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우수상 수상작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이석용 지음 / &(앤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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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사형 제도 폐지나 마찬가지로 현재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 같다. 집행하지 않을 제도라면 공식 폐지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혹시 여론이 아직 사형 제도를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선진 외국들은 사형 제도를 없앴다고 하던데... 사실 사형 제도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제도이긴 하다. 인류가 공동 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제도 아닐까 하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문구는 사형 제도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류와 함께 법 역시 조금씩 발전해 나간다. 사형 제도는 국가 권력이 아무리 엄격하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마땅히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인식이 근대 이후 확산되면서 인권 보호 차원에서 사형 제도는 차츰 사라져 갔다. 그러나 법 감정은 다른 것도 사실이다. 끔찍하고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까지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냐는 문제에 부닥친 것이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라도 종신형(무기징역)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면 된다는 논리다. 인간에게 인간을 죽일 권리를 어디에서 받았는가?라는 원론적 주장에 부닥치면 사형 제도 폐지는 마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역시 그 중간에서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한 것이다.

이 소설 작품 『맛있는 사형 집행 레시피』 사형 제도를 다룬 내용은 아니다. 책에 등장하는 3명의 범인들은 흉악한 범죄를 저질로 법으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형을 실제 집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형 대기자'의 신분인 것이다. 이를 정부가 사실상 사문화된 사형을 집권자의 저조한 인기를 끌어올릴 방법 중 하나로 사형을 집행하려는 집권 세력의 '음모'에 의한 사형 집행을 갑자기 추진하려는 것이다. 너무 끔찍하고 비인륜적, 반사회적 범죄이기에 '사형'시켜야 한다는 국민 감정에 편승해 집권자에 대한 인기를 끌어올리겠다는 비루한 계획에 의한 사형 집행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두려 한다. 이쯤 되면 집권 세력을 위한 '살인'에 더 가깝다.

 


 

표제어와 다르게 소설의 첫 문장은 대통령 집무실 표정을 담았다. "대통령은 제 방에 손님처럼 앉아 있는 법을 안다. 우두커니 앉은 폼이 집무실과 함께 압축 포장된 부실 식재료 같다. 느슨한 올가미처럼 보이는 넥타이와 짝짝이로 걷어 올린 셔츠 소매, 흐트러진 행색이 그나마 부패한 이미지보다는 부실한 쪽으로 거들고 있다. 옷걸이 아래 널브러진 고급 브랜드의 양복 상의가 같은 처지처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그렇게 대통령은 혼자서 집무실의 시공간을 일그러트리는 중이다.(P.7) 분위기 설명은 이어진다. 임기 3년차의 대통령의 인기는 당선 이후 꾸준히 내리막이다. 이대로라면 지지율은 한 자리, 아니 시간만 충분하다면 제로에 수렴할 것이 분명하다고 저자 이석용은 표현하고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임기 3년차라면 대개 지지율을 걱정해서는 안 될 자리다. 설혹 정체되거나 다소 떨어져도 권력에 적신호다.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때문에 대통령을 보좌하는 각 부처 장관이나 참모들이 꺼내든 문제 해결 카드가 걸작이다. 임동수 법무 장관과의 대화.

 

대통령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여론의 질타가 검경을 넘어서 정부와 대통령 자신을 향해 쏟아질 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 장관은 사법부의 한 관계자가 사안의 위중함이 탄핵으로도 번질 수 있다고 한 말을 덧붙였다.

“괘씸한···. 어, 어쨌거나 뭔가 결단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이곳저곳 물어보니 이 사안은 사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아니, 그럴 거라고 했습니다.”

“누가요?”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르시는 게 더 낫고요.”

“그건 알았네. 그런데, 그 결단이라는 게···?”

“돌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달면 어떻겠습니까?”

“매, 매달아? ···뭘?”

“사형숩니다.”(p.10)

 


 

사형 집행을 갑자기 실행한다면 그 뒷 감당이 만만치 않을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다. 법의 후퇴, 전 세계로부터 여론 악화, 국민의 시선 등 한두 가지 걸림돌이 아니다. 지지율 회복을 위해 대통령과 장관, 비서관 등 참모들의 대화가 이런 거라면 흔히 하는 시쳇말로 "볼짱 다 본 집안"이다. 고위 관리의 부정부패에 입막음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보니 정상적인 회복 방안보다는 급한 불 끄기 식의 짧은 의견밖에 더 나오겠는가? 정치를 모른 시민들이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줄줄이 이어지는 선거 때문에 지지율에만 신경 쓰다 보면 결과는 오히려 역행하거나 말 그대로 한 석도 못 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걱정만 늘어놓고 있는 사이 시의적절하게 국민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사건이 하나 해결된다. TV를 통해 뉴스 자막엔 '철물점 초등학생 연쇄 납치 살해 사건 용의자 강현태 검거'라고 쓰여 있다.

