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잃어버린 집 -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비사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평점 :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c/b/cbj2020/IMG_27-2-1_3.jpg)
일제에 의해 강제 한일합방된 후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는 일제의 식민 지배로 들어갔다. 이후 우리는 근대사에서 우리의 역사를 쓰지 못했고, 우리나라를 다스리던 조선의 마지막 왕들도 강제 폐위됐다. 고종과 순종이 일제의 입맛에 따라 차례로 폐위되었다. 이로써 518년 간 이어오던 조선이란 국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종은 1898년 청나라의 연호를 폐지하고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정하고 '광무'란 연호를 사용했다. 지금의 우리 국기인 태극기의 원형도 이때 처음으로 정식 국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종은 정식으로 황제라 칭했고, 자신을 칭할 때 '과인'을 '짐'으로 바꿨다. 그러나 이미 일제의 침략과 국력은 청과 러시아를 넘어 아시아 전역에 손을 뻗친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한 목표를 착착 진행해 나갔다. 역사는 고종과 그의 아들 순종이 이어받아 3년간 왕으로 앉아 있는 유명무실의 황제 칭호도 1910년 한일합방으로 박탈됐다. 순종이 역사적으로 마지막 왕으로 기록됐다.
고종은 조선 말 외세의 침략이 지속적으로 무력을 앞세워 나라를 개방하라는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일제에 의해 강제 폐위되고 순종마저 짧은 기간 명칭만 왕이지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다. 왕이 힘이 없으니 왕실 가족의 운명은 바람 앞에 촛불 신세였다.
이 시기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의 삶을 소설로 쓴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는 왕실 식구들의 비참한 운명과 삶의 모습을 그려내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돼 베스트셀러 작가로 뛰어올랐다. 작가 권비영은 대한제국과 운명을 함께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과 직계손 이구의 이야기를 이 책 『잃어버린 집』에 담았다. 그들의 마지막은 비참하고 잠시도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감옥 같은 일본의 집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c/b/cbj2020/temp/IMG_27-2-4.jpg)
이은은 덕혜옹주의 오빠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다. 이은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1907년 형인 순종이 즉위한 뒤에 황태자가 되었고, 1926년 순종이 죽은 뒤에는 이름뿐이지만 형식적으로 영친왕의 지위를 계승했다. 1907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제에 의해 일본 왕족인 마사코와 정략결혼을 하였으며, 일본 왕족으로 대우를 받으며 일본군 장성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다. 우리는 그를 영친왕으로 부른다. 영친왕 이은의 어머니는 순헌황귀비 엄씨이다. 이은은 1900년 영친왕(英親王)이라는 봉호를 받았으며, 1907년 이복형인 순종이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황위에 올랐을 때 형인 의친왕을 제치고 황태자가 되었다. 그리고 1910년 일제의 국권침탈로 순종이 ‘이왕(李王)’으로 불리게 된 뒤에는 ‘이왕세자’가 되었다가 1926년 순종이 죽은 뒤에는 제2대 이왕으로 즉위하였다.
영친왕은 1907년 황태자가 된 뒤에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를 후견인으로 삼아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했으며, 1911년 일본의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에는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졸업하였다. 1920년 일본의 왕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 方子, 한국이름 이방자)와 결혼하여 이듬해 아들을 낳았으나, 첫째아들인 이진은 1922년 한국을 방문하던 중에 사망했다.
