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살
이태제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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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푸른 살』은 지구의 근미래 즉, 곧 다가올 시대의 이야기다. 이 책에 설정된 세상에서는 누군가의 심중을 아무나 손쉽게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외양만 봐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착한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굉장히 합리적인 세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세상은 '디스토피아'라 불리운다. 저자 이태제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다.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게 되었던 어느 날, 나는 일기에 이런 말을 썼다. ‘미리 알 수 있게 사람들 얼굴에 낙인 같은 게 찍혀 있었으면 좋겠다. 착한 사람, 사랑해도 괜찮은 사람, 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을 사람····’ (중략) 하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나조차 나를 모르는데 누가 알까. 상대를 일단 처음부터 무조건 사랑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후유증이 클지라도."

이 작품은 ‘푸른 살’에 잠식된 인류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는 동시에, 탈옥한 세 인디고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긴박함을 선사한다. 푸른 살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인간은 식물화하여 청나무로 변하게 된다. 무단으로 생장한 청나무를 처리하는 휴머노이드 ‘레미’와 눈앞에서 엄마가 청나무로 변하는 장면을 목격한 인간 아이 ‘동수’가 세 인디고에게 납치된다. 그리고 폭력성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푸른 살 때문에 선한 의도를 가졌음에도 남들보다 커다란 푸른 살을 지닌 채 살아야 하는 인간 형사 ‘드레스덴’이 그들의 뒤를 추적한다. 그리고 드레스덴 앞에 세상으로부터 존재가 완전히 지워져버린,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사이보그 ‘한결’이 ‘아이버스터’를 검거하기 위한 협상가로 한국으로 파견된다.

 


 

이 책에 나오는 색깔은 '파란색'이다. 지구를 외계에서 보면 푸른 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행성이다. 때문에 지구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2035년, 아프리카대륙 남단에 운석이 불시착하면서 지구에 사는 생명체 특히 인간의 운명이 바뀐다. 그 운석에 묻어온 외계생물체가 인간의 뇌에 기생하며 폭력의 자극에 노출될 때마다 마치 종양처럼 푸른 살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60년 후, 푸른 살이 개인의 폭력성을 통제하는 생물학적 규제 수단으로 작용하며 폭력 범죄는 경이로운 속도로 세상으로부터 사라진다. 푸른 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 언급한 '인디고'는 탈옥한 사람들처럼 온몸이 파란 살로 덥힌 사람들이다. 즉 범죄를 저질러 법에 의해 감옥에 가뒀지만 탈옥해 이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소설의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인디고(indigo)란 원뜻은 일년생 초본식물인 쪽 또는 남(藍, 학명 persicaria tinctoria)의 영어 명칭이며, 그 어원은 원산지 인도에서 유래했다. 특유의 남색을 띠는 유기 화합물로서 식물이나 동물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염료(natural dye)이다. 근대 이전에는 푸른빛을 띄는 염료가 없었기 때문에 귀중하게 취급되었다. 오늘날에는 화학 합성을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서 값이 저렴해졌고, 특히 청바지의 염료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외에도 비단이나 울 같은 동물성 직물의 염색에도 사용된다.(화학백과)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로마에서 선호되었던 색은 빨강, 검정, 노랑, 흰색이었고, 로마에서는 특히 청색을 기피했다. 로마인들은 청색을 어둡고 미개하며 세련되지 못한 색으로 인식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청색 의상은 품위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제국 초기에는 장례의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성의 경우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심지어 무지개에서도 청색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중세 사회 역시 기독교에서도 검정, 흰색, 빨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12세기 들어 색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중세의 고위 성직자 중 쉬제(1081~1151)가 생 드니 수도원을 재건축하면서 청색을 신성한 천상의 빛, 모든 창조물르 비추는 빛으로 등장한 이래 신성한 신의 색으로 탈바꿈하게 됐다고 한다.

 

 

'휴머노이드(humanoid)'는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춘 로봇을 가리키는 말이다. 머리·몸통·팔·다리 등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닌 로봇을 뜻하는 말로, 인간의 행동을 가장 잘 모방할 수 있는 로봇이다. 인간형 로봇이라고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레미가 대표적인 등장인물이다. 이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은 2095년 22세기를 불과 몇 년 앞둔 시점이다. 특히 소설의 무대도 한반도 대한민국 경북에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다. "레미는 도로변에서 잠시 트럭을 대고 차창을 열었다. 관자놀이에 달린 동그란 발광체가 햇빛을 받아 배터리 충전을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일식 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일식 영향권에 드는 때에는 온종일 일식에 관한 속보만 전해졌다." 이 소설의 처음 부분이다. 그리고 라디오 보도가 이어진다. "닷새 뒤인 2095년 11월 27일 오전 8시 18분경, 한반도의 금세기 마지막 금환일식이 벌어집니다. 한국을 비롯해 달의 본그림자가 통과할 예정인 동아시아 전역에서는 벌써 대규모 축제가 열리는 곳이 많습니다. 일식 범죄의 기승으로 최근 범죄율이 급증했습니다. 개인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초월동아시아는 입국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빈다. 대상은 임시비자 소지자와 외국인 여행객이며 국가별로 예외 사항이 상이하니 외교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입국 제한 조치는 일식이 완전히 끝나는 11월 27일 오전 10시에 해제되며···"(p.9~10)

금환일식(annular eclipse, 金環日蝕)은 독자들도 잘 아다시피 일식 때 태양의 가장자리 부분이 금가락지 모양으로 보이는 현상의 일식을 말하며, 금환식이라고도 한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어지고, 태양까지의 거리가 다소 가까워지면 달의 시지름이 태양의 시지름보다 상대적으로 작아지는데, 이때 달이 태양의 광구(光球)를 완전히 가리지 못하므로 본그림자가 지표에까지 닿지 못하여 일식현상이 생긴다. 재미있는 자연현상이지만 태양의 물리적 연구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천체물리학계의 설명이다.

