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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허철웅 지음 / 가디언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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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은 탄자니아 세렝게티평원에 있는 국립공원을 이르는 말이다. 면적은 1만 4763㎢이며, 킬리만자로산(5895m) 서쪽, 사바나지대의 중심에 있는 탄자니아 최대의 국립공원이다. 세계 최대의 평원 수렵지역을 중심으로 사자·코끼리·들소·사바나얼룩말·검은꼬리누 등 약 300만 마리의 대형 포유류가 살고 있다. 강가의 숲에는 영장류의 하나인 동부흑백콜로버스가 살고 바나기 구릉지대에는 희귀종인 로운앤틸로프가 서식한다. 우기가 끝난 6월 초가 되면 150만 마리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검은꼬리누 무리가 공원의 남동부에서 북서부로 이동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우기가 지나면 황새·매·큰물떼새 등의 조류도 모여드는데, 현재까지 조사된 종의 수가 350여 종에 이른다. 사자는 2,000여 마리가 살고 있는데, 주로 화강암으로 된 울퉁불퉁한 바위언덕인 카피에서 머문다. 코끼리는 약 2,700마리, 사바나얼룩말은 약 6만 마리, 톰슨가젤 약 15만 마리, 마사이기린 약 8,000마리 등과 함께 6종류에 이르는 대머리독수리, 흰허리독수리 등이 서식한다. 1년 내내 개방되어 있으며 가장 좋은 관광철은 선선한 6∼12월, 또는 기온은 높지만 건조한 12∼3월 중순이다. 해발고도 1525m의 세로네라에는 수렵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이 있다. 1981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두산백과)
이 책 『죽거나 죽이거나』는 세렝게티에서 펼쳐지는 포식자와 먹이동물의 이야기다. 먹고 먹히는 숨가쁜 생존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유일한 목적이 된 야생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저자 허철웅은 이들 동물들을 의인화해 그들의 시선과 그들의 인식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모습을 유기적 구성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 화자는 먹이동물인 누와 포식자인 사자가 벌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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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배경지가 세렝게티라는 생존 경쟁자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세상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뿐이지, 그들의 시선으로 따라가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이로써 이 소설은 단순히 동물의 세계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의인화함으로써 그들에게 닥친 운명과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존재 방식을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를 소설 공간으로 설정하여 이국적인 배경과 함께 독자의 상상력이 최대한 확장되도록 구성하였다.
전체적으로는 천적 관계에 속한 각 주인공의 영웅적 서사가 큰 뼈대이지만 여기에 자연과 운명, 삶과 죽음, 존재의 문제 등 무거운 주제가 세렝게티의 장대한 풍광 묘사와 잘 어우러져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각 장마다 사자와 누의 서사를 교차하고, 두 주인공이 조우하는 접점을 만들어서 극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치밀한 구성력에서는 저자의 문학적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무한의 생존투쟁 현장이 치밀하고 팽팽하게 묘사된 문장력은 독자를 단숨에 대자연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기대된다.
저자 허철웅이 세렝게티의 이국적인 배경과 동물 다큐 중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천적 관계인 사자와 누를 주인공으로 장편을 써보겠다고 처음 달려든 게 1996년이라고 한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자마자 작정하고 매달렸음에도 27년 동안 헉헉대다가 5번을 뜯어고치는 산고 끝에 이 소설 『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가 탄생된 점을 미루어 생존을 위한 저자의 각고의 노력이 문자마다에 박혀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가 이 소설을 탈고한 다음 첫 말이 “독자들이 보여줄 시선이 두렵고 낯설지만 코끝에 전해지는 공기는 참 상쾌하다.”였다고 한다. 많은 뉘앙스가 묻어 있는 이 말은 그의 특이한 이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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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하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꿈꾸던 그는 팔자에도 없는 정치 스캔들에 휘말려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약육강식의 끝판왕인 여의도에 터전을 잡아야 했다. 이후 정치선거 기획사, 독립 프리랜서로 30여 차례의 각종 선거 현장을 누비며 서식했다. 정치인들끼리 다투다 불쑥,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질 때, 글 대신 정치판에서 밥을 먹고 살고 있는 그로서는 “지들이 소설을 알긴 해?” 하고 속을 삭여야만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 그에게 여의도는 삶과 죽음, 권력과 정치, 우정과 갈등, 애정과 이별 등이 펼쳐지는 리얼한 세렝게티였다.
