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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3년 5월
평점 :
이 책 『투명인간』의 역자 이정서는 "젊은 시절, ‘투명인간’의 파멸을 기대하며 읽었던 소설"이란 표현을 썼지만 독자에게는 "한없는 상상력의 날개를 활짝 펴준", 히어로의 등장이었다. 독자가 어렸을 때 이 책 『투명인간』을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동네 형'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독자로서는 투명인간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었다. 이후 독자는 스스로 투명인간이 되어 상상의 나라를 자주 날아다녔다. 소년기의 독자의 한때는 그렇게 '투명인간'이 지배했었다. 동네 형이 소설 번역본을 직접 읽었는지, 어디서 들은 것인지 그것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투명인간 존재 자체였다.
『투명인간』은 그러했다. 당시 우리 출판계가 열악했던 때라 아마 저작권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고(당시에는 저작권 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외국에서 인기 있던 출판물을 몰래 번역해 출판해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걸려들 위험이 없었다. 이른바 '해적판'의 출현이다. 외국의 인기 출판물은 그렇게 여러 개의 출판사가 동시에 출판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이야 정식으로 출판 계약을 체결하고 저작물 권한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동의는 계약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판매 부수에 따른 인세 지급 등을 말한다. 이 책 『투명인간』은 발표 당시인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문화는 상당 부분 달랐기 때문에, 미국에서 출간된 『투명인간』은 영국 오리지널 판과 여러 부분이 달랐다고 역자는 말한다. 편집자 주인지 역자 주인지 모르겠지만, 영국 오리지널 판에는 전혀 없는 각주가 미국 판에는 53개가 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 이정서의 말이다. "영어를 영어로 번역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껏 해본 적이 없다. 예컨대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다?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투명인간』을 읽으며, 영어를 영어로, 한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북한에서 출간된 서적을 한국에서 출간하려면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에 번역에 버금가는 작업이 필요하겠기 때문이다."
역자는 책의 번역 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털어놓는다. "각주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펭귄북스 판은 원작의 많은 구절을 임의로 삭제했다. 그래서 ‘투명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곡해하게 만들었다. 같은 편집자로서 편집자의 역할(번역자도 마찬가지)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현저하게 달랐다. 소설의 전체 맥락을 왜곡할 만큼 심각했다."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누군가 〈유쾌한 크리켓 선수들〉에서 침대 시트 한 장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그를 시트로 덮고 그 집으로 운반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불이 켜진 그 집 침실의 낡은 침대 위에서 투명인간의 기묘한 실험은 막을 내렸다."(김석희 옮김, 『투명인간』, 열린책들. p.248)
"누군가가 〈즐거운 크리켓터스〉에서 시트 하나를 가져와서 그를 덮었고, 사람들은 가게 안으로 그를 옮겼다. 그리고 거기엔 모든 인간 중 처음으로 자신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그리핀이, 불도 켜지 않은 침실의 지저분하고 허름한 침대 위에, 무지하고 흥분한 사람들 무리에 둘러싸여, 깨어지고 상처 입고, 배신당하고 동정받지 못한 채로 놓여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재능 있는 물리학자 그리핀은 자신의 낯설고 가공할 생애를 끝없는 참사로 끝마쳤던 것이다."(이정서 번역, p.286)
역자는 책의 맨 앞의 〈옮긴이의 말〉과 뒷 부분의 「영국의 투명인간과 미국의 투명인간」이란 제목의 〈역자 해설〉을 통해 미국 판과 영국 오리지널 판의 차이를 명시하지 않은 국내의 기존 번역서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역자도 젊은 시절, 투명인간 ‘그리핀’의 파멸을 내심 기대하며 조마조마하게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고 한다. ‘욕심에 눈이 먼 미치광이 과학자’ 정도로 읽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당시 읽은 소설과 지금 번역하며 다시 읽은 소설의 간극을 분명히 느낀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 또한 기존 책의 독자였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비로소, 『투명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과학 철학소설’에 더욱 가깝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독자들도 알게 되길 바란다." 번역서는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p.300)
