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필경사 바틀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먼 멜빌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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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필경사 바틀비』는 해양소설의 고전 『모비딕』으로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집이다. 멜빌은 우리들에게 워낙 '흰고래' 『모비 딕』으로 많이 알려진 탓에 그가 단편소설을 썼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었다. 독자도 그의 단편소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읽는다. 사실 『모비 딕』도 출간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두 다리를 앗아간 흰고래에 대한 복수심으로 시작된 이 소설이 지향하는 것은 민주주의, 리더쉽, 권력, 산업주의, 노동, 확장, 그리고 자연 등 미국의 모든 형상과 지위에 대한 위대한 고찰이란 뒤늦은 평가에 힘입었다고 이해된다. 피쿼드 호와 거기에 타고 있는 각양각색의 선원들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혁명적인 소설은 수많은 문학 작품과 전통에서 그 바탕을 빌려왔으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놀랄 만큼 자유롭게 오간다.

『모비 딕』 이전까지는 미국 문학사상 그 어느 누구도 이렇듯 강렬하고 야심만만한 작품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모비 딕』에서 독자는 난해한 형이상학과 고래의 거죽을 벗기는 기술, 소금물에 젖은 타는 듯한 드라마를 모두 맛볼 수 있다. 소설로서 소재와 주제, 문장력까지 모두 갖춘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평가받아 붙여진 찬사다. 허먼 멜빌은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이하 저자 소개는 글 뒤에) 특히 이 소설은 대학 문턱도 못 밟아본 채 자신의 경험의 축적을 통해, 사유 끝에 쓴 소설이라 더욱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놀라움을 함께 선사했던 고전이다. 후세 사람들은 『모비 딕』은 비가(悲歌)이자 정치 비평이요, 백과사전이요, 모험담이라는 평가를 붙이고 그의 위대한 작품을 읽고 또 읽게 된 것이다.

 


 

위대한 작가 허먼 멜빌이 쓴 단편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 『필경사 바틀비』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이 책 속 세 편의 소설은 그의 삶에서 사유해낸 자본주의의 허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소설들이다. 첫 작품은 표제어가 된 「필경사 바틀리」는 자본주의가 성숙하여 부와 명예가 최대의 삶의 조건이 되는 19세기 미국의 월가를 배경으로 한다.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 필경사 바틀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자(변호사)의 요청을 모두 거절하면서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왜 그랬을까. 19세기 중반의 미국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영리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작품 속 변호사(화자)는 바틀비를 걱정하는 듯했지만, 실은 떨어지는 업무 효율성, 불복종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바틀비는 노동은 물론이고 변호사의 권위까지 거부함으로써, 수동적이지만 자본주의적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다. 바틀비의 소극적 저항은 관습과 위선으로 가득 찬 변호사의 이기주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져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필경사 바틀리」는 멜빌이 쓴 최초의 단편이라고 한다. 역자 박경서에 따르면 1853년 〈퍼트넘스 먼슬리 매거진〉 11월호와 12월호 두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멜빌의 작품 중 가장 모호한 작품으로 이해하기가 만만찮다. 부제 〈A Story of Wall-street〉에 드러나듯이 이 작품은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거리 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한다. 월가의 한 변호사가 화자(話者)로 등장해 자신이 살면서 가장 잊지 못할 어느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자인 변호사는 두 명의 필경사와 한 명의 사환을 두고 있었는데, 일이 많아져 필경사 한 명을 고용한다는 광고를 냈고, 바틀비가 찾아온다.

 


화화자인 변호사는 그때 바틀비의 모습을 '얼굴이 창백하리만치 말끔했고, 동정이 갈 만큼 예의가 발랐으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였다."고 생생하게 기억한다. 바틀비는 처음에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어느 날, 베낀 문서를 대조해 보자는 화자의 요청에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하며 거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틀비는 화자의 요청을 모두 거절하면서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사무실을 자신의 거처로 살고 있기도 했다. 화자는 바틀비를 설득해 보지만 헛수고일 뿐, 결국 그를 남겨 두고 사무실을 옮기지만 바틀비는 그곳에 계속 눌러앉아 있게 된다.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는 등 도움을 주려 하지만 이것마저 모두 거절한다. 마침내 바틀비는 뉴욕시 교도소에 수용되어 죽게 된다.

