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5
에밀리 브론테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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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폭풍의 언덕』은 서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비운의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남긴 유일한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폭풍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량한 대지 위에 자리한 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은 1801년 영국 요크셔 지방이다.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부터 황량한 곳이라는 느낌을 물씬 풍긴다. 우리로서는 동해가 가까운 산골의 한 마을쯤으로 추정된다. "1801년, 방금 집주인 댁에 다녀왔다. 그는 앞으로 내가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이웃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가 아닌가! 잉글랜드 땅을 샅샅이 뒤졌다 해도 세속의 번잡함에서 이토록 완벽하게 동떨어진 곳을 찾아낼 수는 없었으리라. 사람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다시없는 천국이다."(p.11)

이 시기는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엄청난 세계 재패의 엄청난 무력과 경제적 부를 충분히 쌓아 안정기로 접어들 무렵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 최강국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울 정도록 세계 거의 모든 대륙에 식민지를 두고 지배할 때다. 19세기 접어든 대영제국으로서 위상은 대적할 나라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부를 수탈한 경제력은 산업혁명의 주 동인이 되었고, 무력뿐 아니라 특히 산업혁명으로 기술혁신과 이에 수반하여 일어난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까지 모두 영국이 나서 이끌던 시대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요크셔 지방은 지금은 여러 주로 나뉘었지만 당시에는 하나의 주로 많은 인구가 살던 곳이라 한다. '요크셔'라는 말은 바이킹 왕국이었던 '요르빅'과 고대 노르어나 고대 영어에서 ‘돌보다’는 뜻의 의미의 '샤이어'가 합쳐져 이루어진 단어가 보여주듯이 막강한 힘을 가진 곳이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흔히 요크스라고도 불리며 문화와 지역 산업 측면에서 영국 잉글랜드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현재의 요크셔는 잉글랜드 북부의 대표 지역이긴 하지만 여러 개의 주로 나뉘었다고 한다.

 


 

