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대책 없이 살고 싶다
의자 지음 / 마음의숲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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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이 책 『낯선 곳에 대책 없이 살고 싶다』는 저자가 안락하고 평온한 생활을 마다하고 무모(?-저자의 표현대로)한 결정을 내리는 데 어이가 없고 황당한 느낌마저 받았다. 낯선 곳, 그것도 해외를 혼자 여행한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저자의 계획이 너무나 무모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느낌이었다.

더욱이 단순 여행도 아니고 장기 체류를 계획하고 특별한 대안도 없이 무작정 떠난다는 생각은 독자로서는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앞섰다. 결혼을 하지 않은 혼자 몸이라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다는 게 독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림 에세이를 쓴 것으로 보아 그림을 그리거나 미술 관련 일을 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결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부를 위해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자 의자가 계획한 뉴욕은 현대미술의 요람으로 부각된 곳이니까.

독자의 염려가 부끄럽게 저자는 말한다. "익숙한 곳에서의 안위와 평온보다 낯선 곳에서의 불안을 바탕으로 성장할 때 비로소 인생에서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서른다섯 살 여성인 저자는 자신이 전공한 미술에 대한 노력 끝에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일자리까지 박차고 훌쩍 머나먼 뉴욕으로 떠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돈이 풍족한 상태도 아닌데 어떻게 뉴욕행 편도 티켓 한 장과 현금 600만 원을 들고 떠날 수 있었을까. 앞서 저자의 언급대로 불안을 떨치고 성장하기 위해서? 설득력이 약하다. 독자의 생각이지만 저자는 정글 같은 뉴욕 한복판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치열하게 부딪히고 싸우고 넘어지며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우려된다.

 


 

돌아와 책을 내고 독자들에게 그곳 생활을 글과 그림으로 보여준 저자는 과연 어떤 것을 기대했고 어떤 것을 얻었는지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읽힌다. 조금 모호한 표현이지만 '삶에 대한 자신감'이 아닐까. 낯선 곳에서의 저자의 일상은 저자의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언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돈마저 부족한데 저자가 택한 방법은 뭔가를 만들든, 그리든, 쓰든 끊임없이 생각하며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은 누가 뭐래도 자본주의 사회 최상층에 있는 도시 아닌가. 뉴요커들의 일상이 평범하고 검소하다고 들은 바는 있지만 소문난 자본주의 도시인데... 물론 저자가 물욕이나 돈 욕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느낌은 책을 읽으며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려 햇수로 5년,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젊은 여성인데 불안감은 그렇다치더라도 한국에서도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돈으로... 결국은 아르바이트 생활도 하며 들어가는 돈을 보태기는 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어도 당차고 야무지다는 표현을 저자에 실례가 안 된다면 독자로서는 쓰고 싶다. 그래도 어이없고 황당하다에서 책을 읽고 나니 약간은 이해심이 들어간 표현이다. 사실 정직하게 표현하자면 책을 덮을 때쯤엔 젊은 여성 혼자서도 해내는 일을 왜 독자는 한 번도 실천은커녕 계획도 세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겸연쩍기도 했다. 저자만의 생존 방법이 이 책에 여러 가지가 나와 있다.

불안하거나 소심한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충분히 세상 살아가는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독자는 판단한다. 저자가 책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일 중에서 투 두 리스트가 뭉클하며 신선하다. 우연과 불확신 속에서 만나는 삶의 떨림과 감동, 정신과 영혼의 울림이 저자가 그린 뉴욕의 그림들과 함께 펼쳐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쯤 다시 한 번 그림이라도 더 보기 위해 빠르게 제목과 그림만으로 한 번 훑어본 사람은 독자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처음 부분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삶에 더 이상 어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난다. 삶의 진정한 의미, 가치와 값어치를 깨달아가는 한 화가의 삶에 대한 치열한 도전기라고 보면 알맞을 것 같다. 그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던 이야기가 이 책 곳곳에서 빛을 낸다. 저자의 표현대로 사람은 저마다 빛을 낸다고 말하고 그림도 여러 점 남겼다. 가난과 불안이 행복보다 났다는 보장은 없지만 안락하고 안전한 삶의 길보다 화려한 뉴욕의 한가운데서 생의 정면과 맞부딪치며 만나는 영혼의 떨림은 이 책만이 갖는 또 다른 울림이 된다.

저자는 낯선 곳 뉴욕에서 밖으로 나갈 차비조차 없는 상황에서 무서운 고독감에 혼자 울고 쓰러져있으면서도 무의식의 저편을 탐구한다. 내면의 빛을 찾아가며 일어서는 저자의 오롯한 정신이 그림과 문장에서 살아 번뜩인다. 이 책은 뉴욕만이 아닌, 세상의 어느 낯선 곳으로 떠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용기와 위로를 안겨줄 수 있다. 여행의 결말이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되돌아옴일지라도 그래서 더 가치 있고 값어치 있음을, 어느 날 쓸쓸함과 불안함이 삶을 덮쳐도 그것을 어루만질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라고. 이번 생을 더 열렬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의 주장에 신뢰가 간다.

서른다섯 살 미혼의 여자란 사실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내놓은 이력서의 전부다. 아, 화가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림을 책에 남겼으니 밝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당시 저자의 손에는 뉴욕행 편도 티켓과 현금 600만 원이 전부였다. 익숙한 곳을 벗어날 용기는 시간과 돈을 담보로 한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어도 저자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다음에 충분히 돈이 모이면’ 같은 말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저자이기에 즉시 행동에 옮겼다. 이제 저자는 말한다. "'나중에’와 ‘다음에’를 기다리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남은 생을 입버릇으로만 중얼거리게 될 것 같았다. 나도 한 번쯤 뉴욕에 살고 싶었다고."

