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역사 -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
존 서덜랜드 지음, 강경이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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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로빈슨 크루소』이란 소설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다준 5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에 들어 있는 책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50번 책에 매겨져 있는 번호 중 『로빈슨 크루소』는 15번째 책이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해 단 한 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도 걸렸다. 여름 방학 기간이어서 집에서 읽었는데 어머니가 점심 먹고 보라고 독촉했는데도 결국 다 읽고 난 뒤에야 손에서 책을 놓았다. 물론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 거의 저녁 시간이 되어서 점심은 걸렸다. 그만큼 재밌었다. 사실 식사를 거르면서 책을 읽은 적은 그 이후로도 없다. 책의 제목도 『로빈슨 크루소』였고 소설 속 주인공이 노예상이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그때는 무역상이라고 책 서두에 얼핏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이후 독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책, 소설로 남아 있다.

이 책 『문학의 역사』에서도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 독자의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의 역사를 다루는 책은 몇 권 건성으로 읽었지만 한결같이 문학의 기원이라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들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시다. 이 두 시는 강력한 두 세력,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오랜 전쟁을 다룬다고 이 책은 설명을 시작한다. 고고학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호메로스는 '신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을 창작했다. 시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모험을 한다. 한번은 그의 선원들과 함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혀 동굴에 갇힌다. 이 괴물의 외눈은 이마 가운데에 있다. 그는 배가 고프면 동굴에 붙잡힌 포로 한 명을, 주로 아침 식사로 잡아먹는다. 영웅들 중 가장 영리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를 술에 취하게 한 뒤, 그의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고 선원들과 함께 탈출한다. 이 신화의 진실은 외눈에 있다고 저자 존 서덜랜드는 말한다. '문제의 양면'을 볼 수 없거나 보지 않으려는 사람의 상징적 의미로 저자는 해석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조금은 원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신화는 그것이 창조된 시대만큼이나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진실의 조각을 항상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서사시의 시작이 시대를 훨씬 거슬러올라가 BC 2,000년께 지어진 『길가메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점토판의 글자를 해독해 밝혀진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최근 『길가메시』로 바뀌었다.

저자는 이 책을 모두 40장(章)으로 나뉘어 서술하고 있다. 『문학의 역사』라는 표제어 옆에 「울고 웃고, 상상하고 공감하다」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1장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책 『로빈슨 크루소』가 나온다. 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BBC 라디오〉의 최장수 인기 프로그램이자 BBC 월드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청취할 수 있는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에서 출연자들에게 묻는 두 가지의 고정 질문이 있다. 첫째, 사치품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와 또 하나의 질문은 성경 외에 단 한 권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고 한다. 단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이미 섬에 있다. 아마 먼저 섬에 머물다 청산가리 알약을 선택한 조난자가 놓고 간 듯하다고 선택을 독자들에게 슬쩍 던진다.

이를 전제로 던진 질문은 책의 시작 문장을 설명하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고립되어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상황에서 책을 단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저자의 질문 속에 로빈슨 크루소가 연상된다. 유도를 위한 질문일까? 저자가 50년째 듣고 있는 이 방송의 초대 손님은 외로운 여생의 동반자로 위대한 문학 작품을 선택한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제인 오스틴이다. 수천 회에 이르는 방송에서 거의 모든 초대 손님은 자신이 이미 읽은 작품을 선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반응에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추출해낸다. 첫째, 우리는 분명 문학이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다. 둘째, 문학을 '소비'한다고들 하지만 접시 위에 놓인 음식과 달리 우리가 소비한 뒤에도 문학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로빈슨 크루소』를 다루는 장이 아닌 곳에서도 자주 인용한다. 이유는 독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영국 최초의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1719년 첫 출간 당시 독자들에게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물의 자전적 이야기로 다가갔다고 한다. 표지부터 저자 대니얼 디포의 이름 대신 '로빈슨 크루소'와 '자신이 직접 쓴'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다고 저자는 밝힌다. 게다가 그처럼 섬에 고립된 선원의 실제 이야기가 몇 년 전 출간돼 인기를 끈 터, 영국 문학 최초의 소설 작품은 이처럼 사실주의의 특징 역시 보여줬다고 귀띰한다. 이 책 『문학의 역사』는 이런 소설이 자본주의와 나란히 등장한 것이 우연은 아니란 점을 강조하면서, 고립된 채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일군 로빈슨 크루소는 이른바 '호모 이코노미쿠스'이기도 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영국의 문학교수로 이미 수십 권의 저서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저자는 영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일반인을 겨냥한 문학 이야기이자, 영국 중심의 문학사를 이 책 『문학의 역사』로 풀어냈다. 디포, 오스틴, 브론테, 디킨스, 울프 등 낯익은 작가는 물론 이름만 들어본 서사시 '베오울프'나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도 그 특징을 뚜렷이 포착해 문학사적 의미를 알기 쉽게 전하고 있다. 모두 40개의 각 장은 개별 작가·작품만 아니라 문학이 무엇이고, 독자가 어떻게 달라졌으며, 영화의 각색은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그리고 검열·문학상·저작권·베스트셀러 등을 주제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썼다.