소설가 백온유는 책 〈추천사〉에서 "시시때때로 폭풍우가 들이치는 음산하고도 황량한 저택, 위더링 하이츠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기묘하고도 매력적이라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관음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물론 작품 속의 요크셔는 황량한 곳이다. 백온유는 소설의 두 주인공에 대한 인물의 성격(캐릭터)을 먼저 짚어본다. "히스클리프는 그 어떤 작품 속 인물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독보적인 야만성과 비정함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클리프의 마지막을 목격하는 순간, 내 마음속에 슬픔이 솟구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 인물이 일생 동안 느낀 수많은 감정이 나의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자 참담함을 능가하는 연민의 감정이 나를 장악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 캐서린은 자기감정에 충실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다. 다소 일관적이지 않고 자주 신경증적인 면모를 드러내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돌려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강인함, 파멸을 마다하지 않으며 영혼을 불사르는 이 여성의 힘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얼핏 광인과 구별되지 않는 강력하고 정렬적인 캐서린의 사랑은 히스클리프의 생애를 사로잡는다." 두 주인공의 성격이 뚜렷하다. 이 두 주인공의 성격을 묘사한 어떤 평보다 더 적확한 의미가 두드러지는 성격 묘사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소설 『폭풍의 언덕』이 현재까지 고전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게속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가 주인공들의 뚜렷하고 개성 있는 성격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낸 저자 에밀리 브론테의 능력에 따른 것이지만 단 한 권의 소설로 고전 문학으로 격상된 이유는 독자로서는 독창적 인물의 창조와 인물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과의 연관 관계가 잘 반영되었기에 독창적 성격이 일반적 성격의 대표성을 띠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독자가 이 소설을 처음 읽은 때는 10대 후반이었다. 그때는 인물의 성격이라든지 시대상보다는 스토리의 전개에 초점을 맞추고 읽었기에 인물의 독창성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더욱이 그때 읽었던 책은 원문 전체를 번역 게재한 것이 아니라 발췌본이었기에 스토리 중심으로 쓰여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폭풍의 언덕』 저자 에밀리 브론테는 히스클리프를 통해 자신에게서 캐서린을 앗아간 신분 체계, 완고한 인간들과 그들의 가문, 그리고 초라하느 자신의 생을 원망하며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인간상을 보여줬다. 당시 영국 귀족 가문의 일부가 보여주는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소설가 백온유에 따르면 소설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오랜 세월 악행을 일삼는다. 이 흉악하고 오만불손하며 미개한 인물이 지키고자 했던 유일한 기준이자 목표를 가늠하자면 그의 사투가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히스클리프의 발악은 연인의 부름 앞에 초월적인 형태로 막을 내린다."고 말한 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사랑은 무자비한 것이고, 불가해한 것이며 천박하고 상스러우며 순수한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가는 이어 "에밀리 브론테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연약하고 남루한 인간의 내면을 낱낱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일까. 고작 서른 살에 요절한 작가의 유일한 소설이라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 내면의 극한을 그려내었고, 인간의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하며 간악한 인간에게 현혹되는 경험과 광적이고 야만적인 감정이 지극한 사랑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이 소설에서 배경의 시기가 1801년부터 시작되고, 당시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당시 대영제국이라는 시공간의 배경에서 귀족들의 삶과 사고방식, 남녀 결혼 등에 대한 가치관과 사랑 등이 소설 속에 모두 나타나고 있다. 저자 에밀리 브론테가 벽촌에서 나고 자라면서 현실에서 여러 가지 부조리하고 비이성적인 관습의 횡포를 직접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도 관습적 현실의 벽에 막혀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당시 여성의 사회적 대우, 관습에 묶인 행동의 제약 등의 부당함을 소설 속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으로 묘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잔인한 복수로 대갚음하려는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집착을 작품에서 강렬한 필치로 담아냈기에 독자가 해본 생각이긴 하지만. 더욱이 이 작품은 발표 당시(1847년)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 인물 묘사"로 혹평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저자가 사망한 이후 작품의 비극성과 시성을 인정받으며 서머싯 몸과 버지니아 울프로부터 극찬을 받았다는 사실은 문학사를 통해 밝혀졌다. 세계 10대 소설은 물론 영문학 3대 비극으로 손꼽히게 되면서 소설의 진가가 인정되었다고 하니 독자로서는 당시 여성의 사회 진출은 우리 조선시대처럼 힘들었고,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은 또한 지난 170년간 수많은 연극과 영화, 오페라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고전 중 하나임가 되었다. 독자 역시 이번 출간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발췌본과 영화로 먼저 『폭풍의 언덕』을 만났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고, 특히 영화를 보았을 때는 등장하는 귀족들이 특별히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는데, 이 소설 완번본을 보니 어느 사회나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은 서로 화합하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변하지 않은 만큼 이번에도 꽤 흥미있게 읽었다. 다만 인물의 성격 규정을 먼저 읽고 보니 주인공이나 인물들의 성격이 한층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격정적인 사랑과 증오, 그리고 처절한 복수가 제3자의 입을 통해 회상체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즉 작품의 화자는 내레이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영국 북부의 조그마한 마을에 위치한 '워더링 하이츠'라는 저택에 록우드라는 사람이 찾아온다. 그는 이웃에 있는 스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를 든 사람으로 집 주인을 만나기 위해 워더링 하이츠를 찾은 것이다. 눈보라 때문에 발이 묶인 그는 가정부 넬리 딘으로부터 워더링 하이츠의 언쇼 집안과 스러시크로스의 린튼 집안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된다.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 언쇼 씨는 리버풀에 일을 보러 갔다가 고아 히스클리프를 데려온다. 그는 자신의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과 함께 그를 친자식처럼 키운다. 힌들리는 아버지가 히스클리프를 지나치게 아끼는 것에 반감을 품고 그를 미워하지만, 캐서린은 그와 사이가 좋다. 아버지 언쇼가 죽자, 힌들리는 히스틀리프를 하인 취급하며 학대한다. 그럴수록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고 사랑으로 발전한다. 캐서린은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스러시크로스 저택의 린튼 가족과 만나 친분을 쌓게 되고, 얼마 후 그 집 아들인 에드거의 청혼을 받게 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면서도 신분에 대한 미련 때문에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것을 안 히스클리프는 배신의 상처를 안고 종적을 감춘다. 3년의 세월이 흐른 뒤, 히스클리프는 부유한 신사가 되어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캐서린에 대한 사랑과 힌들리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히스클리프는 우선 아내를 잃고 크나큰 상실감에 빠진 힌들리에게 접근해 그를 도박으로 파멸시키고 워더링 하이츠를 손에 넣는다. 또한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을 하인으로 부리며 학대한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 결혼하고, 급기야 캐서린에게까지 손을 뻗쳐 에드거를 괴롭힌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히스클리프에게 고백하고 딸 캐시를 낳다가 숨을 거둔다.

