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조각 미술관
이스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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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신체 조각 미술관』은 호러 단편 소설집이다. 모두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기담 전문 작가'라는 별칭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기담의 호러 분야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표제어가 된 「신체 조각 미술관」이 하나의 단편으로서 가장 이색적 부분이어서인지 그대로 표제어가 되었다. 그가 호러 소설을 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작 『기요틴』과 『카데바』으로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호러 소설로 이미 호러 소설 대표 작가의 1인이 되었다. 이번 세 번째 책은 단편집이다. 표제어인 「신체 조각 미술관」은 독자들의 공포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다. 이 미술관은 관장이자 조각 예술가인 아버지의 작품을 전시한다. 딸은 해설사(도슨트)인 딸이 관람객들에게 작품의 이모저모를 해설해준다. 일반 미술관과 다른 점은 사람의 신체 일부를 조각품으로 만들어 전시한다는 점에서 특이함을 뛰어넘어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예술적 작품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신체를 동물의 박제처럼 제작해 전시한다는 것은 법과 윤리를 떠나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호러물이고 상상의 표현이기에 가능한 것일 터, 독자들이 호응도는 예상하기 어렵다. 허구의 이야기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미술관의 이름은 〈더 바디 갤러리〉. 전시 예술품의 재료가 되는 신체는 당사자(혹은 관리자)에게 허락을 구하여 기증 받는다. 이 이야기는 관람객인 ‘나’에게 작품을 설명해 주는 큐레이터 ‘수란’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다. 조각가인 수란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딸 수란은 자신도 죽은 연인을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나’에게 말한다. “모두 이렇게 새 생명을 얻었으니, 저희는 더 이상 슬프지 않습니다.”

 


 

큐레이터 수란의 해설은 거침없이 이어진다. 더욱이 제작 과정을 알려 줌으로써 독자들의 공포심을 더욱 자아내지만 수란의 해설로 다소 완화되기도, 혹은 증폭되기도 한다. 수란은 준비된 해설사이다. 작품 설명 중간 중간에 제작 과정을 슬쩍 곁들이며 '의도적으로' 공포심과 불안감을 자극한다. "지하 공간은 꽤 광활하고 층고도 높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작될 작품들이 놓일 빈 공간도 있고, 관장님의 작업 공간도 있고, 작품 재료를 보존하는 냉동고가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작업장과 냉동고는 보안상 공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p.10) 작품 제작시 방부 처리된 신체를 특정 약품을 이용해 시신이 서서히 굳도록 합니다. 피를 빼거나 피부나 근육, 장기를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는 추가적인 작업이 요구되지요. 곧 보면 아시겠지만 제거한 신체의 일부도 대부분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신이 다 굳기 전에 절단하거나 고인이 생전에 의뢰한 형태로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중략) 숨이 끊어지고 난 후 자신의 신체가 썩거나 재가 되기보다는, 이렇게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적지 않답니다. 작품이 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도 더러 계시고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마치 도살자들이 도살된 동물 다루듯이 말하는 바람에 오싹한 느낌이 든다. 소름도 돋고, 얼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큐레이터의 설명이 갈수록 가관이다. 심지어는 태아의 시신들로 이루어진 작품도 있다. 〈인간〉이라는 작품이다. 큐레이터는 이 작품을 설명하며 가족이 참여해 오랜 기간 걸려 제작했다고 자랑하듯 말한다. 사무적으로. "여기 사람 모양의 조각이 서 있습니다. 생김새가 여성인 것도 같고, 남성인 것도 같은 모호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기가 각기 다른 수많은 태아의 시신들이 겹치고, 이어지고, 쌓여 있는 것이 보입니다. 손가락 한마디만 한 태아도 있고, 이미 다 큰 신생아 크기의 태아도 있습니다. 그동안 관장님을 비롯해 저의 가족이 오랜 기간 기증받아 온 태아의 시신을 거두어 이렇게 하나의 인간을 구현해냈지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가여운 영혼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큐레이터는 작품 해설에만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의뢰자들의 ‘신체 기증 서약서’ 겸 ‘작품 제작 의뢰서’도 받는다. "의뢰자분께서 직접 작품이 되기로 마음먹으신 거군요. 네, 이곳에서 저희는 의뢰자를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아름답게 재탄생시켜 드릴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요청하신 양식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내 신체가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되는 곳, ‘더 바디 갤러리’에 찾아주시고 의뢰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십니다."(p.25)

이렇듯 잔인하고 참혹한 이야기에는 기묘하게도 ‘죽음’에서 비롯되는 아련한 슬픔이 있다. 사랑하는 존재를 다시 보고 싶어서 신체를 조각으로 만든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되레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현실 불가능한 일이 소설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두 작품 〈블루홀〉과 〈바닷가〉도 흥미를 끈다. 이 작품들은 ‘상실’의 공포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각각 아내 혹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주인공들이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바닷가에서 겪은 기묘한 체험으로 풀어 썼다.

바다를 사랑해서 해양구조사가 된 주인공은 결혼 1주년 아내와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기 위해 왔다. 그러나 날씨가 나빠 철수하려다 아내가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말릴 틈도 없이 지연이 바다에 뛰어들고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삼일 밤낮으로 격랑을 헤치며 찾아다녔지만 바닷 속에도 바다 위에서도 그녀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바다 같은 걸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다. 프리다이빙 같은 걸 즐기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렇게 했다면 지연이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후회가 눈앞을 가린다.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찾다 찾다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물 속으로 끊임없이 찾아다닌 끝에 결국 아내 지연의 시신을 발견한다. 아내 지연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순간, 내가 살아서 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서서히 아내를 안고 아래로 향해 들어간다. 물살이 더 거세지면서 허우적거린다. 지연을 안은 채 물살에 몸을 맡긴다. 순간 손을 붙잡는 느낌! 꿈이다. 결과가 다소 진부하지만 오랜 만에 읽어 스릴이 있었다. 실감나게 써내려간 저자 덕분이리라.

 


 

반면, 〈어떤 부부〉와 〈내리사랑〉은 어느새 애정보다 더 커져버린 증오 때문에 끝내 파국에 치닫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푸른 인어〉는 희귀하고 신비로운 존재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한밤중의 어트랙션〉은 욕망과 치기에 휩싸인 젊은 남녀의 어리석음을 벌하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꿈에 관한 이야기들〉은 작가가 직접 겪은 가위눌림에 관한 일화를 녹여 가상의 기담으로 만들어냈다.

다양한 작풍과 소재로 쓰인 이야기들이지만, 이스안 저자가 그려내는 세계에서 ‘꿈’과 ‘죽음’은 빠지지 않는 두 가지 주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죽음이 가장 두렵”지만 “쓰는 소설마다 빠지지 않아서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독자들이 호러소설을 보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주제는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 시선이 향하고 마는 인생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

 

저자 : 이스안

 

1992년 12월 출생. 대학에서 조각과 일본학을 공부했다. 인형 수집가이자 공포영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2018년 북악문화상에서 〈사주〉로 가작을 수상했으며 소설, 에세이, 여행, 사진, 매거진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있다.

출간한 작품으로는 소설집 『기요틴』 『카데바』, 포토 에세이 『유리코』가 있고, 앤솔러지 『기기묘묘 ? 괴양이 앤솔러지』 『괴이, 도시 ? 만월빌라』에 참여했다. 키덜트 분야 저서로는 『담벼락 위 고양이들』 『한국 인형박물관 답사기』 『장난감 수집가의 음울한 삶』 『하찮은 뽑기 장난감들』 『DOLL TOWN』이 있으며 매거진 〈토이크라우드〉를 올해 선보일 예정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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