 

"저, 저놈, 이제 잡힌 거요?

대통령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그러게요? 벌써 잡힌 줄 알았는데···.

정의원도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그동안 누구 하나 아무 얘기도 안 한 거예요?"

대통령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p.17~18)

 

 

청와대 본관 2층 백악실. 테이블 위엔 여러 종류의 술과 탄산수, 안주들이 즐비하다.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자고 모였던 게 그만 술판이 되어 버렸다. 여당 중진인 정경수 의원, 강영민 정무수석, 임 장관, 그리고 대통령. 전장을 앞두고 둘러앉은 장수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른바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대통령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표졍이 어둡다는 것은 술판과 어울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상황이 좋지 않다. 국제 신용도가 특히 그렇다. 그런 이유로 수출이 전반적으로 주저앉고, 물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특히 집값 상승과 교육비 부담은 최악이다. 가계 대출도 대형 지뢰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는 강 수석의 보고다. 대통령이 반문한다. 경제지표는 나쁘지 않다고 그러던데?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건설업계가 물량을 넘치게 뽑아내고 있기 때문이란 답이 되돌아온다. 그럼 괜찮다는 게, 어쨌든 다행이란 게 대통령의 인식이다. 그것도 정식 회의도 아닌, 술좌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꺼낸 말들의 잔치... 이 정부의 앞날이 캄캄하다는 인식은 독자들을 답답하게 한다.

뾰족한 대안이 없기에 연일 보도되는 흉악범 강현태 사건으로 국민 관심은 일단 쏠렸다. 이런 가운데 사형 집행 계획은 물밑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구체적 계획도 세웠다. 사전 분위기를 잡기 위해 지금 체포된 강현태에 대한 국민 감정을 부추기는 방법으로 '극악범죄철폐위원회'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위원 구성 계획도 세웠다. 마땅한 인사로 채울 생각이다. 집권당으로서의 권력이고 권한이다. 충분히 이용해 새 위원회로 사형 집행을 결정하려는 것이다. 강현태 흉악범 체포를 계기로 국민의 감정을 "사형시켜라"는 쪽으로 유도한다. 이럴 경우 사형 선고 후 교도소에서 대기 중이던 이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된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사형 집행 대상자 3명은 선별되었다. 대통령이 다짐하듯 결정하고 나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란 예상은 적중한 듯 보인다. 대통령은 회의에 참석하고도 회의에 없는 '유령 대통령'으로 역할을 한다. 집행될 경우 자칫 음모가 드러나면 오히려 일이 더 크게 될 것을 우려한 참모들과 극악범죄철폐위원회 위원들이 알아서 진행한다. 법부장관 임동수는 최종 선정을 인권위원회로 미룬다. 인권위원장은 그냥 임 장관이 지명 권한이 있으니만큼 임 장관에게 되돌린다. 유령 대통령이 끼어든다. "아무리 사형수라지만 법무부에서 선정하고 법무장관이 대상을 뽑는다면 그냥 한 사람을 지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법무부에서 신중하게 후보군을 선정했으니, 인권위원회에서 인권이란 필터를 다시 한번 숙고해 주신다면 크게 실수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p.65)

임 장관이 교정본부장이 답변한다. 사형 집행이 중지된 지 20년이 넘어서 집행 과정이나 세부 규정의 수정이 불가피했다는 사실을 공지하듯 말하고, 사형 집행을 경험한 연출담당 교도관이 없음을 지적한다. 연출이라니? 사형 집행을 하는데 왜 연출이? 독자의 궁금증은 곧 풀린다. 사형수를 사형장까지 호송하는 걸 '연출'이라고 하는데 이번엔 특히 '마지막 식사'가 집행 전날 저녁 식사로 제공될 예정이어서, 임시 수용실에서 만 이틀을 함께 보내고, 당일 새벽 사형장으로 인도할 교도관들이 필요하는 점을 강조한다. 사형장은 전국에 모두 세 곳이다. 만약을 대비해서 세 곳 모두에 집행을 도울 교도관들을 배치했다고 보고한다. 마지막 식사 메뉴를 묻는 것까지 일련의 조치들을 추가로 덧붙인다. 식사는 누가, 어떻게 준비합니까?란 질문에 교정본부가 연출 과정과 식사 준비에 관한 세부 사항은 모두 허태수 특임교정기획관이 지휘한다고 지목하고 소개한다. 허 기획관에 따르면 사형수는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고, 당국에서 주는 자유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주문식일 경우 일정 비용을 초과하거나, 주류이거나,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불가하다고 사전 고지하며 꼼꼼히 듣고 사형수가 원하는 음식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따른다고 말한다. 가격은 7만 5천 원이며, 주류 등은 금지된다고 밝힌다.

