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 머츠가 치워드립니다
이언 맥웨시.캐리 매크로슨 지음, 이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는 순간 한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을 떠올랐다. 처음 이 사건이 수면 위로 올랐을 땐 단순 포로노물 제작 유포로 알았으나 내용이 수사로 드러나자 사회적으로 큰 경고음을 냈다. 특히 수많은 피해자들이 아동 및 미성년자들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그 전에는 이런 범죄가 다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데 작은 조직으로 가능한 이유가 인터넷이라든지 디지털 시스템이 곳곳에서 허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범죄의 지능화·흉포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다량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굉장히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지만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로, SNS의 개인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손쉽게 가능해진다는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 『마고 머츠가 치워드립니다』는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의 실상을 열일곱 소녀의 시각으로 파헤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톡톡 튀는 열일곱 살 소녀의 시선으로 진지한 사회 문제를 발랄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칫 진지한 주제 탓에 무거울 것 같은 이야기는 마고 머츠라는 풋풋하고 톡톡 튀는 주인공을 통해 발랄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우리나라에 앞서 고도화·지능화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미국에서 이 소설은 “깊이 있고 흥미진진하면서도, 마땅히 분노해야 할 정의로운 문제를 다룬 소설(Kirkus Reviews)”, “희생자들을 보호하고 정의를 되찾으려는 그녀의 노력에 빠져든다(BCCB)” 등의 찬사를 받으며 언론과 독자들의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주인공인 마고는 루스벨트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개인적인 고민(교실 내 파벌, 연애, 고만고만한 친구 관계 등)보다 사회적 시스템의 미비점, 정치적 캠페인에 더 관심을 두는 그녀는 학교에서도 대표적인 괴짜이자 '아웃사이더'로 통한다. 하지만 또래 고등학생부터 교사는 물론 직장인까지 그녀를 수소문해서 찾아올 만큼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녀가 탁월한 해킹 수준과 탐정 능력을 갖춘 ‘디지털 장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교우관계와 사회성은 자신과 엇비슷하지만, 해킹 능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이웃사촌이자 한 살 위 오빠인 새미 산토스와 한 팀을 이뤄 인터넷에서 감추고 싶은 온갖 스캔들을 은밀하게 삭제한다.

점점 늘어나는 수요에 효율적이면서도 합법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그녀는 아예 ‘MCYE(마고 머츠가 치워드립니다Mertz Cleans Your Filth의 약자)’라는 회사명으로 사업자등록까지 한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정상인일 수 있는 곳”인 스탠퍼드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필요한 등록금을 벌 때까지 고등학생과 사업자로서 이중의 삶을 버티기로 한다.

하지만 졸업반 섀넌의 간절한 의뢰를 듣게 되면서 ‘본캐’와 ‘부캐’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그녀의 일상에도 커다란 균열이 생긴다. 그렇잖아도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며 정신이 없었던 마고는 섀넌의 부탁을 듣기도 전에 거절하려 했지만, 그녀가 ‘루비(루스벨트 비치스의 약자)’라는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의 피해자라는 사실과 그녀 말고도 루스벨트고교의 피해 여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기로 한다. 사회성은 별로 없지만 인지력은 최고라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을 듣는 마고의 활약을 어디까지 기대해도 좋을 것인가? 독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마고는 인터넷 해결사답게 꽁꽁 숨은 악마 같은 성범죄자들의 정체를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응한다.

 

 

독자로서는 이 소설의 가치를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이나, 친구들과의 사교성도 부족한 열일곱 살의 주인공이 사회적 모순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꿰뚫어볼 줄 아는 사춘기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공동 저자 이언 맥웨시, 캐리 매크로슨의 캐릭터 창조력이 탁월하다고 본다. 마고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불륜을 저지르고, 도박 때문에 빚에 시달리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적절한 위치에 있다.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노력도 지녔다. 그리고 목표를 향한 열정과 의지는 남 못지않다는 진취적인 성격을 복합적으로 가진 인물이다. 맡은 일을 하기 위해 감정의 동요 없이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다.

주인공 마고는 실제로 개인을 넘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공공의 영역에서 정의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사실에 몹시 분개한다. 마고가 혼자 힘으로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 ‘루비’를 박살 내고 주모자들을 밝혀낼 것을 다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고는 이웃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섹스팅 스캔들’의 전모가 밝혀지고 난 뒤 가해자 몇몇이 정학을 당했을 뿐, 오히려 피해자인 여학생들 전원이 경찰에서 주관하는 ‘사생활 보호와 신체 지각’이라는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심지어 피해자 중 몇몇도 정학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나 행정당국에서 명확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건 순진한 생각임을 깨닫는다. 정의는 평등한 법이 아니라 재력과 권력 그리고 성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소설 속의 이야기는 너무도 현실적이다. 이야기는 미국에서 일어나지만 우리 대한민국에 적용해도 하나도 다른 게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독자의 독후 소감이다. 독자는 그녀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사회성이 부족한 그녀가 용의선상에 떠오른 이들에게 어떤 기지를 발휘해서 사건을 파헤쳐 나갈지, 과연 그녀의 뜻대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지 그 뒤를 흥미진진하게 쫓아가게 된다.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를 박멸하려는 마고의 노력은 다른 한편으로 은둔형 외톨이 기질을 지닌 그녀가 동굴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과정으로 공동 저자의 은유적 표현이다. 또래와 마땅한 공감대를 찾을 수 없었던 마고는 감성보다 이성으로 사람이나 상황을 분석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때문에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사람을 평가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고, 말도 섞기 싫은 용의선상의 인물들에게 접근해야 하는 일들을 겪으면서 마고는 조금씩 변화한다. 표면적인 대인관계에 배려와 연모, 실망과 증오 등 복잡한 감정이 파고들면서 감정의 고저가 휘몰아치고 마고는 어느새 사람 냄새가 나면서도 한층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볼 줄 알게 된다. 이 소설에는 사회성이 부족하지만 지적 능력은 뛰어난 한 인물의 성장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내는 서사가 담겨있다.

