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사과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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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늑대의 사과』는 매우 강렬하다. 담고 있는 뜻이나 저자 최인의 표현도 내용 못지않게 적나라하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의 자신의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 표기가 탈북해 대한민국에 와서 겪고 직접 체험한 일을 즐기는 것 같지만 결코 바람직한 체험이 아니다. 매우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인 듯하다. 더욱이 출판사들의 행태는 표기의 소설에 대해 작품성 여부를 떠나 돈과 연결해 생각하기 때문에 탈북자 입장으로 작품 출판마저 녹록지 않아 좌절한다. 북한 김일성대 문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로서 이 때문에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탈출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는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들을 경험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면 할수록 자신이 이상해져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차츰 소외되고 낯설어지고, 기형화되어 간다는 사실에 몸부림친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혐오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

표기는 자신이 목적하는 대로 소설을 쓰고는 있지만, 남쪽 출판사들은 하나같이 그의 글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고루하다며 출판을 거절한다. 결국 파격적인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표기는 신작 집필에 들어간다. 그가 집필을 시작한 소설은 '블러드 서킹'을 하는 내용이다. 즉 평범한 샐러리맨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피를 먹는다는 줄거리다. 블러드 서킹을 중간쯤 썼을 때 표기는 난관에 부딪친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상황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표기는 사람의 피를 직접 맛보기로 하고 대상을 찾아 나선다.

 


 

출판사의 거절은 사실 이 작품 때만 아니다. 저자의 첫 번째 장편인 『문명, 그 화려한 역설』은 인문학적이고 종교적이고 문명적인 요소를 갖춘 소설이다. 두 번째 장편 『도피와 회귀』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학적 문체로 쓰여지고, 철학적 이해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세 번째 장편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선과 악, 신과 천사, 악마의 이야기이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이성과 오성과 명성이 무엇인지 묻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품는 동시에 줄거리를 끌어가는 스피디한 문체, 신선하고 유쾌한 발상으로 이어지는 대화체, 세분화된 챕터 형식의 구성은 쉴 틈 없이 책장을 넘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제 의식이 뛰어나면서 재밌는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은 단언컨대 흔치 않다.

이에 반해 『늑대의 사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재미만을 위해서 전개되고 진행되어 간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날카로운 묘사와 섬뜩한 장면, 자극적인 요소가 이것을 말해 준다. 소설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소설을 읽고 나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소설 속에 소설이 있다는 점이다. 즉 『늑대의 사과』라는 작품 속에 다른 소설이 동시에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소설은 결국 끝부분에서 하나가 된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두 가지 부분에서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 하나는 인간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와, 또 하나는 인간의 내면에, 우리의 내면에 주인공과 같은 악마성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자문이다. 결국 소설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한 셈이 된다. 위와 같은 궁금증을 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된다.

 

 

저자의 전작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는 신의 종말, 천사의 저주, 악마의 죽음, 인간의 타락, 짐승의 멸종을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논하고, 노래하고, 추억한다. ‘악(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유에 깊이 매료된 저자가 철저히 악마화 된 인간, 인간을 대신해 죽은 신, 천사를 타락시키는 악마를 서사시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은 신의 종말, 천사의 저주, 악마의 죽음, 인간의 타락, 짐승의 멸종을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논하고, 노래하고, 돌이켜 생각한다. 역설적이면서도 부조리한 회억은 과거를 되새기고, 반성하고,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저주와 조소와 비난의 읊조림이다. 이미 죽어서 궤란(潰爛)의 무덤 속에 자리 잡은 미래는 신조차도 살릴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 되살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차라리 창조주를 어둠의 동공 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하여 인간으로부터 버림 받은 신과 천사와 악마는 궤란의 무덤 속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재확인한다. 얼핏 들으면 단테의 신곡 같고, 읽다보면 철학서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저자 최인의 이력과 전작을 살펴보면 좀더 이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저자는 등단 전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했다. 범죄와 악에 대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으리란 독자의 판단이다. 사실 에로티시즘에 대한 저자의 직접적이고 강렬한 묘사는 이미 단편집 『돌고래의 신화』(2022. 4, 글여울刊)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들이 출판사에서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되기도 했다. 그래서 집필한 『늑대의 사과』는 저자 최인이 직접 출판사를 찾아가지 않았으리라. 이미 저자는 자신의 출판물을 위한 출판사를 별도로 설립했다.

