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케이지 : 짐승의 집
보니 키스틀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 작품 『더 케이지: 짐승의 집』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 같지만 범죄에 중점이 주어지기보다는 병리적 사회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시작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내내 범죄자로 지목되는 주인공 셰이 램버트의 시선과 심리는 사회 시스템이 병든 상태임에 주목한다.

소설 발단의 분위기는 조금은 스산한 듯하지만 낭만적이라고 해도 별 무리 없는 평범한 분위기다. "도시 위 높은 하늘에서 안개가 서성인다. 차가운 밤하늘은 온통 캄캄하고 보이는 것이라곤 난반사된 도시의 불빛뿐이다. 안개가 닿은 건물은 단 하나, 마켓플레이스 타워, 도시에서 가장 높은 최신 건물이다. 반짝이는 첨탑의 모든 면면에는 서리가 뒤덮여 있다. 누구라도 그걸 본다면 설탕을 입힌 동화 속 나라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안개 속에서, 이 어둠 속에서."(p.7)

주인공 셰이 램버트는 명문 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에다 모두가 선망하는 명품 패션 대기업에서 얼마 전부터 일하고 있는 여성이다. 그런데 주말(휴일)의 늦은 밤, 다른 여성 직원과 함께 회사의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우연히 끔찍한 사고에 휘말린다. 첫째로, 엘리베이터가 타자마자 멈추었다. 불이 다 나간 작은 공간에서는 같이 탄 직원조차 잘 보이지 않고 거친 숨소리만 울린다. 밀실 공포증이 절로 생기는 환경에서도 셰이는 7분 후 동료의 변화에 걱정스러워하며 911 신고도 직접 한다. 권총을 꺼낸 직원과 생각지 못한 몸싸움도 일어난다. 결국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는 셰이만 살아 있었다. 사건은 셰이가 구출되고 수사 원칙상 살인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죽은 직원은 총상으로 사망했다. 셰이는 그 권총이 직원의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으며 직원이 권총을 꺼내들고 쏘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지만, 무죄를 증명할 뚜렷한 길은 보이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외부의 증거가 계속해서 조작된다.

 


 

범죄 발생 부분을 압축해서 썼지만 제대로 전달된 지는 독자도 장담할 수는 없다. 셰이는 고등학교에서 전교 회장, 대학은 아이비리그 장학생, 로스쿨부터 뉴욕 최고 로펌의 우등생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하며 살아왔다. 사건에 휘말리고 난 뒤부터 숨겨온 비밀이 예기치 않은 시점에 드러나면서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 소설 『더 케이지』는 누구라도 언제고 겪을 수 있는 엘리베이터 고장 사고에 현직 변호사조차 무죄를 자신할 수 없는 교묘한 상황 설정을 통해 독자들의 호기심과 몰입감을 높인다. 작가의 몫이다. 저자의 구성 능력이다. 모두 잘 쓰고 잘 짜여진 철저한 계획과 설정이다. 단순한 흥미 위주가 아닌 사회성 높은 소설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다. 다만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도입한 것은 독자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다면 1, 2부로 구분된 단순한 형식이다. 다만 1부와 2부 사이에 〈인터벌〉 부분이 끼어들어가 있다. 마치 콘서트 구성처럼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소설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내용과 사건이 일어나는 부분까지의 전개 과정을 담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사건이 터지자 피해자의 생사 여부를 알아보지 않고 급히 911에 전화를 걸어 사건 발생 신고를 한다. 응급 환자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피해자는 사망했다. 총으로 피살된 것으로 밝혀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셰이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처지에 선다.

 

 

이제 이야기는 현재 시점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구조된 직후의 셰이, 셰이를 살인자로 몰려 하는 회사 고위층 임원인 법무팀 고문 배럿 잉그럼, 그리고 지금은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이 된 과거 시점의 셰이까지 세 가지 이야기로 장마다 초점을 바꿔가며 진행된다. 변호사로서 온갖 증거를 제시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셰이는 물론이고 역시 변호사로서 셰이의 유죄를 증명하고자 팽팽히 맞서는 배럿 잉그럼의 한 발 한 발은 서로가 무기로 삼고 살아온 법률을 칼로 휘두르는 두뇌 싸움이다. 상대를 완전히 매장시킬 생각으로 최고급 법률 인재들이 서로의 수를 읽고 반격하며 이어지는 반전들은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셰이를 살인자로 몰려 하는 외부의 움직임이 결국은 배럿 잉그럼이다. 사건은 시시각각 예측할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몇 차례의 대결 속에서 대기업의 비리, 변호사 직업 윤리 준수 규칙이 엮이기도 한다. 서로간 명운을 건 싸움으로 비화된다.

이에 따라 거대한 스케일로 부풀어 오른 사건은 교묘하게 맞물리고, 절묘하게 쌓아 올린 복선으로 한꺼번에 폭포처럼 터져나오는 흐름은 독자들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묵직한 충격을 남긴다. 책의 저자 보니 키스틀러는 기업 소송을 전문으로 미국 전역에서 사건을 수임해 성공적으로 활동한 소송 전문 변호사라고 한다. 유능한 변호사답게 자신의 이력을 백분 살려, 작중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힌 변호사 주인공 셰이가 엘리베이터 내 사망 사고 때문에 복잡한 법적 문제에 휘말리며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을 생생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변호사 주인공이 난제에 맞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싸우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데 매우 능숙한 실력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주인공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교묘한 이야기 설계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더 케이지』에서는 주인공 셰이가 명품 패션 대기업에 하필 모종의 일을 맡는 변호사로 취직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의 기묘한 공방에 휘말린 것이다.

