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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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잃어버린 사람』은 중견 작가 김숨의 가장 최근 신작 장편소설이다. 그를 우리 문단의 중견 작가라고 칭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직 50세도 되지 않은 작가에게 중견 작가로 부르는 것은 정작 작가 본인에게만 실례되지 않는다면 독자는 그를 '우리 문단의 독보적 중견 작가'라고 부른다.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가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서 소외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집중 조명했다는 점 때문이다. '조국 경제 발전의 산업 역군'으로 허울만 좋은,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소외 계층으로 살아가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사랑과 따뜻한 감성이 담겨 있다. 저자 김숨은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어 첫 장편 『백치들』(2006년), 『철』(2008년),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2009년)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받았다. 독자와 인연도 이때부터다. 산업화 시대를 재조명하는 그의 소설을 만날 때마다 젊은 작가라기보다 중견 이상의 소설가 같은 면모를 보여주었다. 소설의 내용뿐만 아니라 문체 역시 갈고 다듬은 흔적이 역력한 간결한 문체를 선보였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작가라고 독자만의 판단으로 단정지었다. 아날로그 세대인 독자의 취향에 맞았기에 독자는 김숨 작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고 우리 문단을 이끌 주자로 손꼽았던 것이다. 당연히 평단도 그의 등장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호평을 쏟아냈다.

그가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의 작가와 신세대 작가를 연결하는 한가운데 서 있는 작가로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고 독자는 믿는다. 특히 새 밀레니엄에 접어들면서 신세대 작가들은 인터넷, 정보화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을 때 김숨 작가는 산업화의 그늘을 뚝심 있게 조명했다. 특히 이번 소설 『잃어버린 사람』은 해방 직후 부산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난장 속에서 수많은 보통의(혹은 익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시대와 역사의 부침을 어떻게 견디고 어떤 기억들을 담아둔 채 생명을 이어갔는지 담담하면서도 농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현실과 역사, 이 둘은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여러 그물망으로 얽혀 있다. 이 소설에서 김숨은 특유의 ‘거대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가는 이 둘을 움켜쥐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그의 문학적 확대는 곧 한국 문학의 확장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저자 김숨은 등단 작품들도 대단했지만 2006년부터 잇따라 발표한 장편소설이 그의 소설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주목할 만한 솜씨를 보여준다. 첫 장편 『백치들』의 주무대와 등장인물은 백치들이 모여 사는 곳 ‘대전시 중구 구장동 15번지’라는 변두리 동네이다. 대부분 백치들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 중동의 산업역군으로 일하다 돌아온 아버지들을 일컫는데, 그들은‘백치’가 되어 작중화자인 ‘나’의 집 옥상에 모여앉아 무위의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다. 백치들이라는 언표에서 읽히듯 무능한 존재에 대한 비난과 경멸이라는 의미가 각인되어 있지만, 『백치들』 안에 존재하는 ‘백치’는 역설적으로 한없이 초라하고 나약할 수밖에 없는 약자를 대변하고 있다. 인간의 무력한 실존을 드러내는 밀도 높은 상징들로 이루어진 시적인 문체가 인상적이다.

이어 출간한 『철』에서도 저자는 ‘철’로 상징된 산업사회 이면의 어두운 기억 한 페이지를 차근차근 적어 내려간다. 불편하지만 눈을 뗄 수 없고 아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지난날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거대한 철선의 완성을 위해 평생을 노동에 힘쓰는 조선소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 오로지 철선의 완성을 위해 도구처럼 쓰이다가 마모되고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이미 지나가버린 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과 여전히 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첫번째 장편소설 『백치들』을 통해 70년대에 돈을 벌기 위해 멀리 중동의 모래사막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저자는, 두번째 장편소설 『철』로 나날이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하나의 부속품처럼 살아야 했던, 철저하게 이용되다가 마모되어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그 시기의 아버지를 작품 속으로 불러내었다. 그리고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결국 자기소외된 우리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친족의 얼굴 없는 삶을 자본과 노동 그리고 계급의 문제로 짱짱하게 조여서 그려냈다.

 

 

이어 발표한 장편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에서는 산업화 시대 소외계층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일곱 살의 동화(冬花)는 할머니 댁에 맡겨지고, 백 밤이 지나면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는 좀체 연락이 없다. 1980년대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할머니 댁에는 내 이름(동화)을 토해놓고 중풍에 쓰러진 할아버지가 골방에 누워 있고, 양은대야 공장에 다니는 춘자 고모는 공장장과 바람이 나 밤 늦게야 들어온다. 그리고 까도 까도 끝없는 마늘을 쏟아놓는 할머니는 내게 도망간 엄마를 닮았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마늘 독보다 더 독한 년’이라고 여기는 내 눈에 추부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가장 가까운 존재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한 그 업보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듯하다.