 


 

『돌고래의 신화』에서 저자는 단편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 포우와 오 헨리가 즐겨 쓴 '충격요법'과 '반전기법'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집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 빠르게 전개되는 한편, 극적 반전을 이뤄 독자를 글 속으로 몰입시키는 데 성공한다고 평가된다. 또한 치밀하고 세밀한 점묘법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 녹아 흐르는 에로티시즘은, 책을 읽는 흥미를 더 한층 배가시킨다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들은 단편소설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충격요법, 반전기법, 점묘법 등은 단편소설의 중요한 기법에 해당되는 일들이다. 단편소설이 대부분 200자 원고지 70~80장 분량임을 감안한다면 장편소설처럼 사건이나 인물에 구구한 설명도, 장황한 묘사도 필요없다. 오히려 소설 전개나 반전에 방해가 될 뿐이다.

또 전작 『도피와 회귀』(2021. 10, 글여울刊)를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문체와 소설 내용에 대해 쉽게 수긍하리란 독자의 생각이다. 『도피와 회귀』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로운 삶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의 끝까지 치닫는다. 그것이 이성을 상실하고 감정을 잃고 지성과 오성을 벗어 던지는 일이라도 상관이 없다. 주인공의 이같은 행위는 소설의 시작과 함께 이행되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극단적이 된다. 인간은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위해 일하고 움직이고 경쟁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바친다. 그것이 짐승이 되고 악마가 되고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본래 최인 작가의 소설은 인문학적이면서 철학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을 보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이번 작품 『늑대의 사과』는 저자의 지식 탐구와 사유가 매우 깊어짐을 느낄 수 있어 더 흥미가 있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등장한 디지털 문명, 비접촉 소통, 거기에 따른 인간의 원초적 고통과 좌절감 등을 잘 버무려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자본주의와 기독교 문명을 처음 접하는 사회주의 출신인 탈북자 주인공 표기가 서른 다섯의 나이에 겪을 만한 일은 모두 다 동원된다. 특히 디지털 문명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되어 가고 있는 인간 중심, 인본적 사고 방식에서 멀어진 젊은이들의 놀이 행태도 쾌락이나 단초적 감정만 발달한 비이성적 생물체로 생각될 만큼 삭막한 인간성을 드러낸다. 사회주의 체제의 산물이라고 생각한 체제와 집단 의식에의 몰입이 일상에 배어들어 있다. 오직 생물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말기적 현상과 사회주의 비이성적 발전의 끝이 거의 같다는 저자의 사유 덕분일까? 저자 최인의 글에서는 늘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면서 극단적인 행위를 거리낌없이 행하는 '악(惡)'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지금 세상을 나누는 잣대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기독교와 비기독교로 흑백 가리듯 나뉘어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의'나 '이념', 그리고 '종교'보다 '인간'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짙게 깔리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오직 인간이 만든 소사이어티로 인해서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만든 제도와 규칙이 이제 인간의 목을 조르고 있다. 경쟁과 속도와 집단적이기에 내몰린 인간은 이성은 물론이고 본성까지 잃어버렸다. 현대인인 우리는 인간이 만든 도시 속에서 천천히 짐승이 되어 가고 있다.'(p.76)

 


 

'늑대의 사과'란 표제어는 서양 문명에서 '신이 내린 채소'라고 부르며 즐겨 찾는 토마토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붉은색의 토마토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 시작 전 '서문'에 두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붉은색 토마토를 땡감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외국에서 온 빨간 가지, 이탈리아에서는 황금열매, 즉 사과라고 칭했다. 학술적으로 부르는 라틴어 학명은 〈늑대의 복숭아〉이다. 반면 중남부 유럽에서 만들어진 학술명은 〈늑대의 사과〉이다. 동물을 잡아먹는 늑대가 복숭아나 사과 같은 것을 먹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늑대의 사과〉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는 배경이 있다. 토마토가 유럽에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이 열매를 저주와 파멸의 독초라고 생각했다. 북부 유럽에서는 이보다 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토마토를 먹으면 사람이 흡혈 늑대인간으로 변한다고 믿었다. 그 시대에는 마녀가 고약을 사용해서 사람을 늑대로 만든다는 풍문이 돌던 때였다. 이런 시대에 중미에서 들어온 눈이 부시도록 새빨간 열매는 유럽인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주었다.

 

저자 : 최인(崔仁鎬)

 

본명은 최인호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했으며 2002년 『문명, 그 화려한 역설』로 1억 원 고료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2019년 12년간 ‘최인소설교실’을 운영했다.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하였다. 저서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킬리만자로 카페』, 『뒤로 가는 버스』, 『장미와 칼날』, 『크리스마스 전야』, 『그 바다엔 낙타가 산다』, 『인베이더』, 『그들 그리고』,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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