작중에서는 〈짐승 우리(더 케이지the Cage)〉라는 말이 여러 번 변용되어 등장한다. 난데없이 발생한 엘리베이터 사고는 엘리베이터에서 시체가 된 동료와 함께 갇혀 있던 시간 때문에 셰이에게 트라우마를 남기는 끔찍한 사건으로 변모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생긴 일의 진실을 아는 것은 주인공 셰이뿐이지만 아무도 셰이가 진짜 겪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엘리베이터 사고로 촉발된 각자의 생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급급하다. 셰이는 전 직장에서 오래전 해고당한 이후 질기고 독하게 버텨온 과거의 경험과 현재 이어지는 위기를 두고, 자신이 있는 세계가 짐승들의 세계임을 깨닫고 각성한다. 꺼풀이 벗겨지듯 조금씩 밝혀지는 셰이의 비밀에 더해 생존을 위한 강렬한 의지가 더해져 셰이는 독자들의 상상한 한계를 넘는 캐릭터로 완성되어 간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마지막 장까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죽은 사람은 물론이고 셰이와 배럿의 비밀은 공개될 경우 각자에게 치명적이다. 그만큼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인물들이 죽을 힘을 다해 치는 몸부림은 독자들의 허를 찌르며 감탄사가 절로 나게 한다. 또한 미국 명품 패션 대기업을 대표하는 도시의 고층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묘사와 공방전은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묘사와 더불어 돌연 찬물을 끼얹는 듯이 소름 돋는 장면 배치까지, 독자들이 한 번 손대면 그대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도록 치밀하게 완성한 소설이다.

 


 

소설의 서평을 쓰려면 스포가 될 만한 사실은 감춰야 한다. 그것은 읽는 독자들의 흥미와 추리를 하는 재미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스릴러나 추리, 범죄 소설은 더욱 그렇다. 이 소설도 치밀하게 구성해 쌓아 올라가는 독자들의 흥미를 스포 한 번으로 망가뜨릴 수 있다. 더욱이 주인공 셰이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혹시 변호사로서의 범죄와 법적 문제의 소지까지 전부 감안해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닐까? 하는 독자의 생각도 끌어냈으니 하는 말이다. 아무튼 최대한 스포를 없애도 1부까지의 결과마저 모두 통째로 뺄 수는 없다는 게 독자의 판단이다. 1부까지의 결과는 결국 독자들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건의 마무리가 아니고 한참 꼬이고 혼란스러워 가는 진전의 물살에 휩싸이는 것이다. 저자의 소설 구성 능력이고 미스터리 스릴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1부가 끝나는 지점에서 셰이는 드디어 정식 체포된다.

 

크루즈 : "그래서 불이 나갔을 때······."

라일리 : "정신이 나간 건 카터 존스가 아니었죠."

크루즈 : "그건 당신이었어!"

"아니 아니에요. 그건 루시······." 나는 그들이 한마디씩 마칠 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둘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일어나세요." 크루즈가 탁자에서 물러났다.

"네?"

그가 내 뒤로 다가왔다.

"아니 진짜로 당신들 지금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는 거예요!"

크루즈는 나를 밭잡아 일으켜 세운 후 두 팔을 뒤로 꺾었다.

"샤로나 챈스 램버트, 당신을 루시 카터 존스 살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차가운 수갑이 손목에 채워졌다.(p.211)

 


 

“모르세요?” 피비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 얘기는 인터넷에서 그야말로 난리였어요. 온갖 게시판에서 그 사건에 대해 토론을 벌였는데 ‘셰이 편’이 이기고 있었죠. ‘#셰이에게자유를’이라는 해시태그까지 생겼다니까요. 그리고 누군가 당신 변호를 위해 펀딩을 시작했죠.”

“뭐라고요? 누가요?”

피비가 어깨를 으쓱했다. “십중팔구 당신에 대해 환상을 품은 방구석 얼간이겠죠. 근데 중요한 건, 그것 때문에 불이 붙었다는 거예요. 5만 달러까지 모였을걸요.”

“뭐라고요? 아니, 왜요?” 내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당신 이야기가 사람들 주목을 끄니까요. 엘리베이터에 갇혔는데 누군가 자살을 한다? 이런 일은 우리 누구든 겪을 수 있어요. 그랬는데 그걸로 죄를 뒤집어쓴 거잖아요.”(p.279)

 

저자 : 보니 키스틀러(Bonnie Kistler)

 

보니 키스틀러는 기업 소송을 전문으로, 전국적으로 사건을 수임해 성공적으로 소송을 진행한 바 있는 변호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모의 재판에서 우승하고 법률적 글쓰기를 강의하기도 했다. 영문학 학위도 가진 키스틀러는 법률가로서 이력을 더해가는 동시에 서스펜스 스릴러 작품을 여럿 내놓아 작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는 『하우스 온 파이어(2019)』, 『더 케이지(2022)』, 『그녀(2023)』가 있다.

키스틀러는 변호사 주인공이 난제에 맞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싸우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데 능한데, 키스틀러의 작품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주인공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교묘한 이야기 설계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더 케이지』에서 주인공 셰이는 명품 패션 대기업에 하필 모종의 일을 맡는 변호사로 취직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사고 이후의 기묘한 공방에 휘말린다.

 

역자 : 안은주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 라디오 및 TV 방송작가로 일했다.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 불문학과에 진학하며 번역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졸업 후 영어와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이란 멀리 떨어진 두 세계를 연결해주는 행위라 믿으며 이에 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카티 보니당의 『128호실의 원고』, 찰리 돈리의 『수어사이드 하우스』와 『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 세라 게일리의 『일회용 아내』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