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있어요 - 세상에 혼자라고 느껴질 때, 우리를 위로해 주는 것들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안해린 옮김 / 불광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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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慰勞, comfort)라는 단어가 절실한 때가 요즘인가 싶다. 위로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이르는 사전적 풀이로만으로도 충분히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슬픔'이 기독교가 성경에서 규정하는 '7대 죄악'이외의 죄악에 '슬픔'이 있었다고 한다. 성서에 등장하는 7대 죄악은 ‘탐식’, ‘탐욕’, ‘태만’, ‘욕정’, ‘교만’, ‘시기’, ‘분노’를 이른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서를 연구하다 '슬픔'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현이라 보고 오히려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라고 해서 슬픔은 제외됐다고 들은 바 있다. 슬픔과 위로는 서로 잘 맞는, 궁합이 잘 맞는 단어이다. 성서에서도 '위로'를 언급한다.

"괴로움을 씻어주고 마음을 즐겁게 함. 낙심하고 절망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그 마음에 새 힘을 주고 격려함(대하 32:6). 참된 위로는 위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욥 15:11; 시 86:17), 그리스도를 통해(사 61:1-3; 고후 1:5), 혹은 성령을 통해 주시는 위로이다(요 14:16-17; 행 9:31). 특히 ‘위로’를 뜻하는 헬라어 ‘파라클레시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다’로서, 이는 성령을 가리키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와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이다. 즉, ‘위로’라는 말 속에 곁으로 불러 보살피고 권면하시는 성령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품이 잘 담겨 있다(고후 1:6).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원어가 ‘권면’(빌 2:1; 히 13:22)으로도 번역된다. 그리고 ‘위로자’란 그 처지를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그 처한 비극에서 구원해 줄 자를 뜻한다(전 4:1)."(라이프성경사전)

우리 삶에서 슬픈 감정을 느낄 때는 무수히 많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날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강인한 의지로 극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 책 『내가 여기 있어요』의 저자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때가 있다고 말한다.

 


 

책을 펴낸 출판사 측에 따르면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위로’를 치면 가장 먼저 뜨는 자동완성 검색어는 ‘위로가 되는 글귀’다. 시에서, 소설에서, 유명인의 말에서 위로가 되는 글귀를 찾은 누군가는 위로가 듣고 싶었던 사람일까, 위로를 하고 싶었던 사람일까. ‘싸구려’니, ‘허울뿐’이니 하며 그 가치가 절하되고 어지간한 위로의 말은 내 사정도 모르는 참견으로 여겨지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와 나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낼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런데 정말 ‘위로’가 무엇인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폐암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며 위로의 중요성을 느낀 저자, 크리스토프 앙드레는 다음의 모든 것은 위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단정짓지 않되, 괴로움에 세상과 멀어지지 않게 언제든 내가 여기 있으면서 돕겠노라 말해주는 것. 슬픔과 비탄에 잠식되지 않도록 한 번씩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 부드럽게 어깨를 다독이는 손. 판단하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 속세의 희로애락과 무관하게 제 속도대로 꽃이 피고 지고 녹음이 우거졌다가 낙엽이 지고, 눈이 쌓였다가 녹아가는 자연의 무심함. 감탄을 자아내는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과 공감이 되는 이야기의 보편성. 시, 명상, 종교…. 당장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더라도,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슬픔과 고통의 원인과 증세가 다양한 만큼, 위로의 근원 역시 무수히 많아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이 위로에 관한 책에 머무르지 않고 부디 위로하는 책이 되기를’ 기원하는 그의 말대로 『내가 여기 있어요』는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에게도, 위로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는 가이드이자 위로의 원천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 모두 알지만 애써 외면하던 진실(요즘 말로는 '불편한 진실')을 대놓고 드러낸다. 그가 말하는 ‘피할 수 없는 세 가지’인 고통, 노화, 죽음은 그 표현대로 인간의 삶에서 어쩔 도리 없이 마주칠 괴로움의 원천이다. 그러나 무기력하게 홀로 괴로움을 감내할 필요는 없다.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끝없는 슬픔에 우리가 잠식되지 않도록 잡아주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울과 불안 장애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비록 눈에 띄는 차도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의사를 찾아오도록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여기 있어요』는 그 해답을 관계에서 비롯한 위로에서 찾는다. 저자가 말하는 위로는 온유함과 형제애가 담긴, 일시적인 위안을 초월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위로는 해결책이 없는 삶의 시련이라는 폭풍우와 공존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막막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시간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또 거기 있어 주는 타인의 존재감, 이해와 공감으로 묵묵히 곁을 지키는 위로는 운명의 붉은 실처럼 우리의 삶 내내 이어진다.