이은은 1926년 순종이 죽자 창덕궁에서 이왕(李王)의 자리에 올랐으나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1년 둘째아들인 이구(李玖)를 낳았고, 일본 육군 장교로 복무하여 1940년 육군 중장이 되었다. 1943년 일본의 제1항공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복무하다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에 예편되었다. 그리고 1947년 일본 헌법이 시행되면서 이왕의 지위를 상실했으며, 그해 10월 18일에는 일본 왕족의 명단에서도 제외되어 일본 국적도 잃었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c/b/cbj2020/IMG_27-2-18_3.jpg)
영친왕은 상해임시정부로의 망명까지 추진하며 반일정신을 고수한 의친왕 이강(李堈)을 제치고 일제의 영향으로 황태자의 자리에 올랐을 뿐 아니라, 일본 왕족과 결혼하고 일본군 장성을 지내는 등 일제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영친왕의 한국으로의 귀환은 반대에 부닥쳐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57년 일본 국적을 취득하였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인 이구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59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5·16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인 1962년 12월 15일 한국 정부에 의해 영친왕 부부의 대한민국 국적 회복이 고시되면서 이듬해인 1963년 11월 22일 병세가 악화된 상태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뒤 병상에 있다가 1970년 5월 1일에 사망하여 아버지 고종이 묻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 영원(英園)에 안장되었다. 사후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그에게 의민(懿愍)이라는 시호를 붙여 의민황태자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문중에서 사적으로 붙인 것으로 공적인 시호는 아니라고 한다.
'친왕(親王)'이란 본래 황제가 귀비나 후궁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시대에 따라서는 황태자를 제외한 황제의 아들이나 황제의 형제들에게 사용되기도 했다. 〈고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1900년(고종 37) 8월 8일 탁지부 대신인 조병식이 친왕(親王) 봉호망단자에 관해 고종에게 보고하자, 고종이 직접 의친왕과 영친왕의 봉호를 정했다고 전해진다. 곧 영친왕은 이은(李垠)의 대한제국 당시의 공식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소설 『잃어버린 집』은 영친왕 이은과 그의 아들 이구의 삶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제호로 쓰인 '아름다운 집'은 영친왕의 부인인 마사코와 함께 살던 일본의 집을 의미한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c/b/cbj2020/temp/IMG_27-2-14_1.jpg)
이 소설은 권비영 작가가 오랜 세월 품어 온, 『덕혜옹주』에 이어서 쓴 또 다른 대한제국의 이야기다. 『잃어버린 집』은 일제강점기에 조선과 일본 황실의 정략결혼으로 만난 이은(영친왕)과 마사코(이방자 여사)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나라를 빼앗긴 황태자 이은은 그 어떤 사소한 행동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무력함에 고통스러워하고, 마사코는 그런 그의 옆에서 일본인으로서 죄책감을 느끼고 이은의 고통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아픔을 남몰래 견딘다.
이후 소설은 그들의 아들인 이구와 부인 줄리아의 사연, 이승만 대통령의 환국 거부 등으로 뻗어나가며 독립 후에도 이어진 대한제국 황실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죽음으로 육신을 벗어난 이구의 영혼을 통해 독자들은 나라를 빼앗긴 당시 대한제국 황실의 무력감과 괴로움, 독립을 간절히 바랐던 조선인들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다. 권비영 작가의 강점인 대한제국의 역사적 비극을 담담하게, 하지만 가슴 먹먹하게 그려내며 『덕혜옹주』의 계보를 잇는 소설이다.
