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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 - 인물열전 편
이영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9월
평점 :
이 책 『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을 처음 펼치는 순간 독자의 마음은 어렸을 적으로 돌아갔다. 독자 초등학교 시절은 책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도서관도 많지 않은 시절이라 책은 '귀한 물건'이었다. 책 안에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눈에 띄는 책은 일단 펼쳐 보았다. 대체로 교과서 같은 책이 많았고, 특별한 책은 위인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배웠던 인물들의 전기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아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그나마 위인전을 많이 펴냈을 것으로 지금은 추정하고 있다. 그때는 교과서 이외의 책이라고는 〈전과〉나 〈수련장〉 정도의 학습 보조 역할의 책이 어린이들이 읽는 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엔 〈세계문학전집〉 50권짜리가 있었다. 아버지가 교사였기에 아마 할부로 들여놨을 것이다. 덕분에 독자는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우리 집에 와서 책을 읽다 가는 경우도 많았다.
독자 기억으로는 50권 중 1,2권은 그리스·로마 신화였고, 어린이용이다 보니 세계명작 중 동화에 가까운 소공녀와 작은아씨들도 있었다.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로빈스 크루소』였다. 여름 방학 중이었는데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해 점심도 거른 채 한 권을 끝까지 읽고서야 손에서 책을 놓았다. 스토리 자체가 모험적이고 '무인도' 생활 생존기여서 신비하고 환상적 모험 이야기였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읽었다. 어머니에게 꾸중 듣다 아버지에게 일러바쳐서 결국 아버지도 엄하게 말리셨다. "책을 읽다 건강을 해친다면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 뒤로 독자는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책 읽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말씀이어서라기보다 그만큼 재밌는 책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더 이상 책을 안 사 주실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을 펼치자마자 기억이 떠올라서 잠시 넉두리 같은 말 양해를 구한다.
그때 전집에도 링컨의 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노예해방)이라고 씌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전집에 『서유기』나 『에이브러함 링컨』은 있어도 우리 나라 위인은 없었다. 세계문학전집이어서 그랬을까? 어쩌면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위인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 『가장 쉬운 역사 첫걸음』은 역사서다. 역사에 대한 깊은 연구로 역사의 한 부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낸 책이 아니라 위인전처럼 16명의 국내외 위인들의 전기에 가깝다. 다만 역사서처럼 역사적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위인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세게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는지를 스토리텔링 식으로 기록했다.
'역사 속 위인 이야기'라는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취지에 "박제된 과거 사실들을 지식으로 채우기보다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들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역사 공부"라는 말이 이 책의 출간을 대신하는 충분한 설명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사는 대체적으로 건조하고 딱딱하게 기술된다. 아마 사실을 객관적 판단에 의해 정설로 굳어진 내용을 정확하게 기술해야 하기에 대체적으로 딱딱한 기술법이 필요해서일 것 같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 현재는 미래의 교훈"이라는 말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로서 가장 적절한 말일 터다. 삶은 언제나 힘들다.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를 차곡차곡 기술해 놓은 것이 역사다. 인간을 떠난 역사는 의미가 없으며 아무도 읽을 사람이 없다. 당연히 인간의 일을 기록해 놓은 것이 역사이다. 현재의 힘든 일을 과거의 일에서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해결법이 나온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로서 충분하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예측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 오늘 어떤 일을 해야할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역사에서 배운 현실 극복법을 이용하면 된다.