사실 먹고 먹히는 치열한 싸움만 빼놓는다면 아프리카 초원은 풀을 뜯는 초식동물의 모습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잡아먹히는 희생이 뒤따라야 살 수 있는 포식자들의 생존 방식은 정치판과 빼다박듯이 흡사하다. 이때 상식 밖의 정치가 작동한다고 정계는 입을 모은다. 다른 목숨을 빼앗아야 살아갈 수 있는 육식동물의 세계는 힘에 의해 작동하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가혹하다는 말을 빗대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자연이 만들어놓은 ‘죽거나 죽이거나’ 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운명의 사슬이라 할지라도 저자는 ‘생명 하나하나의 소중함을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 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이 소설에 녹여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한마디로 ‘잡아먹는 자의 감사와 자비, 먹히는 자의 용서가 만날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정치판에서 통할 리 없는 소설가의 꿈은 결국 아프리카 생존경쟁의 장인 세렝게티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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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보던(일부는 지금도 즐겨볼 것이다) 〈동물의 왕국〉, 〈라이온 킹〉, 〈정글 북〉 등 낯익은 단어들이 떠오를 때면 화면 내레이션이 함께 주마등처럼 스친다. '먹고 먹히는 생존 경쟁의 장'. 그러나 포식동물은 살기 위해 죽이고, 먹이동물은 살기 위해 도망가는 곳이 세렝게티 현장이라면 이곳 세상은 마치 포식동물의 것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자를 '동물의 왕', '백수의 왕'이라 일컫는 것일까. 이 상황을 인간의 눈으로 봐서는 정확한 모습을 파악해 낼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특히 저자의 상상력은 정치판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이 소설을 쓰는 데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이 책은 모두 1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이 한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마다 동물의 시선으로 의인화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목만으로 어떤 동물의 시선의 장인지 파악할 수도 있다. 1장 「숙명」, 2장 「생존」, 3장 「천적」, 4장 「들불」, 5장 「사선(死線)을 넘어」, 6장 「전사의 사랑」, 7장 「망각의 풀밭」, 8장 「어머니의 자리」, 9장 「킬리만자로 수행단」 10장 「음차위 할망구」, 11장 「행군」, 12장 「해를 좇아 동쪽으로」, 13장 「세상의 끝, 킬리만자로」, 14장 「대정령(大精靈)」, 15장 「절망」, 16장 「귀환」, 17장 「불멸과 소멸」 등이다.
1장은 초식동물 호다루(용감한 자)이 세상에 처음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상은 그저 환한 빛의 무더기였다. 어머니가 긴 혀로 질긴 양막을 걷어내고, 코와 입에 들러붙은 진액을 헤쳐 숨결을 불어넣자 세상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몸을 떨었다. 오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키 작은 관목들 너머 이름 모를 짐승들이 뿔을 허공으로 쳐올리며 질주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초록의 풀밭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춤을 추었다. 창공에는 구름 사이로 내리꽂히는 빛의 다발들이 기둥처럼 버텨 서서 하늘을 떠받쳤다. 발굽에 닿는 대지는 부드러웠고 몸을 훑는 바람이 감각을 일깨웠다. 길 닿는 곳마다 생명이 꿈틀거렸고 이 모든 것이 대지의 열기에 일렁이고 있었다. 그랬다. 내가 처음 본 세상은 너무나 다채롭고 아름다워서 꿈결 같았다."(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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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생존」에서는 사자 '다씸바'가 태어난다. "세상은 그저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냄새도, 촉감도, 소리도 없었다. 자극이 없었으므로 살아 있다는 것도 실감할 수 없었다. 어둠과 적막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아, 그리고 어머니······. 처음으로 감각의 문을 열어준 건 어머니였다. 훅, 피비린내가 끼치는 혓바닥으로 내 몸을 핥는 이가 어머니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어머니의 혀는 내 몸 구석구석에 와 닿았다. 어머니의 혀는 바위의 표면처럼 꺼칠했고 응윰부(nyumbu, 누)의 내장처럼 부드러웠으며 물소의 심장처럼 뜨거웠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나 눈앞은 늘 어둠뿐이었다. 어머니는 종종 오래도록 자리를 비웠다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 그동안 나는 죽은 듯이 누워 있거나 숨소리를 죽이며 잠들었다."(p.22)