사실 이 작품 줄거리를 처음 들어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읽고는 있지만 저자가 주인공인 바틀비에 대해 전혀 인물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자의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 후 얼마간은 열심히 일을 하다가 갑자기 그저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그러다 쫒겨나 쓸쓸히 죽어 갔다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역자는 바틀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바틀비라는 인물에 대해, 그가 어떤 일을 하다 어떻게 결과로 나타났는가에 대한 일체의 것이 화자의 입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월가는 아직 증권거래소가 설립되기 전이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중심지로서 상업, 금융업, 부동산업이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이런 도시에서 자본가들, 그들의 하수인 격인 변호사들, 그리고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익을 쫓으며 삶을 영위하는 구조로 시스템화 돼 있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얼핏 화자인 변호사는 신사로서, 바틀비를 측은하게 생각해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구현하는 바람직한 사람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주식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당대의 거부 존 제이콥 애스터를 비롯한 자본가들의 사업 허가, 부동산 거래, 금융 거래 등과 관련된 법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인물이다. 애스터로부터 신중하고 꼼꼼하다는 칭찬을 듣는 바, 대 자본주의적 현실주의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화자의 사무실은 자본주의 체제의 축소판이며 그를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이라 간주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눈을 돌려 본다. 고용주인 변호사는 그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필경사인 니퍼스와 터키가 '소화불량'과 '발작'을 겪고 있음에도 그의 사무실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제정신이 들 때는 일을 민첩하게 잘 처리하고 글씨를 깔끔하게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호사는 그들이 정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의 효용 가치를 최대로 끌어내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변호사는 19세기 미국의 자본주의 하에서 영리 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취급ㅁ하는 인간의 전형이 된다. 바틀비를 보는 관점 역시 동일하다. 바틀비는 처음부터 서류를 베껴 쓰는 일에 걸신이라도 들린 듯 서류를 단숨에 집어삼켰고,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양초 빛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류를" 베꼈다. 변호사는 바틀비가 비정상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갖기보다는 업무의 효율성과 성과에 만족한다.

그러다가 바틀비의 노동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줄기차게 "안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자신의 노동에 저항한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행동을 '수동적 저항'의 병적인 집요함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바틀비는 노동은 물론이고 변호사의 권위까지 거부함으로써 수동적이지만 자본주의적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유를 파고든다. 소설은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로 끝을 맺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소설이 쓰인 19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분분하다고 역자는 설명한다. 베일에 싸인 바틀비의 삶의 궤적만큼이나 명쾌한 해석을 내리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이는’ 바틀비라는 문장이 가슴속으로 통째로 들어오면서 바틀비의 행위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번 아웃’이 아니었을까. 결코 전달되지 못할 ‘죽은 편지들’(죽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수합하고 불태워야 했던 전의 직장, 법정의 언어들을 하루 종일 365일 베껴 써야 하는, 또 하나의 죽은 노동인 현 직장을, 생명 있는 사람이 어떻게 견뎌 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바틀비는 “꼼짝 않고 가만히 있고 싶어요!”라고 절규했을 것이다.

이어지는 단편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와 「총각들의 천국과 처녀들의 지옥」에서도 저자 멜빌이 주목하는 인물들은 자본가 등 지배층과 노동자 하인 등 피지배층의 이분법적 구도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핵심어는 '노동'으로 집약된다. 즉 자본과 노동의 이분법으로 나뉘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조적 장면과 인물들을 좇아가며 암담한 자본주의의 미래를 조명하고 있다.

멜빌의 소설에서 어떤 노동은 비참하지만, 돈으로 환산되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바틀비와 메리머스크의 동질성이다. 반면에 폐에 켜켜이 쌓이는 분진을 의식하지 못하는 처녀들의 노동은 가엾다. 참담하다. 이처럼 멜빌은 자본주의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19세기 미국 사회의 이면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미국의 소설가. 1819년 무역상이던 아버지 앨런과 어머니 머라이어의 둘째아들로 뉴욕 파르 거리 6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

포경선에서 탈주해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과 함께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타이피Typee』(1846)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바다 생활을 담은 『오무Omoo』 (1847)에 이어 발표한 『마디』(1849)에는 철학적 논의들을 담았지만 평단의 차디찬 반응에 멜빌은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바다에서의 모험으로 돌아가 『레드번』(1849), 『하얀 재킷』(1850)을 발표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바틀비, 월 스트리트의 한 필경사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1853)는 1856년 다른 중단편들과 함께 『회랑 이야기The Piazza Tales』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대표작 『모비 딕Moby Dick or The Whale』(1851)조차도 그 실험적인 형식으로 인해 혹평에 시달린다. 그는 작가로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뉴욕 세관의 감독관 자리를 얻어 근무했다. 그래서 소설 창작은 접고 시 창작에만 몰두했다. 남북 전쟁을 그린 『전쟁 시와 전쟁의 양상』, 종교적 장시 『클라렐』,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을 담은 『티몰레온』이 그때의 시집들이다. 마지막 소설 『선원 빌리 버드 인사이드 스토리Billy Budd, Sailor: An inside story』를 원고로 남긴 채, 1891년 9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모비 딕(백경)』은 캘비니즘적 그리스도교 사상에 의지하면서도 때로는 그 범주를 넘은 견해를 제시하여 인간심리의 착잡함을 비유적·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역시 오늘날에 와서 더욱 각광받는 부분이 되었다.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철학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이 뭍어나는 작품을 쓴 하먼 멜빌. 살아생전에는 단순한 해양 탐험 소설을 썼다과 평가되었을런지 모르지만 1920년대에 극적으로 재평가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친구 N. 호손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역자 : 박경서

영남대학교 동 대학원에서 조지 오웰 문학을 전공해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남대학교와 부산 가톨릭대학교에서 영문학 강의를 했으며, 번역과 문학 연구에 매진했다.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 2003), 『1984년』(열린책들, 2009), 『동물 농장』(열린책들, 2009), 『버마 시절』(열린책들, 2010), 『영국식 살인의 쇠퇴』(은행나무, 2014) 등 오웰의 소설 및 수필집을 번역했으며, 『조지 오웰』(살림, 2005)을 저술했다. 그 외 다수의 번역서와 논문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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