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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박미옥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5월
평점 :
이 책 『형사 박미옥』은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의 이야기다. 탈옥수 신창원 사건,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 숭례문 방화사건 화재감식 등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 속에 형사 박미옥이 있었다. 이 책은 30년간 강력계 형사로 살아가면서 파헤쳐나간 굵직한 사건들뿐만 아니라 뉴스에 한 줄 나가지 못한 소매치기 일당이나 스토커, 차량 절도범들과의 이야기가 담긴 치열하고 뜨거운 기록이다. 최초의 여형사인 만큼 많은 에피소드를 갖고 있을 듯하다. 특히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는 전설의 여형사가 바로 박미옥이라고 한다. 1991년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로 ‘여자형사기동대’가 창설됐다. 그는 초임 순경 시절 '자의반 타의반'으로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가 됐다.
그가 교통순경으로서 거리에서 힘차게 수신호를 하던 때 여자형사기동대를 지원하는 여자 형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상사이던 분이 '자네도 지원해봐' 한마디가 박미옥을 대한민국 전설의 여형사가 된 단초였다. 초보 형사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후 30년간 강력계 여형사로 살아가며 그가 어떤 지옥 같은 사건과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지를. 그 와중에도 인간의 선의를 믿을 수밖에 없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가 그 선함을 지키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어디까지 가게 될 것인지를.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 한강변 여중생 살인사건, 숭례문 방화사건 화재감식 등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을 맡았던 형사 박미옥이 직접 쓴 이 책은 여형사로서, 남성들의 세계라던 강력계 형사들 사이에서 제몫을 톡톡히 해 여형사의 전설이 됐다.
당시 여성 형사, 강력계 형사는 경찰 내에서도 낯선 존재였기에 사건뿐 아니라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그는 “‘냄비’(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은어)가 왔냐”는 인사에 “주전자는 가만히 계시죠”라고 응수하고, “립스틱 정책이냐”는 비아냥에 머뭇거림 없이 맞받아쳤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사건은 여경과 남경의 성 대결이 아니라 팀워크로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들을 통해 이른바 ‘여경 무용론’을 무너뜨리고 사회의 성 편견을 정당하게 부숴버렸다. 그리고 강력범죄 현장에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선과 악의 끝을 마주한 형사 박미옥은 해결되지 못한 상처들, 남모르는 아픔들로 앓고 있는 한국 사회에 책을 통해 안부 인사를 건넨다.
형사로 살면 살수록 세상과 사람에 대해 점점 더 모르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형사 박미옥은 되돌아본다. 점점 더 아는 게 많아지고 매사에 명확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온갖 사건들은 내게 사람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선명하게 갈리지 않는다고 이 책을 통해 말한다. 그렇게 모르기 때문에 점점 더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도 강조한다. 타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부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겨우 한 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속속들이 관찰하고 파헤치고 묻는 것만이 사건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모르는 인생 앞에, 쉽게 안다고 표현 못 하는 타인 앞에 저자 박미옥은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내내 그러할 것이라고 장래도 밝힌다. 영원히 잘 모르므로 눈과 손발이나마 부지런히 굴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고. 공직자로서 자세도 확고하게 자리잡은 듯한 모습이다.
예전에 몇몇 사건들로 인해 세간에 ‘여경 무용론’이 유행처럼 입길에 오르곤 했다. 그때나 이제나 형사 박미옥은 아무 말도 히지 않았다. 기존 남자 형사들은 물론 국민들도 여형사라는 존재를 낯설어하고 이상하게 여기던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강력범죄 현장을 누비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무수한 사건들을 해결해온 여경이 나서서 반론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뿌리 깊은 여성 비하 의식이 하루아침 한 사람의 말로 사라지겠는가? 오히려 더 큰 후폭풍이 우려될 뿐이다. 그는 당시에도 지금 여기에서도 오직 범죄 척결과 범죄 척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후배들에게 몸으로 가르치는 데 익숙해 있다. 그의 그런 소신과 성격은 책제목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른 수식어도 없이 간결하고 명확하다.
