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인물지 - 유소 『인물지』 완역 해설
이한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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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위대한 왕으로 기록된 인물들은 대부분 인재 등용을 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나라 이세민, 명나라 주원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세종대왕이나 정조 등은 인재 등용에 소홀함이 없고, 탁월한 안목이 있었던 것을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제왕들의 인사의 기본원칙도 세워지고, 발굴하는 등 시스템적인 구조화로 나라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이 "인사는 만사다"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 한 나라를 창업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나라의 튼튼한 기반을 정립시키는 일은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한다.

이처럼 위대한 제왕들은 어떻게 사람 보는 눈을 정확하게 가질 수 있었을까. 그들을 불세출 왕으로 존경받게 한 '인사 교과서'가 바로 『인물지』다. 『인물지』는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의 최측근 참모인 유소가 직접 지시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조의 탁월한 용인술이 그의 사상에서 비롯되었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당의 이세민, 명의 주원장, 청의 강희제 등 리더십 대가들은 『인물지』를 탐독하며 지인(知人)과 용인(用人)의 혜안을 얻었다고 이 책 『이한우의 인물지』의 저자 이한우는 밝힌다.

유소가 쓴 책을 왜 저자 이한우는 앞에 자신의 이름을 덧붙여 썼을까. 물론 원전 『인물지』를 자신의 해석으로 번역해 냈다는 점이 첫째 원인일 것이다. 대개 지금까지 『인물지』는 번역에 그친 것을 그대로 출판하거나 자신의 번역으로 옮길 때 오류가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은 번역의 오류가 있지는 않겠지만 『인물지』에 대한 저자 유소의 뜻을 잘못 읽어, 혹은 고의로 오역해 출판된 것도 시판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저자 이한우는 『인물지』의 직접 번역(1차 번역)으로 오류를 바로 잡고, 유소의 『인물지』가 공자의 핵심 사상에 기인해 씌어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의 이름이 『이한우의 인물지』로 표제어가 된 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인물지』는 유학의 전통에 서 있다고 주장한다. 공자의 핵심 사상인 ‘지인지감(知人之鑑)’의 원리를 관통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던진 숙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을 통치 현장에서 풀어낸 것이 『인물지』라고 설명한다. 『논어』를 비롯한 공자 사상의 본질을 집요하게 좇아온 이한우는 『인물지』를 옮기면서도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논어』의 큰 주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지인지감의 맥락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실용적 지식을 넘어 사람을 보는 데 대한 깊은 통찰에 이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른 번역본과 달리 이 책은 『인물지』를 최초로 주해한 유병(劉昞)의 주석을 빠짐없이 실었고 이한우의 역주(譯註)를 덧붙여 이해를 높였다. 한자에 능통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다소 난해할 수도 있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기술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그 뜻이 이해될 정도로 필요한 부분은 모두 풀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이한우는 고전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제시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분이다. 주희식 교조적 해석과 역사적 맥락에 묻혀 텍스트 자체의 본질이 훼손된 『논어』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복원하는 연구를 제시하는가 하면, 운명을 점치는 점술서로 폄하된 『주역』에 대해 ‘제왕의 리더십 교과서’로 재평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한우의 설원』(상·하, 21세기북스)을 통해 기존에 이야기 모음집으로 인식되어온 『설원』을 『논어』와 관련지어 해석했다.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고전 번역을 내놓았다. 그 대상은 유소의 『인물지』이다.

 

 

저자에 따르면 유소는 『인물지』에서 사람마다 타고난 자질과 성정이 다른 이유를 규명하고,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파악하며, 그 자질에 따라 그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여 쓸 것인지 등 지인과 용인의 방법을 구징, 체별, 유업, 재리, 재능, 이해, 영웅, 접식, 팔관, 칠류, 효난, 석쟁 등 열두 개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저자는 유소의 『인물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풀이하면서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인사’를 살펴본다. 과거의 사례가 현재의 교훈이 되는 당연한 까닭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맥락이 공자의 사상이나 가르침에 따르거나 근접하게 되어 있는 많은 부분을 공자에서 찾아내 조목조목 살펴본다.

