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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낙엽 ㅣ 푸른사상 소설선 50
김유경 지음 / 푸른사상 / 2023년 8월
평점 :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임을 내세워 레닌이 창설한 구소련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제풀에 쓰러졌다. 민주주의 중추 세력이었던 미국의 자본주의에 패배한 것이다. 특히 공산주의는 경제 혁명임을 감안한다면 구소련 붕괴는 경제 다툼에서 스러진 것이다. 자본주의 병폐에서 벗어나 공동생산, 공동분배를 앞세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아직 사회주의 체제의 나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 나머지 공산 세력은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 식으로 바꿔가고 있어서 살아남았다. 중국이 그렇고 쿠바, 러시아 등이 어정쩡한 경제·사회 체제로 바꾸면서 그나마 몰락은 면한 셈이다. 동유럽 국가 대부분은 이미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의 구소련 체제에서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로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러시아는 구소련의 중심국으로 경제체제 일부를 바꿨고 선거 역시 대통령제 국민 직접 선거제로 바꾸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서방 나토 가입을 목적으로 러시아로부터 완전 탈피하고 친 서방 정책을 선언하자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은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기약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모양새를 바꾸며 전혀 변화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다. 변화는커녕 오히려 더 과거 체제를 더 강화하는 모양이다. 수령제 일당 독재 정권의 유지를 위해 개혁·개방은 실패하고 북한 주민 입장에선 새 '고난의 시대'가 온 셈이다. 21세기 지구상에 아직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역별로는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이고 나머지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아시아 지역 북한이다. 경제 제제가 길어지면서 여러 문명은 물론 생필품마저 제대로 보급이 안 되니 굶어죽는 일이 발생한다. 독자가 알기로는 핵무기 때문이다. 이래서 고난의 시대 이후 수많은 탈북자가 생겼고 그 중 10분의 1 정도는 대한민국으로 왔다. 목숨을 건 탈출이다. 그 수가 대한민국 정착민만으로도 3만5,000여 명에 이른다.
코로나가 각 나라가 국경을 폐쇄한 바람에 탈북자 수가 급격히 감소한 것처럼 나타나지만, 국내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탈북자들이 아사하느니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이젠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북한에서도 생활이 탄탄한 층에서도 가세한 점을 미뤄볼 때 언젠가는 다시 탈북 행렬은 다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탈북민들이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도 탈북민을 위한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탈북민들의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을 방송이나 인터넷 등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 탈북-대한민국 정착이 꿈이 커진다. 물론 한류 바람에 영향을 받은 바도 크다고 한다. 북한의 젊은이들이 민감해 TV 드라마나 음악, 영화 등을 몰래 밀반인 루트를 통해 구입해 감화된다고도 했다. 탈북민 TV 출연은 긍정적 영향을 미쳐 중국에서 떠돌던 탈북민들과의 연결로서의 역할도 했다.
모두 탈북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탈북부터 대한민국 정착까지는 브로커라는 중개인이 필요하며 대한민국 정착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방송에 나온 루트만으로도 얼마나 험난한지, 수많은 사람이 탈북 과정에서 희생된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도 자주 방영됐다. 수천 만 원의 탈북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국경 감시가 더욱 조여들어 예전처럼 탈북자가 많지는 않은 듯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경 폐쇄 후 정식으로 해제하지 않은 탓이다.
이 책 『푸른 낙엽』은 탈북민 작가가 쓴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저자 김유경 역시 탈북민으로 ‘탈북시대’ 북한 실상을 다룬 것, 탈북해서 입국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고충을 다룬 것, 입국 이후 정착해서 생기는 일을 다룬 것 등의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다. 탈북민이 장편 소설이나 수기를 써서 책을 내는 일은 더러 있었지만 단편만을 모아 단편집을 낸 것은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독자 개인의 생각이다. 단편을 쓰는 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여러 작가가 한두 편씩 발표한 것을 묶어 낸 것은 있지만 한 작가가 쓴 단편만을 모은 것은 처음인 듯싶다. 탈북 문학의 새 지평을 내는 일이 될 것이다.
독자는 그간 탈북 작가들이 낸 책을 두세 권 읽은 기억이 있는데 많은 단어들이 많이 생소하다는 느낌이었다. 또 북한의 외래어 역시 영어보다는 러시아어, 중국어나 유럽 언어의 말들이 많다. 영어가 배제되는 듯한 느낌이다. 묘사나 표현이 매우 직설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문예사조로 보면 사실주의, 자연주의, 낭만주의의 신경향에따른 묘사가 주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강렬한 단어의 뜻을 직접 전해야 하기 때문일 것으로 독자는 생각했다.
