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품고 슬퍼하다 - 임진왜란 전쟁에서 조선백성을 구한 사명대사의 활인검 이야기
이상훈 지음 / 여백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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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건국 20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는다. 전쟁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明)은 사대를 국시로 한 조선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국한 이래 동쪽의 이민족 침략을 걱정할 필요 없이 북방 침략만 대비하면 되었기에 더 이상의 전쟁은 필요치 않았다. 우호 관계에 있는 조선을 무력으로 다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동쪽의 적으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해야 할 힘을 북방 방어에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여진은 다른 나라를 쳐들어갈 여력이 없어 근근이 살아가는 상태여서 조선으로서는 군사를 동원해 방어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상태이었다. 수시로 식량을 약탈하려 왔던 왜구(日本)는 대마도의 완충 지역이 조선에 호의적이어서 크게 염려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은 나라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는 국경의 넘어오는 적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고, 국제 관계의 역학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임진왜란은 그렇게 발발한 것이다. 전국시대 중구난방 무사들의 전쟁터였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 명분을 내세우기까지 군사력을 키우고 모으는 것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불교의 국가 고려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조선은 유교의 나라, 성리학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로 나라의 쇄신을 기했고, 다행히 건국 20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외부 침략으로부터 벗어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안일한 자기 위안에 빠진 관리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은 언제나 전쟁에 노출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일까. 일본 최초의 통일을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만족하지 않고, 여세를 몰아 조선 정벌을 시도한다. 당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조선은 외부 적으로부터 침략 당할 경우 사대를 해온 명이 당연히 나서서 물리쳐줄 것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국제 문제를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문무의 능력이 안정돼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이유가 어떻든 모두 조선 조정의 무능이 드러나는 데에는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역전의 용사라 하더라도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복속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의 항해술이나 조선술이 대규모 병력을 쉽게 원하는 지역에 이동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조선의 가장 위협이 되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일방적으로 밀리며 임금마저 피난을 거듭해 결국 명나라로 피신, 망명을 생각해야 할 정도의 치욕적 수모를 겪은 것은 한 나라의 국방 정책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더욱이 왕마저 도망간다면 백성들은 어디를 믿고 살아야 하는가.

악귀 같은 왜군들에 짓밟히면서 샬륙되는 백성을 두고 도망간 왕의 나라는 세계사에도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것은 전쟁에 패배한 패전의 논리일 뿐 백성들에게 위안도 되지 않고, 희망도 주지 못한다. 관리들은 왕의 피신을 돕고 따라가면서 백성들에게 저항하라 하면 평생 농사를 짓던 농민이 대부분인 조선의 백성들이 무슨 능력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승리할 수 있겠는가. 성리학을 앞세운 관리들의 부재에 과거 고려 시대에 나라에 큰 역할을 했던 승려들이 나선 것은 그나마 백성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명대사가 칼을 손에 쥔 것이다. 왕도 도망간 전쟁에 승려들을 모아 전투에 참여한 것이다. 이 책 『칼을 품고 슬퍼하다』는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임진왜란 당시 활약을 중심으로 소설로 다시 써낸 것이다. 역사 소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각 개인의 심리와 전쟁터에서의 현장의 묘사가 생생하기에 저자의 글솜씨기 소설의 완성도에 기여하는 게 보통이다. 이 소설의 저자 이상훈은 역사 의식과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는 의식이 강한 작가로 이미 여러 소설을 써낸 베테랑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사명대사의 '위인전'을 역사 소설로 써낸 이유를 저자 자신의 고향과 사명대사의 출생지가 같다는 점을 들지만 본뜻은 아니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의 진정한 뜻은 사명대사가 신분의 귀천을 떠나 인간의 존엄을 아는 '승려'였기에 관심이 컸을 것이고,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를 가장 앞세우는 승려가 칼을 든 이유를 백성의 처참한 죽음과 비참한 모습을 목격한 이상 중생의 죽음과 아픔, 슬픔과 처참한 모습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수 없는 중생에게 자비를 대하는 불교의 교리를 더 맞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생을 막기 위해 살생을 한다는 역설적 상황에 대한 사명대사의 고뇌를 소설에 그려냄으로써 사명대사의 전쟁 참여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저자의 생각도 이와 같았기에 이 소설이 탄생되었다고 독자는 믿는다. 소설 속에서 사명대사는 살생을 일삼는 무리(왜군)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한다. 또 한편으론 죽은 백성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은 채, 부처님께 용서를 구하며 칼을 든다. 오직 백성들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명은 이렇듯 처절하게 임진왜란의 전면에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을 판단할 때 조선이 전쟁 초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력이 쇠약해진 것은 왜란이 일어난 선조대에 이르러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분석이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쇠약의 기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 정치적으로는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는 4대 사화와 훈구·사림 세력간에 계속된 정쟁으로 인한 중앙 정계의 혼란, 사림 세력이 득세한 선조 즉위 이후 격화된 당쟁 등으로 정치의 정상적인 운영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사가들의 판단이 이미 있었다. 독자가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은 이 같은 내용이 없었지만 나중에 드라마나 TV 역사 프로그램, 역사 소설, 역사 해설서 등을 통해 알게 되었던 사실들로 미루어 이미 국력이 쇠약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이익을 앞세운 정책에만 몰두했다는 것을 사가들은 짚어내고 있다.

