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죽음을 안전가옥 쇼-트 21
유재영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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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개방과 광장의 시대를 지나 속도외 밀실의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개방적이고 열렸던 마음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세상으로 급격히 옮겨가는 듯하다. 개인 사생활 보호의 권리 아래에서 은밀한 범죄는 더 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화 시대는 범죄자를 공권력으로 구속하거나 처벌하는 일을 국가가 대신해줬다. 그러나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오면서 개인의 사생활 보호의 명분 아래에서는 성범죄 등 은밀한 범죄는 더 늘어만 간다. 가상공간으로 숨어들면 잡는 데도 힘들고, 잡는다 해도 피해자의 원상 복구는커녕 제 2, 제 3의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은밀한 성범죄는 대체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르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응징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렵다.

우리는 욕망과 사랑이 얽혀 있는 범죄를 뉴스에서 자주 본다. 특히 성범죄는 더 자주 오르내리고 이젠 디지털 성범죄가 이슈가 되는 것 같다. 사랑과 욕망이 얽힌 이 책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도 낯설지 않다. 상대의 허락 없이 욕구를 앞세우다 상대를 해치는 사람도 있고, 결혼했으면서도 여러 애인을 한꺼번에 만나다 결국 대가를 치른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인연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칼을 겨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관계에 깊이 매인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대를 살리려 한다. 그리하여 『당신에게 죽음을』의 주인공인 오은수는 묻는다. 고통을 자초하고 죽음을 불사하려는 마음이, 사랑이냐고.

 


 

이 소설 작품 『당신에게 죽음을』은 주인공 설희와 오은수 또한 법이 죄인을 다스릴 것이라 기대하지 않기에, 자신의 행복과 평안을 빼앗은 자들에게 합당한 죗값을 물리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먹는다. 두뇌 싸움은 물론이고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는 두 주인공은 피해자 입장의 여성에게도 자기를 지키고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 준다.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에는 충분한 설정이라고 본다.

저자 유재영은 사랑과 욕망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파괴적인 행위들에 주목한다. 불법 촬영, 성추행, 외도, 가정 폭력, ‘왜 안 만나 줘’ 범죄. 피해자의 고통과 대중의 인식에 비해 턱없이 낮은 형량으로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안들이다. 눈 밝은 이야기꾼 유재영은 사람들의 서러움이 뭉쳐 있는 곳을 본다. 사연을 깊이 듣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구성하면서, 서러움을 통쾌하게 풀어 주는 상상력을 발휘해 현실 너머를 모색한다.

저자에 따르면 결혼, 사랑, 살인이 뒤얽혀 있는 도메스틱 스릴러인 이 소설은 여러 번의 개작을 거친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바뀌었고, 스릴러 장르에 걸맞는 긴장감이 더해졌다. 신중함과 과감함을 겸비한 주인공들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종잡기 어려운 행보를 이어 간다. 치밀하게 묘사된 장소들은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고 뚜렷한 존재 이유를 드러내며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은 요소들이 종종 복선으로 작용하니, 정교한 짜임새를 선호한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사서인 설희와 대학 교수 이수혁은 연인 사이다. 이수혁이 자신의 저서 『악인과 광인』을 바탕으로 한 8회 차 강연을 설희가 일하는 도서관에서 진행하게 된 것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해가 바뀌도록 이어졌던 두 사람의 관계는 이수혁이 숨기고 있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 직후 이수혁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기고, 이수혁이 감추고 있던 비밀 속의 인물들이 하나둘 설희 앞에 나타난다. 악인인지 광인인지 모를 그들이 흩뿌리는 단서를 종합해 본 설희는 이수혁이 얽힌 사건의 경과가 경찰 조사 결과와는 다를 것임을 직감하고 직접 추적에 나선다.

시작점에서는 로맨스였는데, 어느덧 스릴러로 변해 있다. 『당신에게 죽음을』은 모처럼 찾아온 사랑에 잠겨 있던 주인공 설희의 눈앞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내민다. 이 전환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상반된 분위기의 이야기들을 능란하게 연결하는 작가의 솜씨 덕분이기도 하고, 로맨스와 스릴러가 그 속성상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장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 뒷 부분에 있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저자 유재영은 『당신에게 죽음을』을 구상할 당시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젠더 권력을 등에 업고 악행을 벌이는 이들, 악인이라는 딱지를 개의치 않고 단죄에 나선 이들이 얽힌 짜릿한 스릴러가 탄생했다. 현실 속 설희들이 들었던 괴로운 판결문과 수많은 오은수들이 겪었던 무심한 폭력이 세상 곳곳에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어 있었던 덕분이다. 개인의 경험이 누적을 거쳐 공감을 사고 현상이 되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는 힘이 있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살아남을, 여기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힘 말이다. 저자는 출판사 안전가옥과 만나 출판을 의논하면서 '장르적 쾌감이 살아 있는 이야기'로 더 강렬한 느낌으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책 속 인물 오은수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고통을 감수하겠다’도 ‘죽음을 불사하겠다’도 ‘함부로 대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상식 같은 이야기지만 실생활에서는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각종 성범죄, 데이트 폭력 및 가정 폭력 관련 통계는 하나같이 가해자의 증가 추세를 알린다. 욕망과 애정을 핑계로 삼아 타인의 삶을 망가뜨린 가해자들은 응분의 대가를 치를까?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대체로 그렇지 않다.