사자 다씸바는 태어날 때부터 체취가 없이 태어났다. 사냥꾼으로서 이처럼 좋은 조건이 없을 터였다. 풀숲에 숨어 있다 먹이동물을 덮치려면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동물을 몰아가야 한다는 것은 포식자들의 불문율이다. 냄새로 적을 발견하는 초식동물 방어막을 선천적으로 하나 가지고 태어난 셈이다. 다씸바는 장성해 키불리(kivuli, 유령)란 별명을 얻는다. 귀신처럼 소리 없이 다가가 사냥을 하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가 어머니 자힐리(jahili, 잔혹한)의 말을 되새긴다. 사자로서의 삶이라 해서 먹이 사냥을 안 할 수는 없다. 먹이 사냥을 하지 못하면 사자는 죽음 앞에 놓인다. 사자 무리라고 해서 대신 먹이를 잡아다 앞에 놓아주지 않는다. 백수의 왕이라고 노력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사자가 안고 태어난 숙명이다. 사자 종족의 사냥감을 가리키며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었다. “저들은 우리보다 한 걸음만 빨리 달리면 살 수 있다. 우리는 저들보다 한 걸음이 더 빨라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지. 이 한 걸음을 위해서 저들은 저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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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세상처럼 인간의 세상도 다를 바 없다. 태어난 이상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 이겨야 살아 남는다. 그러나 인간의 경쟁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지켜 승리해야 진정한 승리일 것이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서 규칙은 종종 무시되거나 아예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인간이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무조건 이겨야 살아 남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면 승부를 위해 어떤 비규칙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 경쟁과 다를 바 없다. 더 문제인 것은 규칙을 어기고도 살아 남았다는 데만 도취된 나머지 비규칙을 조작하거나 은폐해 버리고 규칙에 맞췄다고 우긴다면 이것은 동물의 세상과 다름이 없다. 이 점을 보여주려 했을까? 저자의 가슴과 저자가 바라는 세상에는 아직 '공정'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어서일까? 동물의 세계를 보면서 독자도 자아 성찰의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저자 : 허철웅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경북대 전자공학과에서, 감히(?) 혁명과 시인을 꿈꾸다 제적됐다. 춘천에서 육군 통신병으로 만기 제대하고 2년만 문학공부를 하겠다며 영남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문학은 고사하고 학생운동에 푹 빠져 5년 만에 겨우 졸업했다. 상경해서 여러 출판사의 영업부장을 전전했다. 술집과 출판사와 서점을 쳇바퀴 돌며 틈틈이 소설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글쟁이는 안 된다며 반대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뜬 다음 해 1996년, <대구매일신문>의 신춘문예에 단편 ‘탁류’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로도 먹고사는 일에 쫓기다 2000년 제1회 MBC드라마문학상에 가작으로 입선했다. 입선작인 ‘나는 새들의 눈물을 보았다’가 《천일홍》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첫 책을 가졌다. 2002년 세상을 작파하겠다며 전북 고창 방장산 중턱의 임공사(현 미소사)로 들어가 3년 넘게 불목하니로 살았다. 토굴에서 공양간의 나물 반찬을 훔쳐 술안주 삼느라 세상은 작파하지도 못하고 글만 작파하고 말았다. 2004년, 분명히 팔자에도 없었을 정치판에 풀려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17대 총선에서 최재천 전 의원의 선거를 돕고, 보좌관으로 일했다. 정치선거 기획사, 독립 프리랜서로 30여 차례 각종 선거 현장을 누비며 여의도에서 서식해왔다. 추미애 전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부실장, 메시지실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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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