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한자 - 인생의 깨달음이 담긴
안재윤.김고운 지음 / 하늘아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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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예전 학창 시절에 어른(선생님)들로부터 주의를 받을 때 "책을 읽고 수양 좀 더 해야겠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주의를 줄 때는 꼭 "책 보고 수양 좀 더 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잘못을 지적 받은 자리이기에 수긍하는 듯 머리를 조아렸기 때문에 더 이상의 주의나 경고의 말은 듣지 않았다. 그러나 독자는 내심 '무슨 수양을 책 읽고 하라는 거야' 하는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잊었다. 선생님도 잊었고, 독자도 더 이상 주의 받은 사항을 되풀이하지 않았기에 그냥 잊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이 책 『인생의 깨달음이 담긴 저녁 한자』(이하 『저녁 한자』)를 읽으면서 그때의 일과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수양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구나. 그 말이 "책을 통해 옳고 그름을 깨닫고 실천해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독자 학창 시절 때 '책을 본다'는 의미는 '공부한다'는 의미였고, '공부'는 지식을 얻는 것이었다. 그것도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을 읽을 때 일이었고, 교과서는 대학 입학을 위한 책일 뿐이었다. 수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체적으로 공부는 대학 입시를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 이상의 것을 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독자의 공부량이 많지 않아서 공부에 대한 깨달음이 적어서이겠지만. 이 책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읽고 배우던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에 대해 글자의 뜻과 문장의 의미를 깨닫게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펴냈다. 몇 페이지 읽지 않아서 학창 시절 이야기가 떠오르며 수양을 책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공동 저자 안재윤과 김고운은 이 책 〈머리글〉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이라는 주제로 한자 어휘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성찰할 수 있도록 알려주기 위해 쓴 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머리글〉은 한자 20자로 된 오언절구의 싯구로 시작한다.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산속에 사는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동자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 선생님은 약 캐러 가셨다 하네. / 이 산속에 계시긴 하나 /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알 수 없다네) 『尋隱者不遇』란 책의 가도(賈島) 편에 나오는 싯구인 것 같다. 저자들은 "옛글을 탐함은 구름 깊은 산속에서 약을 캐는 것과 같다. 무엇이 약이고 무엇이 독인지 알지 못하고 함부로 캐 먹으면 예상치 않은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무엇이 약인지 알았더라도 어디에 가야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노력이 제값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디에 있는지 알았더라도 때를 살펴 가지 않으면 좋은 상태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아예 찾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 이 싯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옛글은 한자와 한문으로 되어 있다. 우리 옛글을 탐하는 이들에게 한자와 한문은 적잖은 걸림돌이다. 전문 역자들이 작업한 잘 번역된 글이 있지만, 그 온 모습을 살피려면 역시 기본적인 한자와 한문을 익히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48가지의 한자 어휘 속 지혜의 발견을 담았다고 말한다. 독자가 임의로 4개의 장(章)으로 나눴다. 1장 「믿음으로 세상과 소통시키는 저녁 한자」, 2장 「배려와 용서의 온기를 채워주는 저녁 한자」, 3장 「안목을 밝히는 지혜가 담긴 저녁 한자」, 4장 「기다림의 미덕을 일깨워 주는 저녁 한자」이다.

 


 

저자들은 한자에 익숙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우리말 번역만으로는 심심하다 싶었던 여백을 한자와 한문을 풀어 익히면서 채워가도록 했다. 한자를 풀어 이해하는 것은 약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무엇이 약이 되는지, 어디에 가면, 언제 가면 좋은 놈을 만날 수 있는지 한자가 안내해 줄 것이라고 귀띔한다. 새로운 한자 어휘를 발견해 가며 삶을 살아가는데 마음의 공부가 될 수 있으며, 멘탈 관리와 함께 더 좋은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들은 앞서 살폈듯이 한문을 풀어 이해하는 것은 은자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한자 몇 자 알았다고 대번에 깨달음이 오는 게 아니라고 한다. 한문 표현 몇 개알았다고 문리가 트이는 것도 아닐 터다. 그저 아침마다 한두 문장씩 옛 글을 한문으로 풀어 익히다 보면, 책 끝머리에서 한자에 담긴 삶의 이치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고 밝힌다. "은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동자는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제 할 일만 한다. 은자를 찾아온 화자는 스스로 해답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는 문장을 비유적으로 덧붙이는 것은 〈머리글〉의 시작 부분에 나온 『尋隱者不遇』 싯구처럼 매일 읽고 깨닫고 실천하기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덧 마음 수양은 자신 속에 들어와 있을 것 같다.

저자들은 전작 『인생의 지혜가 담긴 아침 한자』에서 인과(因果), 분배(分配), 집착(執着)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생활한자에서부터 옥불은하(玉不隱瑕), 화광동진(化光同塵),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등 동양 고전에 나오는 주옥같은 옛글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한문의 바다를 종횡무진 횡단하며 한자에 담긴 삶의 이치를 현 세태에 맞춰 재미있게 풀어낸 바 있다.

 


 

전작 『아침 한자』가 '지혜를 담았다'면 『저녁 한자』는 '깨달음을 담았다'고 한다. 아침과 저녁에 대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제목으로 보인다. 1장은 믿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지혜와 깨달음을 주는 한자·한문들이다. 한자 통(通)과 통(痛)을 통해 소통을 가르쳐준다. 이에 따르면 옛사람은 우리 몸에 통증이 생기는 것은 기혈이 막혀서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 서로 오해하고 불신한다. 오해와 불신으로 서로의 감정을 다치게 하고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통(痛)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통(通)이다.