유소의 『인물지』는 기존의 경서들과 달리 지인과 용인에 대한 매우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조조, 손권, 유비가 활약한 『삼국지』의 시대이다. 사실 삼국시대는 과거의 인사 제도의 모순에서 파생한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대체로 전한의 외척과 후한의 환관들, 그리고 상서의 직위를 장악하고 파벌을 형성한 파당들의 인사 전횡은 한나라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황건적의 난으로 각지의 군웅들이 할거하는 시대에 돌입했다. 대단한 배경도 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과 순욱*으로 대표되는 모신들의 힘에 의지해 나라를 세운 조조는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결국 조조는 극단적으로 “능력이 있으면, 도덕적인 하자가 있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허명만 갖춘 인사들의 폐단을 목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 순욱 : 삼방순욱(三訪荀彧)에서 축약 인용된 말로,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함을 이르는 뜻이다. 중국 삼국 시대에, 조조가 순욱(荀彧)을 세 번 방문한 끝에 그를 얻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유소는 조조의 능력주의를 포괄하면서 그보다 더 체계적인 체제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인물지』다. 그는 다양한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한 원리들을 정리해냈다. 『인물지』는 한나라 이전의 인사 제도에서 수당 이후의 과거제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과도기적 저작이다. 그래서 『인물지』에서 다루는 내용은 후대의 도식적인 과거제나 전대의 협소한 인재 추천 관행들보다 더 풍부하다. 오늘날에도 훌륭한 리더의 조건으로 업적 달성 능력, 조직 운영 능력과 더불어 인재 육성 능력을 꼽는다. 즉, 인재 없이는 목표한 업적도, 안정된 조직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인재를 올바로 인식하고 적재적소에 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리더들이 고민하는 과제다.

저자는 『인물지』에서 원전 독해와 함께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인사’를 살펴보고 있다. 고전의 세계는 비록 과거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인류의 사유와 경험을 집적한 지혜의 보고이기도 하다. 고전 읽기는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실제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고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소수가 다수에게 미치는 영향이 삼국시대 유소가 이 책을 쓸 때보다 커진 데다 잘못된 인사가 등장할 조건까지 다 갖춰졌으니, 큰 인사에 한 번 실패하면 해댱 조직은 물론 사회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부도덕한 금융가 한 사람이 전체 금융시장을 무너뜨리고 어리석은 지도자 한 명이 한 나라를 거덜낼 수도 있다고 인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이기에 더욱 『인물지』가 조명받고 있다. 유소는 『인물지』에서 "그럴 듯하지만 아닌 일곱 가지 사이비"를 정의하고 이를 "극히 주의하라"고 경계한 바 있다.

 


 

유소의 『인물지』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 잘 쓰는 원칙을 12가지로 설명한다. 이 책 『이한우의 인물지』 역시 원전에 따라 모두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탁월한 번역은 물론 저자의 해석이 뒤따르고, 공자 사상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외 「자서(自序)」가 맨 먼저 위치해 있고 유소, 완일, 찬에 대해서는 별도 책 뒤에 〈부록1〉, 〈부록2〉로 처리해 소개하고 있다. 저자 이한우는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과 ① 유소의 『인물지』란? ② 뛰어난 신하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③ 공자의 평생 관심사, 군군신신(君君臣臣) ④ 뛰어난 임금[賢君], 뛰어난 신하[賢臣]가 만나야 한다 ⑤ 덧붙이는 말을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1장 「아홉 가지 징후-(九徵)」에서는 '인물의 성정과 재질의 아홉 가지 형태'와 '인재의 다섯 가지 등급'에 관해 설명한다. 2장은 「성격에 따른 구별-체별(體別)」에 대한 설명이다. '사람마다 타고나는 성정이 있다' '성정에 따라 하는 일에도 장단이 있다' '유약한 사람의 지혜는 두렵지 않다' '한 가지 재질에 치우친 성정은 바뀌기 어렵다' '인물 알기의 어려움과 묘미' 등을 말한다. 3장은 「유형에 따른 직분-유업(流業)」에 관한 기술이다. '덕·법·술, 각 방면의 최고 고수: 청절가, 법가, 술가' '덕·법·술의 재질을 모두 갖춘 최상의 인재: 국체, 기능' '덕·법·술, 각 방면의 지류: 장비, 기량, 지의' '기능별 전문가들: 문장, 유학, 구변, 웅걸' 등으로 나뉘어 설명한다. 또 4장에서는 「재질과 이치-재리(材理)」에 대해 말한다. 이 장에서는 '사이비 인재의 일곱 유형'에 대해 풀이하고 있다. 5장은 「재질과 능력-재능(材能)」에 관한 설명으로서 '적재적소'라는 낯익은 단어로 설명되니 이해하기 쉽다.

