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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 일상, 영감의 트리거
정진 지음 / 디페랑스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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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일상』은 저자 정진의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적어 놓은 글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읽어도 될 글들은 아니다. 저자는 미술가로서 자신의 '쓰기'에 대한 말부터 내어놓는다. 하나는, 두서없이 뻗고 흩어지는 생각들을 부여잡기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적는 노트들이라고 한다.(p.5) 저자는 매일 생각하고 매일 작품하니, 매일 적는단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문장, 지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둔다고 말한다. 이것은 창작자에게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모았다가 글도 쓰고 미술도 한다. 글쓰기와 미술의 재료로 쓴다는 말일 게다. 이것들은 저자와 세상을 향한 고백이나 다짐들, 궁금증 같은 것들이며 일상이자 고민의 흔적들이라고 털어놓는다. 삶의 어느 시기마다 흥미로웠던 것을 적어 모은다고 고백한다. 이것의 주제에는 범위가 없어 한없이 작은 입자가 되기도, 끝없이 거대한 우주가 되기도, 더 이해 못 할 자신이 되기도 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 책은 글들마다 제목이 붙어 있지만 〈목차〉에 적어놓지 않았다. 목차에는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 사이에 5개의 제목만 덩그러니 적었다. 1. 「밤 12시」, 2. 「마음 풍경」, 3. 「영역 인간」, 4. 「남겨진 감정들」, 5. 「낮 12시」 등이다. 밤 12시부터 낮 12까지의 일상을 의미하는지 편의상 구분해 놓은 것인지 독자로서는 갈팡질팡하지만 책을 읽기에는 문제될 것이 없으니 그만이다. 다만 제목에 적힌 '아무런'이란 의미를 쓴 글을 찾으려면 제목이 따로 없어 애를 먹는다.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찾아낸다. 3장(章) 「영역 인간」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아무러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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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보아도,
아무렇다.와 아무렇지 않다.의 차이를 모르겠다.
사전을 열심히 찾아보고, 예시를 정성껏 읽어 봐도 알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다는, 아무렇가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그 의미가 반대라는 것인데,
내게 둘은 같은 말 같다.
만약 같다면, 왜 그럴까.
아무러함과 아무렇지 않음을 구별치 못하는 나는, 드넓은 인간의 범주 안에서도,
그 극과 극의 반응을 헷갈려한다.
나를 참으로 좋아하는 이와 싫어하는 이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게 인간으로서 호감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호와 불호는 극의 감정을 띠지 않으니까.
(중략)
-넌 항상, 당연한 걸 어려워하더라.(p.1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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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글들은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 부호들까지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글들이다. 함축적 의미와 작가 자신만의 미학으로부터, 편집의 일반성은 잠시 접어 두어도 좋을 만큼, 예술에 관한 글인 동시에 생각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독자가 읽어본 바로서는 함축과 다중 의미, 부정적 표현과 뜻이 밖으로 강렬하게 드러나는 언어 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미술을 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독자의 오판일지 모르지만 글쓰기에도 부정적 표현이나 애매모호한 표현의 글은 잘 쓰지 않는 듯하다. 문학은 함축과 은유, 상징과 다중 의미어 등을 무척 좋아하는데··· 미술을 하는 예술가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도 하다.
3장의 '나에게 예술'이란 글에서도 감지된다. 예술과 어머니에 대한 표현이다.
어떤 감정도 생각이나 행동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주는 것.
몇 번이고 주는 것.
나는 그것이,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주변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지만,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거대한 존재.
그녀를 매일 보는 것은 생활의 일부이지만,사실 그녀는 내게 새상을 있게 한, 그 처음이다.
물론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가 함께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어머니란 존재가 그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는 것도 아니다.
그것조차, 예술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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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밤 12시의 이야기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자신은 밤 12시에 글을 쓴다고 암시한다. 저자는 '글을 만든다'라고 표현한다. 1장 「밤 12시」의 글 속에 있다. 언어유희 같은 부분도 있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으면 결코 언어유희가 아니다. 앞뒤 맥락을 이어 읽어야 한 문장, 하나의 글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글을 쓰는 맛이고 글을 읽는 멋이다.
밤 12시에는 글을 만든다.
만든다는 동사가 멋없지만 적합하다. 단어들을 이리저리 짓고, 쌓고, 깎고, 붙이는데, 그것들을 아우르려면 만든다가 알맞다.
결국 원래의 것이 아닌 새로운 상태를 이루어 내는 것.
그리고 나의 글은 원래 멋없다. 그래서 괜찮다.
(중략)
왜곡은 환영(歡迎)한다. 어차피
왜곡은 환영(幻影)이다.
밤의 시간들은 그것에 도가 텄다.
사상이나 감각의 착오를 보이게 하는 것.
그대로 두는 것이 글에 이롭다.
낮 12시가 궁금의 시간이라면,
밤 12시는 궁극(窮極)의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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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뒤적이다 그림이 눈에 띄어 시선을 꽂는다. 무지개를 표현하는 듯한 유화 물감의 부드러운 선과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질감과 색감이 도드라진다. '무지개 감정'이란 글이다. 무지개 감정이란 무슨 감정이고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붉다고 하기엔 너무 파랗고,
푸르다고 하기엔 너무 빨갛다.
딱히, 보라도 아니다.
이름이 없다.
감정을 나누는 일은,
많은 시대 많은 사람들이 해온 일인데,
그것이 하나의 색으로 나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감정은 무지개를 닮았다.
기쁨도 슬픔도 여러 색을 가진다.
하나의 색을 가진 순수한 감정이 존재는 했었나?
저자의 마음은 이미 결론에 가 있다. 이렇게 표현돼 있다. "난 그런 게, 사람 같다."(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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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남겨진 감정들」에 유독 눈에 띄는 그림과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 '믿음'이다. 그림은 세 개의 원 안에 산을 그린 유화의 붓터치가 멋진 그림이 등장한다. 세 개의 원 안에 같은 느낌이 아니다. 오른쪽 그림과 왼쪽 그림은 분명 제대로 인쇄돼 나왔지만 가운데 그림은 접혀 세로 타원형 안에 갇힌 산이, 그나마 찌그러지고 작아진 듯 보인다. 의도적으로 가운데 산을 그렇게 보이도록 하지는 않았지만 책 제작 상 불가피한 모습이다. 불가피했지만 독자들이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 믿기 쉽다. 왜곡된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예술이 '가장' 고결한 직업이라 믿지 않는다.
펜이 칼보다 '더' 강하다 밎지 않는다.
지금 가진 그의 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나를 믿어! 하는 대부분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믿음은 속함과 비슷하다.
(중략)
믿지 않으면 분주하고 외롭지만,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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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5장 「낮 12시」에서 '요즘 하는 작품'에 대해 말한다. 단 넉 줄로 썼다.
- 질서에 대한 공부 〈높고 낮음, 흐름, 깊고 얕음〉
대단한 것 말고,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질서.
일부러 줄 세우고 좌우로 정렬하는 그런 것 말고,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그렇게 되어지는 그런 질서.(p.320)
저자 : 정진
대기업을 퇴사하고 로드 아일랜드로 미술유학을 떠났다.
2011년 졸업 후, 계속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과 방법으로, 세상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며 글 쓰고 미술 한다.
“글을 쓴다는 것과 미술을 한다는 것이 교차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 내게는 환희(歡喜)하다.”
www.JungJean.com
@jungjean_jung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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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