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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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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독자는 지중해성 기후의 프랑스 남부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풍광과 기후가 좋아 연중 따뜻한 날씨와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안 도시들의 동화 같은 집도 잇따라 떠오르는 풍경이다. 독자는 프랑스 여행 때 니스를 중심으로 한 몇 개의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때가 1월인 데도 바닷가 백사장에는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에 깜짝 놀란 경험도 있다. 멀리 눈 쌓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그야말로 이국적 풍경을 실감했었다. 연중 화창한 날씨 탓인지 이쪽 사람들은 성격도 온화하고 온순하다고 하니 여행지로서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바닷가 언덕을 따라 층층이 줄 지어 서 있는 저택들을 보고 혹시 옛날 로마가 이런 휴양지가 탐나서 유럽 전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었나 싶기도 했다. 지중해변을 따라 지금도 이 도시와 마을의 경계는 모호한 편이라고 한다.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전망에 여행자들이 매혹되는 이유다.
이 책 『프로방스 여행』는 이곳 프로방스에서 십여 년을 살았다는 저자 이재형에게는 지금 사는 파리를 떠나 이곳 프로방스로 자주 여행을 오는가 싶다. 이번에도 프로방스 여행으로 이를 계기로 프로방스 전역의 도시들을 들러 소개해 준다. 특히 이 지역이 배출한 예술가들과 그들은 떠났지만 여전히 그들과 함께 숨쉬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프로방스 주민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는 프로방스 23개 도시를 예술가와 그들의 예술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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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은 누가 뭐래도 고흐의 도시임에 틀림없다. 아를은 프랑스의 코뮌(주민자치제) 중 가장 넓은 지역이라고 한다. 이곳은 론강이 흐르고 황량한 크로 평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로마의 원형경기장과 공동묘지, 극장, 공중목욕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이 옛 로마령 갈리아의 주요 도시였음을 알려준다. 이 도시에는 박물관도 많고 축제도 다양하다. 고흐, 고갱, 피카소가 이곳에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 이우환 미술관도 있다. 이곳의 가장 강력한 이미지로는 단연 고흐다. 그가 이곳에서 산 지낸 시간은 겨우 2년 여밖에 안 되지만 수많은 그림과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저자는 안내한다.
1888년 2월 2일, 반 고흐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15시간을 여행한 끝에 아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프로방스의 강렬한 빛과 눈부시게 선명한 하늘, 투명한 공기 속에서 꽃을 피운 과실수와 협죽도, 보라색 땅, 올리브나무의 은빛, 실편백나무의 진한 녹색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냈다. “난 새로운 예술의 미래가 프로방스에 있다고 믿어.”(p.14)
책에 따르면 1988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반 고흐는 아를 시내에 있는 카페의 밤 풍경을 그린다. 〈밤 카페〉는 라마르틴 광장에 있었던 역전 카페를 그린 것인데, 이 카페는 아쉽게도 지금 남아 있지 않다. 반면에 시내 한가운데의 포룸 광장에 가면 노란색으로 칠해진 반 고흐 카페가 단번에 시선을 잡아끈다. 〈밤의 카페 테라스〉의 소재인 이 카페- 당시에는 '테라스'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카페라고 불리운다- 는 아직 남아 있어서 이름을 찾는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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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을 떠나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최대 항구인 〈마르세유〉로 간다. 기원전 6세기 경 그리스에 살던 포카이아 사람들이 건너와 건설한 마르세유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이민자들의 물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이 도시는 율리우스 케사르에게 점령당하면서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연이어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이탈리아인, 코르시카인, 유대인, 스페인인,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 북아프리카인, 베트남인, 캄보디아인, 코모르인 등 전 세계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이곳 수많은 이민자들은 갈등과 투쟁, 화해를 거치며 마르세유의 역사를 만들어냈고, 이들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마르세유만큼 조화롭게 결합시킨 프랑스의 도시는 없다고 저자는 잘라 말한다.
