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 - 불각(不刻)의 아름다움
김종영 지음 / 시공아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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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은 예술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가 읽기에 조금 버거울 정도로 예술에 관한 정의, 예술사, 예술의 지향, 삶과의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텍스트로 쓰였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간다. 어렵게 썼다는 의미가 아니라 쓰인 단어가 적재적소에서 예술을 설명하고 이해시켜 주는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독자는 평소 독서를 할 때 밑줄 긋는 것이 습관인데 이 책은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그어야 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신선한 지식을 공급해준다. 사실 독자는 이 책의 저자인 조각가 김종영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는 상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예술론을 처음 읽었다는 것도 깨달을 정도로 무척이나 많은 영향을 준다. 이미 지난 1982년에 타계하셨다 하니 독자는 불행하게도 그의 존재도 모른 채 예술을 즐겼고, 예술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는 뒤늦은 자책감마저 든다. '조각가'로 호칭되는 저자는 이 책에 조각 작품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작품이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미 예술계에서는 그의 작품에 대한 예술성이나 그의 글에 담긴 예술론에 이의를 달거나 반론을 펴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고, 강단에서도 32년간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김종영은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불과 몇 명 안 되는 예술가의 한 사람(미술 평론가 이경성), “순수 조형 의지로 일관한 선구자”이자 “타고난 추상 조각가”(미술 평론가 유근준)이라 일컬어졌다.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었던 거장 김종영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세계 속의 한국미술을 성취해 냈다고 평가되고 있다. 선비에 비유되기도 하는 고결한 성품으로 창작의 길을 걸으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일생 헌신했다. 상업적 성공이나 화려한 이목을 좇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만큼 새로이 재조명되고 깊이 연구되어야 할 여지가 많은 예술가다. 김종영이 남긴 유고를 선별하여 오롯이 담은 이 책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은 그의 예술 철학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창작자를 위한 의미 있는 이정표라고 이 책을 출판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조각가 최종택(김종영 미술관장)은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세 번째 증보판이다.

최종택 관장은 각종 기고문을 비롯한 70편에 달하는 글을 추가로 발굴해 실었으며, 추가된 글들도 더 손 볼 데 없이 완벽한 원고로서 한 자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실은 글도 있다. 특히 이번 증보판은 ‘조각가로서는 탁월하고 특이한 솜씨이며 감추어진 중요한 일면을 보여준다’고 평가되는 다양한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드로잉과 에스키스, 유화 작품은 물론 유년기부터 한학에 통달했던 그의 필체가 담긴 수목화 등 도판 80여 점을 수록했다.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던 선각자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 책에 제시된 다양한 기록은 치열하게 사색하던 창작자의 내면을 그대로 옮긴 소중한 사료라고 최종택 관장은 설명한다. 여러 경로에 흩어져 있던 글과 그림을 한 권에 집약하여 만날 수 있는 것은 후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누리는 일종의 특권이라며 『조각가 김종영의 글과 그림』은 1983년 작가의 1주기를 기념하여 펴낸 초판과 2015년 개정판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에 이은 증보판으로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도판 다수가 새롭게 교체했다고 강조했다. 추가된 부록에서는 당시 활동을 담은 기사 및 인터뷰를 비롯하여 개인 노트 속 연구의 흔적까지 확인할 수 있다.

 

 

우성 김종영은 추사 김정희와 프랑스 인상파 화가 세잔에게서 시공을 초월한 인류 보편의 예술적 공통성을 찾았다. 동양 사상에 대한 깊은 조예와 서양 미술을 넘나드는 너른 시야를 갖추었던 그는 ‘불각(不刻)의 미’라는 특유의 예술론을 꽃피웠다. 조각가로서 지향하는 “깎지 않음”의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예술 문외한인 독자는 조각가가 불각을 지향한다고? 책의 부제로 「불각(不刻)의 아름다움」이라고 버젓이 새기듯 표지 왼쪽 맨 위에 찍혀 있다. 그렇다면 불각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그를 아는 많은 제자들과 평단은 문자 그대로의 단순한 해석에 그쳐선 안 되는 이 담론을 바루고 넓혀 가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기록을 톺아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책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새로운 미적 관점에 도달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준다.

