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하루가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이정영 지음 / 북스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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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냥 그런 하루가 있을 수도 있는 거지』는 저자 이정영의 첫 번째 에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설픔보다는 원숙하고 농익은 감성이 돋보인다. 첫 번째 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 표현과 스토리텔링을 입혀 주제를 이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한다. 저자는 책을 처음 펴냈지만 이미 인스타에서는 검증된 작가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서처럼 '계절'에 집중해 왔다. 우리 삶이 이어지듯 계절은 순환한다. 우리 삶과 계절이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우주의 섭리로서 생각한다면 한 가지다. 이 에세이 속의 모든 이야기는 ‘계절’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 책 한 권을 '계절'로 채우기는 벅찰 것 같은데 저자는 아무렇지 않게 써냈다. 그것도 글쓰기에 대한 꾸준함과 탁월한 솜씨는 삶과 계절처럼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한 가지다. 문학과 감성이 그렇듯이. 요즘 문학, 특히 소설에서는 판타지나 SF가 대세라고 한다. 큰 서점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늘 판타지 소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학의 세계적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독자는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SF시대가 반갑지만은 않다. 아직 아날로그 감성에 훨씬 매력을 느끼고, 여유와 그리움이 묻어 있는 글을 좋아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독자의 취향을 한껏 맞춰 높여준다. 저자는 「그리움이 소생하는 계절」이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성격을 밝힌다. "사람의 성격은 자신이 태어났을 시기의 계절과 닮았다는 말이 있다. (···) 포근한 기류 속에서 소생이라는 단어와 함께 세상에 기를 펴는 데 한창인 4월. 따스한 봄의 성정을 물려받은 나"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생명은 우리가 살아온 삶이 기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나는 그것을 다른 언어로 그리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움은 마치 기억 속에 잔존하는 대상을 여전히 살아 숨 쉴 수 있게 해주고, 내 마음속 한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과도 같게끔 느껴진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외향적 스타일의 사람은 아닌 듯하다. 앞서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고, 어떤 일을 앞장서서 좌중을 리드하는 것도 본래의 성격에 없는 듯하다. 그렇게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 대개 그렇듯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몰입하거나 집중하는 데는 대단한 열정을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 유형의 판단을 해보지 않아도 저자가 어떤 사람일 것이다라는 추측은 쉽다. 그의 글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나 문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솔직한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은유나 강렬한 대조보다는 서서히 시간을 두고 모습을 드러내고, 오랜 시간 들여 갈고 다듬는 자연을 닮아서일까? 누군가 저자에게 흙 내음이 베인 토마토의 겉껍질 같은 향이 난다고 말한 적이 있나 보다. 누구나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고, 누구나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에 대한 비유는 분명 칭찬하는 말일 듯하다. 듣는 이로 부끄러웠다고 하니까. 그 지인이 "옛정이 떠오르는 따스함"이라고 했단다. 그 말을 전하면서 정답게 지내던 한때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난다고 저자는 적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상한 게 아니고 그리운 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사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면 저자는 "여유를 잃어가는 세상 속에서도 타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완벽히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이타적이기를 늘 노력하지만), 따뜻함을 지향하며 그가 지닌 온기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성격과 계절이 닮았다고 하는 말에 설득력을 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인스타그램에서 계절을 향한 자신의 시선과 진솔한 감정을 기록해 오면서 인기를 한몸에 받은 것 같다. 독자로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작가라서 그의 인스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 에세이에 쓰인 그의 글이 인스타에서도 쓰인 소재나 주제가 거의 같을 것이란 생각에서 감히 그의 인스타 팬들은 계절의 감성과 그리움의 향수를 좋아하는 팬들일 것이라고 독자는 추측한다.