설희는 언젠가 들었던 판결문을 기억한다. ‘피고가 피해자 측과 원만히 합의에 이르진 못했으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초범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오은수는 그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는 태도가 거짓이라고 단언한다. 서로의 문제 해결 방식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설희와 오은수는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한다. 법정은 인과응보가 구현되는 곳이 아니다. 죽어도 싼 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죽지 않는다. 뻔뻔하게 선처를 구한 뒤 풀려나 짓던 죄를 이어 짓는다.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해서 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설희와 오은수가 미술관에서 본 그림이 힌트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구약성서 속 인물인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가 살던 마을을 짓밟고 그의 연인을 살해했다. 유디트는 투항하는 척하며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해 그의 목을 벤다. 17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렸는데,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재판에 참석해야 했던 개인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르테미시아는 그림으로 자신의 상처를, 분노를, 그럼에도 꺾이지 않은 삶에 대한 의지를 기록했다.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저작권법 위반 없이 사용했습니다. [사진 출처=두산백과]

 

설희는 전시장에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를 유심히 바라본다. 설희에게는 유디트에 이입할 만한 경험이 있다. 오은수는 아르테미시아를 주인공으로 삼은 극을 무대에 올린다. 오은수가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이 아르테미시아의 인생과 겹치기 때문이다. 기록된 경험은 의미를 갖는다.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북돋울 수 있다. 기록된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또한 유의미하다. 아르테미시아가 유디트를 그렸다는 사실만큼이나,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에 주목하는 눈길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사회는 비록 오랜 세월이 걸릴지라도 사람들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여성 거장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미술사에서 한동안 사라졌다가 최근 재조명되는 화가이다. 독자도 미술 관련 최근의 책들에서 젠틸레스키와 그의 작품을 유독 많이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작품은 물론이고 〈다나에〉, 〈비너스와 큐피드〉 같은 요염하고 관능적인 그림으로 당대 이름을 날렸지만 사후 아버지의 이름 아래 미술사에서 빠르게 사라졌다고 알려졌다. 화가인 아버지는 딸의 그림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친구에게 성폭행 당한 딸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기는커녕 오히려 화가로서의 흔적을 없애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1593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젠틸레스키는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로부터 그림을 배우며 조수로 일했던 그는 10대에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다. 카라바조의 어두운 색조와 극적인 빛의 효과에 영향을 받았으며, 여성 화가의 일반적 규율을 깨고 성경과 신화의 주인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며 화려한 성공을 거둔 서양 역사상 최초의 위대한 여성 화가가 되었다.

 


 

젠틸레스키의 생애는 이 책 『당신에게 죽음을』에서 주제와 소재로 자주 인용되기에 그의 생애와 작품을 좀 더 소개해본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곳곳을 여행하며 남성들과 동등한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일찌감치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때 아버지의 동료 화가이자 그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길고 고통스러운 재판을 치러야 했고, 이 과정에서 느꼈던 오명과 치욕감은 이후 그의 작업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젠틸레스키가 특히 즐겨 그린 주제는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와 적진의 막사에서 동침한 후 그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을 구한 유대인 여성 유디트의 이야기였다. 이 주제는 카라바조의 추종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는데,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확연히 달랐다. 그의 유디트는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냉철하고 결단력 있는 용맹한 여인이며, 근육질의 에너지가 넘치는 여전사로 이전의 서양 미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력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젠틸레스키는 당시 여성 화가가 그리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인식되었던 종교화와 역사화를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이다. 그는 왕후귀족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고,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으며 몇몇 작품에서는 카라바조를 능가할 만한 재능을 펼쳐보였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1656년경 나폴리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이후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미술사적 의미보다는 악명에 주목하여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근래에 들어서야 그의 작품이 재발견되어 미술사적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

 


 

“권선징악과 인과응보 중 어느 쪽이죠?”

설희가 물었다.

“권선징악인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선과 악의 개념이 분명하진 않으니까. 시대의 윤리에 따라 바뀌잖아요.”

설희는 전날 이수혁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일은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마을 사람들 중엔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었을 테니까요. 저는 그보단 개인적인 원한이 더 끌리던데.”

설희가 말했다.

“유디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대요. 마을에서 희생된 사람 중 한 명이었죠.”

“그럼 이해가 되네요. 머리를 자르고도 남죠.”(pp.83~84)

 

저자 : 유재영

 

소설가. 혼자 쓰고 함께 읽는다. 지은 책으로 《하바롭스크의 밤》, 《우리가 주울 수 있는 모든 것》 , 《한 줄도 좋다, SF영화: 이 우주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 《도메인》 , 《당신에게 죽음을》 이 있다. 1981년 서울 출생.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SF 영화는 [우뢰매], 그 뒤 텔레비전으로 [토탈 리콜]을 보고 화성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소설을 썼다. 소설집 『하바롭스크의 밤』, 『우리가 주울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으며, 네이버 포스트 '자정의 매표소'를 운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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