사상계의 유행과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활발히 개진했다. 일생에 걸친 철학 연구와 교육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기사작위를 받았으며, 2020년 타계했다.
런던대학교 버크벡칼리지 재임 이후 보스턴대학교 초빙교수, 미국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워싱턴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그 외 케임브리지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스탠퍼드대학교, 루뱅대학교 등 세계 각국 명문교육기관에 초빙된 바 있다. 이 책은 2013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했던 특별 강연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철학, 미학, 정치학에 관한 4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주요 저서로는 『현대 철학 강의』, 『우리를 속인 세기의 철학가들』, 『Art and Imagination』, 『The Meaning of Conservatism』, 『How to be a Conservative』 등이 있다.
역자 : 노정태
자유기고가·번역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칸트 철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경향신문』·『주간경향』·『프레시안』·『GQ』 등에 기고했다. 현재 『조선일보』와 『신동아』에 칼럼을 쓰고 있고,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탄탈로스의 신화』, 『논객시대』 등이 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실전 격투』, 『정념과 이해관계』, 『밀레니얼 선언』,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아웃라이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