“(투명인간을 쓴 허버드 조지) 웰스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세계와 사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1984』를 쓴 조지 오웰의 이 말에는 『투명인간』의 저자 허버트 조지 웰스를 향한 감탄과 존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SF 소설의 창시자’라 불리며 문학은 물론, 과학과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웰스는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 인류가 가야 할 길을 깊이 고민하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투명인간』은 그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상상력을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풀어낸 작품으로, 주인공 그리핀은 근현대 들어 창작물에 등장하는 최초의 ‘투명인간’이다. 1897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호기심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엄청난 판매 성과를 올렸고, 네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상상력을 극대화한 SF 소설이라는 단순한 평가를 넘어,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중성, 소외된 인간의 고독과 공포, 나와는 다른 존재를 ‘사냥’하는 인간의 잔인성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희대의 문제작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투명인간』은 과학 소설의 철학적 측면을 살펴보고 오직 상상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처럼 여겨지는 주제에 대한 문화적 비판을 제공했다. 어린 시절, 흥미 위주의 요약본으로 더 많이 읽혔던 『투명인간』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시간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된 『투명인간』은 미국 펭귄북스 판본인데, 미국 판본은 영국 오리지널 판본과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는 같은 영어라 해도 두 나라간 문화적 차이에서 달라진 고어(古語)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있었고, 미국 편집자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전개의 오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이다. 조지 웰스는 내레이터의 입을 통해 ‘세계에 둘도 없는 가장 재능 있는 물리학자’ 그리핀(투명인간)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애도하는 뉘앙스로 작품을 끝냈다. 하지만 미국 판에서는 이 부분을 절반으로 뚝 잘라, 마치 한 못된 사내의 광란의 소동이었던 것처럼 작품을 끝내고 있다. 결국 대부분 미국 판을 원저로 알고 번역한 국내 번역본은 미국판의 오류까지 고스란히 답습한 셈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차이가 결국 『투명인간』이라는 책에 대한 기본 소개마저 다르게 나타나는 결과로 이어졌던 셈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역자 해설에 소개되어 있다.
역자에 따르면 그냥 눈으로 원서를 읽는 것과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번역하는 일은 큰 차이가 있다. 웰스의 문장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번역을 끝냈는데, 정말이지 갈수록 이 독특한 내용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번역을 끝내고 무심코 비교해본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기이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혹시 몰라서 비교해본 결과 내가 원본으로 삼은 책과 처음 영국에서 출판된 원본의 결말 문단이 현저히 달랐다.
1890년대 말 서구 유럽은 '과학 전성시대'에 돌입한다. 『투명인간』은 웰스가 집중적으로 발표한 SF소설 중 『타임머신』과 함께 대표작에 속한다. 1897년 6-8월에 걸쳐 피어슨즈 위클리(Pearson's Weekly)에 연재되었고, 같은 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위키미디어 커먼즈〉는 전한다. 이에 따르면 웰스의 초기 작품들은, 이후 1900년대 들어서면서 정치, 전쟁, 종교, 역사 등 인간사회 제문제를 다루는 중후기 저작과 장르는 다르지만, 문명의 맹점과 인간 본성의 취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의 비판 정신이 초기에 확립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웰스는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허구의 '투명인간'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몸 전체가 완전히 투명해진 인간은 망막에 사물의 상이 맺힐 수 없으므로 사물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이 소설의 과학적 근거가 빈약함을 지적하는 평자도 있다. 하지만 제20장에 망막만 빼고 투명해진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웰스의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단편적 비판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초인의 자유와 윤리와 인간 정체성, 제어 불가능한 힘 앞에서 느끼는 공포, 권력의 광기 등 이 작품에 담긴 주제는 이후 끊임없이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영향을 주었다. 줄거리는 과학자가 등장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소 황당하기도 하지만 소설적 구성은 확실하게 갖추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도 크다고 평론가들은 평가했다. 이후 웰스는 과학소설의 창시자 그룹에 속할 정도의 고전 문학가의 반열에 올랐다. 물론 『타임머신』과 함께다.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은 붕대로 가린 이방인이 영국 웨스트 서식스의 작은 시골 마을 아이핑에 나타난다. 