영국과 미국의 비교도 재미있다. 18세기 초 최초의 저작권법이 생긴 영국과 달리 미국은 19세기 말에야 관련 국제협정에 가입했다. 그전까지 미국에서는 영국 등의 작품을 저자 허락없이 출판한 '해적판' 책들이 많았다. 또 미국이 19세기 말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입한 반면 영국의 출판업계는 1970년대 중반까지도 이를 거부했다.

 


 

앞서 잠깐 살폈지만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질문 속에는 문학을 둘러싼 수많은 궁금증과 논쟁이 내포되어 있다. 책에 따르면 문학의 기원부터 변화 과정, 역할, 가치 또는 효용성, 형태, 방식, 미래 등. 이들 중 한 가지만 선택해 서술하더라도 엄청난 분량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문학의 세계는 드넓고, 복잡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때문에 문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흥미를 돋우는 유효적절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써내려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 언어로 쓰인 서사시부터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그리고 시대별 문학에 영향을 준 여러 분야의 사상적 흐름과 사건들, 작가의 성장 배경과 사적인 이야기, 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등등을 꿰뚫어봐야 할 뿐만 아니라 주요 문학 작품을 직접 읽어 자신만의 관점을 명확히 정립해야만 문학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문학 관련 책을 스무 권 이상 저술하고 부커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저자 존 서덜랜드는 이 책에서 당대 문학의 전개 양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일반론적 관점에서의 접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연결 통로가 되어준다는 게 저자의 문학관이다. 따라서 저자는 최고의 문학은 세상을 단순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정신과 감수성을 확장시켜 복잡성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한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중요한 맥락을 짚어주는 문학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오늘날 책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갖는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문학의 역사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 지점은 1789~1832년이다. 이유는 ‘낭만주의’다. 키츠, 워즈워스, 바이런, 콜리지, 셸리 등이 주도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이데올로기’를 중심에 둔 최초의 문학 운동으로 여겨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문학이란 무엇이고,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재정의하려 했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문학을 쓰고 읽는 방법을 영원히 바꾸어놓은,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조였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변화’는 이 책의 기저에 놓인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20세기 이후의 문학은 장르의 세분화와 매체의 다양화, 국경 없는 세계문학, 독서 대중의 영향력 확대와 적극적인 참여 등으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학 작품의 각색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더 가속화하고 있는데, 새롭게 해석되고 구성되는 영화나 드라마, 디지털 콘텐츠가 원작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몇백 년에 걸친 통신의 성장과 국제 무역, 특정 ‘세계어들’의 지배는 작가와 독자가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작가는 전 세계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고 독자는 작가와의 대화, 독서 모임 등 새로운 소통의 길을 갈망하게 되었다. 한편 출판 산업은 문학 소비자인 독자의 취향을 최대한 알아내기 위해 정밀한 시장조사에 많은 비용을 들인다. 세계적인 주요 문학상이 문학의 발전과 독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업화를 지향하는 대중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번역본이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까지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 등도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책에는 일부 미국 문학과 카프카 등의 부조리 문학,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 현대의 판타지 문학이나 팬픽, 모옌이나 하루키 같은 아시아 작가들 얘기도 나온다. 시대는 바뀌고 필사본·인쇄본·전자책 등 형태도 달라질망정 문학의 힘과 대중의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저자의 낙관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이 책은 문학의 현재와 과거뿐만 아니라 문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세 가지의 기본 조건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학의 범람이라는 환경적 변화, 다감각으로 즐기는 문학의 향유 방식, 저자와 독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인터넷 ‘팬픽’의 폭발적 성장과 같은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포장이다. 물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그만큼 우리는 선택지가 많아졌고, 원하는 문학을 무한정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과연 문학에, 또는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문학과,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과 문학 참여자들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문학이 지닌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문학이 공동의 것인지도 탐색한다.

 

저자 : 존 서덜랜드(John Sutherland)

 

영국의 문학자이자 칼럼니스트, 작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근대 영문학 로드 노스클리프 명예교수로 다양한 레벨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가디언〉에 문학 서평을 쓰는 한편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쓰고 엮었다. 1999년과 2005년에는 부커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지은 책으로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How to Read a Novel)』, 『당신이 알아야 할 50가지 문학 아이디어(50 Literature Ideas You Really Need to Know)』, 2013년에 출간되어 광범위한 찬사를 받은 『소설가들의 삶 : 294명의 삶으로 본 픽션의 역사(Lives of the Novelists: A History of Fiction in 294 Lives)』 등이 있다.

 

역자 : 강경이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좋은 책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번역 공동체 모임인 펍헙번역그룹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철학이 필요한 순간』, 『절제의 기술』, 『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걸 스쿼드』, 『길고 긴 나무의 삶』, 『과식의 심리학』, 『천천히, 스미는』, 『그들이 사는 마을』, 『오래된 빛』, 『아테네의 변명』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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