 


 

이 책은 저자가 좋아하는 '계절'에 따라 나뉘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우리가 말하는 순서는 의미가 없다. 순환하는 것이니 먼저나 나중이 없이 일정한 주기를 갖고 영원히 순환한다. 그 중의 우리 삶 속에서 변화를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사계절'이다. 어떤 계절이 맨 먼저 나오느냐는 따질 필요도 없다. 책이니까 맨 처음 나오는 장(章)이 있고 마지막에 나오는 장이 있을 뿐이다. 할 수 없이 '첫 번째 계절', '두 번째 계절' 식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첫 번째 계절에 나오는 「마른 잎에 마음을 담은 하루」란 제목을 보고서야 가을이라는 계절을 짐작한다. '마른 잎' 때문이다. 이때의 마른 잎은 '가을'의 은유가 될 수 있다. 사실 마른 잎은 그 자체의 뉘앙스가 낙엽이 되고, 겨울에 접어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글 「망원동」은 서울의 한 동네 이름이다. 아마 저자가 사는 동네일 듯하다. 그 마을에 이모와 함께 산다. 김장 김치와 감자탕을 나눠 주시던 ‘망원동’ 이모님, 그걸 받기만 하자니 머쓱하여 고등어 몇 마리와 함께 귀가하던 지난 겨울날. 이 에세이 첫 번째 글은 "2021년 10월 17일. 달력에 '이사하는 날'이라고 적혀 있다. 생각해 보니 망원동으로 이사를 온 지도 일 년이 훌쩍 지났다. 낡고 오래된 건물, 그 옥상 한가운데 놓인 작은 옥탑방." 무심한 듯 적어내려 가며 독자들에게 집의 현황과 저자의 현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어나는 사건도 없다. 그저 이모의 도움으로 따뜻한 음식을 가져다 주고 김장을 담그면 김치 몇 포기 건네 주기도 하는 소소한 생활의 정이 담긴 이야기다. 감사에 보답하려고 고등어 몇 마리 사서 드리니 옛날 이모들이 그렇듯 "다음부터 이런 거 사들고 오지 말라"며 등짝 몇 대 때린다.

이처럼 저자는 뭐든 지나간 시절들이 좋았다. 현재를 깊이 있게 보내며 어제의 순간들을 흐뭇하게 회상하고 싶다고 말한다.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낡아 가는 정취가 가득한 이곳에서 소박한 온정을 베푸는 일을 선물처럼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풍족하진 못하더라도 풍부하게 채워진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이면 누가 뭐래도 '낙엽'이 상징성을 띤다. 낙엽은 나뭇가지에 붙어 봄과 여름 내내 인간에게는 그림자를 드리워 시원함을 선물하고 나무에게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 할일을 다한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마지막 온힘을 다해 자신을 한껏 칭찬하듯 붉은색, 노란색 등 단풍으로 치장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을에 받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때쯤이면 해가 저물면서 이른 추위가 찾아온다. 저자는 두꺼워져 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니 집에 혼자 있을 겨울이가 떠오른다. 저자는 잡다한 생각을 이만 집어넣기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퇴근 시간이라 승객들로 북적이는 이 작은 공간 한가운데서 손잡이 하나를 붙잡고 창밖을 바라본다. 하늘에 남아 있던 빛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져 간다. 도로 위해 즐비한 자동차들은 이리저리 움직이질 못하는데 가을 하늘을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내일을 맞이하려 한다. 고양이의 하루도 이런 느낌으로 흘러가려나. 녀석은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현관문을 열고 돌아가면 평소처럼 왜 이제 돌아왔냐는 잔소리를 건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겨울이는 고양이다.

누구에게나 일상이듯 차분한 분위기에 저자의 마음을 따라나서기 쉽다. 그렇게 따라나선 길에서 우리는 따듯한 햇살에 미소가 스르륵 번지기도 하고, 어떤 날의 공허한 공기에 헛헛함을 느끼기도 한다. 계절을 보내다 보면, 오늘의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분위기와 풍경을 두 눈에 담으려 노력하는 사람도 보이고, 지나간 계절을 향해 내뱉는 아쉬운 탄성도 이따금 들린다. 하나의 계절이 홀연히 모습을 감춰도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이 계절이 끝없이 돌고 돌아 다시 우리 곁을 찾아온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오늘의 만남과 작별이 있기에 내일의 기대와 함께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나간 하루에 대한 아쉬움 대신 지금의 이 계절의 움직임을 오롯이 담아 저마다의 계절이 전하는 고요하고도 덤덤한 위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읽힌다.

