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의 현장을 둘러보며 정리한 답사기로, 작품 속 영웅들이 활약을 펼쳤던 중국 곳곳을 소개하며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저자는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을 살펴보며 『삼국지』를 보다 입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인식하게 해주며, 역사적 고증과 다양한 현장경험을 통해 신뢰할 만한 자료들을 확보해 이 책을 썼다. 저자가 오랜 시간 연구하며 직접 발로 뛰는 취재를 마다않는 열정이 어우러져 완성된 풍부한 콘텐츠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에 가미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들을 철저히 살피고 정사(正史)와 '연의'를 비교해 실어 독자들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직접 돌아본 각 지역들을 차근히 더듬어 가는데 그곳을 배경으로 벌어진 삼국지 속 이야기를 들려주고 인상 깊은 구절을 함께 실어 작품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또한 삼국지에서 그려진 특정 장소나 등장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그림이나 다리, 석상 등도 사진으로 기록해 현장감을 더하였다. 저자도 밝히듯이 정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연의』는 엄연히 다르다. 삼국지는 역사서이며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 233∼297)가 편찬한 것으로,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린다. 또 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위, 촉, 오 세 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14세기에 나관중이 장회소설*의 형식으로 편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오늘날에는 17세기 모종강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정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칫 혼동하기 쉽기에 저자 역시 책의 시작 부분에서 이를 명확히 가름하고 있다.

 

*장회소설 : 중국 소설의 한 체제로서 내용이 일관되고 긴 이야기를 토막으로 회(回)를 나누어 서술한 소설을 말한다. 형식은 매 회마다 그 이야기 내용을 간추려 제목을 붙인다.

 


 

이 책 『삼국지 기행』은 최초의 『삼국지』 현장 답사기였던 초판이 나온 지 10여 년 만에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초판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과 현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추가로 담아낸 증보판이다. 초판 이후 답사한 내용들을 추가로 정리하고 현장 확인을 위해 다시 찾은 중국은 10년 안팎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악인의 대명사로 미움 받는 조조가 영웅으로 부활하였고, 폐허나 다름없던 유적지들도 대대적으로 복원돼 있었다. 장강의 삼협댐이 완성되어 장비묘는 옮겨지고 백제성은 섬이 돼 버렸으며, 중국 전역에 산재한 삼국지 관련 유적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새롭게 복원되었으나 유적의 복원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 허우범은 확인해 주고 있다. 이번 증보판에서는 무엇보다 삼국지 유적의 변천사에 중점을 두었으며, 독자들이 변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현재의 사진과 과거 초판 사진을 함께 제시하여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였다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증보판에서 저자 허우범은 「독자들과 약속한 삼국지 현장 보고」란 제목의 '증보판을 내면서'란 글을 통해 앞서 언급한 대로 조조가 영웅으로 탈바꿈한 사실을 가장 먼저 꼽았다. 저자는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국력을 바탕으로 폐허나 다름없던 주요 유적지들이 대대적으로 복원됐다"고 전한다. 조조의 고향에서조차 유비와 제갈량을 이야기하며 조조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영웅 조조'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관광객을 맞는다고 한다. 관우 숭배사상의 산물인,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동상은 불법과 부패로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장강의 삼협댐이 완성됨에 따라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방편에만 치중된 것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씁쓸하게 회고하기도 한다.

 


 

『삼국지』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영웅들의 활약에 빠져 밤잠을 설치게 된다. 그리고 평생 그 책의 팬이 되어 영웅 가운데 누군가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삼국지』는 그만큼 우리의 꿈이고 현실이며 인생이다. 하지만 영웅들이 뛰놀던 현장에 직접 가서 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어도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역사적 상상력에 만족했었다. 여기서 『삼국지』는 소설 『삼국지연의』를 말한다.