 


 

책의 목차를 보다 에피소드를 적은 제목 왼쪽에 숫자가 적혀 있다. 그 앞에 'Day'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뉴욕에서의 체류 일수인 것 같다. 「어려운 쪽을 붙잡는 일」이란 제목 옆에 '293'이란 숫자에 따라 체류 293일째 되는 날이나 보다. "나 역시도 쉽고 편한 길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안다. 험난한 인생에 쉽고 편한 길이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달콤하다. 내 무거운 짐을 다 대신 지어준다는 어느 종교 광고에 마음이 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오롯이 나 자신. 재력 좋은 보호자가 갈고닦아준 길이라도 장애물 없는 인생은 없다. 보호막이 사라져 내 심장이 칼바람 맞는 거 같아도, 그 고통 온전히 겪어 내 힘으로 이겨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낯설고 아픈 일을 견디면서 천천히 걸을 수만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젠가 꽃피고 열매 맺지 않을까?"(p.132~133)

익숙한 곳을 떠나 보호막이 사라진 자신을 노출하는 일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스스로를 낯선 곳에 두는 것은 꽃피는 생명력, 어려움에 저항하여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 그것에서 생의 울림을 발견하고 온전히 ‘나’로 태어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불안을 인정하고 빈 곳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힌다고 말한다. 뉴욕 거주 1년도 채 안 됐는데 '도사'나 '수행자' 같은 생각이다.

248일째, 저자는 주머니에 남은 전 재산 오만 원으로 무엇을 할까 고심하다가 커피에 투자했다. 거의 절반에 이르는 이만 원을 스타벅스 카드 충전하는 데 냉큼 써버렸다. "나는 지금 여기서 내 삶이 좀 위태롭다고 해서 보이지도 않는 탈출구가 보인다고 말하는 소용없는 위로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 금액으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더 근사한 일은 없으니. 그러면 또 견딜 만할 테니까. 커피가 내 불안의 시간을 달래주는 달콤한 눈속임일 뿐이라도, 달게 쉬고 또 씩씩하게 걸어가면 좀 더 멀리 갈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멀리 떠나온 여행길이니 대범하게 나만의 사치를 부려본 것이다. 그것이 고깟 커피 한잔이라도."라는 글을 만들어냈다.

 


 

이내 저자의 직업을 생각해낸다. 저자의 빈 곳은 허식과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경제적 안정보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안정감이라는 단어는 저자에게 크나큰 빈 곳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뉴욕에서의 생활을 통해 결국 불안은 어딜 가나 존재하는 것이며 그 불안을 어떻게 견디는지가 중요함을 알게 됐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여전히 철없고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성격은 아직 고치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말에 곧 수긍이 간다.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빈 곳은 불안함이다. 이 불안함은 경제적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내면을 단단히 만들어 불안함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빈 곳을 찾아내고 다시는 빈 곳에 침식되어 삶이 흔들리지 않을 굳센 심지를 다져낸다. 우리가 불안함에 흔들릴 때 이 책을 펼친다면 중심을 잡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날이었을까? 1127일차, 「내 마음의 빈 곳」에서 저자는 "인생의 깨달음은 책상 앞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나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이렇게 시끄러운 맨해튼 한복판에도 소리 없이 오는 거구나. 이 답 하나 얻으러 내가 먼 길을 애쓰면서 왔구나! 그래 낯섦과 생경함, 그에 따른 두려움과 불안함 열렬히 감수할 만하다. 사하라사막에서 뉴욕까지 이토록 헤맬 만하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뉴욕이라는 낯선 정글을 홀로 헤매다가, 나의 아름다운 빈 곳 하나를 찾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내 마음의 빈 곳이 요동치고 발화하는 순간은 아주 특별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이는 스스로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본 작가였기에 자신의 찰나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한 감회일까, 체화된 느낌일까?

 


 

저자는 「낯선 곳에 대책 없이 사는 것은 낯선 이와 대책 없이 사랑하는 일」이란 제목의 〈에필로그〉를 통해 "되돌아보는 나의 흔적들. 때론 처절한 사투였고, 때론 달콤한 연애편지였고, 때론 궁상맞은 하소연이었던 지난 오 년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림들. 지난 그림들 속에서 홀로 던져져 아프고 몇 번이고 무너지는 나를 만났다. 그렇지만 그 무너진 자리에 서니,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고, 사람들의 따스한 빛이 보였고, 나의 빈 곳이 거기 있었다."(p.234) 저자는 그 순간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 아름다움은 장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서사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저자가 경험한 사하라사막이 그렇고 뉴욕이 그렇고 지금의 일상이 그렇다. 서사가 쌓이고 쌓여 빈 곳의 발견을 아름답게 만들어낸다. 자신의 빈 곳을 피하지 않고 함께 살아보자고 다짐해 낸다. 그리고 그림책 공부를 위해 다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으로 떠났을 때처럼 그렇게, 그렇지만 조금은 다른 나의 런던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밝히며 이 책의 마침표를 찍는다.

 

저자 : 의자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16년 뉴욕에 거주하면서 아우어 골든 아워(Our Golden Hour)가 진행하는 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2020년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아동문학과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석사를 마쳤다. 뉴욕에서의 일상이 담긴 그림은 로스앤젤레스의 프록시플레이스 갤러리 개관전에서 처음 소개되었으며, 이후 뉴욕과 서울에서 전시했다. 출간한 책으로는 『사막의 농부』, 『그림 좀 아는 고양이 루이』, 『캠핑 좀 하는 고양이 루이』 등이 있다. 어른을 위한 글 없는 그림책 『얼굴』이 출간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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