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 야만과 지상낙원이라는 편견에 갇힌 열대의 진짜 모습을 만나다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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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해외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지만 불과 30년여 전만 하더라도 그리 쉽지 않았다. 구소련이 붕괴되기 전에 그랬다. 뿐만 아니라 해외 여행은 경비가 만만찮은 데다 비자를 요구하는 나라들이 많아 무척 제한적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유로운 해외 여행이란 '아직 먼' 이야기이고 꿈 같은 현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해외 여행 자유화가 실시됐다. 정말 자고 일어나 보니 해외 여행 자유화 조치가 발표됐고, 갖고 나가는 현금도 1인 5,000달러에서 1만 달러로 두 배 늘었다. 획기적이었다. 당시 YS 정부의 '세계화' 계획에 따른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가 무너지고 국교가 정상화되는 동유럽, 러시아,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도 국교 정상화 맞춰 비자도 필요없이 여권만 가지고 가면 됐다. 여권만 있으면 여행국의 입국은 OK였다. 너도나도 해외 여행 붐이 일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국내 신혼여행지 1위로 꼽히던 국내 관광업계는 불황의 시기가 됐다. 
독자도 그때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었다. 영어도 안 되고, 홀로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패키지 여행으로 첫 해외 여행의 테이프를 끊었다. 관광업체의 알선으로 다녔기 때문에 여행이라기보다 시찰이나 연수에 가까웠다는 생각이다. 관광업체는 수익을 목적으로 모집을 하기 때문에 겉보기에 화려한, 국내에서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만으로 구성됐다. 주마간산식 관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태어났으면 유럽 여행 한 번쯤은..."이라는 생각으로 앞다퉈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정말 말 그대로 붐이 일었다. 불과 몇 년 뒤 IMF라는 엄청난 시련이 닥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규제에 묶였던 해외 여행 자유화로 '돈 모아 해외 여행'이라는 평생 소원이 될 지경이었다. 주부들은 친목계 등을 통해 해외 여행 계를 만들어 너도나도 해외 여행을 갈 정도였다. 그야말로 정부의 해외 여행 억제 조치에서 풀려난 사람들의 무분별한 해외 여행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그것은 '여행'이 아니고 '관광'이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배움'보다는 '사치'였다. 국민 소득이 오르고 얼마간의 경제적 여유가 일시에 해외 여행으로 몰려서 그때부터는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한국말을 조금씩 할 줄 아는 관광지 상인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관광지에서 쇼핑은 '면세품'이라는 이유로 있는 대로 다 사가지고 돌아올 심산으로 사들여 왔다. 말 그대로 돈을 물 쓰듯 했다. 물론 모두가 그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IMF에 해외 여행 붐이 한몫 거든 셈이다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다 지나간 이야기라 쉽게들 말하지만 학교에서 이름만 배웠던 IMF가 살벌한 곳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열대 지역 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개념을 제시하는 이 책 소개를 하기에 앞서 사설이 너무 길었던 듯하다. 독자가 여행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이 앞서 몇 마디 덧붙인 것이니 양해 바란다.

이 책 『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이 새로운 여행 개념뿐만 아니라 여행의 원래 뜻에 가장 가깝게 쓰여졌기에 사적인 이야기를 먼저 풀었다. '관광'과 '여행'의 참뜻을 알고 여행을 즐기자는 의미에서다. 지구의 기후별로 나눈 열대 지역은 일년 내내 덥고 햇볕에 탄 새까만 피부의 사람들로 연상된다. 아직도 문명의 혜택을 못 받는 '미개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 곳이다. 저자 이영민도 책에서 지적하지만 "열대 지역의 사람들은 모두 게으르고 위험하다는 인식은 역사적으로 덧씌워진 편견"일 뿐이다. 무력 침입해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 사람들을 '노예'로 부린 사람들이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덧씌운 '의도적 편견'이다. 실제로 이 열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비문명화된 곳이 아직 많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식민지로 만들어 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었다. 우리도 식민지를 겪었지만 똑 같은 논리로 일제 강점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들의 말이 얼마나 사리에 맞지 않는 비논리적 말인지 알 수 있다.

 

 