이곳은 수많은 예술가가 즐겨 찾았지만, 특히 유명한 영화 촬영지로 이곳을 선택한 영화인들이 많다고 한다. 프로방스의 작가로는 마르셀 파뇰(1895~1974)은 작품에서 자신의 고향인 프로방스 지역 사람들 특유의 정서와 일상, 사고방식, 풍속을 세심하게 묘사한 '프로방스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마르셀 파뇰은 연극과 영화에 집중하여 '영화화된 연극'의 거장이 되었다. 이는 특히 희곡으로 쓰였다가 영화화된 그의 유명한 마르세유 3부작 〈마리우스〉와 〈파니〉, 〈세자르〉 덕분이라고 전한다. 또 〈빵집 마누라〉는 프랑스의 국민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다. 독자는 읽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이 영화는 마을의 민주주의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 이 공동체 구성원 중 한 명이 당하는 불명예는 곧 공동체 전체의 불명예이며, 빵집 주인의 명예를 회복하려면 모두가 나서야 한다. 바로 이것이 마르셀 파뇰의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바스티드 뇌브 남쪽의 라 트레이으 마을에서 찍은 영화도 수없이 많다. 독자도 본 적이 있는 〈마농의 샘〉 역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살짝 전해준다. 이 영화에는 그의 아내 자클린 파뇰이 마농 역을 연기했다. 독자의 머릿속에 〈마농의 샘〉 한 장면이 스치듯 지나간다. 소설 『마농의 샘』은 마르셀 파뇰의 작품이지만 그의 부인이 영화에 출연한 것이다. 그 마을의 묘지에 마르셀 파뇰의 묘지에 가족과 함께 묻혀 있으며 묘비에는 "그는 샘과 친구들, 아내를 사랑했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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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도시 〈아게〉에는 「어린 왕자의 영혼이 머무는 바다」란 부제가 붙어 있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리옹 출신이지만 이 마을과 인연이 깊다고 한다. 그의 누이동생 가브리엘이 1923년 피에르 다게와 결혼을 했고, 그 얼마 전부터 항공 우편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아게에 있는 동생 부부의 성(18세기에 지어진)을 자주 찾아왔다. 그리고 아게 성당에서 엘살바도르 출신 예술가 수엘로 순신 산도발과 종교 결혼식을 올렸다. "아게는 심지어 먼지에서조차 향기가 푸익는 천국이다"고 생텍쥐페리는 썼다 이 마을에 매혹된 생텍쥐페리는 1940년 마지막으로 아게에 머무르면서 『성채』를 썼다고 한다. 그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쓴 『어린 왕자』는 1946년 처음으로 프랑스 서점에서 볼 수 있게 됐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어린 왕자』는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이 작품이 성공을 거두는 걸 보지 못했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 여행을 끝내고 자기 별로 돌아간 것처럼 생텍쥐페리도 1944년 7월 31일 저 높은 하늘로 날아 자기 별로 떠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게 풍경은 강렬한 원색으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하늘과 바다의 파랑, 숲의 초록, 바위산의 빨강. 이 강렬한 원색들은 19세기 말에 후기 인상파 화가들, 특히 야수파 화가들을 매혹시켰다. 1897년 아르망 귀요맹은 이 마을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아게의 바위산〉을 그렸다. 1911년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붉은 바위와 뒤틀린 나무를 그리는 걸 좋아한다. 나는 이미 주홍색과 다른 붉은색 튜브를 다섯 개나 썼다."(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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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차를 갈아타고 영화제로 유명한 곳 칸(Cannes)까지 갔다가 다시 발로리스까지 가는 버스를 갈아탄다. 프로방스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 두 곳 중 한 곳인 국립 피카소 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다. 파블로 피카소는 1948년에서 1955년까지 발로리스에 머물렀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도자기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던 이 도시에서 피카소는 도자기 예술의 세계에 입문하여 4,500점의 도자기 작품을 남겼다는 새로운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독자는 파카소를 좋아하지만 그가 그렇게 많은 도자기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저자로부터 처음 듣는 이야기다. 피카소는 또 이곳에 많은 조각 작품과 회화 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중 대표작이 바로 〈전쟁과 평화〉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그렸다고 저자는 전한다. 아마 한국전쟁을 소재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떠올렸기 때문에 의외의 사실을 전해주는 듯하다.
