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간직하고픈 시 - 개정판
윤동주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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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다보면 이 책 저 책 성격이 다르고 서점 분류상으로도 다른 분야의 책들이 많다. 독자는 개인적 입장으로 시집 서평이 가장 어렵다. 독자가 시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그렇겠지만 유독 시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시 감상을 할 줄 모르기에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 특히 독자가 이름을 모르는 시인의 서평은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쩔쩔맬 때마다 느낀다. 시를 많이 읽지 않아 감상의 포인트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기에 두려움마저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시집의 서평은 그렇지 않다. 대개 아는 시들인 데다 시마저 몇 귀절은 외우고 있는 시가 대부분이어서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은 지난 2015년 첫 출간한 시집이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아는 시인들과 시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시는 이해가 쉽다. 또 자꾸 듣고 자주 읽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감성적인 면에서 공감이 잘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 『평생 간직하고픈 시』은 개정판이다. 개정판이라고는 하지만 전작 초간본처럼 모두 70편의 시가 실린 점은 같다. 다만 시대에 따라 변화된 감성에 따른 것인지 48편은 교체된 시라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전작과는 달리 개정판에서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윌리엄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등 외국 작가들의 시도 수록했다. 윤동주, 박인환, 문정희, 나희덕, 김경미, 도종환부터 토머스 모어, 하인리히 하이네, 헨리 앨퍼드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시인들의 주옥같은 시를 선별했다. 난해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시 대신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시의 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시선집으로 거듭 태어났다.

 


 

독자가 시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시를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은 많다. 그래서 정말 좋은 시는 잔잔한 위로의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무뎌진 감성을 설레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는 정서가 같아서인지 공감이 쉽고, 이해도 빠르다. 특히 이 시집은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잊고 있던 시가 다시 떠오를 정도로 매력적으로 꾸몄다. 이 시집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아련한 추억과 함께 아름다운 상상과 공감대의 짜릿한 감수성을 되살리길 바란다. 부담 없이 읽고 오래 간직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에 시로 꽉 찬 이 시집 볼수록 아날로그 감성으로 쉽게 우리를 데리고 간다.

시인 도종환의 시를 이 시집에서 오랜만에 다시 대한다. 그가 장관까지 한 시인이란 것을 우리들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시인으로서의 도종환이 여기에 있다. 정부의 장관까지 했던 시인이라 조선시대 윤선도나 정철 등 많은 문인들이 정치를 한 것을 생각하면 시인이 장관을 한다는 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기존의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었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흔들리며 피는 꽃」 중에서

 

 

시를 감상할 때마다 느끼지만 시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함께 떠오른다. 시는 사람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힘을 가장 잘 보여준다. 짧은 글귀 안에 담겨 있는 강렬한 감동을 이 시집을 통해 느끼며 아련한 추억 속으로 되돌아가는 행복감마저 되살아난다. 우리나라 시 중에는 노래 가사로 채택되어 보다 유명해진 시도 많다. 정지용의 「향수」,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김소월의 「못 잊어」, 김동환의 「산 너머 남촌에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떠오른다. 이 가운데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독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노래로 곡을 붙였다고 하는데 가끔 TV에서 〈흘러간 옛노래〉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속으로 따라 불러보았는데 가사며, 곡이 잘 어우러져 착착 감기듯이 감미롭고 애잔한 옛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기도 한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난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해서

                         - 「세월이 가면」 중에서

 


 

시인 박인환은 독자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고인이 됐다고 하는데 그의 별명은 '명동 신사'였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서울 명동의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시도 쓰고, 술도 마시고, 음악 듣고,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멤버'였다고 한다. 그때 시절이 가난한 때라 문인이나 예술가들의 주머니 사정도 뻔했을 터, 누군가 원고료 받으면 그날은 다함께 술 한 잔 나눠 먹으며 문학 얘기에 열중했던 그 시절이 TV 드라마 속 같은 분위기를 연상하게 한다. 그는 한국 모더니즘 시의 선구자로 일컬어졌다는데 독자로서는 그의 싯귀에서 처음으로 '버지니아 울프'라는 외국 문인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중략)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목마와 숙녀」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윤동주도 빠질 수 없다. 그는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스러졌지만 그의 많지 않은 시는 남아 우리 한국인의 가슴을 적셔준다. 한 많고 설움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안고 희망의 별빛을 헤아리게 해준다. 그의 요절은 한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한을 하나 더 쌓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승화돼 고난을 딛고 일어선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의 희망이 되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답게 그의 시는 여러 편이 실려 있다. 「쉽게 씌어진 시」, 「새로운 길」, 「자화상」, 그리고 「별 헤는 밤」이다. 이 가운데 「별 헤는 밤」은 짧지 않은 시지만 독자도 거의 외울 듯 자주 읽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별 헤는 밤」 중에서

 


 

이 시집은 모두 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의 시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외국의 유명한 시인들도 포함돼 있다. 번역된 시가 그들의 언어로 느끼는 바가 다소 다르겠지만 이미 절창으로 검증되고, 아름답고, 독자들의 마음을 잡아 끌기에 충분하다고 소문난 시들이다. 1장은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2장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3장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4장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5장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등이다. 각 장의 제목이 싯귀처럼 되어 있는 것도 주의해볼 만하다. 각 장에는 한두 명의 외국 시인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편집자의 의도적 배치로 보인다. 이들 시인들의 유명한 싯귀들은 우리가 교과서나 『세계 시선집』 『세계문학전집』 등에서 자주 보고 읽는 것들이라 두려움 없이 대할 수 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렌터 월슨 스미스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프랑시스 잠의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 헤르만 헤세의 「생의 계단」,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 하인리히 하이네의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칼릴 지브란의 「사랑」, 토머스 칼라일의 「오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지혜란 세월과 함께 오는 것」, 윌리엄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 등의 일부 싯귀는 우리가 익히 듣던 대로 어김없이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시집을 읽는 시간을 아름다운 시간으로 우리 삶의 기록 속에 충실하게 저장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니

                      -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전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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