예술 애호가로 널리 알려진 BTS의 리더 RM(1994~)은 조용히 김종영미술관을 다녀가고 선생의 전시작을 SNS에 소개하며 작품을 직접 소장하기도 했다. 시대의 간극을 넘어 교감하게 하는 김종영 작품 세계의 메시지와 힘은 무엇일까?

책에 따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는 현실에서 유행의 잔향은 순식간에 휘발된다. 고전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과거의 지혜가 현재의 목마름을 채우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올곧은 신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 낸 인물의 꾸밈없는 서술은 긴 세월은 넘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에 무한의 가치를 생활하는 것”이며 “인생에 있어서 모든 가치는 사랑이 그 바탕”이고 “예술은 사랑의 가공”(p.23)이라 전하는 김종영 작가의 당부는, 예술은 무엇이며 왜 예술이어야 하는가를 끝없이 고뇌하는 오늘날의 아티스트에게 길을 안내하는 별자리이자 새로운 영감이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 초판 발행(1983. 12. 15) 때 〈서문〉에서 조각가 김세중(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김종영과 그가 쓴 글에 대해 "동서양의 문화를 총제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어디에 구애됨이 없다."고 전했다. 완당의 실사구시의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했다는 말이다. 완당은 추사 김정희의 호 가운데 하나다. 실사구시 정신이란 속박과 자유, 민간의 자각, 개체성과 전체성의 문제들이며 무한의 질서를 향한 끝없는 탐구라고 김세중은 설명한다. 이에 덧붙여 이 책에 실린 김종영의 소묘는 다양해서 그의 관심 폭이 매우 넓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며 소묘의 영역을 넘어 회화의 경지라고 말해야 옳다고 극찬의 평가를 이끌어 낸다. 이루 다 정리하기가 어려워서 초판에는 육십년대와 칠십년대의 것을 많이 가려뽑았다고도 말한다. 이를 통해 형태가 추상적 경향으로 무르익어 갈 무렵에 오히려 김종영은 현실을 준엄하게 응시하고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각가로서는 탁월하고 특이한 솜씨이며 감추어진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다고 〈서문〉에서 김세중은 강조하고 있다.

김종영은 평소 말 가운데 우리가 흔히 쓰지 않는 몇 가지 희귀한(?) 단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이 책 증보판 축사에서 최종택 관장은 말한다. 〈초월〉, 〈창조〉, 〈사랑〉, 〈통찰〉, 〈불각〉 등이다. 이 단어들이 뜻하는 바는 한발 비켜서서 전체를 관조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에 무한의 가치를 생활한다는 것이다. 동양이라는 것 서양이라는 것 그런 지역성도 넘고 학문과 예술을 하나로 승화시키는 원대한 사상을 읽을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이를 키워드로 해서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예술가, 시대의 거울」, 2 부 「통일·조화·질서」, 3부 「예술, 그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4부 「전통과 창조」, 5부 「조각, 정신과 물질의 결합체」, 6부 「현대미술과 비행접시」 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뒤늦게 발견된 각종 기고문이나 인터뷰 기사, 노트 기록 등은 책 뒷 부분에 별도 〈부록〉으로 실었다.

 


 

앞서 독자가 솔직하게 기술한 대로 이 책의 모든 문장은 독자의 평소 습관대로라면 책 전체의 글에 밑줄을 쳐야 한다. 학생들의 교과서로 쓰였다고 전하는 말이 있었듯 몇 페이지만 읽어도 내용은 물론 문장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부의 첫 장(章)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일찍이 주로 인체에 한정되어 있는 조각의 모티프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가져 왔다. 예술이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의 모색과 방황 끝에, 추상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내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숙제가 다소 풀리는 듯하였다.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특수성과 세계적인 보편성과의 조화 같은 문제도 어떤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p.17)