이 전언에 따르면 발로리스의 도자기 예술가들이 그의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아 발로리스성의 소 예배당에서 열어준 축하 파티에서 피카소는 예배당 천장을 그림으로 장식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한다. 그는 버려져 있던 이 오래된 성소를 '평화의 사원'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그의 이러한 바람은 실현되었다. 〈전쟁과 평화〉는 마주보고 있으며 둥근 천장의 꼭대기에서 만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그림은 〈전쟁〉이고 오른쪽 그림은 〈평화〉이며, 안쪽에는 반원형 그림이 있다. 어두운 색조의 〈전쟁〉에는 혼란스러운 전투 장면과 이 장면을 지켜보는 평화의 전사가 보인다. 반면 〈평화〉에는 사람들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놀이를 하고 있다. 안쪽 그림 〈세계의 네 부분〉에서는 네 사람이 함께 비둘기가 그려진 원반을 들고 있다. 피카소가 혹시 시스티나에 그린 벽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세상에는 신의 세상이지만 피카소가 그린 세상에는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인간의 세상을 말하려던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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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도 가본 적이 있는 도시 〈니스〉로 발길을 옮긴다. 니스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기후도 매우 온화해서 살기 좋은 도시다. 이 도시에서는 천사의 만을 따라 이어져 있는 영국인들의 산책길(이 길 이름은 엣날 니스에 살았던 부자 영국인들에게서 따왔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하염없이 지중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다. 니스는 매우 오래된 도시다. 기원전 6세기에 세워진 그리스인들의 니카이아와 기원전 100년경 로마인들이 세운 세메넬룸이 합쳐서 생겨났다. 중세 때 니스 주민들은 안전을 위해 지금은 공원이 된 산 위의 성에 모여 살다가 14세기부터는 지금 옛 니스(Vieux-Nice)라고 불리는 성 아래쪽에 자리 잡았다. '꽃의 도시'라고 불리울 만큼 꽃과 대규모 꽃 도매시장이 새벽을 깨운다고 하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꽃으로부터 아침 인사를 받는 셈이다. 바로크 예술로 탄생한 생트레파라트 성당을 지나 마세나 광장에 이른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니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니 때맞춰 오면 굉장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될 것 같다.
니스의 가장 큰 자부심은 아마도 파리 다음으로 미술관이 많은 도시라는 점일 것이다. 니스를 사랑한 샤갈과 마티스 미술관 외에도 현대 미술관, 팔레 라스카리, 마세나 빌라, 보자르 미술관, 아니톨 자코브스키나이브 아트 미술관 , 샤를 네그르 사진 미술관, 사미에 고고학 박물관 등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는 듯 예술과 미술의 역사를 니스 한 곳에 다 몰아넣은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니스는 앙리 마티스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마티스는 니스에서 대단한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티스는 1917년 처음으로 니스에 왔다. 프로방스의 맑고 투명한 빛에 매료된 그는 니스에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다가 결정적으로 시미에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지금 시미에 수도원 공원묘지의 수수한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 1954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자신의 작품 전부를 니스시에 유증했다. 니스시는 17세기에 건축된 아렌느 빌라를 마티스 미술관으로 만들고 마티스가 유증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 목록을 구성했다. 관람객은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데생과 판화, 조각 작품을 통해서도 그의 예술 세게를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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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나무, 아몬드나무, 무화과나무가 길 양쪽에 서 있는 커브 길을 벌써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치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피라미드 모양으로 지어진 이 성채 마을이 프로방스의 태양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중략)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면 고르드의 돌집들은 빨갛게 물들고 저 아래 계곡은 초록 바다로 변한다. 고르드는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p.216)
이번 여행의 종착지이며 파리에서 남쪽으로 600km 떨어져 있는 아비뇽(Avignon)에 도착했다. 교통의 요지였던 이 도시는 14세기에 교황청이 자리 잡으면서(흔히 ‘아비뇽 유수’라고 부른다) 모습이 확 달라졌다. 교황청은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비뇽은 세계 최대의 연극제가 열리는 연극의 도시이기도 하다. 매년 7월이 되면 아비뇽은 거대한 연극 무대로 바뀌어, 3주 동안 도시 곳곳에서 연극이 공연된다.(p.233)
저자 : 이재형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우리에게 생소했던 프랑스 소설의 세계를 소개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많은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지금은 프랑스에 머물면서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세상의 용도』 『부엔 까미노』 『어느 하녀의 일기』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꾸뻬 씨의 시간 여행』 『꾸뻬 씨의 사랑 여행』 『마르셀의 여름 1, 2』 『사막의 정원사 무싸』 『카트린 드 메디치』 『장미와 에델바이스』 『이중설계』 『시티 오브 조이』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 『레이스 뜨는 여자』 『정원으로 가는 길』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 『사회계약론』 『법의 정신』 『군중심리』 『사회계약론』 『패자의 기억』 『최후의 성 말빌』 『세월의 거품』 『밤의 노예』 『지구는 우리의 조국』 『마법의 백과사전』 『말빌』 『신혼여행』 『어느 나무의 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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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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