그가 처음 강력계 형사가 되었을 때, 국민들은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남자 형사들에게도 여자 형사란 낯설고 이상한 존재였다고 한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독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여경들은 복사 심부름이나 보조업무 같은 행정 파트에나 있는 줄 알았다. 또 대부분의 여경들이 비교적 힘들지 않은 파트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다. 91년 당시에는 여형사가 배치되면 ‘형사기동대 차로 운전연습을 하더라’ 같은 유언비어성 비난이 퍼지기도 했다고 한다. 여형사들끼리 거의 다 해결해놓은 사건을 막판에 ‘여형사가 범인을 직접 검거하기엔 위험하다’는 이유로 남자 형사에게 고스란히 공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형사들은 이렇게 사건뿐만 아니라 세간의 편견과도 싸워야 한 것이다. 하물며 최고의 검거 실적을 쌓아가던 박미옥 형사가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도, 그는 공식석상에서 이런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탈옥수 신창원 검거 특별팀에 투입되었을 때는 웬 ‘냄비’(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은어)가 왔느냐는 거친 언사도 들었지만, 그는 “주전자는 가만히 계시죠”라고 응수하며 곧장 현장에 집중했다. 결국 현장에서 사건은 여경과 남경의 성대결이 아니라, 언제나 긴밀한 팀워크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범인을 검거하다가 도리어 경찰이 부상당하거나 때론 사망하기도 하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현장. 그는 이 현장에서 함께했던 동료들의 삶과 죽음들을 곡진한 문장으로 위로하고 쓰다듬는다.
애통하게 떠난 두 형사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날, 나는 그곳에서 두 형사를 보내는 진혼시를 낭독했다. 그때 내 안에서 나 자신과 내가 아는 모든 형사들의 영혼이 목놓아 울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형사의 울음이었다. 경찰관으로서 제복 입고 가슴에는 흉장을 달고서 밤낮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경찰 정신을 안고 살지만, 실은 언제 칼 맞고 총 맞을지 모르는 운명. 경찰관 이전에 우리도 흉기를 보면 두렵고 괴한에게 죽임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 뿐이라고 대놓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우리 동료들끼리만 아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현장을 함께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남녀 불문 우리 모두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때론 나의 불안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 경찰의 세계는 여경과 남경으로 갈리지 않는다. 한마음으로, 서로 함께하는 호흡과 노력으로, 오던 칼도 멈추게 하고 가던 범인도 우리 손 안에 들어오게 하는 기운은 오직 팀워크에 있다.(p.22~23)
이 책에는 대한민국의 국보 1호(숭례문)가 잿더미가 되어가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온 국민에게 생중계된 숭례문 방화사건, 국민들 사이에 의적이라도 된 듯 신드롬을 일으켰던 탈주범 신창원을 검거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의 일기장을 분석했던 때의 일을 비롯해 그가 파헤쳐나간 수많은 사건들의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에게 특진과 포상을 안기며 그의 이름을 인구에 회자되게 한 것은 대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큰 사건과 지독한 범죄자들일 테지만, 이 책에서 그가 특히 공들여 기록한 것은 뉴스에 한 줄 나가지 못한 소매치기 일당이나 스토커, 차량 절도범들과의 전투다.
소매치기는 반드시 현장검거를 해야만 하는데, 훔치는 손은 너무도 빨라서 그의 눈에 잡히지 않는다. 형사 박미옥은 만원 전철 속으로 스며들어가 소매치기로 추정되는 이의 등에 슬그머니 제 어깨를 기대본다. 그리고 가만히 포착한다, 범인의 어깨뼈가 움직이는 그 찰나의 순간을. 눈보다 예리한 감각으로 마침내 그는 소매치기 일당을 현장검거한다.
흔히 형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강력사건이나 흉악범들이 회자될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하지만, 형사들이 자신의 업에 뿌듯함을 느끼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다. 범죄자가 움직이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붙들어 범죄 피해를 막아냈을 때, 뉴스에도 한 줄 나가지 못할 작은 사건일지라도 서민들이 가슴 칠 일을 막아냈을 때라고 회고한다.