방앗간 기계에 한 팔을 잃은 ‘방앗간 할머니’는 아들의 간청에도 방앗간을 팔지 않으려 하고, 간질병을 앓으면서도 형의 담배농사를 지어야 하는 ‘장대 아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을 일으키면서도 마을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난 뒤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옥천 할마’는 자신이 전생에 황후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트럭에 치여 비명횡사한 아들의 보상금으로 금니를 해 넣은 ‘인자 아줌마’는 찢어지게 가난한 중에도 아들을 산 처녀와 결혼시킬 생각을 품고 있다. 개조한 축사에는 양은대야 공장에서 일하는 외지인들이 들어와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좀처럼 희망을 찾을 길 없는 청년들은 자신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열여덟의 나이에 아이를 밴 ‘정희 언니’는 아이가 죽어버리기를 바란다. 사랑의 상처, 인생의 좌절, 그리고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절망감들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어린 동화의 눈에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처럼만 보인다.

 


 

이후 여러 편의 장편과 작품집을 꾸준히 발표한 김숨 저자는 이번 작품 『잃어버린 사람』에서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47년 9월 16일의 하루에 머문다. 지역은 부산이다. 동이 튼 때부터 일몰 후까지 단 하루의 일들이 원고지 1,880장에 달하는 긴 분량 속에 담겼다. 그 시절 부산에는 돌아온 사람들, 돌아가다 그대로 머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책은 밝힌다. 그들은 중국에서, 만주에서, 일본에서 해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귀환 동포들이다. 그들은 거지 떼처럼 들어와 눌러앉아 골치를 썩이는 존재들로 취급받는다. 이 소설은 그들 온갖 귀향자들이 품고 있는 슬픔과 고통의 주름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슬프고도 처연한,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당시 부산은 ‘뜨내기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온갖 잡새가 아니라 온갖 잡다한 인간”이 귀환선 타고, 열차 타고 흘러들어와 떠돌았다. 일자리가 넘쳐나는 공간이었지만 “사람은 더 넘쳐나 가장 헐한 게 사람”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돌아온 자들이라는 유대감이 흐르지 않았다. 제 한 몸 건사하기 바빴고, 가족의 생계를 부지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 민중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몸에는 하나같이 식민의 경험이 남긴 상흔이 낙인처럼 찍혀 있다. 떠난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떠나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고, 기다리다 지쳐 쓰러진 사람이 있다. 그들 모두 “늑골이 주저앉는 것 같은 고통”에 신음한다.

중국을 떠돌다 돌아왔으나 죽어도 육신을 거둬줄 부모 형제 하나 없는 이, 강제 징용으로 먼 타지에 끌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자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화상을 입어 얼굴이 문드러진 사람,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남편이나 자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자들, 가난에 신음하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돈 벌러 부산에 온 자들,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겨우 돌아왔으나 다시 사창가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 조선인 남편을 따라 조선에 왔으나 버림받고 오도 가도 못하는 일본 여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선에 그대로 눌러앉은 일본인들과 중국인들, 고아가 돼 구걸하는 수많은 거지 아이들···. 그중 히로시마에서 원자탄에 죽은 아내의 시신을 등에 업고 걸으며 쓸쓸한 독백을 읊조리는 백 씨의 모습(p.126~131)은 ‘슬픔’의 극치를 보여준다.

 


 

당시 해방된 땅에는 무지하고 나약하고 비루한 인간들로 들끓는 세상이었다. 암시장이 성행하고 무질서가 판을 치는 암울한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입에 배고픔을 주렁주렁 달고 살며 고통과 분노에 허덕여야 했다. 식민의 가혹함이 남긴 광풍이 휘몰아치는 그때에 그들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비정한 삶이 이끄는 대로 나아갈 뿐이었다. 푸념과 투정, 회한과 하소연만이 그들의 일상을 무겁게 차지했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책 뒷 부분에 「김숨의 최후이자 김숨의 최초」란 제목의 〈발문〉에서 그 시절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애끓던 그 시절엔 늑골이 주저앉는 이별이 이다지도 흔했다.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별한 뒤에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으며, 기적같이 재회했을 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의 무게가 생에 얹혀졌다. 무겁고 무서운 시절이었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이 많은 시절이었다.”(p.659)

