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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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특히 단편소설은 첫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물론 독자들, 심지어 평론가들도 한목소리다. 그게 정설이다고 한다. '소설 작법'에도 나와 있는 중요한 말이라고 한다. 독자도 그 말은 듣고 읽은 바가 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소설 작법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 준 책이 있다고 해서 독자로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에도 그 말이 쓰여 있었다. 이유도 "독자의 시선을 책에 잡아두기 위해서"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그래서 소설의 첫 문장은 그 책의 절반이라고 과장된 표현을 하는 작가도 있다는 말도 덧붙여 쓰여 있었다. 그런데 누가 한 말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소설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읽은 책도 아닌데 굳이··· 하며 넘겼다. 그 말은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신화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책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을 읽으면서 또 그 생각이 떠올랐다. 문학상이든 신춘문예이든 심사위원들이 엄선해 예선과 결선 등 모든 작품을 읽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학상의 경우 추천작이 있다면 그 작품에 대해서도 심사위원이 모두 읽을 터다. 상을 주기 위한 심사위원들이 안 읽어보고 상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심사평도 쓰지 않은가. 이 책은 '이효석 문학상' 올해 수상자들의 작품집이다. 이 작품들에서도 이 소설 작법이 적용이 됐을까? 첫 문장에 주는 점수는 반영이 됐을까, 안 됐을까?

쓸데없는 궁금증이긴 하다. 심사위원들이 결정할 문제이지 독자가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효석 문학상은 이효석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해마다 탁월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들을 시상하여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지난 2000년 제정되었다고 한다. 엄격한 심사와 공정한 문학상 운영을 위해 문인 단체와 현장에서 활동하는 문인으로 문학상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심사와 시상과정 전체를 공개하고 있다고 선정과 시상 주체인 〈이효석문학재단〉은 밝히고 있다. 첫 회(2000) 대상 이순원의 「아비의 잠」부터 성석제, 윤대녕, 정이현 등 이름만 들어도 독자들이 잘 아는 기라성 같은 스타 작가들을 배출했다.

 


 

올해 대상 수상작은 안보윤 작가의 「애도의 방식」이다. 이 소설 작품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란하다. 나는 소란한 것을 좋아하고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무슨 뜻인지 읽는 즉시 알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서 그렇다. 이 문장은 심사위원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이 됐을까?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말이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소란한 곳을 좋아하지만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은 '소란한 곳을 좋아한다'는 말을 중복해 쓴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도 중복이 아닌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있다. 다음 문장에서 말의 의미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이미 소란한 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소란해지기 시작한 곳에서는 대부분 내가 그 중심에 있다." 이미 소란해진 곳은 '나'가 그곳에 뒤늦게 갔고, 소란해지기 시작한 곳은 내가 소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성격이나 대인 관계의 성향을 드러내는 말이다. 다음 문장은 명확한 뜻이 전달된다. "나를 놀리고 조롱하고 멸시하느라 소란해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건 지겹다." 쉽게 대인 기피 성향의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이다.

지금 '나'가 있는 곳은 '미도파 카운터'이고 나에게 최적의 공간이다. 미도파는 성동터미널에 있는 유일한 찻집이다. 출입문에는 미도파, 라고만 쓰여 있는데 어째서인지 다들 미도파 찻집이라고 부른다. 미도파는 이곳의 유일한 찻집일 뿐 아니라 유일한 식당이기도 하다. 터미널은 작고 납작한 단층 건물이라 매표소와 화장실, 미도판만으로 내부가 꽉 찬다. 이곳은 '나'가 1년째 일하고 있는 직장이다. 원래는 고등학교를 떠날 작정이었으나 돈이 없었으므로 수도권보다는 바닷가를 노렸기 때문이라고 작가 안보윤은 '나'의 기억속을 돌아다니며 이유를 찾았다. "수험 준비를 하는 내내 선생님들이 니들 그렇게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배 타고 참치 잡으로 다니게 된다. 어디 섬에 처박혀서 시금치 농사나 짓게 된다. 고 말한 데서 힌트를 얻었다. 이곳을 떠나 누구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지역에서 혼자 살고 싶었다."(p.11)

 


 