우리는 고통받고, 늙고, 죽는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위로는 현실을 바꿀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감정을 경감시키고 삶의 의욕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란 저자의 주장이다. "위로는 마법의 묘약이 아니라 어둠 속을 파고드는 빛이다. 이 빛은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세상의 형태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해주어 세상이 살만하다고, 그저 살만할 뿐이라고 알려준다."(p.28)

제대로 위로하려면 슬픔이 정당한지 판단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단지 한숨짓고 눈물 흘리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이를 진정시키고자 노력해야 한다. 고통이 작아 보인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눈물 흘리는 이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p.49)

 

 

독자는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삶의 어려움을 털어놓았을 때, 괴로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을 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당황한 경험이 있다. 평소 위로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연약함을 말해준 신뢰에 고마우면서도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허둥지둥하다가 급한 대로 ‘괜찮을 거야’, ‘힘내’라고 뱉고 보면 그렇게 ‘영혼 없는’ 위로도 없어 보인다. 그럴 때 자신이 세상 초라한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까지 나이 헛먹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이런 영혼 없는 위로가 무관심이나 성가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다만 사무치는 공감이나, 때로는 경험한 적 없어 가늠할 수 없는 타인의 슬픔에 동요한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 뿐이다. ‘당신의 고통에 나도 마음이 아프다, 현실적인 도움을 줄 방법이 없어 몇 마디 말만 건네기가 겸연쩍다’고 건조하게 위로하기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타인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 그의 진심 어린 공감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어쩌면 우리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힘들어’라고 친구나 가족에게 말할 때 (물론 마법처럼 해결책이 나온다면 참 좋겠지만) 그저 차분히 경청하고 나의 감정을 이해해주길 원한다. 고통에 공감하고, 언제라도 얘길 들어주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줄 것을 알리는 표현은 거창할 필요도, 무작정 긍정적일 필요도 없다. 위로는 현실을 바꿀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괴로운 감정을 경감시키는 데 목표를 둔다. 저자의 주장에 독자의 공감이 실린다. 또 위로의 참뜻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저자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신과 의사로서 그가 만나 온 다양한 사람들과의 일화, 편지글과 문학 작품, 인터뷰를 선별해 좋은 위로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죽음을 앞두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두 친구의 모습을 그리는 빅토르 위고의 글, 감옥에 갇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편지, 마리 노엘, 말레르브,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가 부드럽게 보여주는 섬세한 고통까지. 이를 통해 독자들은 위로를 구하는 사람이 느낄 괴로움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취해야 할 적절한 자세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깨닫게 된다.