 


 

덧붙여 '가랑눈'이 내리는 날 밤, 저자의 단상(斷想)을 하나 소개한다. 가지에서부터 멀어지며 흩날리던 그 작은 눈송이가 뺨에 닿자 곧바로 녹아 흘러내린다. 눈송이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계절의 끝과 시작이 공존한 터라 추위는 많이 사그라들었음을 느끼는 날 밤이다. 어쩌면 그때 바라본 눈이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일 수도 있겠지 싶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비중이 이전보단 많아졌다는 걸 체감한다.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 대던 날들 속의 고통스러운 감촉도 이제는 적당히 무뎌졌다. 겨울이 지나간다. 머지않아 꽃이 개화하겠고, 거리에는 봄의 생기를 잔뜩 머금은 새 생명이 피어오를 것 같다. 나는 또 어떤 새로운 마음을 품어 보게 될까. 겨울을 가장 아끼는 만큼 보내 주는 데에도 아쉬움이 크지만, 새롭게 할 일을 찾아 나서기 위해선 또 한 번의 계절을 맞이하는 게 옳은 거라 여기기로 했다.

나는 그래도 머물러 있기보다 나아가는 방식을 좋아해 왔다. 배움을 토대로 살아가는 삶은 늘 내게 원동이었으니,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러한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려 한다. 항상 새해가 밝으면 친구들과 올해도 열심히 해 보자는 말을 해 오곤 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거다. 모두가 한때와 같이 가까운 거리에서 지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제라도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유대가 돈독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얼마든지 내 할 일에 묵묵히 집중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새롭게 주어지는 사계를 또다시 용기 있게 관통해 나갈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무엇에서 위로를 얻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에게서 얻는다고 대답하려 한다.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절대로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지만, 그 생각이 앞으로도 변함없으면 좋겠다. 생을 다할 때까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p.115~116)

 


 

저자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대해 먼저 나서서 이끌고 해내기보다는, 그 이면에서 티 나지 않게 활약하는 걸 선호했다고 봄의 길목에서 다시 한 번 고백한다. 큰일을 하거나 주목을 받는 데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는 말도 한다. 대신 작을 일들에 초첨을 두고 고요함 등에 귀를 기울이는 건 한결같이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름 없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하던 것. 그것은 저자가 유년부터 지금까지 키위 혼 다정한 꿈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마니또'를 좋아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누군가의 주변을 알 듯 말 듯 맴돌며 언제나 지켜보고 도울 수 있다는 게 저자에게는 즐거움이었던 듯하다. 사물함 속에 몰래 간식거리들을 넣어 주거나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미리 챙겨 주기도 했다고 한다. 가끔은 덕분에 즐거웠고, 내일 또 만나자는 말을 편지지 대신 알림장에 적어 두고는 그 페이지를 찢어서 가방 속에 몰래 넣기도 했었다. 저자의 선한 성격,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 나온다.

성격이란 게 한 번 굳어지면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저자는 오늘까지도 조금 먼발치에서 누군가를 챙겨 주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때처럼 한 사람만을 위해 몰래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미숙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챙기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다. "모두가 잘사는 것의 정답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정답이라고 믿는 구석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굳게 믿고 있다.

 

저자 : 이정영

 

남들보다 잊는 속도가 빠른 사람. 그래서 그날의 세세한 감정과 시선을 기록하는 사람.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지만 곧 다가올 내일의 감정을 기대하는 사람.

앞으로도 많은 것을 품고 흘려보내며,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사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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