『잃어버린 집』에서는 영친왕 이은과 그의 아들 이구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들의 배우자인 마사코와 줄리아 멀록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나라를 빼앗긴 영친왕 이은의 곁에서 일생을 헌신하며 살아온 일본인 마사코의 삶, 오직 사랑만으로 낯선 타지에 건너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줄리아 멀록. 정통성 논란에 시달리고, 때로는 사랑하는 이에게서도 거리감을 느끼고, 오랜 시간 한국에서 살아도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동안 우리는 전쟁과 인종, 국적을 가르는 사랑에 대한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마사코의 앞에만 나타나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아리사’의 존재를 통해 무가치한 전쟁, 갈등에서 벗어난 화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게 된다. 『잃어버린 집』은 저자가 오래 묵혀온 시간만큼 묵직한 여운을 주는 소설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권비영은 대한제국의 비극에 전쟁과 인종, 국적을 품어 안는 사랑, 그 아름답고 아련한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또 한 번 『덕혜옹주』의 아련하고 애틋한 처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c/b/cbj2020/IMG_27-2-25.jpg)
저자 권비영은 이 작품을 출간한 후 〈채녈 예스〉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소설을 쓴 동기에 대해 "경술국치 100년이 다가올 즈음, 일제 강점기 황족들이 겪었던 비사를 아무도 소설로 쓰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쓰다 말다 지쳐갈 즈음 일본인 작가가 쓴 『덕혜희』를 보고 결심을 굳혔지요. 우리 역사 속 인물을 내 손으로 써야겠다고요. 그 후 대한제국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서 위안부 이야기 『몽화』와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하란사』를 썼고 이번에 『잃어버린 집』을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또 "마사코(이방자 여사)와 줄리아 멀록이라는 두 인물도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심 인물이었다. 두 여인이 몰락한 대한제국의 황손들과 결혼한 것은 운명이기도 하고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녀들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헌신한 일은 길이 기려야 할 것 같다. 특히 이방자 여사는 영왕이 하고자 했던 일을 대신해 장애인들을 위한 많은 사업을 했다. 두 여인의 삶을 보면 사랑은 고통을 수반하며 지극히 인내해야 하는 게 분명해 보였고, 이를 소설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두 인물에 무게를 두고 이번 작품을 집필한 이유를 밝혔다.
저자는 이와 함께 이구의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이 때로는 허구보다 힘이 없다는 생각을 때때로 한다. 이구의 사인은 심장 마비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고종의 독살설처럼 확실한 것은 아니다"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역사적 현실 앞에서 어떤 죽음의 방식을 겪었더라도, 그의 사인을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을 것 같다. 독자의 상상이 가장 정확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독자들에게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c/b/cbj2020/temp/IMG_27-2-3_2.jpg)
“날씨가 참 좋지요?”
그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마사코를 한참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네, 날씨가 좋군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다 마사코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 웃음에 스며 있는 어색함과 쓸쓸함이 오히려 측은하게 느껴졌다. 학업을 핑계 삼아, 어린 나이에 조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그 쓸쓸한 웃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인들 일본 여인을 배필로 맞으리라는 생각을 상상으로나마 했을까…….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에 임관된 그는 절제된 말투와 행동으로 군인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단둘이 있을 때는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외로운 청년이었다. 조선과 일본의 융화를 위해 진행되는 정략결혼이었지만 마사코는 그를 보는 순간 그의 가슴에 흐르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온화하고 마음 따뜻한 청년 이 은에게 시집가는 것이야.’
마사코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타일렀다. 처음 만나는 자리라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지만 마사코는 그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온화하고 따뜻하며 말을 아끼는 사람. 마사코에게 이 은은 그렇게 각인되었다.(p.23~24)
저자 : 권비영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소설가 되는 게 꿈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는데, 그걸 보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과 주목을 받았다. 곧 소설가가 될 거라 믿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소설가의 길은 멀고 아득했다. 신춘문예에도 몇 번 떨어졌다. 박완서 선생님을 마음의 멘토로 삼은 덕에, 늦게나마 1995년에 신라문학대상으로 등단의 과정을 거쳤다.
2005년 첫 창작집 『그 겨울의 우화』 출간 후 2009년 세상에 내놓은 장편소설 『덕혜옹주』는 독자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덕혜옹주는 영화화되었으며 러시아 외 5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이어 다문화가족의 이야기 『은주』, 일제강점기 세 여자 이야기 『몽화』와 중단편집 『달의 행로』, 이 시대 어머니들의 이야기 『엄니』를 펴냈다. 2019년 말에 『택배로 부탁해요』라는 동화도 한 권 냈다. 올해 2021년 여름 여성독립운동가 『하란사』를 출간하고, 가을이 깊어가는 시점에 창작집 『벨롱장에서 만난 사람』으로 소설 쓴 흔적을 더 보탠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와 소설21세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https://image.yes24.com/blogimage/blog/c/b/cbj2020/temp/IMG_27-2-27.jpg)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