여관방에 틀어박혀 화학 실험으로 시간을 보내며, 오직 밤에만 외출하는 그의 기행은 얼마 안 되어 온 마을의 화젯거리가 되고 만다. 어느 날 주인공은 여관 주인 내외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키게 되어 도망친다. 투명인간은 토머스 마블이라는 부랑자를 발견하여 자신의 조수로 삼고 과학실험노트와 훔친 돈을 맡기지만 이내 배신당하고 만다. 이후 우연히 대학 동창 켐프 박사의 집에 숨어들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그리핀임을 밝히고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학자로서 투명인간이 되고자 행했던 실험들, 투명인간이 되어서 겪는 일상의 어려움, 몸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과 좌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를 이용해 '공포 시대'를 실현하려는 야심 등을 털어놓으면서 그리핀은 옛 동창을 공모자로 삼고자 한다. 하지만 그리핀을 위험인물이라 판단한 켐프 박사는 경찰과 협력하여 그리핀의 체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쫒기는 와중에도 배신한 켐프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그리핀은 우여곡절 끝에 거리의 군중에게 붙들려 구타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핀의 몸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이전의 일상적 상태로 돌아온다.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섯 명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리핀(Griffin)이 주인공이다. 투명인간이다. 그리핀이라는 이름은 소설 중반에 가서야 언급된다. 또 과학자인 켐프 박사(Dr. Kemp)는 그리핀의 대학 동창으로 포트 버독에 산다. 투명인간이 되어 찾아온 친구의 긴 이야기를 들어 주지만, 결국 경찰과 함께 그리핀을 체포하려 한다. 토머스 마블(Thomas Marvel)은 부랑자처럼 사는 남자이다. 그리핀의 조수가 되지만 배신한다. 이 밖에 홀 부부(Mr. and Mrs. Hall)는 시골마을 아이핑의 여관 주인 부부다. 수상한 투숙객이 투명인간이란 사실을 마을 사람 중 처음으로 알게 된다. 애다이 총경(Col. Adye)은 포트 버독 경찰서장으로 보이지 않는 도망자 그리핀을 체포하고자 전력을 다한다.
“문들 닫아, 창문도 닫아, 전부 닫아라! 투명인간이 오고 있다.” 즉시 그 집은 비명과 지시하는 소리, 당황해서 내달리는 발소리로 가득 찼다. 그는 스스로 열려 있는 프랑스식 창문을 닫기 위해 베란다로 달려갔다. 그가 그러고 있는 동안 켐프의 머리와 어깨, 그리고 무릎이 정원 울타리 가장자리에 나타났다. 다음 순간 켐프가 아스파라거스를 헤집고, 그 집 테니스장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
“당신은 들어올 수 없소.” 힐러스 씨가 빗장을 채우면서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저자가 당신을 쫓는 거라면 당신은 들어올 수 없소.”(p.278)
저자 :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과학 소설(SF)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이다.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로, 과학 소설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역사, 정치, 사회에 대한 여러 장르에도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1866년 영국 켄트주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포목점과 약국의 수습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미드허스트 문법학교의 보조 교사로 채용된 데 이어 사우스켄싱턴 과학사범학교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하며 뒤늦게 학업에 정진하지만 생물학과 동물학 외의 다른 과목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과정 도중 학교를 떠난다. 이후 다시 공부를 시작해 런던대학을 졸업한 후 유니버시티 코레스폰던스 칼리지에서 생물학 강사로 재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사이언스 스쿨 저널』에 연재한 단편소설 「크로닉 아르고 호」를 퇴고하여 『타임머신』으로 출간하였다. 『타임머신』의 큰 성공 이후 『모로 박사의 섬』, 『투명 인간』, 『우주 전쟁』, 『세계사 대계』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SF의 창시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와 동시에 정치학과 사회문제 분야까지 두루 아우르는 글을 저술했으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다룬 2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역자 : 이정서
소설가이며 번역가이다. 의역이 오랜 관행이 된 번역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여, 2014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직역했다. 쉼표, 마침표까지 원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린 번역이 원작과 원저자의 생각을 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그의 주장은 의역에 익숙해 있는 기존 번역관에는 낯선 것이었다. 이후 그는 여전히 직역을 주장하며 『어린 왕자』를 불어·영어·한국어로 비교하고, 그간 통념에 사로잡혀 있던 여러 개념들, 즉 『어린 왕자』에서의 ‘시간 개념’, ‘존칭 개념’ 등을 바로잡아 ‘어린 왕자’를 새로 번역해냈다.
그간 지은 책으로는 『카뮈로부터 온 편지』,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어린 왕자로부터 온 편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이방인』, 『어린 왕자』, 『노인과 바다』, 『헤밍웨이』, 『1984』, 『위대한 개츠비』, 『투명인간』, 『동물농장』, 『킬리만자로의 눈』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