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망루
배이유 지음 / 알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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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밤의 망루』는 배이유 작가의 소설집이다. 저자 배이유는 8년 만의 침묵을 깨고 새 단편 소설집을 펴냈다.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매우 탄탄하게 작품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배이유는 『퍼즐 위의 새』(2015)로 2016년 제16회 부산작가상을 수상한 이후 이 소설집을 처음 냈다. 오랜 침묵 속에서도 창작의 열정은 식지 않는 것인지 이 소설집 『밤의 망루』에는 저자 특유의 작품 세계가 그대로 담겨 있어 반갑다. 전작 『퍼즐 위의 새』는 한 번 읽어서 독자의 기억 속에 아직 살아 남아 있다. 독자가 저자 배이유를 처음 알게 된 『퍼즐 위의 새』에는 단편 소설들은 세상의 비루함과 낡음에 대해 끈질긴 희망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 속에 있다. 이 작품 『밤의 망루』를 읽다보니 『퍼즐 위의 새』에 실렸던 작품들이 스멀스멀 기억 밖으로 배어 나온다.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뭔가 새로운 세계를 제시한 것 같아 기억에 오래 남은 이유일 것이다. 이번 신작 『밤의 망루』에는 2022년 제27회 부산소설문학상 수상작 「소리와 흐름: 록의 부치지 못한 노래」와 2018년 제10회 현진건문학상 추천작 「검은 붓꽃」을 비롯한 일곱 편의 소설들이 담겨 있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밤의 망루』에서 저자 배이유는 ‘자유’에 관해 말한다. 일곱 편의 소설은 저마다 자유를 향한 의지를 품고 있다. 그런 자유에 대한 의지는 물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물에서 비롯되는 ‘흐른다’, ‘흘러간다’, ‘부드럽다’, ‘유연하다’, ‘지나간다’, ‘스친다’, ‘젖다’, ‘적신다’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물은 갇히지 않으려는, 끊임없이 흘러가려는 속성을 가진다. 이슬이나 비나 눈의 물은 결국 자유를 꿈꾸며 바다로 흘러 나아간다. 저자는 이번 소설집이 종이, 돌멩이, 나뭇가지, 색유리, 털실, 모래 등등의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시간의 조각배에서 흔들리는 삶의 파편들’의 모자이크라고 말한다. 그 삶의 파편들 속에서 독자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고뇌하고, 상실한 인물들을 통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표제작 「밤의 망루」는 저자가 프란츠 카프카의 『성(城)』을 오래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로 품고 있다가 쓴 소설이라고 한다. 「밤의 망루」에서는 표지화처럼 고독한 망루에 홀로 서서 거대한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임무를 안은 채, 어떤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홀로 성을 지켜야만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불가항력의 본연적 임무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빈 땅, 안개로 휩싸인 적막한 공간에 발을 딛으며 헤맸다. 오리무중. 추상에서 구체화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는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파수꾼의 삶은, 한 여인의 등장으로, 그리고 그녀의 탈주로 요동치게 된다. 파수꾼과 같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던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그런 그녀가 파수꾼에게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인가. 망루 위의 파수꾼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저자의 말대로 카프카의 『성(城)』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문학 사전을 뒤적여 본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작가로 알려진 카프카는 인간 운명의 부조리, 인간 존재의 불안을 통찰함으로써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하여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는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는 카프카는 '부조리의 작가'로 불리웠다. 카프카는 『변신』, 『심판』 등을 통해 인간 실존과 부조리에 대해 집중력 있는 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1916년 간행한 『변신』은 독자의 기억 속에 강렬한 느낌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미완성 장편소설로 남은 『성』은 미완성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 소개되었다고 한다. 측량 기사 K가 성을 둘러싼 마을에 도착해, 아무도 자신을 부르지 않았고 따라서 계속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비교적 단순한 이 요점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전형적인 악몽이다. 카프카는 이 작품에서 불합리와 리얼리즘을 가장 미묘하게 결합시켰다. 사건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일 뿐이지만 어딘가 완벽하게 이질적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페이지에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자기 생각대로 움직인다는 사실도 피할 수 없다.

 


 

『성』은 이야기에 앞서 끊임없이 불안정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료사회의 끊임없는 장애물에 의해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공포가 서서히 스며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꿈 속에서 말을 하려고 하는데 목소리를 전달해줄 공기가 없고, 시간은 한없이 느려지는 최후의 순간과도 같다. 문학 평론가들의 일반적 견해를 인용한 것이지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음은 아마 독자가 학창 시절 이후 카프카를 멀리 해서인 것 같아 아쉽다. 「밤의 망루」와 비슷한 느낌이 있긴 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짚어 내지 못한 것은 아직 문학적 소양이 제대로 쌓지 못한 독자의 이해 부족 탓인가 생각한다.

이 소설집의 첫 작품은 앞서 언급한 대로 「검은 붓꽃」은 2018년 제10회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이다. 몸의 소리를 애써 부정하고 가두려던 시대의 이야기이자, 그런 시대를 살아온 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소설이다. 「검은 붓꽃」은 매우 은유적 표현이지만 무슨 뜻인지 금세 알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레드 칸나보다 검은 붓꽃에 더 눈길이 간다. 레드 칸나는 오렌지와 자줏빛의 붉은 꽃잎이 겹겹이 속살을 드러내며 도박적인 생명력을 보여 주지만, 검은 붓꽃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무엇보다 두려워하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보게 된다. “깊숙이 감춰진 성기를 드러내어 똑바로 바라보긴 처음이었다.”(p.11) 그녀는 자신의 성기를 보며 '눈에 보이는 부분만 봐왔지 다리 사이에 가려진 ㅗㄳ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마주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한다. "얘도 음지에서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는 생각에서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한 사람 안에 고착된 고정 관념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의 관습적인 시선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해서 그것을 실체라고 믿는 오류를 저지른다. 특히 그동안 여성들은 자기 신체의 주인 노릇을 못한 경우가 많았다. 저자는 질문한다. 과연 지금은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서 살고 있느냐고.

