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김인중.원경 지음 / 파람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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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 화합이라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종교라는 게 믿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바꾼다는 일이 쉽지 않으리란 추측은 쉽게 할 수는 있다. 더욱이 종교에 따라서는 자신 이외의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율도 있으니 타 종교와의 화합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종교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계율이 타 종교와의 화합을 막기 위해 전해오지는 않았을 듯하다. 더욱이 인류의 삶을 이끌어온 위대한 종교들을 나쁘다고 말할 입장은 못 된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는 버리지 않더라도 타 종교인들을 배척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뿌리는 같다고 들었는데 무려 1,500년 가까운 세월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 전쟁을 벌이고... 죽고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으니 종교가 인간들의 삶을 평화롭게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 맞나 싶기도 하다. 비종교인인 독자가 보기에는 서로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러서야 바람직한 믿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는 가톨릭 신부와 불교의 스님이 예술로 화합하고 교감하는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만남을 엮은 책이다. 그림 그리는 김인중 신부와 시 쓰는 원경 스님이 시화집을 냈다. 이는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예술로서는 하나됨을 보여주고 있어, 의미가 크다. 김인중 신부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서양 특히,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이미 세계적 예술가로 탄탄한 명성을 쌓고 특별한 이력도 갖고 있다고 한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수상과 이력을 쌓은 분이다. 원경 스님 역시 출가 후 조그마한 암자에서 수행하는 중이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예술하는 사람이나 해당 종교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분들이라 하니 독자의 예술과 종교에 대한 부족함을 탓해야 할 것 같다.

 


 

독자가 짧은 지식으로 '시화집'으로 표현했지만, 이미 화중시 시중화(畵中詩 詩中畵)라고 예부터 전해오는 그림과 글이 함께 있는 책이다. 동서고금의 많은 선인이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는’ 시와 그림의 일체를 찬양했다고 한다. 문학과 미술로 나뉘어졌지만 당초 이는 예술이라는 한 가지에서 태어나 다른 줄기로 뻗어간 차이일 뿐 뿌리나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적 측면에서는 서로 보완해주는 성격도 강하다. 예술가의 예술관이 서로 같다면 한데 어우러져 멋진 예술 작품의 가치를 높일 것 같다. 이 책을 보고 읽다보면 예술이라는 게 인간이 편의상 나눈 것일 뿐 뿌리가 같다는 게 저절로 이해된다. 예술의 다른 장르가 함께 어우러질 때 아름다움의 크기도 더욱 증폭될 것이란 말을 실감나게 해준다. 서로 보완해주고 상승 작용을 일으켜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에 따르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인 김인중 신부와 승려 시인 원경 스님이 종교 간의 화합과 사상적 융합으로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 시대 속에서 자애의 덕목을 구현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 김인중 신부는 ‘꽃의 시인’ 원경 스님의 시 세계에 깊이 공감했고, 원경 스님은 ‘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의 구도자적 삶에 존경과 섬김으로 그림 곁에서 마음의 시를 썼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히 알려진 이해인 수녀의 찬사가 담겨 있다. 김인중 신부와의 자매적 우정이 담겨 있는 글이 곱기만 하다. 도종환 시인의 원경 스님을 향한 찬사도 아름답다.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은 추천의 글을 통해 “매우 희귀하며 아름다운 책이다. 종교, 예술, 출판의 영역을 떠나 우리 시대의 큰 자산이라 할 만하다”라고 평했다.

 


 

김인중 신부는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일찍이 국전과 민전을 휩쓸었으나 돌연 유럽으로 건너가 사제의 길을 걸었으며, 유럽에서는 사제였음에도 화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라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등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피카소와 세라믹 작품을 공동으로 전시할 정도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귀국해 돌연 카이스트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것까지 감안하면 그의 이력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대표적인 고딕 양식 건축물인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해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설치된 성당과 일반 건물은 전 세계 45곳에 이른다고 하니 가히 예술가로서도 대단한 이름을 알렸다. 프랑스 혁명 이후 어떠한 전시회도 열리지 않았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품을 거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또한 그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하다. 납선을 이용해 모자이크 방식으로 유리 조각을 이어가는 게 일반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방식인 데 반해, 그는 붓과 큰 나이프 등으로 판유리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780도로 구워낸다.

그의 작품은 비구상(그의 표현대로라면 추상화)이다. 존재의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은 시공을 초월해 모든 영혼을 달래는 데 의미가 있으며,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향해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므로 비가시적인 신비의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서다. 개별 작품의 제목은 없다. ‘무제(無題)’가 제목일 순 있겠다. 자신의 작품은 가슴에 선뜻 다가오는 아름다운 노래처럼 어떠한 주장도 표방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봉헌일 뿐이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글을 썼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2018년 타계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이며 미술사학자인 웬디 베케트 수녀는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그들의 예술은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다”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드니 쿠타뉴(Denis Coutagne)는 김인중과 세잔, 마티스, 피카소를 비교한 저서 『Kim En Joong artista della luce』에서, “김인중의 장엄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독보적인 조형세계는 다른 거장 화가들에 버금가는 수준”이며, “세잔, 피카소를 잇는 빛의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그의 작품을 실물로 접한 원경 스님은 “상승하는 불꽃처럼 일렁이고 산곡에 내려앉은 새벽안개처럼 고요히 스미는가 하면 풀꽃을 건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오묘하고 섬세한 선율을 보여준다. 때론 장엄하고, 때론 숭고하며, 때론 온화하다. 언뜻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의 시구처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 뭇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했다.

