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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시 - 히포크라테스를 배신한 현대 의학
레이첼 부크바인더.이언 해리스 지음 / 책세상 / 2023년 7월
평점 :
독자는 오랜만에 의학 책을 만난다. 이 책 『히포크라시』은 몇 년 만에 처음 읽는 의학서이다. 의학서라기보다 사실은 자연과학자, 의사, 혹은 의학 관련 종사자들이 읽어야 할 관한 책에 가깝다. 인체의 구조나 질병, 치료 등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게 아니라서 하는 말이다. 표제어 '히포크라시(Hippokrasy)'도 부제 「히포크라테스를 배신한 현대 의학」에서 알 수 있듯이 표제어는 히포크라테스와 '위선'을 뜻하는 말로 이루어진 신조어이다. 의학은 과학이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은 당연히 현대 과학…이 맞을까? 두 저자 레이첼 부크바인더와 이언 해리스는 이 책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는 현대 의학의 문제점들을 철저하게 고발한다. 출간 즉시 의료계에 큰 화제가 됐던 이 책은 호주 및 전 세계 의료계에서 존경받는 두 의사가 쓴 것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을 근거로 삼는 ‘증거 기반 의학’을 토대로, 최신 연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행에 따르는 의료계를 비판한다. 이 책은 널리 알려진 의학적 오해와 과거의 시행착오부터 최신 연구 결과에 이르기까지 의료의 역사를 아우른다.
두 저자는 이 책의 제목처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바탕으로 의료계의 올바른 미래를 위한 변화를 촉구하며 의사와 환자 모두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청사진을 그린다. 그들이 그리는 청사진은 기존 현대 의료 비판서와는 다르다. 이 책에서는 과도한 영리 추구로 타락한 의료 ‘시스템’만을 고발하는 다른 책과는 달리, 과학적 증거가 미비한 의료 행위가 만연하고 이를 비판 없이 행하는 의사들을 함께 겨냥한다. 이를 통해 기존 비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의료 윤리적 담론을 형성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최근 경험한 독자 개인의 일과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더 배우고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 것도 행운이고 행복하다.
독자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높은 편이다. 의학을 알거나 의사들의 능력을 알아서기보다 개인적인 일이지만 작고하신 아버지가 어렸을 때 꿈이었고 결국 이루지 못한 의사에 대해 무한 동경심을 갖고 있고, 친구들 중에는 의사나 의학계에 계신 분들이 많았을 정도로 의학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의학에 꿈을 두던 시절엔 일제 강점기라 한국인(조선인)들에게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를 졸업하고 의학을 공부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일본의 큰 대학이나 한국의 경성제국대학(지금 서울대학교 전신) 뿐이었으나 경성제국대학의 의대도 결국 돈 많은 친일 귀족 계급이나 쳐다볼 수 있는 벽이 높았다고 한다. 결국 포기하고 사범학교로 진로를 바꿔 결국 교유계에 계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의사가 늘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당인이 의사가 아니지만 의학계 친구가 꽤 있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마 할아버지의 이른 사망이 원인이었던 듯하다. 독자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지금으로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고혈압에 의한 심장마비가 아니었을까 추측하셨을 뿐이니까.
또 아버지는 당신의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어서 더 의사가 되려는 꿈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은 아들로서의 독자 개인의 추정일 뿐이다. 아버지는 아들인 독자에게 단 한 번도 의대에 갈 것을 요구하거나 제안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혈압도 높고, 당뇨도 조금 있는 만성질환자로서 평생 병원에 들락거리시며 사셨다. 큰 병은 아니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와 꾸준한 약물 치료, 적당한 운동 등을 평생 병행하셨다.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의사의 권유에 의해 평생 금했다. 독자의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40대 초반의 일이다. 이후 평생 어긋남이 없이 생활했다. 의사의 권유가 평생 삶의 기준이 된 것이다. 그만큼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신 분이었다. 알게 모르게 독자도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된다. 독자 역시 의사는 아니지만 의사에 대한 신뢰감이나 맹신에 가까울 정도로 의사들의 치료 행위를 믿는다.
