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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탈역사 - 예술의 종말에 관한 단토와의 대화
아서 C. 단토.데메트리오 파파로니 지음, 박준영 옮김 / 미술문화 / 2023년 6월
평점 :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고, 또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지 못하는가?" 독자는 이런 질문을 속마음으로 해본 적이 있다. 특히 현대 미술 가운데 팝아트로 분류되는 일부 미술품들은 마치 낙서 같은 그림, 아무 의미도 없는 재활용 쓰레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물건들이 예술품이라고 전시된다. 뿐만 아니라 미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기도 하는 것을 보고 독자의 예술 지식을 탓하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곤 한다. 사실 기존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별 지식 없이 작품을 접해 왔다. 그저 기존 평에 기대어 작품의 질을 높이 보기도, 또 좀 낮게 보기도 했다. 한마디로 남 감상을 따라 감상했다는 자책감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예술이나 미술 평론을 따로 배울 필요도 못 느꼈다. 생계와 관계 없이 그냥 예술을 즐기는 차원이라 절실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때문에 작품 감상 기준이 비평가나 기존 예술가들이 평가한 대로 오락가락한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이 책 『예술과 탈역사』는 사실 독자에게 굉장히 어렵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도 읽고 싶었던 이유가 저자이자 철학자인 아서 C.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주장해 굉장한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다. 단토는 "예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려면 이제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1964년, 단토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단토의 미학에서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왜 어떤 인공품은 예술이 되고, 또 어떤 인공품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앤디 워홀은 하고많은 상품 중 왜 브릴로 상자를 택했는가? 이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이제 예술을 뭐라 정의내릴 수 있는가? 예술에서 철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사유했다. 그리고 통찰의 끝에, 그는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다. 이 테제는 단토의 많은 저서들에서 여러 번 논의된 바 있지만,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여러 번 비틀리고 왜곡되고 오인되어 왔다.
이 책은 단토가 거듭 주장한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 개념을 재확인하고 오해를 바로잡으며, 더 나아가 워홀 말고도 다양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그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라고 한다. 역자 박준영은 책 뒷 부분의 〈역자 후기〉에서 이 책에 실린 단토와 이탈리아 미술 비평가 데메트리오 파파로니의 대화에 귀 기울이다 정합성을 갖춘 1인칭의 건조한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우발성과 어긋남의 소소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대담자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그러나 절대 오만하지 않게 전달한다고 평가한다. 역자는 또 상호 존중과 배려의 분위기 속에서도 시종 팽팽하게 유지되는 지적 긴장과 거기서 오는 지적 희열은 독자들이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독자로서는 역자의 수준에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두 저자가 대담한 내용 중에서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의 주장도 분명히 밝힘으로써 담화를 이어나간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내용에서 독자가 즐거움이나 희열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들의 대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독자 판단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의 예술론을 다루고 있으며, 누구도 감히 함부로 내세울 수 없는 예술의 종말론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예술 공부라고는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한 독자가 잘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일 것이다. 한마디로 책의 내용은 일반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자 후기〉로 역자의 설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평에서 한두 줄 인용해야 할 내용을 이 책 서평에 원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단토의 예술 철학을 비판적으로 개관하는 서문이고, 나머지는 파파로니와 단토가 주고받은 대화록이다. 특히 이 책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는 대화록은 그 형식의 특성상 딱딱한 논문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단토의 미묘한 생각과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예술의 종말’이라는 단토의 유명한 테제는 그토록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오해를 낳고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토의 예술 철학을 대담의 형식으로, 그러니까 일상의 언어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사유를 입체적으로 헤아려 볼 수 있는 무척 좋은 기회가 된다. 또한 그가 미술, 그중에서도 예술 철학과 분석 철학에 입문하게 된 내밀한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대담자들은 저마다 전문 분야가 다르지만 모두 어느 정도는 철학자고, 미술가며, 미술 비평가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상대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이런 오해는 때로 자기 논리의 허점을 회피하는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 전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초점이 미세하게 틀어지기도 한다. 역자도 사실 내용이 다소 전문적이고 난해한 대목이 적지 않다고 밝힌다. 하지만 이 책을 집어 들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미 모두 조금씩은 철학자이자 미술 비평가, 예술가일 것이고, 따라서 이 책에서 저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값진 정보와 가치, 영감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고 역자는 확신한다. 이런 어긋남을 지켜보며 독자는 화자들, 특히 단토의 논지를 오히려 더 깊고 선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이자 큐레이터, 편집자인 파파로니와의 대화는 그의 넓은 식견과 탐구 정신으로 단토 사유의 여러 측면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이 대화(화가 밈모 팔라디노와 철학자 마리오 페르니올라가 참여할 때도 있다)에서 우리는 서로 날카로운 질문을 주고받는 대담자들의 생생하고 즉흥적인 토론을 지켜볼 수 있다. 단토가 이 시대에 던진 두 가지 화두인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곧 다원주의 시대라고 역자는 본다. 이런 점에서 단토의 사유가 가닿는 영역은 비단 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의 담화가 예술과 철학, 미학의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지금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시대, 사회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되돌아보고 가늠해 볼 수 있는 비전을 제공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역사의 종말이지 예술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로 구축된 세상에 얼마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탈역사’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남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단념하지 못하는데 인간의 마음이 늘 사태를 서사적 관점에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만간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p.84)
동시대의 예술의 주된 목적은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단토는 미학을 동원하는 예술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는 미학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사가 전개되는 동안 제작된 예술 대다수의 주된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전통적 예술과 일부 동시대 예술에는 틀림없이 미적 요소가 있다."라고 확언한다.