‘빛’이 김인중 신부와 가까이 있는 언어라면 ‘꽃’은 원경 스님이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다. 2021년에 출간한 시집의 제목이 『그대, 꽃처럼』이기도 하거니와 그의 시편 곳곳에는 꽃이 피어나고 스러진다. 이에 대해 김인중 신부는 “경직된 남성들 사회에서 꽃이 화두에 오르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으니 스님은 ‘꽃의 대부’라고 생각하며, 그것만으로도 단순하고 깊은 시봉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인 것은 여러모로 합당하다 하겠다.

이 책에 수록하고 있는 원경 스님의 시편들은 대부분 김인중 신부의 작품을 대하고 떠오르는 이미지와 영감을 포착해 쓴 것이라고 한다. 팔순이 넘도록 고독과 고난의 수행을 이어온 수행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한다. 화장세계(華藏世界)를 가슴에 품고 있는 그이기에 종교의 구분 따위는 한갓 실오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원경 스님의 시편들에는 꽃향 못지않게 그윽한 차향이 번진다. “지극한 차 맛과 참사람은 서로의 성품이 닮아있다. 찻잎의 푸른 생기를 좋아하여 그 싱그러움을 닮게 되고, 물의 맑은 기운을 좋아하게 되어 청정함을 닮게 되며, 천연의 맛을 우려내는 중도를 깨닫게 되니 그러는 사이 어느덧 거친 악취미의 경향은 자연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 차에 대한 그의 철학이다. 도종환 시인은 해설에서 “원경 스님에게는 차와 도가 둘이 아닙니다. 차를 마시는 일 그 자체가 도를 알아가는 일입니다”라고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그대 입김으로

나의 가슴에 숨결을 주오

 

천지의 바람으로도

가슴은 숨가빠 하나니

(중략)

그대여

바라옵건대

나의 천지가 되어

숨결을 주오

- 「그대 나에게 숨결을 주오」 부분

 


 

그대는

빛의 혼을 그리는데

 

그리움 그리움 그리다 그리다

화룡점정에 이르러

쓰러져 잠드시리

 

잠 못 드는 한밤의 꿈을 꾸다가

새벽에 드는 비울음처럼

그리 쓰러져 울다 잠들면

 

바람도 쓰다듬듯 달래며

새날을 맞으리

- 「혼빛」 전문

 


 

저자 : 김인중

 

1940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스위스 프리부르(Fribourg)대학교와 파리 가톨릭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62년 국전에서 특선을, 1965년 제1회 민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파리 장 푸르니에(Jean Fournier) 화랑의 개인전 이후 전 세계에서 200여 회의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1974년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줄곧 프랑스 파리에서 거주하다가 2022년 한국에 돌아와 현재 카이스트(KAIST) 초빙석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훈 훈장인 오피시에(Legion d'Honneur Officier)를 수훈했으며, 2021년 12월 스위스 유력언론 르 마탱(Le Matin)은 김인중을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선정하고,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를 뛰어넘는 화가라고 평가했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가톨릭 아카데미 회원으로 추대됐으며, 프랑스 중부 도시인 앙베르에 시립 ‘김인중미술관’이, 이수아르시에 ‘김인중 상설전시관’이 설립됐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개최했으며,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을 비롯해 독일과 이탈리아·스위스 등 전 세계 45개소에 작품이 설치돼 있다. 세계적인 미술사가 웬디 베케트 수녀는 “만일 천사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의 그림과 같을 것”이라고,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드니 쿠타뉴는 김인중을 “세잔, 피카소를 잇는 빛의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2001년 KBS는 다큐인사이트 ‘천사의 시’ 편을 통해 김인중 신부의 삶을 소개했다.

 

저자 : 원경

 

어려서부터 사유적 성향이 짙어 ‘투쟁 없는 사랑과 자유의 삶’이 무엇인가 의문을 품다가 1982년에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1984년 조계총림 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득도, 전통적 교육기관인 강원에서 사집을 수학했다. 1987년에 범어사에서 일타 대화상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통도사 보광선원에서 선방 수행 후 제방 선원에서 성만했다. 1990년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 LA 고려사 주지를 지냈으며 현재 북한산 심곡암 주지를 맡고 있다. 조계종 15대 중앙종회의원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중앙승가대학 법인 처장을, 최근에는 조계종 사회부장직을 역임했다.

‘불심, 자연, 예술이 하나’ 되는 염원을 담은 산사음악회를 전국 사찰 최초로 시작해 새로운 문화적 반향을 일으켰다.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을 해소해주기 위해 보리 스님이 21년 동안 운영해오던 탑골공원 무료급식소가 중단될 위기를 맞자 그 맥을 이어받아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사회복지원각(원각사 무료급식소)을 운영 중이다. ‘배고픔에는 휴일이 없다’는 슬로건 아래 연중무휴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외된 노인 계층을 위한 점심 한끼 봉사를 하고 있다. 시집 『그대, 꽃처럼』을 통해 문인협회 회원으로 등단하였으며, 산문집 『그대 진실로 행복을 원한다면 소중한 것부터 하세요』와 『밥 한술 온기 한술』을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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