그러다 독자의 맹신에 결정적 금이 가는 한 사건에 부딪쳤다. 아버지가 파킨슨씨 병이라는 판정을 받고 입퇴원을 세 번 반복하며 치료해 왔다. 1차의료기관인 대형 병원이다. 그러던 중 평소 불편을 끼치던 전립선비대증에 관한 수술 이야기를 주치의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을 하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두 말 없이 수술을 해달라고 병원에 요청했다. 아버지가 결정한 것은 주치의의 말을 듣고 했고, 수술동의서는 주치의 밑의 전공의가 와서 받아갔다. 주치의는 아버지에게 전립선비대증을 수술로 고칠 수 있는 신형 의료기를 수입해 왔다고 수술을 하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연세가 80인 노인에 당뇨와 부정맥이란 심장질환도 겹친 노령의 파킨슨씨 병자에게 수술을 권유하다니. 지금 같아서는 동의하지 않았거나 어쩌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 지식도 전혀 없는 데다 외국의 신형 의료기기를 들여와 수술 장면도 환자가 앉아서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을 정도로 최점단 신형 의료기라고 의사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술은 이뤄졌고, 수술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로 옮겨져 며칠 만에 숨졌다. 파킨슨씨 병으로 신경외과였던가 할 정도로 의료기관이나 의료절차 등에 무지했다. 독자로서 반성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황망스런 가운데 의사를 찾아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몇 말씀 듣고자 찾아뵈러 가던 중"이라고 하자 의사는 대뜸 화를 냈다. "뭘 물어보신다는 거예요? 내가 수술을 잘못했다는 것을 따지겠다는 이야기예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치료진을 이끌고 왕진을 가버렸다.
미심쩍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서 정확히 알고자 문의를 하려던 것이 오히려 무안 당하고 말았다. 의료 사고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는 의료기기라면 당연히 그 의료기기로 수술을 처음 해보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80세의 노인환자에게 그런 수술을 권유할 수 있었는가 등 불안감과 불만이 함께 섞였다. 그러나 상을 당한 상주의 입장이라 이래저래 계속해서 알아보러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 독자의 개인적인 일을 서평란에 자세히 적었냐면 이 책에서 두 저자가 지적하는 '과잉진료'나 '문제 치료하기' 등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서다. 독자는 히포크라테스를 이 책 저 책 읽어서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의사들이 대학 졸업 후 의사로서 첫발을 내딛기 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고 들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에는 의사로서 명에와 의무, 권한과 의료 행위에 대한 겸허함과 맹세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들은 바도 있다. 뿐만 아니라 철저한 개인 신상 보호 의무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안다. 독자로서는 선서문 전체를 처음 본 것이 이 책의 맨 앞에 나와서이다. 그 선서문에 기초해 이 책 『히포크라시』도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무엇보다 해를 끼치지 말라」, 2장 「과학이 중요하다」, 3장 「과잉 치료」, 4장 「온정과 공감」, 5장 「나는 모른다」, 6장 「탄생과 죽음」, 7장 「문제 치료하기」, 8장 「예방」, 9장 「정상의 의료화」, 10장 「치유」 등이다.
두 저자는 이 10개 장의 문제가 현대 의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히포크라시'라고 지적한다. 최근 의사조력 자살, 의료화, 간호법 등의 문제가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기저에는 의료 윤리를 비롯한 의료계 불신 정서가 있다. 일반 대중은 의사가 대체로 과학적 원리에 따라 의료 행위를 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의사가 지시하는 검사와 처방하는 치료의 상당 부분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거나 증거가 미약하다. 임상만을 전가의 보도로 취급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관절 치환술, 척추 유합술 등 대표적인 14가지 수술의 효능성을 연구한 결과 수술을 하는 것이 하는 것보다 나을 바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비롯해 과학적 증거가 있는 데도 많은 의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이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이 책의 두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언급한다.(2장) 철저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과잉 치료(스텐트 삽입술)과 과잉 진단(갑상선암 선별검사)의 예를 보여주면서,(3장) 환자에게 무감하며(4장) 자신의 의료적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개선을 거부하는 의사들의 행태를 비판(5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제 예시들은 의사뿐만 아니라 (예비) 환자들 역시 곧 마주할 수 있는 ‘건강 위기’에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의사 개인뿐만 아니라 시스템까지도 조명한다. 6장과 7장에서는 출산과 최근 의료계의 뜨거운 화두인 의사 조력 죽음의 과도한 의료화를 다룬다. 10장에서는 이러한 비판에서 나아가 환자, 의사, 의료계, 제도권 등 다양한 의료계 주체가 각자 취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러한 내용은 모두 ‘과학에 근거’해야 함을 거듭 밝힌다.