 


 

이는 군사적으로도 조선 초기에 설치된 국방 체제가 붕괴되어 외침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으로 군국기무를 장악하는 '비변사'라는 합의 기관을 설치했으나, 이것 또한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전쟁 대비를 주장하는 학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율곡 이이는 남왜북호(南倭北胡)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하여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 재정의 허약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는 점점 해이해지고 문약(文弱)에 빠져 근본적인 국가 방책이 확립되지 못한 실정이었다고 한다.

이즈음 일본은 앞서 언급한 대로 격변하고 있었다. 새로운 형세가 전개되고 있었다. 15세기 후반 일본에는 유럽 상인들이 들어와 신흥 상업 도시가 발전되어 종래의 봉건적인 지배 형태가 위협받기 시작하였다. 마침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일,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국내 통일에 성공한 도요토미는 오랜 기간의 싸움에서 얻은 제후들의 강력한 무력을 해외로 방출시켜, 국내의 통일과 안전을 도모하고 신흥 세력을 억제하려는 대륙 침략의 망상에 빠지게 되었다고 분석하는 사학자들도 많다.

이 소설 『칼을 품고 슬퍼하다(抱劒悲)』는 사명대사의 어린 시절, 천재 소년으로 불리던 응규의 첫사랑 이야기로 시작한다. 첫사랑 아랑과의 가슴 뛰는 사랑도 잠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랑과 어릴 때 잃은 형제, 그리고 부모의 죽음까지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사명은 승려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을 짝사랑하던 미옥을 끝내 뒤로한 채. 조선은 이미 유학을 숭상하는 나라였다. 그런 조선에서 승려의 길로 들어선 사명은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불교의 과거시험이라 할 수 있는 승과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한다. 그러나 승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그의 학문의 깊이를 알아본 사대부들과 시문을 나누고 우정을 나눌 뿐.

 


 

그러던 중 임진왜란의 거친 물살이 조선을 덮친다.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으로 눈을 돌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왜군은 잔인하게 미쳐 날뛰었다. 값으로 매겨져 왜군의 수익이 될, 코가 잘린 백성의 시신이 산을 이루고, 노예상들에게 팔기 위해 끌고 간 어린아이와 여인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곡식은 물론이거니와 서책들마저도 훑어갈 정도로 조선의 산하는 왜군들에 의해 피폐해져 갔다. 사명은 조국의 현실에 더이상 눈 감고 있을 수 없었다. 승군 대장으로 떨쳐 일어나 왜군과 맞섰다.

승장(僧將)으로서의 사명은 유학을 신봉하는 조선 사관들이 기록해 놓은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전쟁 영웅이었다.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의 목을 움츠러들게 한 “그대 목이 조선의 보배”라는 일갈처럼 사명의 활약상은 그야말로 종횡무진 눈부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 어떤 전투의 그 어떤 승리보다 참으로 값진 것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 대한 사명의 측은지심이었다. 측은지심이란 맹자의 사람이 가져야 할 4가지 마음 중 하나로 불교로 보면 '자비'와 같은 마음이다.

오직 자신의 권세만을 누리려는 조선의 권력자들이 외면해 온 조선인 포로들을 위해 사명은 거침없이 적의 소굴로 들어간다. 일본의 많은 적들이 사명에게 글 한 줄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사명의 가르침을 받으려 머리를 조아렸다고 소설을 통해 저자는 강조한다. 사명은 무도한 일본의 적들에게 결국 문(文)이야말로 무(武)를 이기는 진리임을 설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리고 끝내 일천오백 명에 달하는 조선 백성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이상훈 작가의 결론이다. 사명대사는 살아 있는 부처에 다름 아니라는 것. 임진왜란에는 이순신만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영웅도 존재했으며,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에겐 사명이 곧 살아 있는 부처님이었다는 것 말이다. 저자 이상훈은 고향이 같아서 사명대사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명대사의 국민 사랑과 나라 사랑 정신을 존경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이에 따라 집필되었다는 것은 책을 읽은 독자들은 비로소 인지하게 된다.

 


 

사명은 1605년 3월 27일 일본을 떠났다. 조선인 포로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도쿠가와 막부에서 제공한 범선 50척에 나누어 타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고향도, 부모도 보지 못한 채 왜군의 땅에서 노예처럼 살며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사명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사명을 살아 있는 부처라며 존경했고, 사명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현해탄의 검푸른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p.426)

 

저자 : 이상훈

 

경남 밀양출생으로 마산고와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KBS 공채 피디로 방송에 입문, SBS 개국에 참여해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채널A 제작본부장으로 채널A 개국을 진두지휘했다. 그 후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글을 발표했다. 일찍이 방송계의 전설적인 스타 피디로 알려졌으며, 방송프로그램 연출과 대본을 직접 집필해 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증받았다. 한국방송대상, 한국프로듀서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보건복지부 장관상, 상록회 대상,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 류주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첫 에세이집 『고향생각』이 2십만 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이어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리세요』,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 살고 싶다』, 『유머로 시작하라』 등의 책을 출간해 반향을 일으켰다. 2014년 첫 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국민적인 관심 속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한복 입은 남자』는 현재 미국 메이저 OTT 회사에서 글로벌 콘텐츠로 드라마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 백제의 의자왕과 일본 여자 천황인 제명천황과의 사랑과 일본 탄생의 미스터리를 추적한 두 번째 소설 『제명공주』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 번째 소설 『김의 나라』는 역사소설의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일컬어지는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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