이 책은 과거의 일을 단순하게 열거한 '실록'으로서의 역사서는 아니라는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인물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당연히 저자 이영의 역사관부터 세계관, 역사 공부, 인물 연구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있어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하고, 그것은 우리 즉 인간을 위해 쓰임새가 있다. 결국 역사서는 올바른 기록으로 인류 발전에 큰 기여를 하는 책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이 책에도 약간의 결격 사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당초 기록이 미비하거나 고의로 언급하지 않은 사실도 있을 수 있으며, 당연히 정사에는 기록하지 못할 부분도 있다. 이런 사실은 역사 연구자의 몫이다. 역사관에 의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석도 논리적으로 혹은 자연스러운 감수성에 의해 합리적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스토리텔링의 역사 서술은 '정확'보다는 '합리적 감성'에 의해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저자 이영은 〈머리말〉을 통해 자신이 배운 역사학개론 수업 시간의 지식을 밝힌다. "역사는 경험 공간과 기대 지평의 융합이다."(p.5) 저자를 가르쳤던 독일의 역사학자 라이하르트 코젤렉의 말이라고 전한다. 이 말에 대해 저자는 "역사는 과거의 경험을 체화해서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라고. 교훈적 역사 스토리텔링 방식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역사가들이 저자의 이 같은 역사 인식을 어떻게 생각하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미래를 위한 역사 인식으로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독자는 동의한다. 이로 인해 저자는 역사 서술 방식이 What보다 How가 중요하다면 역사를 듣는 이도 What이 아닌 How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How로 듣는 방식이 '해석한다'고 할 수도 있다. 발화자나 기록자의 의도야 어찌 됐든 역사를 접하는 사람은 과거의 일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독자가 저자의 역사 해석관에 공감하는 이유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역사로부터의 끌어낸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인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을 사용했다고 밝힌다. 이뉴는 몰입도가 사건 중심보다 훨씬 높아서이다. 또 누구나 알 법한 16명의 인물들을 시대와 국가에 상관없이 선택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라 독자들이 16명의 인물들을 통해 지헤와 교훈과 관점을 배우는 데 집중하기를 바라고 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 저자의 한마디는 가슴속에 강렬하게 들어앉는다. "역사는 결코 방대한 지식의 양으로 누군가에게 자랑할 때 쓰이는 과시거리가 아닙니다. 역사적 지식을 많이 알고 있어도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말짱 도루묵인 걸요. 역사공부를 위한 첫걸음은 역사가 어떻게 내 사고와 삶을 윤택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러한 고민과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나만의 해석을 내리고 또 타인과 그 해석을 공유해 보는 것도 좋은 역사공부가 될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개성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흥미진진하고 스펙터클한 역사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게임보다 재미있고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한 역사 공부, 이 책이 지향하는 역사관이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오늘의 시대와 사회를 통찰하고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지향점이다. 이 책이 그 과제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최소 한 번에 한 사람씩이라도 완전히 죽 내리읽을 것을 먼저 읽어본 독자로서 권유한다. 한 번에 내리읽어야 한 인물의 생애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가늠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청처럼 띄엄띄엄 읽는다면 아무래도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머릿속에 각인시켜야 할 것들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스토리텔링 방식의 역사 서술을 채택했고, 오랫동안 기억을 높이기 위해 인물 중심의 기술 방법을 택한 것이다. 사건 중심이 되면 사건 자체에 몰입돼 인물이 왜 그 사건에 부딪치게 되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으며를 건너 뛴 채 업적만이 기억에 남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 책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모두 16명의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의 말대로 시대나 국적 구별 없이 열거했다. 저자의 말이 사실이고 진심이 담겼는지 독자들이 직접 읽으며 판단해보기를 권유한다. 첫 번째와 마지막에 실린 인물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독자가 기술된 내용을 토대로 짧게 살펴본다. 가장 먼저 소개된 인물은 우리 역사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소개되는 '광개토대왕'이다. 이 장(章)의 제목은 「그는 다른 정복군주와 어떻게 다른가?」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했다는(사실은 그의 아들 장수왕때가 고구려 영토가 가장 넓었다고 한다) 사실은 우리가 배운 바와 같다. 그는 왜 세력이 한참 확대되고 드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을 꾀하지 않았을까? 중국이 너무 강해서? 대왕의 나이가 너무 많아서? 원래의 목표를 다 이루었기 때문에? 아니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서? 동방예의지국이라서? 각종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광개토대왕을 너무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라고 설명한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고구려의 영토를 넓힌 것으로만 한정하여 생각한 데서 비롯된 편협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남의 나라나 이민족을 정벌하여 복종심키는 데만 급급한 여느 정복군주들과는 많이 달랐다. 광개토대왕의 전쟁과 업적, 그리고 그것이 아들 장수왕으로까지 이어지는 양상을 보면 '진정한 강대국'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특별한 국가관을 엿볼 수 있다."(p.13)
