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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냥 - 죽여야 사는 집
해리슨 쿼리.매트 쿼리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7월
평점 :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해리의 전투 장면 회상으로 시작한다. "제가 처음으로 죽인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둘이었죠. 한 번에 연달아서, 2초 안에 차례로 죽였습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 모슈타라크 작전이 시작될 때 마르자에서 일어난 전투에 해리는 참여했다. 이 소설의 첫 장(章)은 대부분 해리의 전투 장면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탈레반과의 전투. 해리는 첫 전투에서 탈레반 두 명을 사살한 것을 회상하며 그 기억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는 듯하다. 병원에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회상하고 있다. 전쟁 후유증으로 트라우마 치료로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해리는 말과 기억으로 전투 장면을 세세하게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전쟁 중의 아프가니스탄은 해리의 표현대로라면 똥 냄새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불에 탄 쓰레기와 염소 똥, 땀과 똥구명 냄새의 기억이 생생하다. 해리의 6년간의 군인 생활을 마치고 사샤와 결혼해 보금자리를 꾸렸다. 두 사람은 여생을 자연에서 보내기로 합의했다.
미국의 ‘진짜 서부’라고 할 만한 자연으로 이사 가서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하고 가끔씩만 도시로 나오는 그들만의 월든을 꿈꾼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꿈은 착착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사샤는 재택근무를 직장과 협의했고, 해리는 낚시와 사냥에 통달해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예산으로는 꿈도 못 꿀 아름다운 집을 운 좋게 매입했다. 울타리를 두른 7만 평짜리 대지 위로 300평짜리 집이 있는 매물이었다. 10년 전 어느 부동산투자회사가 정부와 거래할 목적으로 샀으나 거래가 불발되면서 남은 집이라고 했다. 웅장한 산봉우리들이 집을 두르고 있고, 목초지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 멀리 국유림이 보였다. 전쟁을 치르며 사람에 지쳤던 해리는 그 집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부부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이웃이 딱 하나뿐이라는 점이었다. 마을은 조용했고 아름다웠다.
이 책 『이웃 사냥』은 꿈에 그리던 신혼집을 마련한 해리와 사샤 부부의 보금자리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국 서부 티턴산맥 국립공원 근처의 산기슭에 위치해 웅장한 산맥과 광활한 초원이 펼쳐진 그림 같은 집이다. 자연을 벗 삼아 평화롭고 목가적인 삶을 꾸려갈 작정으로 마련한 집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해리와 그의 아내 사샤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해리 시점에서 한 장(章)이 지나가면 다음 장에선 사샤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미국 서부 티턴 산맥은 지각이 융기하여 생긴 거대한 산맥이자 로키산맥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 풍광이 그대로 보존되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관리받고 있는 지역이 인근에 많다. 티턴 국립공원도 그 중의 하나다. 40킬로미터 인근에는 유명한 옐로스톤국립공원도 있다. 높이 4,196m의 그랜드티턴산 외에 많은 빙하가 있는 험준한 12개의 산들이 연이어 있다. 동쪽 기슭은 급경사를 이루나 서쪽 사면은 완만하고, 티턴산맥에서는 티턴강(江)이 발원한다. 경관이 웅장하여 서부영화의 촬영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긴 진입로로 들어섰을 땐 경외감마저 느꼈다. 진입로는 남쪽으로 돌아가면 국유림으로 이어지는 L자형 도로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와 길게 뻗어 있었다. 쭉 따라가자 살짝 솟은 지대에 집과 차고가 있었고, 그 주위를 목초지와 포플러나무가 둘러쌌다. 집 너머로 보이는 뒷마당에는 커다란 목화나무 몇 그루가 자리 잡았고, 진입로 옆에는 포플러나무가 드문드문 자랐다. 3월의 산에는 아직도 눈이 꽤 쌓여 있었지만, 봄기운이 지금부터 왕성하게 피어날 기미 역시 분명했다. 이르게 자라난 잎새들은 파릇파릇한 초록빛이었고, 일찍 핀 야생화도 고개를 내밀었으며, 여기저기 새들 천지였다. 그 땅은 활기에 가득 차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p.30)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집을 차지한 흉포한 악령의 저주가 그들의 삶을 점점 옥죄어오고, 부부는 그 저주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애써 외면하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거나 파괴하려 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섬뜩한 경종을 울리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독특한 호러소설이 시작된다.
경이로운 풍경을 즐길 사이도 없이 어느 날 이번 봄을 무사히 나기 위해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해 조언해 주겠다며 하나뿐인 이웃이라는 노부부가 두 사람의 집을 방문한다. 그들이 말하는 주의 사항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괴이하다. 연못에 정체불명의 빛이 떠오를 텐데, 그걸 보고도 불을 붙이지 않으면 산에서 북소리가 들려온다는 둥, 벌거벗은 남자가 곰에게 쫓겨 집 근처로 도망쳐 올 텐데, 곰이 아닌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둥…….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한 해리는 노부부를 사납게 쫓아버린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노부부가 경고한 일들이 차례차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꿈꾸었던 평화로운 삶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이 책 『이웃 사냥』에는 호러 독자라면 구미가 당길 흥미로운 설정이 다수 등장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싼 집, 왜인지 그 집에 최근 10년간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사실, 영문을 모르고 그 집에 이사 온 화목한 가정, 친절하지만 어딘가 섬뜩하고 꺼림칙한 이웃……. 초반에 호러 장르의 공식들을 충실히 지켜나가면서 독자는 점차 소설의 세계관에 빠져들게 된다. 거기다 공간적 배경인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의 광대하고 경이로운 자연이 공포심을 더한다. 반경 2킬로미터 내에 이웃이 한 가구밖에 없을 정도로 드넓은 목장들만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가 내 집을 지켜보며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가 집 안에 들어오려고 자꾸 소리를 내고 문을 두드린다면? 현실이라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공포가 밀려든다.