이 소설 『잃어버린 사람』에서는 수많은 인간 군상의 ‘슬픈’ 이야기가 얽히고설킨 채 펼쳐진다. 식민과 전쟁으로 빼앗긴 삶의 비극이 곳곳에 흩어져 떠돈다. 대다수의 등장인물들은 역사에서 몫을 빼앗긴 자들이다. 역사의 바깥, 시대의 변두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다. 몫이 없어진, “바깥으로 밀려난” 이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작가는 자기 목소리로 말하게 그들을 일으켜 세운다. 굴곡진 시대에 농락당한 어둑한 삶이지만 그들이 토하는 제 목소리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담담하게 전달하면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역사의 강물은 도도히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 삶이 지니는 난잡함과 다채로움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운명의 날카로운 조각에 베이고,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에 속절없이 휘둘리는 사람들, 그 보통의 사람들이 곧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자화상이다.

 


 

해방 직후 부산의 역사적 현실을 첨예하게 그려낸 이 소설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하면서 허다한 사연과 에피소드들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현실에 뿌리를 두었으되 현실을 넘어서는 비애와 애탄과 한의 이야기가 나무가 가지를 뻗듯 이어진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소설 한 편 한 편으로 읽힐 정도다. 삶의 구체적인 현장과 목소리를 담은 각각의 에피소드는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밀물처럼 밀려들고, 소용돌이치고, 때로 교차하고 중첩된다. 역사의 저수지에 고였다가 범람하고, 넘쳤다가는 다시 잔잔히 흐른다. 그 고임과 넘침과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중단 없이 읽게 되는 묘한 힘에 이끌리게 된다.

이 소설은 미도리마치(綠町)라는 유곽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애신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마주치는 여러 공간들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무게중심을 잡아주지만,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사건이 없고 딱히 주인공도 없으며 뚜렷한 스토리라인도 없어 보인다. 어쩌면 김숨 저자의 새로운 시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인공 없는 장편소설이라니···. 쉽게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다. 긴 장편소설을 이끌고, 독자들의 집중력이나 가독성을 높이려면 당연히 특출하거나 탁월한 주인공이 있어야 쓰기도 쉽지 않을까 하는 일반론에서 벗어나는 듯한 시도이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인물이 중첩되고 사연이 교차하는 이야기 구조가 얽히고설켜 있다. 이 교차와 중첩의 구성을 의도적으로 정교하게 짜 맞춰 통일성을 갖추도록 한 직조 솜씨는 경이로울 정도다. 마치 큰그림을 갖고 세부 묘사를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다. 유기적 구성의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일 수도. 해방된 기쁨보다 당장 살아갈 의지마저 잃은 듯한 이 땅의 모습은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 '슬픔'이 흐른다. 희망과 중풍으로 비뚤어진 입의 어부는 언청이로 태어나 찢어진 입의 여자와 겹치고, 은발의 눈먼 숭어 망지기는 도둑맞을까 가자미를 지키고 앉아 있는 눈이 먼 노파와 겹치고, 드럼통 같은 원자폭탄은 날품팔이 하역꾼들이 곰장어를 구워 먹는 드럼통으로 겹친다. 또 조선인 남편에게 버림받아 부두를 떠도는 일본 여자는 기모노를 걸치고 수레에 산송장처럼 누워 있는 조선인 노파와 어긋나면서도 묘하게 겹치고, 국수를 끓여 파는 여자가 양은솥을 훔치는 장면은 발가벗은 사내애를 위해 남의 집 옷을 훔치는 여자애의 모습과 겹친다.

 


 

여기서 읽은 사연이 저기서 읽은 사연과 겹치는 것, 이것은 그 시대 그들의 삶이 이 시대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람과 역사를 향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역사의 시공간을 현재로 재구성한 작가의 결연한 자세 앞에서 숨을 멈추고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을 읽으며 인물과 이야기의 촘촘한 짜임새를 따져보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은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로 시작해 언청이 여자가 아기를 가진 것을 알게 되는 장면으로 끝난다. 떠오른 태양 빛이 넘쳐나는 땅과 바다로 시작해 하루가 저물어 이 마을 저 마을, 이 집 저 집에 등불 빛이 밝혀지는 것으로 끝난다(마지막 부의 제목은 ‘빛’이다). ‘장대한 슬픔의 드라마’이지만 새 생명의 탄생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진정한 의지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삶이란 “아기가 태어나 더해지고 빛이 더해져 세상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다. 또한 허우재가 “모자라지도 않지만 넘치지도 않는군”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청요릿집 사해루의 어항에 금붕어가 항상 여덟 마리에서 모자라거나 남는 걸 싫어하는 것은 혼란을 벗어나 질서와 안정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 터이다.

 

저자 : 김숨

 

소설가 김숨은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중편소설 『듣기 시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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