슬프고 괴로울 일이 다양한 만큼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 역시 하나가 아니다. 사람만이 구원인 것도 아니다. 6장에서는 수많은 위로의 길이 소개된다. 자연, 걷기, 음악, 소설, 글쓰기, 명상, 운명과 믿음, 종교와 환상에 이르기까지 위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자연을 바라보며 지금 느껴지는 슬픔보다 더 넓은 세상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곁을 지켜주는 반려동물의 다정함을 느끼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며 기분 전환을 한다. 예술은 어떨까? 아름다운 그림을 보거나, 내 기분에 맞는 슬픈 음악이든 활기를 일으키는 즐거운 음악이든 노래를 듣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는 사람은 무척 많다. 앞서 말했듯 시와 소설을 통해 타인의 괴로움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공감하거나, 비슷한 상황에서의 적절한 대응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고통을 글로 쓰면서 슬픔과 대면하고, 명상을 하며 나와 내 주변을 차분히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커다란 괴로움의 덩어리를 잘게 분해한다. 이토록 다양한 위로의 근원 앞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는 우리 몫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위로」, 2장 「비탄」, 3장 「우리를 위로하는 것: 관계의 회복」, 4장 「타인을 위로하기」, 5장 「위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6장 「위로의 길」, 7장 「슬픔과 위로의 유산」 등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독자를 평온한 마음으로 이끌었으며, 때론 감동, 때론 공감하게 했다. 그만큼 절실하게 쓰여졌으며, 자신의 진심을 다해 썼다는 반증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7개 장 하나하나의 저자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위로할 때의 마음가짐이 그대로 드러나듯 책을 썼다. 그래서 펜으로 썼다기보다 온몸과 영혼의 다해 썼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첫 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위로의 정의'부터 말한다. 마치 과학자가 새로운 발명을 한 이후 새로운 가설과 가제를 서두에 두는 것처럼(눈문처럼) 책을 구성했다. "위로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다. 위로의 목적은 해결책처럼 현실을 바꾸고자 함이 아니라 고통의 감정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위로받는 것은 엄밀히 말해 상황을 변화시키는, 또는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위로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시련’보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 집중한다."(p.21)

이어 저자는 위로는 때로 불가사의한 과정을 거치고 종종 불분명한 결과를 가져오는 '연금술'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앞으로 이 책에서 다룰 위로의 여정에는 4가지 필수요소가 항상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 4가지가 〈애정〉, 〈관심〉, 〈행동〉, 〈수용〉이다. 애정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든 형태의 위로는 비탄에 잠긴 이를 향한 애정의 표현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관심에 대해서는 위로하는 주체는 우리의 관심을 고통에서 돌려놓는다. 일시적이고 표면적이고 미약할지언정, 그 효과는 긍정적이다. 고통을 중단시키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며,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이와 함께 괴로워하는 이가 삶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게 하려면 말과 조언보다 주로 행동, 특히 함께 공유하는 행동을 제안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수용에 대해서는 시련을 수용함은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지 시련에 굴복하거나 즐기게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회복의 과정에 인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정은 위로의 결과이자 이로움이지, 정면에서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라고 언급한다. 결국 위로하는 사람은 위로받는 이를 온화하게 이끌어 수용의 단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지향한다고 덧붙인다.

 


 

회복력이든, 맞서고 살아낼 의지든, 우리 존재의 위대한 자원은 바로 사랑이다. 받은 사랑, 준 사랑, 받을 사랑, 줄 사랑…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시련에 맞서는 모든 힘의 원천은 사랑과 그것이 주는 위로라고 할 수 있다.(p.225)

 

저자 : 크리스토프 앙드레(Christophe Andre)

 

프랑스 파리 생트안 대학병원 정신과 의사이자 긍정심리학 전문가. 불안증 및 우울증과 같은 정서 장애 치료를 전문으로 하였으며, 그중에서도 최근 몇 년간은 마음챙김 명상과 긍정심리학을 활용한 재발 방지 분야에 힘썼다. 2000년대 초반 심리치료에 명상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프랑스 인지행동치료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파리 제10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는 프랑스 공영 라디오 채널 ‘프랑스 앵테르(RFI)’에서 매주 명상과 마음챙김 관련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펴낸 『나라서 참 다행이다』가 프랑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불안을 넘어설 용기』, 『나답게 살아갈 용기』, 『새로운 뇌 사용법: 나를 치유하는 뇌』 등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공저로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나를 살리는 관계』, 『내 마음이 왜 이래』, 『상처받지 않는 삶』 등이 있다.

 

역자 : 안해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한불과 국제회의통역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몽테뉴의 수상록》, 《몬테소리와 함께하는 사계절》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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