'나'는 그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해 가장 비싼 표를 구매했다. 차 시간을 기다리느라 미도파 찻집에 들어갔고, 붓펜으로 직접 써넣은 정갈한 한글이 뜻 모를 한자어, 그러니까 〈求人, 所定의 給與〉 같은 글자들과 뒤섞여 쓰인 구인광고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일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손님 우산을 훔쳐 쓰고 폐점한 찻집을 나섰다. 폐점할 때까지 우산을 두고 간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스스로 우산을 훔쳤다고 생각할까. 주인이 나타나더라도 돌려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훔친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가 그쳤지만 멀찍이 떨어진 곳까지 우산을 쓰고 걸었다. 들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우산을 접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우산과 맞잡고 걸었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미도파는 마늘 냄새로 가득하다. 마늘 냄새 사이로 한 여자가 들어온다. 믹스 커피를 주문해 마시고 난 후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한다. 구운 파인애플을 도막도막 잘라놓고, 감자를 으깨어 섞어놓고도 먹지 않는다. 그 여자는 승규 엄마다. 주인공인 나(동주), 승규, 그리고 승규 엄마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승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인근 공사장 폐건물에서 추락 사고로 숨졌다. 사고 순간 동주가 봤지만 침묵했다. 심지어 119가 왔을 때 친구라면 동승하라고 말해도 친구가 아니라며 동승하지 않았다. 승규 엄마가 얘기를 들려주라고 간절하게 이야기했을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승규의 학폭 행위 피해자였다.

미도파는 폐건물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은 승규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유일한 목격자인 ‘나’가 모든 의심 어린 질문에 응답하지 않기 위해 도달한 침묵과 멈춤의 공간이다. ‘미도파’라는 공간 안에서 ‘나’는 옥상 끝에 서 있던 그날의 순간으로 끝없이 회귀해 다른 결말의 가능성을 상상해보며 결코 완료될 수 없는 윤리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으로, ‘승규의 엄마’는 미도파에서 일하는 ‘나’를 찾아와 으깨진 함박스테이크를 한 번 더 으깨놓는 것으로, 각자 자신만의 ‘애도’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처럼 「애도의 방식」은 지금까지 학교폭력을 다룬 보통의 서사(사적인 사연이나 복수의 서사)와 달리 폭력의 굴레와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강요된 질문에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고자 노력한 소설이다. 또한 “단순히 소재적인 강렬함이 아니라, 그것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는 놀라운 조형적 성취로써 격식 있게 극복하며 소설적 주제와 동시대적인 메시지를 동시에 달성”(심사평 중에서)하고 있다. 그럼으로 이 소설이 가진 진정한 가치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지한 삶의 태도를 묻고 답할 수 있는 ‘멈춤의 순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성에 짓눌려 있는 폭력의 굴레와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강요된 질문에 대하여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고자 노력한 소설이다. 단순히 소재적인 강렬함이 아니라 그것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는 놀라운 조형적 성취가 놀랍다."고 심사위원 모두의 최고 평가를 자아냈다.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우붓이라는 이국적 장소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취향의 우월성을 유지하려는 주인공 ‘나’의 심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취향의 계급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 시대 고급문화에 대한 허영과 자존감 사이에 놓인 개인 심리의 미묘한 저울질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병운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성적 소수자인 ‘진무 삼촌’의 생존 사실을 알고서 그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 ‘나’와 친구 ‘장희’의 여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퀴어 서사에 대한 관성적인 이야기 문법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세대의 퀴어로서의 삶을 새롭게 교차하는 더 넓은 의미에서의 교차성을 보여준다.