"내가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길 일이 필요했을 때, 소매치기 두목과 기술자를 잡았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자주 내 일에 대한 성과와 보답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야 비로소 다음을 향해 넘어갈 수 있고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한다. 일의 고통을 이겨낼 힘도, 일하다 얻은 상처를 싸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동력도 모두 일이 주는 기쁨과 슬픔 속에 있었다."(p.165~166)
형사 박미옥은 취조의 달인이자 범인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는 기술자다. 범인의 화려한 범죄경력보다 살이 다 터지고 때가 낀 범인의 손등에 담긴 표정을 읽어내 기댈 곳 없는 범인의 마음을 달래고, 자백을 닦달하며 취조하기보다 질문하고 대화하며 속이야기를 끌어낸다. 위험천만한 인질극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도 그는 “지금 당신의 얘기를 듣고 도울 사람은 바로 나”라고 외치며 범인과 인질 모두를 살려낸다.
범인에게 ‘당신 왜 그랬느냐,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느냐’고 더 정확하게 묻기 위해 프로파일링을 공부하고 서울과학수사계 프로파일링 팀장으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 또다른 삶의 도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그가 돌연 경찰 조직을 떠난다고 했을 때, 불치병에 걸렸다더라는 소문이 퍼질 만큼 그는 경찰로서의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는 이제 ‘현장이 되기 이전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인생에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며, 상황에 따라 선과 악을 오가며 살아가는 우리들-그 복잡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을 그는 듣고 싶다고 말한다.
30년 형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경청과 응시로 사건을 해결했고, 여자라고, 남자라고, 범죄자라고, 전과자라고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하고 막 대하지 않는 법을 몸과 마음에 새겼다.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들이 수시로 터져나오는 강력범죄 현장에서 선과 악의 끝을 목격한 형사 박미옥-이 책은 해결되지 못한 상처들, 남모르는 아픔들로 앓고 있는 한국 사회와 사람들에게 건네는 그의 안부인사이다. 그는 책을 통해 말한다. 오래된 상처와 원한들이 터져 피와 눈물이 되어 흐르는 현장에서 끝없이 후회하고 애도하지만 말고, 이제는 일상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풀며 살자고. 우리는 끝내 그럴 수 있다고.
"사람들의 욕망과 슬픔이 버글거리는 그 현장에서 나는 결코 이기적일 수 없었다. 때론 기꺼이 이익 앞에 물러나고 불편함을 감수한 것은 그것이 곧 형사의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이미 현장이 된 사람보다 현장이 되기 이전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제 나는 일상의 당신들을 만나고 싶다."(p.295)
저자 : 박미옥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하며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1991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여자형사기동대를 창설할 때 선발되어, 23세에 한국 경찰 역사상 첫 강력계 여형사가 되었다. 경찰이 된 뒤 익힌 수준급의 유도, 태권도, 검도 솜씨로 사람들을 압도하며 출중한 검거 실적을 쌓아갔다. 순경에서 경위까지 9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했다. 청송교도소 출신 납치범을 검거하며 경사를 달았고, 탈옥수 신창원을 잡는 데 기여한 공로로 경위가 되며 특진을 거듭했다.
2000년 최초로 여성 강력반장이 되었고, 2002년 양천경찰서 최초의 여성 마약범죄수사팀장으로 임명되었다. 2007년부터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프로파일링)팀장과 화재감식팀장을 겸임하며 숭례문 방화사건 현장의 화재감식을 총괄지휘했다. 2010년에는 마포경찰서 강력계장으로 발령받아 만삭 의사 부인 살인사건, 한강변 여중생 살인사건 등을 해결했다. 이어서 2011년 강남경찰서 최초의 여성 강력계장을 맡고 본인이 세운 ‘최초’의 기록들을 스스로 갈아치우며 여형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간다.
드라마 〈시그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괴물〉 〈히트〉 〈미세스 캅〉 〈너희들은 포위됐다〉, 영화 〈조폭 마누라〉 〈감시자들〉 〈하울링〉 등 수많은 작품에서 형사의 현장과 사건에 대해 자문을 맡고, 극의 모티브가 되었다. 2021년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을 끝으로 명예퇴직했다. 언론은 그를 ‘여경의 전설’이라 칭했다. 현재 제주에서 후배 여형사와 한 마당에 각자의 집을 짓고서, 마당 한쪽에는 인간의 선악과 마음에 대한 책들을 가득 채운 서재 겸 책방을 열어둔 채 살고 있다. 두 여형사의 집에 온 사람들은 고단하고 복잡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울고 읽고 쉬어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