책 뒷 부분에 「증언에서 질문으로」란 제목의 〈작품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덕규에 따르면 지금까지 탈북민의 체험 세계라는 관점을 위주로 설명했지만 『푸른 낙엽』은 미학적 관점에서도 여러 가지 얘깃거리를 낳을 수 있는 소설집이다. 가령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그것이 던진 질문을 형상화하는 것’이라는 명제와 관련해 『푸른 낙엽』이 창출한 캐릭터를 주목할 수 있다. 탈북민 소설에서 탈북의 실제 경험을 수행하는 인물을 설정하는 일은 실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정 선생, 쏘리」의 ‘정’, 「푸른 낙엽」의 ‘미선’, 「밥」의 ‘순녀’ 같은 인물이 탈북 시대의 탈북민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그로부터 보다 창조적 전형의 자리에 「사생아」의 ‘경수’, 「붉은 낙인」의 ‘진미’ 같은 미성숙한 인물이 놓인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평양 손님」에서 체제에 비순응으로 맞서는 허수혁, 「자유인」에서 엘리트 탈북민의 지위를 버리고 무위도식하는 삶을 지향하는 ‘자유인’ 등 전에 없이 질문거리를 안기는 문제적 캐릭터들이 탈북민 문학을 한국문학사에 내적 지위로 자리매김하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는 또 "탈북민의 문학은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자전 고발 성격이 강했다"며 "이젠 탈북 과정뿐만 아니라 정착 과정에서 겪는 고충을 단편에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탈북민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탈북민 작가 김유경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삶과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한국 사회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탈북민들의 고민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체제의 폭력 아래 부서지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비롯해, 탈북 이후 남한에 정착하면서 마주하는 극한의 상황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남과 북, 상반되는 두 제도를 체험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통해 이념과 고통의 무게에 가려져 있던 탈북자들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남한 사회에 녹아들어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같은 뿌리를 가진 한민족의 이해와 화합의 장을 여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평양 손님」에서는 한때 주목받는 물리학 박사로 성장하다가 연좌제로 인해 변방으로 숙청된 자, 「사생아」에서는 인민을 수령에 충성하도록 만든 북한 체제로부터 세뇌되어 ‘시대가 빚어놓은 사생아’가 되어버린 인물을 통해 탈출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비인간적인 사회 체제를 보여준다. 이들에게는 사활을 걸고 국경을 넘은 후에도 한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남한 사회에서 정착하는 일이다. 「장첸 씨 아내」에선 낯선 곳에서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하다가 몰래 도망치거나, 「정 선생, 쏘리」에서는 인신매매로 참담한 일을 당하기도 하는 등 온갖 수모와 고초를 겪는다. 「붉은 낙인」은 북에 둔 가족을 빼내오는 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표제작인 「푸른 낙엽」에서는 중국 노래방에 예속된 한 탈북 여성이 자신의 탈출을 도와준 남자를 버리면서까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탈북민들은 갑작스러운 한파에 단풍으로 미처 물들지 못한 채 땅에 마주한 푸른 낙엽과도 같은 이들"이라고 말한다. 때 이르게 땅에 팽개쳐진 낙엽을 닮은 탈북민들은 북한이라는 나무에서 거센 폭풍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던져졌기에 은유한 것이다. 기본권을 박탈당한 북한에서 목숨 걸고 탈출하여 끝내 한국으로 입국했지만, 신분 없는 유민으로서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가까이하고 있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동안 목소리 없는 존재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어 그들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에 따르면 탈북민을 다문화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언어도 문화도 뿌리도 같은 한민족이다. 다만 남과 북, 상반되는 두 제도를 삶으로 경험한 사람들일 뿐이다. 더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탈북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남한 사회에 녹아들어 같은 구성원으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탈북민이 남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북한 사람들의 큰 관심사라고 한다. 한류를 통해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목숨 걸고 한국 영화를 보고 문화를 따르려 한다. 동경은 곧 희망이다. 탈북민의 삶이 북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 대한 탈북민의 사랑과 자유에 대한 각성은 남다르다. 나 자신이 그러하니까. 한반도의 절반 땅에나마 자유롭고 선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민족의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이로움이 짝사랑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탈북민의 애환을, 이해와 화합의 바람을 그리고 희망을 소설에 담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앞서 언급한 박덕규 문학평론가는 〈작품 해설〉에서 "탈북은 살아남았으되 완성이 아닌 과정"이라는 말로 '푸른 낙엽'의 현주소를 밝힌다. 탈북 결정이나 과정이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의 난관이지만, 대한민국 정착 또한 만만치 않은 살아남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보여지지만 통제 시스템의 고리 안에서 기본권을 박탈당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수령지상주의에 세뇌된 일상을 사는 북한 주민의 실상은 지엽적일수록 구체적이고, 구체적이니만큼 충격적이다. 탈북은 그들 사이에 거의 본능적으로 촉발된 행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탈북으로 끝이 아닌 데 있다. 박덕규는 탈북은 '기본권 없는 인민'에서 '신분 없는 유민'을 거쳐 '상처 많은 실향민'으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진행 과정에서 죽거나 실종되거나 잡혀 가거나 갇혀 있거나 묻혀 살아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인물들은 탈북에 가까스로 성공해도 막상 정착의 어려움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생각에 담아놓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살아남기 경쟁이 기다린다. 탈북민들에게는 '산 너머 산'이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살아온 만큼 치열하게,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것임을 인식하고 기꺼이 끼어들어 이겨내길 진심으로 독자는 바란다.
“진미야, 걱정 마. 보위부 감시망에서 벗어났어. 여기는 안전해. 보위원하고 통화하던 전화기는 그 방에 버리고 왔어. 그래야 널 찾지 못하니까. 안심해.”
진미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늙은이처럼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진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며 눈물을 밀어냈다. 도르르 눈물이 굴러가는 흰 볼이 창백하게 반들거렸다.
“언니야, 난 그 집으로 돌아가야 해. 언니하고 같이.”
“그게 무슨 소리야? 거긴 보위원이 포위하고 있는 위험한 곳이야.”
“아니야. 보위원 동지는 언니를 구원하려고 왔어. 언니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가려고 나와 함께 왔어. 남조선 괴뢰들로부터 언니를 구원하려고. 지금 애타게 나를 찾고 있을 거야. 어쩌면 나까지 조국을 배반한 줄로 오해할지 몰라. 어서 그 집으로 가야 해!”(p.253)
- 「붉은 낙인」 중에서
저자 : 김유경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북한에 남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 때문에 실명과 과거 행적을 숨긴 채 살아가야 하지만, 작가로서의 의무를 포기할 수 없어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장편소설로 『청춘 연가』 『인간 모독소』가 있다. 『인간 모독소』는 Le camp de l’humiliation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 번역 출판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