『삼국지』의 분량은 중국의 '4대 기서'로 올라갈 만큼 엄청난 분량이다. 전쟁이 소재이자 주제인 이 소설이다보니 한 권으로 유적지나 현장을 제대로 답사한다는 것은 기간도 기간이지만 지역적으로도 넓은 지역이라 기행조차도 적은 분량으로 소화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모 신문사에서 13개월에 걸쳐 연재할 계획으로 기획된 기행이다. 아무리 줄이고, 편집을 통해 책 두 권으로 펴낸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기획과 연재에 감사를 먼저 표하고 싶다. 삼국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래저래 많이 읽히는 고전에 속한다. 중국 내 전쟁 이야기가 우리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이유는 소설적 구성 때문이리라. 소설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꾸며내기에 좋고, 다소 과장해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니만큼 별 거부감 없이 읽히니까. 특히 우리와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5,000년 간의 관계가 있지 않은가? 이 서평도 앞에 소개글이 길어진 것도 『삼국지 기행』뿐 아니라 『삼국지연의』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삼국지연의』를 번역, 번안한 모든 책이 그렇듯 이 책 『삼국지연의』는 도원결의가 첫 부분이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소설 주요 인물을 내세우기 좋은 형식이고 구성이다. 『삼국지 기행』 1권은 도원결의부터 유비가 손 부인을 얻는 이야기까지를 다룬다. 도원결의를 통해 관우와 장비를 만나고, 동탁과 여포, 원소와 조조, 조조의 시대를 넘어 적벽대전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격전지를 저자가 직접 돌아다닌다.

 


 

도원결의와 적벽대전은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에게는 굉장한 극적 장면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삼국지의 장엄한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도원결의와 제갈공명의 지략이 돋보이는 적벽대전은 영상화할 때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도원결의는 화사한 복숭아밭이라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의(義)'를 표상하는 결의의 장소로도 은유된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한 장소는 북경에서 서남쪽으로 64km 지점에 자리한 하북성의 탁주라고 한다.

"탁주에 들어서자 '천하제일주'라고 쓴 패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비와 장비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관우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구국의 군사를 일으킨 곳이기에 하늘 아래 제일 자랑스러운 것이리라."(1권, p.71)

탁주를 거쳐 저자는 조조의 중원 통일 후 군사적 시위였을까. 하도로 오기 위해 산해관을 거쳐 발해만을 따라 회군한다. 빠른 길이기도 하였지만 조조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고 저자는 짚어낸다. 그것은 무엇일까? 갈석산에 올라 시 한 수를 짓기 위함이었다. 시인 조조가 시 한 수를 짓는데 굳이 갈석산에 올라야만 했겠는가? 하지만 이 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의 위대한 황제들이 오른 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산에 올라 개선가를 지음으로써 조조 또한 그들과 다름없는 황제의 자부심을 느끼고 암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에 따르면 조조가 오환을 물리친 유성은 현재 요녕성 조양시다. 조조는 이곳에서 민심을 다스리고 회군했는데, 발해만 쪽으로 내려오다 올랐다는 갈석산은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창여현 북서부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695m의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그러하듯이 발해만을 굽어보는 평야 지대에 불쑥 솟아 있는 것이 마치 천하에 위암감을 주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황도시에는 만리장성의 동쪽 출발점인 산해관이 있다. 만리장성은 발해와 이어지는데 바다와 맞닿은 곳에 노륭두라는 망대가 있다.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대대적인 중건 작업을 벌여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라는 표지석이 우뚝하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처럼 만리장성 동쪽 끝은 산해관이 분명한데도, 중국의 동북공정은 압록강변의 단동시 호산산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우기고 있다고도 말한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비단 『삼국지연의』에서만의 일은 아니란 것을 주장하는 저자의 심중을 헤아리게 해준다.

〈적벽대전〉은 이 책의 2부 21장에 「노을인가, 핏빛인가」란 제목으로 404페이지부터 427페이지까지 전투의 내용과 유적지 사진, 적벽대전을 표현한 각종 문학 작품과 시, 관련 인물들의 말은 물론 전투 양상을 그린 〈적벽대전도〉도 그려서 상세하게 설명한다. 특히 「적벽대전에서 패할 수밖에 없던 조조」라는 별도의 3페이지를 할애해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조조가 적벽으로 전진을 명령할 즈음, 가후는 조조에게 형주를 수습하고 회유 정책의 강동의 신하를 복종하게 하라고 권유하였고, 조조가 이 말을 듣고 강릉에서 군사들로 하여금 남방 환경에 적응하며 충분히 쉽게 한 후, 이듬해 봄에 오나라로 진군하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배송지가 「가후전」의 주석에서 조조의 패배를 다음과 같이 썼다고 소개하면서다. "적벽에서의 패배는 조조의 운이 그런 것이다. 실제로 역병이 돌아 등등하던 기세가 한풀 꺾였고, 때마침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불길을 북돋았다. 진실로 하늘이 그렇게 한 것이니, 어찌 사람을 탓하겠는가?"