 


 

지구의 모든 인간은 푸른 살에 감염된 후부터 태어나면서부터 푸른 살이 피부에 나타난다. 그러다 온몸이 파란 살이 되면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게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가상의 설정에 따라 일반 사람들이 온몸이 푸른 살인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십중팔구 탈옥자나 범죄를 위해 변장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레미는 휴머노이드다. 범죄자를 쫓거나 탈옥자들을 추적하는 경찰 역할의 인력이다.

두 개의 천체가 완전히 겹쳐져 푸른 살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금환일식이 147년 만에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그 시기에 맞춰 푸른 살에 강한 내성을 가진 인디고들이 국제교도소를 탈출하여 한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 중에 10년 전 뇌파를 자극해 급속도로 푸른 살을 성장시켜 2억 명의 사람들을 죽게 만든 대학살자 ‘아이버스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드디어 금환일식이 예정된 날 오전 6시. "하늘은 매우 느리게 밝아오고 있었다. 금환일식까지는 이제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들을 옭매고 있던 푸른 살이라는 쇠사슬이 곧 있으면 풀린다. 일식이 지속되는 그 몇 분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드레스텐은 차창 너머 도심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형체가 없는 무언가가 드레스덴이 탄 경찰비행차 쪽으로 빠르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이었다. 밤새도록 도시를 밝히던 빛이 저 멀리서부터 꺼지고 있었다. 건물의 불빛이 일렬로 세운 촛불이 꺼지듯 차례로 암전되었다. 가로등도 도미노처럼 꺼졌다. 도로 저편에 모습을 드러낸 미륵 유원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얼시의 상징과도 같은 지름 150미터짜리 대관람차의 조명들이 한순간에 빛을 잃었다. 회전목마, 롤로코스터 등 다른 놀이기구까지도···."(p.243)

 


 

아이버스터가 ‘대량 학살자’ ‘세기의 악마’라고 불리기보다 ‘아이버스터’라는 멋들어진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를 추앙하는 자들이 많아서였다. 아이버스터는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인 자이기도 하지만, 미처 자신이 죽이지 못한 원수들에게 대신 복수를 해준 자이기도 했다. 가정폭력을 저지른 아버지, 바람을 피워 아내와 자식까지 버린 전 남편, 학창 시절 내내 따돌림을 주도한 동창생, 전 재산을 투자하자마자 사라진 사기꾼···.(p.97)

 

인디고들은 건물 하나를 불사르고, 이번엔 도로에서 무수한 희생자를 냈다. 다행인 점은 세 인디고 중 한 명이 죽었다는 것이고, 불행인 점은 그 외 나머지의 행방이 또다시 묘연해졌다는 것이었다. 드레스덴은 주먹으로 연이어 핸들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어김없이 푸른 살이 발작했다. 그는 거의 이성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쳤다.(p.135)

 

한결의 말이 맞다면 수색 로봇들은 언덕을 넘은 적이 없고, 마치 수색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전에 찍은 영상을 누군가가 절묘하게 이어 붙인 것이었다. 혹은 촬영된 부분을 의도적으로 잘라내고 이전에 찍은 영상으로 대체했을 수도 있었다.

‘우린 어디에나 존재한다.’

완전자유연대가 공개했던 선언문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p.154~155)

 


 

한얼시는 물론 세계가 주목한 대학살자 아이버스터의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젠 소설이 3부로 넘어간다. 이 소설은 간단한 얼개에 유기적으로 구성돼 긴장감을 높인다. 모두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 「케르베로스」, 2부 「인간에게 죽음을」, 3부 「인간에게 평화를」 등이다. 1부가 운석의 충돌로 '푸른 살'에 감염된 지구의 모든 사람들 중에 10년 전, 대학살을 주도했던 ‘아이버스터’는 또 다른 복수를 위해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대관람차가 있는 미륵 유원지로 향한다. 과연 인류는 눈앞에 닥친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두고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어지럽게 진행되며 인류의 종말을 보는 듯한 내용이 2부에서 펼쳐진다..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이종의 존재라는 대립항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과 선악의 의미까지 묻는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 장르물을 선호하는 독자층이 원하는 진중한 주제의식까지 갖췄다”(주원규 소설가)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는 평가를 받은 이 소설은 제 3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저자 이태제는 지구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깊은 사유로 이 소설을 집필했을 그의 미래관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SF 세계를 확장시키는 시금석이 될 만한 역작이다.

 

침대에 눕혀지며 드레스덴은 자신을 도와준 밤낚시꾼, 아니 의사인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 의사의 인상과 성품, 그리고 눈빛을 읽어보려 애썼다. 그것들은 푸른 살의 크기처럼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레스덴의 눈이 정처 없이 헤맸다. 하지만 그는 이내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푸른 살이 아닌 다른 것들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상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듯이.(p.296~297)

 

저자 : 이태제

 

교직에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다. 2022년에 장편소설 『푸른 살』로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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