열대 지방 여행이 꺼려졌던 이유는 감염병이나 너무 더운 날씨에 의한 풍토병 등의 위험이 크고, 교통도 불편한 데다 치안마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점은 있을 것이다. 사실 독자도 몇 번이나 열대 지역 여행을 가려고 마음먹었다가도 매번 건강상의 우려로 계획을 철회하곤 했다. 전쟁 중인 나라에는 미리 외교부나 문화부 등에서 여행을 자제하는 단계별 경보를 주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전쟁에 휩쓸려 목숨을 잃거나 할 우려는 크지 않다. 다만 예방 접종이나 풍토병에 대해 지식이 없이는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긴 하다. 치안도 다소 불안한 곳이 많지만 아무리 뒤떨어진 문명 시대에 살고 있어도 이쪽이 공격하지 않는 한 그들의 공격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또 열대 지방은 대부분 교통이 불편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낯선 기후에 오래 노출될 경우 풍토병은 물론 각종 감염병으로 고생할 수 있다는 경고는 무조건 수용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은 표제어에도 나오듯이 '지리학자'로서의 여행이라서 탐사의 성격이 강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순수 여행의 목적임이 맞다. 지리학에 관한 지식을 지역에 관한 여행 상식에 슬쩍 덧붙이는 형식으로 쓰였다. 앞서 말한 대로 기후에 의해 열대, 아열대, 온대 등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경계가 북위 몇 도? 하는식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대체로 산이나 강, 바다 등의 경계에 따라 구분되어짐을 확연하게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열대림이라고 하는 지역도 열대 지방부터 아열대 지역까지 걸쳐 발달된 곳이고, 외부와의 접촉이 어렵고, 강을 따라 나라의 경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로 대면할 기회가 없는 현실에서 아무래도 소통이 불편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경계할 수밖에 없을 터, 소통이 안 된 곳은 탐험 정신을 앞세우지 말고,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는 여행객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지리학자의 여행답게 중요한 지리적 정보 중 하나인 기후를 중심으로 카리브해의 휴양지부터 생명의 보고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전 세계 곳곳의 열대 지역을 여행한다. 기후는 독특한 자연환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기후의 특성을 이해하고 여행지를 바라본다면 더 깊이, 더 많이, 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첫 번째 여행지로 ‘열대’를 선택했을까? 우리에게 가장 낯설면서도 친숙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위험하고 불편한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쉽게 여행지로 선택하기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답한다. 저자는 이 책에 열대에 덧씌워진 오해와 편견을 거둬내고 총천연색의 다양함이 살아 숨쉬는 있는 그대로의 열대를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1부에서는 열대 지역의 자연환경과 독특한 지리적 현상을 정리하고, 2부에서는 가장 전형적인 열대 기후 특성이 나타나는 보르네오섬, 아마존, 빅토리아호,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열대 고산지대, 열대 바다휴양지의 6개 지역을 중심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열대의 자연이 여행자들에게 어떤 매력을 선사하는지 담아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열대 지역에서 활발하게 벌어져왔던 교류의 흔적들과 그곳 사람들의 삶과 그 삶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세 가지 사실을 머릿속에 남기게 될 것이다. 첫째, 열대 지역의 사람들은 모두 게으르고 위험하다는 인식은 역사적으로 덧씌워진 편견이라는 점, 둘째 열대 지역의 자연환경은 무덥고 습한 게 전부가 아니라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다는 점, 셋째 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열대우림 파괴와 같은 일들이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열대에 덧씌워진 유토피아의 이미지와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우리가 열대를 소비하는 방식이 잘못된 이미지에 근거했던 것이 아닌지를 성찰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열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오해와 편견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이 책은 ‘다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위한 기초가 될 것이며, 독자들은 지리학적 여행이 어떤 앎과 경험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는지도 함께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은 한 가지 더 있다. 열대는 우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세계 같지만 실은 그곳의 삶이 우리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열대 동물들의 서식처인 열대우림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기름야자에서 짜낸 팜유는 전 세계에서 소비되고 있으며, 보르네오섬의 아름드리 열대 나무는 원목으로 수출되어 가구 제품의 원료가 되고 있다. 아마존 개발에 따른 열대우림의 파괴는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고 있다. 이를 열대 지역 사람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열대가 주는 풍요로움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리는 것은 결국 선진국 사람들이다. 이런 깨달음은 오늘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누구나 깨우쳐 다시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해야 한다는 다짐을 제공한다. 열대 지방 여행은 인간이 편의를 위해 수많은 지구 환경을 파괴된 현장에서 파괴자들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장소·사람·문화의 관계를 연구하는 지리학자의 여행은 겉으로 드러난 것 너머에도 시선이 닿는다. 낯선 것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고, 낯익은 것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한다. 이 책은 지리학적 여행이 어떤 앎과 경험의 즐거움을 선사해줄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장 낯선 열대라는 지역을 통해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저자 : 이영민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아시아 여성학 협동과정 교수.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 지리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소와 사람, 그리고 문화의 관계를 밝히는 인문지리학을 연구한다. 특히 여행과 국제 이주에 초점을 맞추어 글로벌 이동성과 장소 재구성의 관계를 밝히면서 그 속에 펼쳐지는 인간의 삶과 행복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지리학자의 인문여행』, 『나를 읽는 인문학 수업』(공저) 외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으며, 『문화·장소·흔적: 문화지리로 세상 읽기』, 『포스트식민주의의 지리』, 『국가·경계·질서: 21세기 경계의 비판적 이해』, 『쿠바의 경관: 전통유산과 기억, 그리고 장소』 등 다수의 번역서를 공동으로 출간했다. 또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온·오프라인 미디어에 여행의 지리학, 국제 이주와 한국의 다문화 현상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아울러 지자체 평생교육원, 공공도서관, 백화점 문화센터, 초중고 교사연수와 인문학 특강 등에서 관련 내용을 전파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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