 


 

6장은 「이로움과 해로움-이해(利害)」편으로 '덕·법·술'의 장단점을 모두 자세히 적시함으로써 인사권자의 올바른 사용을 꾀한다. 7장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접식(接識)」에 대한 설명으로 '자기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할 때 생기는 오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다. 8장 「영재와 웅재-영웅(英雄)」을 설명하고, '영웅은 지혜와 힘의 결합'이라고 표현한다. '영(英)'과 '웅(雄)'의 글자 풀이로부터 이 말의 유래까지도 함께 알 수 있는 재미도 있다. 9장은 「사람을 살피는 여덟 가지-팔관(八觀)」에 대한 설명이다. '전후 관계를 살펴 사이비를 알아내는 법' '자애와 공경의 태도를 살펴 소통하는지를 알아내는 법' '감정의 미세한 움직임을 살펴 군자인지 알아내는 법' '단점을 살펴 장점을 알아내는 법' '총명함의 정도를 살펴 수준을 알아내는 법'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10장은 「사람을 살피는 데서 흔히 저지르는 일곱 가지 잘못-칠류(七繆)」로서 '명성' '자신의 기준' '포부의 크기' '성취' '배척' '지금 상황으로 판단'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7가지 오류를 말한다. 11장은 「사람을 알아보는 효험의 어려움-효난(效難)」, 12장은 마지막 장으로 「다투는 마음을 내려놓아라-석쟁(釋爭)」을 다룬다. 특히 12장의 석쟁은 "다투지 말라"는 뜻으로 자기의 공을 앞세우거나 자랑하지 말라, 이기기를 좋아하지 말라 등의 겸손과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공자의 말이나 "겸양", "공은 이룬 후 물러서라"는 등 공자의 가르침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다.

 

사람을 잘 알아보는 자는 자기가 직접 본 것을 갖고서 남에게서 들은 것을 바로잡지만{남의 말을 들었더라도 항상 자기 눈으로 그것을 바로잡는다.}, 사람을 잘 볼 줄 모르는 자는 남에게서 들은 것을 갖고서 자기가 직접 본 것을 내팽개친다.(자신이 직접 참된 실상을 보고서도 오히려 자기에 대한 믿음이 약해 그것을 내버린다.)

- 「제10장 사람을 살피는 데서 흔히 저지르는 일곱 가지 잘못」 중에서(p.219)

 


 

군자는 스스로 덜어내는 것이 더해줌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공로가 하나여도 두 가지 찬미를 얻게 되고(스스로 덜어내면 일을 행하는 것이 이뤄지고 명성이 세워진다.), (반면에) 소인은 자기를 더해줌이 덜어냄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한 번 자랑하다가 (공로와 명예) 두 가지를 아울러 잃게 된다.(스스로 자랑하면 일을 행하는 것이 허물어지고 명성이 손상당한다.) - 「281쪽, 제12장 다투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중에서(p.281)

 

역자 : 이한우(李翰雨)

 

1961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여름만 되면 팬티만 입고 송도해수욕장을 오가던 개구장이였다. 중학교 때는 가방에 책 대신 야구 글러브를 넣고 다닐 정도로 야구에만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교사 못지않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맞아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데모하다 얻어맞는 여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인지 결국 혁명가의 꿈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985년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미련이 컸지만 대학원 과정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하이데거에 매료되어 석사학위 논문으로 [마르틴 하이데거에 있어서 해석학의 문제]를 썼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1985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첫 작품으로 《헤겔 이후의 역사철학》을 냈다. 그 후 지금까지 평균 1년에 한 권 정도 번역 작업을 해왔다. 심지어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번역병으로 근무할 때에는 네 권을 번역해 계급마다 한 권씩 번역한 셈이 됐다. 번역은 나의 운명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1990년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중앙일보]의 《뉴스위크》였다. 그때 정식기자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번역하는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삶은 점점 그쪽으로 몰고갔다. 1991년 《월간중앙》에 김용옥의 《대화》를 비판한 것이 계기가 돼 [문화일보] 학술 담당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번역하는 기자’에서 ‘기사 쓰는 기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문화일보] 기자 생활 만 3년째 되던 1994년 12월에 [조선일보]의 제의를 받았다. [조선일보] 학술 출판 담당기자로 일하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명암을 볼 수 있을 만큼 봤다. 2001년부터 1년 동안 독일 뮌헨에서 연수 생활을 하면서 촌티도 많이 벗었다.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일했고, 지금은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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