한편,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이사벨라는 아들 린튼을 홀로 낳아 기르다가 세상을 떠난다. 에드거는 조카 린튼을 데려다 키우려하지만, 히스클리프에게 발각되어 빼앗긴다. 그리고 그 역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히스클리프는 스러시크로스 저택마저 손에 넣기 위해 계략적으로 캐시와 자신의 병약한 아들 린튼을 결혼시킨다. 린튼은 곧 죽음을 맞이하고 이로써 그의 잔혹한 복수는 끝이 난다. 록우드가 몇 달 동안 스러시크로스 저택을 떠났다가 다시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했을 때 그는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영혼을 찾아 밤낮없이 헤매다가 쓸쓸히 숨을 거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복수의 끝에서 새롭게 싹튼 헤어턴과 캐시의 진실하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도 전해 듣는다.

 


 

저자 :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Emily Jane Bronte, 필명 : 엘리스 벨 Ellis Bell)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1818년 영국 요크셔주 손턴에서 목사인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랜웰 사이에서 여섯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중 셋째 딸이 『제인 에어』로 영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작품을 쓴 샬럿 브론테다.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남매들은 10대 초반부터 산문과 시로 습작을 한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하워스 교구에서 자라났는데, 세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청소년기에 세 명의 언니들도 병사했다. 월터 스콧, 바이런, 셸리 등의 작품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짓고 일기 쓰기를 즐겼다. 에밀리는 1847년 엘리스 벨이라는 남성의 가명으로 『폭풍의 언덕』을 출간한다. 목사의 딸로서 교사 생활을 잠깐 한 것이 전부인 평범해 보이는 그녀가 모든 사람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는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1846년 샬럿이 에밀리의 시를 발견하고는 출판사에 시집 출판을 문의하여 세 자매의 가명을 제목으로 한 공동 시집 『커러, 엘리스, 액튼 벨의 시 작품들』을 냈다. 1847년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그리고 샬럿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었다. 언니 샬럿이 쓴 『제인 에어』가 출간 즉시 큰 인기를 얻으며 성공을 거둔 것과 달리 『폭풍의 언덕』은 출간 당시 작품 내용이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에밀리는 마치 자신이 직접 그 폭풍을 맞은 듯, 작품을 출간한 이듬해인 1848년, 폐결핵에 걸려 30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한 권의 대작으로 국내 소설가로만 알려져 있으나, 영미권 대학의 영문학과에서는 중요한 시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에밀리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잇따른 죽음을 경험해야 했지만 상상력을 통해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불렀”으며, 피아노와 외국어를 독학하면서 좁은 집에 머물렀지만 “성스러운 목소리로, 현실의 세상에 대해 속삭”였다.

 

역자 : 이신

 

영미권 도서 번역가. 원저자의 문체와 의도를 최대한 살리면서 한국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을 추구한다. 옮긴 책으로는 문학수첩의 [펜더개스트] 시리즈와 [셀렉션] 시리즈를 비롯해 《죽기 위해 산다》, 《신비한 소년 44호》,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블레이드] 시리즈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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