 


 

두 번째 이야기 「홍천」은 어느 해 여름, 장의차처럼 검은 차를 탄 네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 그날 서로 처음 본 그들은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 차에 동승했다. 과연 그들은 왜 홍천으로 가는가. 저자는 언젠가 홍천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 가기 전부터 어떤 정보도 없었음에도 ‘홍천’이란 장소로 소설을 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을 둘러보며 어떤 이야기가 자신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다고 고백한다. 마치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내 안에서 흘러나와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알아서 자기 길을 만들어 간 것이다.” 시작 부분에서 첫 문장, 첫 장면이 암시하는 부분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독자에게 남긴다.

"그래 여름의 햇빛이 기억난다.

온통 초록이었던 숲과 계곡 위에 투명한 유리막으로 덮여 있던 빛이.

벌써 삼 년이나 지나갔군.

태풍이 비켜나자 지속적으로 내리던 비가 그치고 보녁적으로 태양이 빛을 뿌리던 7월 중순이었다."(p.36)

 

여기 모인 분들은 혼자 죽는 게 두려워 여행길에 동참한 거 아닙니까. 이번에도 같이 해보죠. 하루만 더 사용해 봐요. 본이 한 말 중에 제일 길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하는 것 같았다. 전열이 흐트러지고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제리는 미간을 찡그리며 한 손으로 긴소매의 팔을 긁어댔다. 착화탄에서 불꽃이 튀며 연기가 올라왔다. 매캐한 연기가 바깥으로 맘껏 뻗어나가지 못하고 천정에 부딪치며 옆으로 퍼졌다. 탁은 연거푸 기침을 했다.(p.52)

 


 

「홍천」은 얼마 전 뉴스를 온통 도배하다시피 한 '동반 자살'이라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소재로 삼았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전혀 모르는 사이로 이번 일을 계기로 처음 만나는 사이다. 네 사람의 젊은이들은 번개탄을 이용해 함께 죽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펜션으로 들어가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번개탄을 준비하고 창문을 꼼꼼히 막기 시작한다. 그런데 밖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들이 들리기도 하고 키타소리와 노래소리들이 들린다. 누군가가 제안한다. 너무 빨리 일을 치르면 빨리 들통날 수 있으니 새벽까지 더 때를 기다리자고. 그러자 옆 사람은 이왕 죽는거 시간이 있으니 해보고 싶은것 해보자고 말한다.

이로 인해 이들은 다음날 죽음을 잠시 미루고 홍천의 급류타기를 하러 간다. 급류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쟁하듯이 래프팅을 시작한다. 래프팅을 시작합니다. 보트 탈 때 지켜야 할 안전수칙 교육도 착실히 받는다. 구명조끼도 착용하는 등 안전한 래프팅을 위한 준비를 착착 알아서 잘 챙긴다. 보트가 뒤집힐 우려가 큰 급류 구간에서는 처음 본 사람들인데도 팀의 호흡이 척척 잘 들어 맞는다. 히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 급류구간과 폭포구간을 지날때는 팀이 호흡을 착착 맞춥니다. 모두 합세하여 무사히 도착한다. 죽으러 간 곳에서 삶의 의지가 되살아나는 자신들을 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이러니이지만 어쩌면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부분이다. 래프팅이 끝나자 잠수도하고 미끄러운 바위도 만져보고 자연도 느껴보고... 서로 웃는다. 죽을 생각을 했던 사람들의 행위로 보여지지 않는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속으로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다. 조금 더 정확히는 상운의 아내 ‘이순’의 이야기이다. 한때는 그들에게도 “서로의 심장에도 반짝하고 불이 켜지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순과 상운은 “각자 다른 별”이 되었을 뿐이다. 어느 날 상운이 이순을 위한 선물로 사들고 온 어항 속 물고기를 보는 것이, 이순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넓지도 않은 집 안에서 이순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갈 곳이 없다”고 느낀다. 오랫동안 살아온 부부 사이라 해도 가장 가까이 밀착해서 산다 해도 서로의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눈치조차 못 채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다른 성향이나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어느 한쪽이 인내하지 않으면 가정을 건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물밑의 가라앉은 속말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착하다, 천사 같다, 자애롭다, 자비롭다’ 같은 칭송 뒤에 가려진 불편함, 거북함 등을 말함이다.

이순은 앉아서 망연히 하늘과 구름과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문득 발목에 젖은 모래를 털어내며 신발을 벗어 맨발을 내밀었다. 따끈한 모래의 감촉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발가락들이 저마다 자신의 얼굴을 내밀었다. 집 안이 아닌 곳에서는 늘 감춰져 있는 발가락들이 해를 볼 일이 있겠는가. 역사적인 사건인데, 서로 햇빛을 쐬려고 구멍에서 얼굴을 내미는 두더지 같았다. 이순은 발가락 낱낱을 떼어 움직여주었다. 너희를 덩어리가 아닌 개별적 인격체로 존중할게.(p.74)

 

저자 : 배이유

 

논산과 진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문자를 깨친 이후로 오랜 시간 부산에서 살아왔다. 2011년 《한국소설》에 단편소설로 등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상으로 2015년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발간했다. 첫 창작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2021년 뉴욕의 문예지 《The Hopper》에 단편소설 「압정 위의 패랭이꽃」이 ‘The Last Days’로 번역(양은미) 게재. 2022년 「소리와 흐름: 록의 부치지 못한 노래」로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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