저자는 '특별한 국가관'을 전제로 이후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세부적으로 살핀다. 주변 고구려와 적으로 있었던 나라들, '연나라'와 '백제'이다. 그는 이미 연나라도, 백제도 전쟁을 통해 이미 승리를 거둔 후 완전히 고구려에 종속시키지 않고 전쟁의 재발 방지 목적의 최소한의 것만 취한 채 이전 자주국가로서의 지위를 그대로 두었다. 당초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구려의 무기도 꾸준히 개발해 주변 국가에서 이미 인정해 준 터다. 그렇다고 모든 정복국가를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여러 이민족에 둘러싸여 있는 고구려의 특성상 한쪽에 병력을 전력 투입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멀리 신라의 구원병 요청에 기마병 5만 명을 파견한다. 대단한 위세다. 기마병 5만이면 보병 50만에 맞먹는 병력이다. 후연과의 전쟁도 지난날 고구려가 연나라에 당한 치욕을 씻는 설욕전의 성격이었지 후연을 멸망시켜 복속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는 데 더 무게를 둔다. 저자는 여러 정황을 두루 살핀 뒤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영토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이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영토를 무한정 넓혀 유일무이의 국가가 되는 것보다 여러 국가들이 공존하는 국제세계의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강한 국가를 원했다."(p.26)
마지막 장에 우리도 '노예 해방'의 미국 대통령으로 잘 알고 있는 링컨이다. 독자가 앞서 어렸을 때 위인전으로 읽었다는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이다. 저자는 제목으로 「현실과 정의 사이, 고집스러운 양심의 선택」이라고 붙였다. 다른 장에서도 모두 달린 해시태그로는 #남북전쟁 #시빌워 #노예제도 #메리토드 #공화당 #남부연맹 #노예해방선언 #게티즈버그연설 #로버트리 #율리시스그랜트 #존윌크스부스 #수정헌법제13조 를 채택했다. 링컨에 대한 책과 영화 등 여러 차례 읽고 보아서 이미 해시태그만 보아도 링컨이 떠오를 만큼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위대한 대통령이다. 우리에게 위대하다는 것은 인권 차원의 노예해방 선언을 했기 때문이고 다른 해시태그 내용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이 독리한 지 채 100년도 안 된 신생국가로서 유럽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모색하는 처지였을 때이니만큼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썩 클 때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예 제도와 남북 전쟁은 사실 인과 관계도 없다. 다만 노예 해방을 말하는 링컨과 남부연합 기득권자들의 대립으로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 뿐이다. 남부 기득권자들은 대부분 대규모 농장주들이며 이들은 노예 없이 농장을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을 우려해 링컨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관련 저자 이영은 "노예 해방 선언으로 그 어떠한 형태의 노예제도도 부정했던 링컨은 정치적 소신과 남북전쟁의 명분을 달성하려면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실질적인 정책과 법이 통과되어야 했다. '노예'라는 개념 자체를 미국에서 허용할 수 없다며 링컨은 헌법 수정을 요구했다. 북부 연방에는 노예제도를 찬성하지만 남부연맹엔 붙지 않은 경계주들이 있었다. 경계주 출신의 의원들은 당연히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었고, 북부라고 해서 북부연방의 의회가 노예제 폐지에 합의를 도출한 것은 아니었다. 링컨은 온건파 정치인이었다. 링컨 개인적으로는 흑인들의 참정권도 보장하고 싶어 했지만 지나치게 과격한 정책을 밀고 나가다가는 노예제 폐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링컨은 반대파들을 설득하기 위해 점진적 노예제 폐지에만 집중했다. 링컨의 정치적 중재와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들의 끈질긴 투쟁 결과 1864년 4월 8일 헌법 수정안이 상원의회에서 통과되었고 1865년 1월 31일 하원의회에서도 통과되었다. 노예제에 관해 언급되어 있는 제13조를 수정하여 노예제 폐지를 미국인들이 가장 숭상하는 헌법에 명기하도록 한 것이다. "노예제도 또는 강제 노역 제도는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면 미국 또는 그 관할 하에 속하는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미국 수정헌법 제13조)
역사학자들은 백년전쟁을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한 전쟁이라고 평가한다. 중세시대 프랑스는 ‘프랑스인’이라는 민족의식이 약했는데 영국과 백 년간 싸우며 민족의식을 각성했다. 잔 다르크가 성녀로 활약하면서 프랑스인들은 스스로 신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공동체적 결속력을 다졌다. 잔 다르크 이전엔 경제권과 영토 빼앗기 싸움에 불과했던 귀족과 왕족들의 다툼이 그녀의 등장으로 ‘성전(聖戰)’으로 바뀌어 피지배층이라 할지라도 목숨 걸고 싸워야 할 명분이 생겼다. 잔 다르크 사후로도 샤를 7세의 프랑스가 계속 승기를 주도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잔 다르크가 많은 프랑스 영지들을 수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프랑스인들의 정신 속에 종교적 테두리로 감싼 민족의식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영지와 영토는 언제든 뺏겼다 빼앗겼다 할 수 있지만 뿌리 깊게 내린 정신적 무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잔 다르크가 만들어 놓은 정신적 밑거름이 있어기에 샤를 7세의 군대 개혁과 유능한 지휘관들의 전술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p.335)
- 「성녀로, 마녀로, 민족의 아이콘으로, 잔 다르크」 중에서
저자 : 이영
고려대학교에서 사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기 위해 블로그, 브런치에 다양한 글들을 업로드하고 있으며 현재 구독자가 20만 명이 넘는 ‘역사돋보기’ 채널을 운영 중이다. 역사는 오감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접 역사적 현장을 답사하기도 하며, 박제된 과거 사실들을 그저 지식으로 채우기보다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들을 역사 속에서 찾으려는 해석적 관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프로그래밍을 담당하였고 최근에는 영상 제작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 도전하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경계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