'?(착)'은 가는 동작을 나타낸다. 본래 글자는 '?'이고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 ?으로 모양이 바뀐다. 윗부분은 네거리를 본뜬 행(行)의 반쪽 '?(척)'이고 아랫부분은 걷는 발을 나타내는 '지(止)'다. 가는 동작과 관련한 글자에 많이 쓰인다. 앞으로 가면 진(進)이고 뒤로 가면 퇴(退)이다. 용(甬)은 용(用)과 같으며 통나무 속을 깊이 파서 만든 나무통이다. 통(桶)의 본래 글자다. 甬과 用은 손잡이가 있고 없고 차이다. 甬이 다른 뜻으로 더 많이 쓰이자 본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목(木)을 덧붙여 桶을 만들었다. 물건을 담는 나무통은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것이다. 甬과 用에 대해서는 제물로 쓸 소를 가두어 두던 '우리'라는 설명, 중요한 일을 알리는 '종'이라는 설명, 점칠 때 쓰던 '뼈'라는 설명도 있다. 痛=?+甬. '?(녁)'은 사람이 병들어 누워있는 침상이다. 疾(병 질), 病(병 병), 疫(돌림병 역) 등 병과 관련한 글자에 많이 쓰인다. 痛은 몸 어딘가 빈 곳이 있어서 아파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마음이 아플 수도 있겠다.

[옛 글을 읽어보자] 變?痛 通?久(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 變(변)은 '변하다', ?(즉)은 접속사인데 '~면 곧 ~'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變?痛은 '변하면 곧 통한다'가 된다. 通?久는 '통하면 오래 간다'다.

 

 

「배려와 용서의 온기를 채워주는 저녁 한자」 중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나온다. '타인의 능력을 존중한 뒤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라'라는 뜻이다. 두 저자는 단어의 뜻을 풀이하기에 앞서 사람은 저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앞세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성격, 사고방식, 외모가 다르고 정신적·육체적 능력이 다르다. 이처럼 개성과 개인차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을 이루고 사회 조직을 이루며 살아간다. 한 부모를 둔 형제자매도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다. 심지어 소질과 능력도 다르다. 형은 이런 재주가 있고 동생은 저런 재주를 갖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더러 형과 동생이 같은 재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p.96)

이 전제는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내 개성만 제일이고 내 재주만 최고라며 뽐내고 드러낸다면 분란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좋은 재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 위에서 부려야 아름답다. 제 잘난 줄만 알고 까부는 재주꾼은 조직의 화합을 해치고 조화를 깨뜨린다. '눈빛을 누그려뜨려 속세와 하나가 되라'는 화광동진의 자세는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이 미덕인 현 세태를 꾸짖는다"고 풀어낸다. 글자의 조합을 살펴본다. 和=禾+口(?, 피리 약). 禾는 '벼'다. 여기서는 '화'라는 음을 나타내는 발음 기호 역할을 한다. 口(?, 약)은 '피리, 피리 소리'다. 和는 '조화로운 피리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흔히 '화목하다'로 새기는데, '자기를 누그러뜨리고 상대에게 맞추다, 어우러지다'라는 뜻이다. 光=火+?(人,인). 불을 들고 옆에서 시중드는 사람을 나타냈다. '광채, 빛'이다. 同=凡(무릇 범)+구. 凡은 '여러 사람들, 모두'다. 口는 '말하는 입'이다. 同은 여러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하는 상황을 나타냈다. '같아지다, 똑같게 하다'다. 塵=鹿+土. 塵은 사슴이다. 사슴, 노루와 관련이 있다. ?(노루 균), ?(고라니 균), ?(고라니 포), ?(큰사슴 미) 등이 그렇다. 塵은 사슴 떼가 달려갈 때 나는 먼지를 나타냈다. 본래 글자에는 사슴 셋을 표시했었다. '먼지, 티글'이다. 여기서는 '보통사람, 보통내기'를 뜻한다.

 


 

이 책의 마지막(마흔여덟 번째 저녁)에 不倒翁(부도옹)을 풀이했다. 옛날 우리와 등지고 살았던 때 중국의 등소평(덩샤오핑)이 기억난다. 그의 별명이 不倒翁이었다. 등소평은 모택동(마오쩌둥)과 함께 중국 공산주의 운동을 함께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큰 몫을 했던 인물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그러나 마오쩌둥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른바 숙청당했다. 모진 수모를 감내하고 다시 돌아와 결국 모택동 사후 주석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래서 그에게 '부도옹'이란 별명이 붙었다. 오늘날 중국이 있게 한 개혁개방 정책을 펴고 상하이 등 여러 개 도시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운용하면서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다시 올라서도록 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하면 '오뚝이'로 하면 되겠다. 이 책은 꾸준하게 읽고 읽히면 마음 수양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책이다. 어휘력 늘리는 데도 더 없이 잘 씌어진 책이다.

 

저자 : 안재윤(安載允)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와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출판기획과 편집을 주업으로 하면서 간간이 뜬금없는 책을 쓴다. 주제넘게 동서 고전 해설서 두 권을 내더니, 내친김에 한자 상식과 시사 상식까지 썼다. 요즘은 정이·주희의 해설과 후대 학자들의 주석을 모은 『주역전의대전』과 들뢰즈의 초기 저서 『차이와 반복』을 친구들과 함께 자세히 읽고 있다. 모순이 삶의 본질임을 뒤늦게 깨닫고 강호로 돌아갈 생각을 버렸다. 속세를 누비며 유유자적 투명 인간처럼 사는 게 소원이다.

 

저자 : 김고운

 

옛것을 야무지게 좋아하여 일찍이 나름 사서(四書)를 비롯한 고서를 섭렵하더니 시체(時體) 공부에는 흥미가 가지 않았다. 이른 나이에 무사독학(無師獨學)으로 한자와 한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동양 상고사와 한의학, 동양철학, 문자학을 들고 파더니 어느덧 강호의 고수가 되어 있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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