역자는 파파로니가 「우연히 시작된 대화들」이란 〈서문〉에서 언급하듯 이 책은 단토와의 대담 외에도 단토의 예술 철학을 개관하는, 그러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파파로니 본인의 독자적인 생각을 표명하는 해설 『주디의 방에서』를 포함한다. 역자가 이해한 바로 '주디의 방'은 예술과 삶, 혹은 허구와 실재가 공존하는(달리 말해 양자가 끊임없이 자리바꿈하는) 공간을 표상한다. 그리고 바로 이 사태의 핵심 계기는 역사 혹은 시간의 어떤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있다. 파파로니는 이 해설에서 여러 개별 작품의 '시간관'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예술과 진리, 차용과 독창성, 해석과 동기(의도), 모더니즘과 탈역사 등의 문제를 논하는데, 단순히 보론(補論)이라기보다는 1~4장의 대담과 별개로 그 자체로도 탁월한 통찰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에세이라고 강조한다.
대서사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무엇이라도 가능한 시대, 소서사들의 시대가 열렸다. 거실에서는 TV가 사라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채널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예술계의 오늘과 어제와 미래를 조망한다. 예술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특수한 구역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을 축소한 모델-어느 영역보다 세계의 흐름에 예민하고 민첩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이런 뜻에서 『예술과 탈역사』는 예술의 범주에서 더 나아가 한 권의 인문·역사서로도 기능한다. 나아가 단토가 제기한 두 가지 화두, 탈역사 개념과 다원주의 비전은 우리가 현시대를 진단하고 각자의 지난날과 앞날을 조망하는 데도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참고로 역자가 앞서 언급한 대로 파파로니의 해설 『주디의 방에서』의 일부를 여기에 게재한다. "아서 단토가 보기에, 작품에 점차 철학이 깃들면서 그것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일을 눈이 아닌 정신이 맡게 되리라는 헤겔의 예언이 실현된 것은 뒤샹에 이어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제기한 질문들과 더불어 20세기에 와서였다. 단토가 그의 '예술의 종말'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전념하게 된 중대한 순간은 그가 1964년 맨해튼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열린 워홀의 전시회를 방문했던 때와 일치한다. 어떤 것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역사의 어느특정한 시기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게 되는 이유를 그가 탐구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그때였다. (중략)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평범한 대상으로 제시된 예술 작품들로, 둘 다 구상 미술의 서사 구조도 추상 미술의 구성 구조도 없다. 단토에 따르면 평범한 대상과 예술품의 차이는 이제 그 형태가 아니라 해석 과정에 근거하는데 브릴로 상자의 경우에는 서로가 서로를 지시하는, 즉 원본과 사본을 구별하기 힘든 한 쌍의 대상을 비교하는 방법이 쓰인다. 예술품에 대한 단토의 철학적 해석은 바로 이런 동일성과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뒤샹과 워홀의 작품에 대한 비교 분석은 예술품의 고유성과 항상성을 숙고하게 한다."(p.39~54)
이 책을 국내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하게 된 올해가 단토의 타계 10주기다. 이탈리아어 초판은 2020년에, 개정을 거친 영어판은 작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시점이 시점이니만큼 한 가지 의미를 부여해 이 책을 소개한다면,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 철학자의 성취와 자취를 뒤돌아보고 기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역자는 소감을 밝혔다.
“내 견해는 ‘죽음’이 명백히 뜻하는 바대로 예술이 더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상 적절한 다음 단계로서 확신을 주는 서사에 힘입지 않아도 어떤 예술이든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나는 것은 서사(narrative)이지 서사의 대상(subject)이 아니다.” 예술 자체가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과 더불어 예술을 비평하는 일정한 방식이 끝난다는 말이다.(p.84)
저자 : 아서 C. 단토(Arthur C. Danto)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 비평가. 웨인주립대학교에서 미술과 역사를 공부했으며 판화가로 활동하면서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철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다양한 교수직을 역임하다가 1966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1984년부터 2009년까지 『네이션』의 미술 비평가로 활약했으며 미국철학회장과 미국미학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주 관심사는 사고, 감정, 예술 철학, 표상 이론, 철학적 심리학, 헤겔 미학, 그리고 메를로퐁티와 니체, 장폴 사르트르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고, 또 어떤 인공품은 예술품이 되지 못하는가?’라는 논지의 화두를 미술계에 제기해 이목을 모았다. 같은 해 발표한 논문 「예술계」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부하면서 철학적 미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2013년 10월 89세를 일기로 타계한 단토는 수많은 평론과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서로는 『예술의 종말 이후』와 1990년 미국도서평론가협회 평론 부문을 수상한 『만남과 성찰』을 비롯해 『일상적인 것의 변용』 『브릴로 상자를 넘어서』 『비자연적인 기적들』 『미래의 마돈나』 『앤디 워홀』 『무엇이 예술인가』 『미를 욕보이다』 등이 있다.
저자 : 데메트리오 파파로니(Demetrio Paparoni)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이자 큐레이터, 작가, 편집자. 카타니아대학교에서 근현대 미술사를 가르쳤으며 지금은 이탈리아 신문 『도마니』에서 미술 비평가로 일하고 있다. 1983년에 현대 미술 매거진 『테마 첼레스테』와 동명의 출판사를 설립하여 2000년까지 운영했다. 주요 저서로는 『악마: 시각적 역사』(2019) 등이 있다. 단토 생전에 그의 담당 편집자로 일했으며, 단토와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해 본서로 출간했다.
역자 : 박준영
한때 영화를 만들었고, 미학을 잠시 공부했다. 현재는 미학을 실천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란 핑계로 번역을 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분석 철학과 현대 예술이며, 옮긴 책으로는 나이절 워버턴의 『그래서 예술인가요?』와 벤체 나너이의 『미학』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