박인성 문학평론가는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취향의 계급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우리 시대 고급문화에 대한 허영과 자존감 사이에 놓인 개인 심리의 미묘한 저울질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문학을 하나의 취향으로서 소비하는 소설 독자라면 섬찟할 정도로 이 소설의 신랄함은 매력적이다."고 평가했다.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은 어느 것도 자신의 혈족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 ‘쓰레기 호더’ 할머니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할머니의 집,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애증 섞인 시선과 신랄한 서술만으로도 독자를 압도하는 강렬한 작품이다. 사회적인 시선에서 가치 없는 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할머니의 욕망과, 상속이라는 이름의 부의 대물림 혹은 끈질기게 무언가를 영속하길 바라는 손녀의 욕망 사이의 치명적인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신주희의 「작은 방주들」은 암호화폐 전자지갑 회사인 ‘더 코인 아크’에서 방주를 뜻하는 ‘아크(ark)’의 홍보를 맡았던 친구 ‘진주’가 실종되고, 주인공 ‘나’ 역시 갑자기 무보직 대기 발령을 받으면서 사회로부터 실족하게 되는 이야기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우리 시대의 개인이 꿈꾸는 저마다의 방주라는 미약한 구원의 형태와 그 (불)가능성을 탐문해나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지혜의 「북명 너머에서」는 가장 클래식한 단편소설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가 북명백화점에서 일했던 시절을 반추하며, 그때의 애틋함의 기억을 복원해나가는 서술이 시대적인 분위기와 당대의 장소성과 맞물려 더욱 매력적으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2022년 제23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자인 김멜라의 자선작 「이응 이응」도 함께 실려 있다. 혼자서도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기계인 ‘이응’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실제적인 접촉(이를테면 뺨을 대거나, 포옹하거나, 반가운 마음에 상대를 안아서 들어 올리는)을 느끼고 싶은 주인공 ‘나’는 ‘우리의(we)의 포옹’이란 뜻의 위옹 클럽에 가입한다. 느슨한 S자 곡선을 그리는 것처럼 겉으로는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생장하는 인간관계의 친밀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심진경 문학평론가는 「자작나무 숲」에 대해 "어느 것도 자신의 혈족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 ‘쓰레기 호더’ 할머니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할머니의 집,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애증 섞인 시선과 신랄한 서술만으로도 이 소설의 읽는 재미는 보장된다."고 평가했으며, 소설가 정이현은 지혜의 「북명 너머에서」를 "단편소설 고유의 미학적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주인공이 과거 북명백화점에서 일하던 시절을 생생하게 복원하는 과정의 서술이 시대적인 분위기나 당대의 장소성과 맞물려 더욱 매력적으로 읽힌다."는 소감을 내놓았다.

제24회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애도의 방식」은 물론이고, 이 책에 함께 수록된 우수작품상 수상작들은 한껏 납작해지고 왜소해진 개인의 삶의 가능성을 다시금 부풀려서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동시에, 관성에 의해 떠밀려 가는 삶의 가운데에 멈추어 서서 상상하는 순간을 발견하게 한다.

 

여자가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한다. 구운 파인애플을 도막도막 잘라놓고 먹지 않는다. 노른자를 터뜨려 끼얹은 고깃덩어리를 죄다 으깨놓고 먹지 않는다. (……)

음식에다 이게 뭔 짓이야. 너 진짜 모르는 사람 맞지?

몰라요.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한다. 알 리가 없다. 이미 으깨진 것을 기어코 한 번 더 으깨놓는 사람의 마음 같은 건.(p.27~28)

안보윤 「애도의 방식」 중에서

 


 

저자 : 안보윤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문학상을, 단편소설 「완전한 사과」로 2021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소년7의 고백』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중편소설 『알마의 숲』, 장편소설 『밤의 행방』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등이 있다.

 

저자 : 강보라

소설가.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자 : 김병운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와 에세이집 『아무튼, 방콕』이 있다.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저자 : 김인숙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201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꼬리』 『소금을 꾸러 갔다』 『내가 붕어빵이 되고 싶은 이유』가 있고, 논문 「구상 시인의 생애와 왜관 낙동강」이 있다. 〈신라문학대상〉, 〈한국문학예술상〉, 〈농어촌문학상〉 대상, 〈경북작가상〉, 〈경상북도문학상〉, 〈석정촛불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경북문인협회 사무국장 및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 신주희

2012년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에 단편 「점심의 연애」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세월호 추모 공동 소설집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남북한 작가 공동 소설집 『국경을 넘는 그림자』 등에 작품을 수록했다. 소설집 『모서리의 탄생』을 냈다.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제21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자 : 지혜

201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앤솔로지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AnD Vol. 1』, 『N분의 1을 위하여』에 참여했다.

 

저자 : 김멜라

2014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 『적어도 두 번』, 『제 꿈 꾸세요』,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가 있다. 제 11회 문자문학상, 제12회·제13회·제14회 젊은작가상, 제23회 이호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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