이 책의 저자 쿼리 형제(매트 쿼리와 해리슨 쿼리)는 단순히 호러의 공식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소유권 개념과 자연에 대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이웃 사냥』이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연재되던 시절부터,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고 나서까지 독자평에서 한결같이 언급되는 내용은 “완벽한 결말이다”, “결말을 보고 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 쿼리 형제는 자연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품어주지만 마음만 먹으면 인간의 생명은 그 앞에 한순간에 스러질 정도로 강하고 광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이웃 사냥』에서 티턴산맥 근처의 인디언 출신들은 땅을 개인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부족이나 인간 전체에 속한 것으로 생각한다. 땅이 내린 저주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백인들의 토지 소유권 개념을 편의상 받아들였을 뿐이다. 자연이 보기에 인간이 행하는 일들,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발하고 인위적으로 늑대의 개체 수를 줄이는 것은 모두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이고, 동족인 인간을 학살하는 전쟁은 그중 가장 잔인한 행위다. 집의 저주를 인간의 힘으로 통제해 보려던 해리는 집에 몰아닥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잊고 싶던 과거를 발견하고 가슴에 묻어왔던 죄책감을 인정한다. 『이웃 사냥』은 장르소설의 재미와 더불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불이 붙으면, 빛은 사라진다. 남향 창문으로 가서 빛이 아직도 있는지 보라. 만약 여전히 빛이 보이면, 불에 장작을 더 넣어라. 빛이 사라졌다면 악령은 떠난 것이다. 악령이 떠나면 곧바로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불이 알아서 꺼지게 놔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 하면 된다.(p.107)
하지만 카메라에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고 공포에 떨게 만드는 연못의 빛 악령은 또 찾아온다. 해리와 사샤는 불을 피워 위기를 넘기고 이사올 때 찾아와 주의사항을 일러준 노인인 댄에게 전화를 건다. 댄 부부가 찾아와 추가로 들려준 여름 악령, 가을 악령의 이야기들은 너무도 무섭고 믿기 힘든 현상들이었다. 부부는 여름이 왔을 땐 곰에게 쫓기는 벌거벗은 남자의 악령을 겪어내며 베리크리크 목장에 사는 쇼쇼니족인 조가 악령을 물리칠 이 모든 의식들을 알려준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골짜기 마을의 터줏대감인 조는 악령에 대해서 어떤 비밀들을 알고 있을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사샤는 루시에게 조에 대해 묻고 1996년에 시모어 가족이 겪은 일들과 절망에 빠질만큼 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해리와 사샤는 모든 비밀을 알고나서 노부부에게 화를 내지만 그들의 설명에 한편으론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아무 것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기에 체념하는 동시에 좌절한다. 행복만을 꿈꾸던 이 신혼부부는 이 골짜기에서 벌어지는 악령의 저주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방법은 있는 걸까? 시모어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샤는 직접 시모어 가족을 찾아나서고 그들에게 벌어진 저주같은 일들에 두려움을 느낀다. 시모어 가족은 어떻게 된 것일까? 긴박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가을엔 허수아비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악령을 겪어내며 해리와 사샤는 마음을 굳게 먹지만 안타깝게도 사고가 일어난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공포스러운 악령은 겨울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겨울의 악령이 모습을 나타내기 전 사샤는 해리에게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하고 부부는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마주한다. 인간은 어떠한 계기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순간이 오게 되는 때가 있다. 설명 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힘과 머리로는 이길 수도 거부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미스터리한 일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저자 : 매트 쿼리
매트 쿼리와 해리슨 쿼리는 콜로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형제다. 두 형제가 미국 최대의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쓴 이 놀라운 이야기는 매 게시물마다 수천 개의 추천 수와 댓글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빚었다. 또한 정식으로 도서가 출간되기도 전에 스토리 원고만으로 10개국에 번역 판권이 수출되었다. 『이웃 사냥』은 넷플릭스와 한화 10억대에 시나리오 판권 계약을 맺고 영상화 진행 중이다.
저자 : 해리슨 쿼리
매트 쿼리와 해리슨 쿼리는 콜로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형제다. 두 형제가 미국 최대의 커뮤니티 레딧(Reddit)에 쓴 이 놀라운 이야기는 매 게시물마다 수천 개의 추천 수와 댓글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빚었다. 또한 정식으로 도서가 출간되기도 전에 스토리 원고만으로 10개국에 번역 판권이 수출되었다. 『이웃 사냥』은 넷플릭스와 한화 10억대에 시나리오 판권 계약을 맺고 영상화 진행 중이다.
역자 : 심연희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독일 뮌헨 대학교(LMU)에서 언어학과 미국학을 공부했다.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소설 『덤플링』 『어둠의 눈』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마쉬왕의 딸』 『미드나잇 선』, 그래픽 노블 『인어 소녀』 『스냅드래곤』, 시리즈물로 『이사도라 문』 『인더게임』 『캡틴 언더팬츠』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