 


 

요리사 X가 내정된다. 요리사 X는 사형 집행 계획에서 요리사는 필수적인데 당국의 제안을 요리사들이 거절한다. 호텔 요리사 등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일절 회피하고 있어 난항이라는 것이다. 군부대 요리사를 선정할 것을 제안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보안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는 점도 못마땅하다. 그런데 허 기획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옴으로써 문제는 해결된다. 그는 요리사로 참여하는 데 동의하지만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내세운다. 하나, 신상정보는 벌대 비밀로 할 것. 둘, 모든 취재 요청과 그 시도로부터 보호해 줄 것, 셋 마지막 식사 이틀 전에는 사형수의 신상에 대해 알려줄 것 등이다. 이는 요리를 시식하는 자에게 가장 적당한 것으로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를 내세우기도 한다. 특이한 어려운 점이 아니고 어쩌면 당국이 더 신경 쓸 부분이란 생각에 선뜻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X는 보안 서약을 할 것도 약속하면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추가한다. 넷, 요리는 요리사 재량에 맡길 것, 다섯, 사형수의 식사 후 소감을 알려줄 것, 여섯, 보수 없이 재능 기부로 해줄 것. 허 기획관뿐만 아니라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위원들도 미소로써 수락을 했다.

허 기획관은 위원들에게 요리사 X의 몇 가지 개인 정보를 알려준다. "다들 아실 만한 해외 유명 호텔에서 오랫동안 수석 셰프를 맡았던 유능한 사람입니다. 이걸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지만, 비밀로 해 달라는 이유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떨어져 지내던 아들을 병으로 여의었습니다. 아내가 그 뒤를 따라서 갔고요. 그 죄스러움으로 일을 그만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전국 구치소에서 자원봉사를 해 오던 터라 인연이 되어 알고 있습니다."(p.75)

 


 

여기서 요리사가 이름 없는 X로 표기된 이유를 알 것 같지만 정작 이유는 엉뚱하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약 3분의 1도 안 되는 부분이다. 약 3분의 2 이상은 요리사와 세 명의 사형수,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전부 말할 수 없는 것은 스포 때문이다. 이 소설의 내용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나쁜 서평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소설, 추리소설이나 미스터리 소설은 영화 내용의 영화를 미리 알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격이다. 이 점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여러분의 작품 감상을 위해서 지금까지 내용을 잘 읽고 숙지했다면 내용을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을 귀띔하기로 한다. 앞으로 소설은 요리사 X가 주가 되어 이끌어 가고, X와 사형수, 그의 과거 등이 절묘하게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 복잡하게 얽힌 과정에 반전도 나타나고 사건이 어지럽게 얽히다가 한순간 독자들의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이는 저자 이석용의 글쓰기와 유기적이고 치밀한 구성, 필연적인 반전, 그리고 갈등 해소 등이 이 작품의 격을 높여준다. 출판사가 소개한 적절한 표현의 추전평을 하나만 덧붙인다.

신선한 발상과 시의성 있는 소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각각의 인물에 얽힌 사연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가독성을 높이고 있으며 일종의 심리 드라마로서 마지막 반전도 뛰어나다. 교정, 교도, 사형, 법, 정의 등 가볍지 않은 의제에 대해 진지한 사유를 가능케 한다.

- 유성호 (문학평론가)

 

저자 : 이석용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국민대 건축대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여러 대학의 건축학과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교과서 연구위원과 여러 박물관·미술관 연구에도 참여했다. 제7차 국정교과서(고등학교 건축설계제도) 연구위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연구원(전시분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중층화 연구 공동연구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기본구상 연구 공동연구원 등으로 활동했다.

2011년 첫 장편소설 『파파라치』(청어람)로 제1회 황금펜영상문학상 금상을 받으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마녀 바라쿠다의 정원』으로 2015 한국안데르센상 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장편 소설 『클럽 페르소나』(책밥)를 출간했다. 건축 교양서로 2016년 『건축, 교양이 되다』(책밥)를 펴냈고, 2019년 동화 『내일도 야구』(창비)를 출간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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