굉장한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특히 미성년자인데도 사회적 인지력은 높고,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아직은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진취적 성격의 열입곱 살 마고는 과연 극악무도한 악마 같은 디지털 성범죄자들의 정체를 밝히고,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할 수 있을까? 마고를 창조해낸 저자들은 이 책이 소설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공동 저자인 경우가 드문데도 이를 원활하고 매끄럽게 처리했다. 사실 현실에서 열일곱 살이란 나이는 아직 미성년자이고 인생관, 가치관 등이 명확한 사람은 드물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공동 저자는 다분히 현실적인 결말로 밀도 높은 인과관계를 완성하고,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두 저자의 성격을 합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 독자의 판단이다. 마고가 가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두 작가의 공통적인 능력 사회 통찰력의 결과 아닌가 싶다. 리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위해를 가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과 범죄에 비해 너무도 부족한 사법 제도의 시스템, 더 나아가 사건이 밝혀져도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불행해지는 사회의 부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문제가 제기되면 수사 담당자가 아닌 정책자들이 관심을 갖고 마땅히 연구해야 한다.

 


 

디지털 최첨단의 시대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이미 우리 사회는 접어들었다. 아직 초기이기 때문에 모든 게 완벽하진 않지만 다른 1~3차 산업혁명 시대보다 시간은 빨라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수많은 개선 과제에서 우선 가장 밑바탕이 되는 AI와 빅데이터, 자율주행과 무인 항공기 발전 등은 상당한 위치에 와 있다고 말하는 시대이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자신의 직업이 없어지는 것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다시피 혁명은 소수가 반대한다고 멈출 수는 없다. 혁명은 가다 멈춘다면 혁명이 아니라 퇴보로 이어진다. 일단 같은 배에 올라탄 우리들은 배가 잘 가고 안정된 속도로, 안착되어가릴 바란다. 초기의 범죄에 대해 마땅한 처벌은 이어지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가혹한 처벌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이 완성된다면 많은 인간이 퇴출될 것이다. 그 많은 인간에 들어가는 첫 번째 순서는 당연히 범죄자들이다. 그것은 어떤 혁명이든 마찬가지 결과라는 게 지금까지의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증명되어 온 사실이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사실 인간의 노동력에 의지하던 산업은 위기를 맞았다. 결국 퇴출됐다. 기존 직업자들의 대부분은 직업을 바꿔야 했다. 어떻게?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구제 받는다. 퇴출될 사람들은 범죄자들이다.

사회가 바뀌면 바뀐 사회라는 것을 대중들이 인식하기에 범죄자 퇴출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또 범죄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더 강력한 처벌을 할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 와서도 이 소설 속의 사람들은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아동이나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 당연히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는 느끼겠지만 3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더 강력한 처벌 방식을 선택했다. '신종' '다수 피해' '큰돈' 등의 범죄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 기존 법보다 더 엄하게 처벌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간에서 저지른 범죄는 디지털 시대에는 이 작품 속의 범죄자는 훨씬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인간의 순리다.

 


 

섀넌은 그린바움 직원들이 보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서 내게 조심스레 핸드폰을 건넸다. 곧이어 나도 이유를 알게 됐다. 한눈에도 ‘루스벨트 비치스’는 비밀번호 보안이 걸린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보복성 성 영상물-옮긴이) 사이트였다. 우리 학교 여학생들의 반라 또는 전라 사진이 즐비했다. 하나같이 본인의 허락 없이 올린 사진들이었다. 여자애가 누군가와 섹스팅을 하면 그 사진들이 ‘루비’에 실린다. 전 남자친구가 홧김에 올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카일처럼 악감정은 없지만 미성년 여성들의 벗은 몸 사진 모음에 단순히 몇 장 보태고 싶어 하는 놈들이 올리는 경우도 있다.(p.68)

 

저자 : 이언 맥웨시(Ian McWethy)

50개 넘는 나라에서 공연한 희곡을 쓰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단막극을 만든 베테랑 작가로 손꼽힌다. 아내인 캐리 매크로슨과 함께 《마고 머츠가 치워드립니다Margot Mertz Takes It Down》, 《Margot Mertz for the Win》을 집필했다.

 

저자 : 캐리 매크로슨(Carrie McCrossen)

배우 겸 작가 겸 코미디언. 〈The New Yorker’s Daily Shouts〉, 〈the Lifetime network〉, 〈Funny or Die〉에 글을 기고했으며, 남편인 이언 맥웨시와 소설을 썼다. 아들에게 수제 나무 장난감을 사주는 걸 즐기며, 스스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역자 : 이신

영미권 도서 번역가. 원저자의 문체와 의도를 최대한 살리면서 한국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을 추구한다. 옮긴 책으로는 문학수첩의 [펜더개스트] 시리즈와 [셀렉션] 시리즈를 비롯해 《죽기 위해 산다》, 《신비한 소년 44호》,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블레이드] 시리즈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