작품이란 작가의 예술적 충동을 그때그때 기록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김종영은 밝힌다. 작품의 모든 세부는 구성의 통제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작품이 하나의 전체로서 있게 하고 작품을 정착시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 구성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사앙, 역사적인 자각, 개성 있는 창의성, 이런 모든 것들이 작품의 구성 속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예술가와 관중으로 나아간다. 예술가는 누구나가 관중을 염두에 두게 되며, 예술가가 생각하는 관중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많고 넓을수록 좋다. 그러나 진정한 관중은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기만하면 관중을 속이는 셈이 될 것이고,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면 그만큼 관중에게 성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작품은 자신을 위해서 제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술가로서의 지향하는 바를 김종영은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를 알고서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극히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미를 나는 아직 본 적도 없고, 그런 것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것은 전지전능의 조물주에 속하는 문제이다. 예술가가 미를 창작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p.20)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키워드에 대해 이 책은 자세하고 창의적 생각을 담고 있다. 〈초월〉을 통해 동서양의 차이를 극복하고,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고 나면 가장 마음에 남는 앙금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앙금은 〈전통〉이라는 것이지 않을까 문외한 독자는 생각해본다. 이 〈전통〉도 그의 김종영의 말을 들으면 크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를 위해 김종영은 '전통'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정의해 낸다. 이 지구상에는 시로 장구한 역사와 산더미 같은 유물을 갖고 있는 나라도 많지만, 그것으로 전통문화를 가졌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하였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역사와 약소한 국가에서 몇 사람의 천재에 의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빛나는 문화의 전통을 세운 예를 볼 때, '전통'이란 단순한 전승이나 반복에 있는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끊임없는 탄생이고 새로운 인격의 형성을 뜻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통이라는 것이 현실을 어떻게 생활하느냐는 문제와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역사적 감각 즉 과거, 현실, 미래를 동시에 생활하는 노력과 비판의 지속 없이 진정한 '전통'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p.169~170)

김종영은 또 '불각의 미'에 대해서도 확실한 주장을 밝힌다. 다소 비유적 표현이지만 천천히 새겨 읽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 이에 따르면 고대 중국 사람들은 일찍이 불각의 미를 숭상하였다. 괴석 같은 데 약간의 가공을 했을 때는 손 댄 자국을 없애기 위해서 물 속에 몇 해를 넣어 두었다가 감상을 하였다. 자연석의 경우에 불각의 미를 최고로 삼는 것은 형체보다도 뜻을 중히 여겼던 탓이다. 한때 조형이념이 형체의 모델보다도 작가의 정신적 태도를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은 동양사상의 불각의 미와 상통한 것으로 김종영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예도 있다. 콘스탄틴 부랑쿠시나 헨리 무어의 작품이 조각적으로 보이는 것을 싫어하고 천연스럽게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조형에 대한 독특한 의미를 구하는 태도이고 보니, 이것 역시 불각의 미라고 김종영은 말한다. 즉 자연에서의 조화를 구하는 것이기도 하려니와, 또한 작품이 확실하게 외연히 존재하면서도 항상 자연의 재질서와 상통하는 격조를 지니게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 작품이 어떠한 무엇으로나 기록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실제로 작품 처리에 있어 터치를 깨끗이 지워 버리기도 하고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도 많은 신경을 쓴다. 이렇게 해서 깎아 만든 조각으로서의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리고 될 수 있는 대로 하나의 객관체로서 자연스럽게 또는 필연적으로 작품이 있게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자연의 묘사가 아닌 작품으로서의 생명감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공간에 있으면서 공간을 호흡하고, 언제든지 공간에서 죽어 없어질 수 있는 이러한 생명을 갖기를 권한다.(p.148~149) - 「3부 〈예술, 그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작품과 사진’」 중에서

 

나는 단 한 가지 자신 있게 단언합니다. 자연과 인간 사회가 있는 한 예술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고, 우리의 희망은 계속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백 년 전 인상파 미술가들에게도 현실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무거운 전통의 압력에서 실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희망과 지혜를 준 것은 다름 아닌 대자연이었고, 인간의 현실이었습니다. 거기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르네상스의 지혜도 자연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희망은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변과 그날의 생활 속에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p.263) - 「6부 〈현대미술과 비행접시〉 ‘현대의 조형예술, 무엇이 문제인가’」 중에서

 

저자 : 김종영

 

1915년 6월 26일 경남 창원에서 성재 김기호와 이정실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와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하고, 1948년부터 1980년까지 32년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3년 4월 런던에서 개최된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조각콩쿠르에 한국 조각가로는 최초로 입상하였고, 1959년 장우성·김종영 2인전을 중앙공보관에서 열었으며, 1963년 <3?1독립선언기념탑>을 국민 성금으로 탑골공원에 제작하였다. 1975년 회갑을 기념하여 조소과 동문회 주최로 신세계미술관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80년 5월 조각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을 개최하였다. 1980년 8월 정년퇴임 후 일 년여 투병 끝에 1982년 12월 15일 영면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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