하지만 패배의 근본 원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조의 교만과 적에 대한 무시에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솔직한 지적이다. 조조는 너무도 들뜬 나머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초보적인 전술을 무시했기에 치욕을 당한 것이다.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고, 교만과 무시는 스스로를 망친다는 역사의 준엄한 가르침을 우리는 오늘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권에 나오지만 형주에서 관우의 교만도 그의 패배로 이어지고 형주를 내어주고 결국은 스스로도 죽음을 맞는다. 형주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저자는 1권의 마지막에 형주를 찾는다. 주유는 적벽대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조인이 지키고 있는 남군을 공략하였다. 그런데 유비군이 남군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위기를 느낀 주유가 유비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 유비는 주유와의 면담에서 제갈량이 알여준 대로 말은 했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섭섭했다고 한다. 자신의 야망은 천하를 차지하는 것이련만, 이를 펼칠 기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동가식서가숙한 지가 얼마인가. 그 사이 설움도 많이 받았고 목숨마저 위태로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무찌르고 형주를 터전으로 삼아 본격적인 시동을 걸 때가 왔는데, 용중 대책을 설파한 제갈량의 마음이 그새 바뀌었다는 말인가라면 장탄식을 하는 듯하다. 형주를 10년 만에 다시 찾은 저자는 "견고하고 웅장한 성벽에 형강을 해자로 삼은 형주의 모습은 그 옛날 철옹성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고 적었다. 형주성은 삼국 시대의 많은 유적지 가운데 그 형태를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한다. 성을 찬찬히 돌아보니 성벽은 시대별로 보수되어 온 흔적이 역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의 축조 방식은 시기마다 다르다. 관우가 형주를 지키던 때는 흙으로 성벽을 쌓았다. 오랜 시대가 지나면서 요충지 형주를 차지한 자들이 성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보수하여 왔는데, 명나라 때 지금처럼 벽돌로 성벽을 쌓았고, 청나라 초기에 다시 중건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성 안에는 이를 알아볼 수 있게 안내해 놓았는데 시대별로 이 성의 세파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에도 형주성이 중요하였음을, 서로 다른 벽돌이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책에 따르면 형주성에서 중요한 문은 동문이다. 동문은 수로가 통하는 문으로 공안문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 유비가 이곳으로 상륙하여 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성문은 모두 옹성을 갖추고 있다. 옹성이란 성벽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방어용의 작은 성을 말한다. 형주성은 모두 6개의 성문이 있는데 모두 옹성을 갖추고 있다. 적들이 용케 해자를 건너왔다고 하여도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인 옹성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벽은 커다란 석재를 기초로 하여 흑벽돌을 쌓았는데, 벽돌의 틈마다 석탄과 찹쌀로 만든 접착제를 넣어 마치 쇠처럼 단단하다고 한다.

저자는 "성문 누각인 빈양루에 오르니 형주성의 모습이 훤히 보인다. 일정한 높이의 성벽이 높고 낮은 지형을 오르내리며 둘러쌓았는데, 마치 기다란 럭비공 모양이다. 성 안을 내려다보니 현대에 지어진 가옥들로 빼곡하다. 에전에는 제갈량을 기리는 무후사와 손권의 오왕묘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 없다."고 쓰고 있다. 오직 형주성과 성벽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돌아서는 발길들을 잡으려고 했던가. 진양루 안에는 촉의 주인공들 상을 만들어 놓았다. 유비와 제갈량, 관우와 장비 그리고 조의 조각상이다. 형주는 삼국의 군주인 조조, 유비, 손권이 모두 차지한 곳이다. 아울러 관우, 조인, 주유도 형주를 지킨 장수들이다. 영웅호걸들이 모두 형주를 놓고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고, 세 영웅 중에서 최종 승자는 손권이었다. 그런데 빈양루에 와서 보니 최종 승자는 유비이다. 이는 중국인들이 그만큼 유비를 좋아한다는 반증인 것이다. (중략)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형주성에는 거대한 관우상이 들어섰다."(1권, p.453~45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