두 저자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현대 의학에 만연한 유해성과 과잉 치료를 인식하고 글을 썼다.” 실제로 과잉 치료, 의료적 위해, 과잉 진단과 같은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시스템 비판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실제로 이 책은 주로 두루뭉술한 ‘시스템’보다 구체적인 ‘사람’을 겨냥하며, 환자부터 의사, 언론, 정부 등 각 주체가 할 수 있는 방침을 제시한다. 요컨대 이 책은 과학적 증거가 미비한 의료행위가 만연하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행하는 의사들이 환자와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관점으로 현대 의료의 문제를 파헤친다. 과도하게 영리를 좇다가 타락해버린 의료 시스템을 고발하는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지점으로, 이 책이 윤리적으로 한 차원 더 높은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저자는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오늘날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인간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것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섬뜩하기도 하고, 과연 의학계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탄 발언이다. 두 저자는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우리 두 저자는 의학의 상당 부분이 애초에 하기로 했던 일, 즉 건강 개선이라는 일을 하지 않고 있음을 경험으로 안다. 현대 의료는 대중이 의료에 접하는 횟수를 극대화하면서 끊임없이 처방, 수술, 검사, 스캔하도록, 또 과학보다 사업을 우선시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의사가 돈을 따라 치료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즉 돈 있는 사람은 절대 죽지 못하게 치료하고, 돈 없는 사람은 빨리 죽게 치료한다"는 근거없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과 자본주의 시스템에 예속되어 버렸다는 대중적 인식에도 책임은 결국 의료계에 있다는 지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의료계는 옛날 도제식 방식의 의사 양성의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은 의사끼리의 결속력과 그의 직업적 자부심마저 결합돼 어떤 일이 이루어지든 자신들의 결정을 존중하게 되는 철옹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저자는 지난 200여년에 걸쳐 건강과 기대 수명 면에서 보인 주된 발전은 현대 의학 덕분이 아니라 깨끗한 물 공급, 상하수도 분리, 충분한 식량 확보, 전쟁 억제 등 공중보건과 정치 및 산업의 성취 덕분이라고 의학의 기여에 대해 부정한다. 물론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닐 터다. 그러나 오늘날 인식하는 것처럼 완전 의학에 의해 '100세 시대'가 열렸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의료가 보편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건강이나 삶의 질을 개선한 것은 아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상당 기간의 임상 경험, 진단과 치료, 연구와 상담 등을 거쳐 두 저자가 내놓은 주장은 획기적이지만 실현 가능할지에 대해 왜 불안감이 들까? 의료계가 그만큼 시스템으로 정교하게 복마전화된 탓일까? 더 지켜볼 일이다.
과학적 탐구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의사는 기존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의료 행위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가 충분한지 판단해야 한다. 현재 어떤 검사나 치료가 정당하다고 인정되는지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고 그다음 ‘다른 대안과 비교해 이 검사 또는 치료를 지지하는 증거는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의사는 또한 증거가 존재할 때 그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실무와 관련된 가장 타당하고 관련성 높은 연구를 찾기 위해 과학 문헌을 능숙하게 검색할 줄 알아야 한다. 체계적 검토연구를 비롯해 많은 진료 지침과 요약문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정보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평가 기술도 갖춰야 한다.(p.320) - 「10장 치유」 중에서
저자 : 레이첼 부크바인더(Rachelle Buchbinder)
호주의 류머티스 전문의. 호주 국립보건의학연구소NHMRC 수석연구원이자 모내시대학교 역학 및 예방의학 교수로 있다. 류머티스학자이자 임상역학자로서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된 광범위한 프로젝트와 임상 실습을 아우르고 있다. 6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전 세계 의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2020년에는 역학과 류머티스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호주 국민훈장을 받았다.
저자 : 이언 해리스(Ian Harris)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교수이자 시드니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있다. 관절경 수술, 외상 및 골절에 관심을 두고 있다. 증거 기반 의학을 연구하며, 3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5년에는 정형외과학 분야에서 세운 공로로 호주 국민훈장을 받았다.
역자 : 임선희
예방의학 전문의이자 노인의학 인정의. 국립암센터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근무했다. 현재 에이스산업보건연구소에서 노동자 건강을 관리하고,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는 의료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